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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814 vote 0 2010.10.25 (18: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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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읽기


  마음은 일을 한다. 마음이 하는 일을 알면 마음을 바로 다스릴 수 있다. 마음이 하는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의 일은 정신, 의식, 의도, 생각, 감정이라는 다섯 단계를 거쳐 진행된다. 인간의 다른 여러 가지 일들과 다를 바 없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반드시 거쳐야 할 다섯 단계가 있다.


  ◎ 현장도착≫도구장악≫방향설정≫시간진행≫성과획득


  농부가 밭을 갈더라도 먼저 ‘정신’이라는 들판에 가서, ‘의식’이라는 트랙터에 올라타고, ‘의도’라는 공간적 작업방향을 정하고, ‘생각’이라는 시간적 밭갈이를 진행하고, ‘감정’이라는 수익을 획득하는 다섯 단계가 있다.


   마음을 자동차에 비유한다면 첫 번째 정신은 자동차의 운전자와 같다. 먼저 정신차려야 한다. 그것은 바른 운전자를 태우는 것이다. 엉뚱한 사람을 운전석에 태웠다가는 사고가 나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운전자가 외부에서 온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마음의 문제는 외부의 환경에서 비롯된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행복이든 불행이든 외부에서 전해지는 소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마음은 본래 원생동물이 외부의 자극을 처리하는 데서부터  진화했기 때문이다.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외부로 나가야 한다. 나가서 더 높은 세계와 만나야 한다. 소극적으로 제 자리에 머무르며 마음 안에서 어떻게든 답을 찾으려고 노력해서는 결코 답을 찾을 수 없다. 원인은 항상 외부에 있다.


  마음이라는 자동차가 달리지 못하는 이유는 바른 운전자가 탑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태울 마음을 태워야 한다. 더 높은 운전자를 받아들여야 한다. 더 높은 세계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것이 깨달음이다.


  두 번째 의식은 운전자가 자동차의 각 부분을 장악하여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의식이 없다면 어떨까? 자의식이 없고, 역사의식이 없고, 시민의식이 없다면, 도무지 의식화 되어 있지 않다면? 그 자동차는 브레이크가 없고, 엑셀레이터가 없고, 클러치가 없고, 트랜스미션이 없고, 핸들이 없는 자동차와 같아서 통제할 수 없다. 운전자가 자동차를 장악할 수 없게 된다.


  자동차의 여러 부품들이 잘 결합되어 있어야 하며 모든 부품이 중앙의 통제를 받을 수 있도록 일렬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브레이크≫클러치≫트랜스미션≫엑셀레이터≫핸들의 조작순서는 지켜져야 한다. 의식은 마음의 내부를 하나의 컨셉에 맞추어 정렬시키는 것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더라도 한 순간에는 하나의 조작을 해야 한다. 브레이크와 엑셀레이터를 동시에 밟을 수는 없다. 클러치를 밟지 않은 채 트랜스미션을 조작할 수는 없다. 의식은 생각과 감정의 하부구조를 정신과 의식의 상부구조에 종속시켜 매 순간 뇌에서 하나의 명령이 내려가게 하는 것이다.


  마음이 상하는 이유는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명령이 동시에 내려오기 때문이다. ‘당구 한게임 치고 싶다’는 명령과 ‘오늘 내로 일을 해치워야 한다’는 명령이 동시에 내려오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의식화 하는 방법으로 일의 우선순위를 판단함으로써 마음의 정렬시켜 마음의 갈등을 풀 수 있다. 의식화 한다는 것은 무엇이 더 중요하고 어떤 것이 덜 중요한지 판단하여 두는 것이다. 의식을 가질 때 마음은 바닥짐을 실은 범선처럼 안정을 얻어 큰 바다를 누빌 수 있다.


  세 번째 의도는 그 자동차가 가다가 도중에 만나게 되는 갈림길이다. 어느 길로 갈 것인지 본인이 선택을 해야 하며, 한번 선택을 한 다음에는 일관되게 그 길을 가야 하고, 만약 오류가 발견되면 재빨리 유턴을 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오류를 알면서도 의도를 바꾸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생길은 혼자 가는 길이 아니라 더불어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남의 눈치를 보며 우유부단하게 행동하다가 잘못된 길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


  흔히 ‘속 보인다’고 말한다. 속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남의 속은 잘 들여다 보면서도 정작 자신의 속은 들여다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자신의 의도를 훤히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의식 상태에서 직관에 의해 방향을 선택한다. 사회적인 균형감각에 따른 방향감각이 있는 것이다.


  의도는 공동체 안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동료와의 관계 속에서 포지션 형태로 성립하기 때문에 직관적인 감각으로 작동한다. 다 그러한 것은 아니고 무지한 보통사람이 그러하다. 교양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의도를 자각해야 한다.


  순수하게 자신의 의지에 따른 판단으로 자신의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눈치를 보다가 동료의 선택에 영향을 받아 자신의 길을 선택하기 때문에 자신의 의도를 알지 못하게 된다. 그것이 방향감각이다.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들이라면 그러한 방향감각으로 충분하지만 인간이라면 그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이 적대하는 사람이 왼쪽을 선택하면 자신은 반사적으로 오른쪽을 선택하고, 자신이 추종하는 사람이 이쪽을 선택하면 자신도 이쪽을 선택한다. 늑대는 이 방법으로 훌륭하게 사슴을 몰이하지만 인간이 이 수준에 머무른다면 곤란하다. 이 경우 자신이 독립적으로 판단한 진정한 길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의도를 바꾸지 못하게 된다.


  대부분 공동체 안에서의 직관적인 균형감각, 방향감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사회관계 안에서 누가 주(主)고 누가 종(從)이며, 또 누구와 적대적이고, 누구와 친한지를 보면, 그 사람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속이 다 보인다.


  의식화 해야 자신의 의도를 명확히 알 수 있고, 그럴 때 잘못된 자신의 의도를 바꿀 수 있다. 그럴 때 마음은 다스려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료와의 얽히고 설킨 관계 속에서 빠져나와 정신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그것이 의식이다.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않고 타인에게 의존하여 판단한다면 어리광이다.


  자기 인생의 전략을 가져야 한다. 삶의 컨셉을 얻어야 한다. 타이틀 있는 삶이어야 한다. 그것이 의식이다. 이 길을 왜 가는지, 지금 어디로 가는지, 현재 어디쯤 와 있는지 알고 있어야 내일 어디로 갈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의도는 분명하게 정립된 의식 안에서 잘 작동한다.


  네 번째 생각은 그 길을 가는 것이다. 역시 자신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생각을 바꿀 수 있고, 생각이 바뀌어야 감정이 바뀌며, 감정이 바뀌어야 행복해진다. 대부분의 생각은 짧은 순간에 직관적으로 일어나지만 그 순간에도 뇌는 판단하고 있다.


  권투선수가 일초 안에 몇 번의 주먹을 내밀지만, 그 순간순간에도 뇌는 분명하게 판단하고 있다. 상대의 주먹을 피하고 나의 주먹을 휘두르며 근육에다 수백가지의 명령을 내려보낸다. 학계에서는 ‘자동적 사고’라 해서 무의식 상태에서 생각이 진행된다고 말하지만 이는 생각을 읽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의식화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의도를 모르듯이, 의도를 모르기 때문에 생각을 읽지 못한다. 빠르게 말하는 아나운서는 일초의 짧은 시간에 수십단어를 쏟아부을 수 있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뇌는 지켜보고 있다. 뇌는 분명히 생각하고 있다.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과거에 생각을 해두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작동할 때는 과거의 생각을 재활용하면서 YES와 NO만 판정하기 때문에 생각은 순간적으로 스쳐가고 자신이 잘 의식하지 못한다.


  생각이 잘못되면 순간적으로 어색함이 스쳐지나간다. 그것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생각한다는 것은 축구선수가 빠르게 공을 패스하듯이 포지션들 사이에서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거쳐가는 관절부분이 있고 그 지점에서 어색함을 포착할 수 있다.


  놀부는 흥부 얼굴만 봐도 괜히 괘씸하고, 때려주고 싶고, 골탕먹이고 싶다. 심술이 나오는 것이다. 자동적 사고에 의해 그냥 그런 느낌이 드는 것처럼 보인다. 천만에! 여기에는 자신이 갑이고 흥부는 을이며, 상대방을 나에게 종속시켜 다루기 쉽도록 조치를 해놓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분명히 포지션을 읽은 것이다.


  문제는 놀부 자신이 그러한 자신의 의도를 모른다는 점이다. 놀부가 흥부를 괴롭히는 이유는 그러한 행동이 자연스럽고, 떳떳하고, 마땅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는 흥부를 제압하여 자기 밑으로 종속시켜 둘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 짧은 순간에 놀부의 뇌는 계산할 것 다 계산한 것이다. 통박을 굴린 것이며 이해타산을 따진 것이다. 그래도 손해 안 본다는 자신감이 바닥에 깔려 있다.


 어린 시절 필자는 동생의 행동이 영 신경이 쓰였다. 동생이 뭔가 잘못하고 있으며 바로잡아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동생의 얼굴만 봐도 ‘또 뭔가 나쁜 짓을 하려고 하는군. 그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통이 난 것이다. 수시로 주먹다짐을 하는 상황이 되었다. 어느 순간에 그것을 깨닫고 이후로 한 번도 개입하지 않았다. 의도를 바꾸어야 생각이 바뀐다. 의도는 자신이 포지션의 우위에 서려고 하는 것이다. 상대방과 나 사이에 깔려 있는 밑바닥의 긴장 자체를 원초적으로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섯 째 감정은 마음이 이러한 일처리 과정을 거쳐 그 결과물로 행동을 촉발하게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이다. 호르몬의 작용으로 호흡이 빨라지고 근육이 경직되며 다른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스트레스 상황이다. 행동을 하거나 아니면 욕망하여 다른 계획을 세우게 된다. 하나의 사건이 또다른 사건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감정의 처리는 그 연쇄적인 파급을 차단하는 것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행동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화가 났기 때문에 더욱 화가 나는 것이다. 처음에는 잘 타일러서 그만두게 하려고 하다가 상대방이 어깃장을 놓으면 한 대를 쥐어박게 되고, 그때부터는 이성을 잃고 폭력으로 치닫게 된다. 이런 현상은 과거에 폭력을 쓴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경우 상대방을 혼내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 속의 폭력에너지를 쏟아붓기 위하여 폭력을 쓰게 되며, 자기 기력이 완전히 소진될 때 까지 폭력을 휘두르게 된다. 폭력중독이다.


  처음에는 사건이 감정을 끌어내지만 다음에는 감정이 감정을 끌어내게 된다. 감정은 에너지를 쏟아부어 행동을 촉발하려는 것이다. 이미 에너지가 작동했기 때문에 액션 자체가 목적이 된다. 즉 그 지점에서 애초에 원인이 되었던 사건은 끝나버리고 에너지의 작동이라는 다른 사건으로 불똥이 옮겨 간 것이다. 이것이 완전히 별개의 사건임을 인식해야 멈출 수 있다.


  감정의 에너지 분출은 다른 사건을 촉발하는 기폭제가 된다. 그것이 욕망이다. 이 경우 같은 사건이 단순히 반복되게 된다. 같은 사건의 반복은 의미없으므로 배척해야 한다. 감정단계에서 하나의 사건이 완결되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새로운 사건은 감정의 에너지 찌꺼기인 욕망이 아니라 외부에서 유입되는 새로운 환경변화에 의해 일어나야 한다.


  다시 정신의 포지션으로 돌아가야 한다. 욕망에 휩쓸리지 말고 정신차려야 하는 것이다. 욕망에 따른 행동은 게임중독, 도박중독처럼 의미없이 반복되는 것이며 이는 마음의 일처리 실패일 뿐이다.


 

  ◎ 정신 - 상황타개를 위해 상대방을 주먹으로 치라고 지시한다.

  ◎ 욕망 - 한 대만 때려도 되는데 공연히 열 대를 때리고 더 때리려 한다.


  마음의 작동원리로 보면 열대를 때리든 백대를 때리든 같다. 그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그러므로 욕망은 사건의 원인이 아니고 분량조절일 뿐이다. 욕망은 내부로부터의 소식이며, 사건의 진짜 원인은 반드시 외부에 있고, 외부의 환경변화를 포착하여 마음 안으로 받아들이는 정신이 사건의 진짜 원인이다.


  정신없이, 의식없이, 의도없이, 생각없이, 욕망에 따라 하는 행동은 같은 행동의 무의미한 반복이며 이는 단지 시간낭비에 불과하다. 뇌의 호르몬 조절 실패에 불과하다. 호르몬은 한분 분출되면 그 뿐 도무지 회수가 안 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뇌기능의 에러다. 욕망을 끊을 수 있어야 한다.


  마음에 감정이 나타나면 ‘나로 하여금 행동을 촉발하게 하기 위하여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구나’ 하고 간파하여 감정이 자신의 몸을 충분히 덥혀서 과감하게 액션을 취할 수 있게 된 단계에서 ‘이 정도 몸을 달구었으면 충분해. 여기까지!’ 하고 스톱시켜야 한다. 이는 연습으로 가능하다.


 

 

 

 

http://gujoron.com




[레벨:15]오세

2010.10.26 (00:00:50)

초딩시절 아해들이 "남자는 이래" "여자는 저래"하며 포지션을 설정하고 그에 맞춰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며 무언가 어색함을 느꼈던 기억이 나는구료.
<의도>가 포지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 이 역시 현대 심리학의 발견과 정확히 일치하는 바이오.
모든 심리치료의 기제는 그러한 의도를 의식화하는 것을 근간으로 하오. 무의식의 의식화, 이것이 심리치료의 본령이라오.

[레벨:10]다원이

2010.10.26 (09:07:38)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있습니다... 늘 감동하며 읽고 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김미라

2010.10.26 (10:19:21)

정신분석이든 실존이든
무의식을 의식의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것을
심리 치료의 가장 근본적인 목표로 하는 것 같습니다.
행동주의 역시 사고, 행동, 감정중에서 행동부분을 먼저 건드리지만
결국 사고, 행동 감정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으니, 행동을 건드려서,
사고와 감정을 바꾸어 주는 것이죠.

이제 무엇(what)과 왜(why)가 정립되었으니
어떻게(how) 부분만 남으신것 같네요.

요즘 공부하고 있는 로고테라피(logotherapy)심리치료에서는
역시 '변화의 주체가 되도록 돕는것' (becoming change agent)을 심리치료의 목적으로 하고 있고,
그래서 'awakening in attitudinal change' 라든가
"awakening into a new attitude, a new choice, and a new behavior'이라는 표현으로
"깨달음'"에의 길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떻게(how)부분에 대해서도 아주 구체적인 심리치료 기법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역설적 의도(paradoxical intention)이라든지,dereflection(탈숙고? 탈반영?),
movie experience, the mountain peak, the fast forward experience등과 같은 심리치료기법들은
실제 상담세션에서 이용되고 있습니다.

역설적 의도의 경우는 참 재미있는데, 어떤 증상이 있는 경우 그 증상을 '의도적으로' 가중시킴으로써
증상을 의식적으로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공포증등의 같은 증상으로
고생하고 계신 분들께 아주 효과적입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그 공포감을 의도적으로 가중시키는 것이죠.
이러한 의도적인 명령을 통해서 인간만이 가능한
 '나를(엄밀히 증상을) 나의 밖에서  바라보는 것' (self-distancing)이 가능해지고,
나를 나의 밖에서 바라봄으로써 무의식을 의식수준으로 올려
"깨달음" (awakening)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자기자신으로 부터 거리를 두는 것' (Self-distancing과 더불어 '자기초월(self-transcending)'이
깨달음에 반드시 필요한 길이구요.

'어떻게 (how) 라고하는 방법적인 부분에서는
기존의 심리치료(모든 심리치료를 포함)에서 개발된 방법들을 십분이용하면 되겠네요.

물론 이와 같은 심리치료 기법들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깨어나는 것, 깨닫는데는 여러가지 길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0.10.26 (11:58:03)


어떻게(how)는
아마 치료의 관점이겠지요.
사실 저는 치료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깨달음이 중요하지요.
나쁜 것을 구태여 고칠 필요는 없다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면 다 해결된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무리가 전진하면 저절로 내부에 질서가 생겨납니다.
형님 아우 사이좋게 잘도 나아갑니다.
나아가던 무리가 도중에 주저앉으면 만가지 병통이 생겨납니다.
형님 아우 멱살잡고 싸웁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여러가지 행동들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야지만
그에 따른 합리성에 의해 사회가 안정되고 진보하는데
실제로는 무의식적으로 공동체의 안정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것이며
그 경우 공동체가 안정되어 사회의 진보가 없다는 역설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인류의 진보는 사실 아주 위험하고 고약한 것입니다.
인간은 140억년 된 우주에 느닷없이 나타나서
30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거의 망쳐놓고 있는데
이건 잘못된 거죠.

인류의 진보는 우주의 안정을 깨뜨리는 위험한 악재이기 때문에
우주의 안정을 위해서 범죄자와 독재자와 바보와 천치와 명박들이 나서고 있는 거죠.

그들은 우주에 해로운
인류의 진보를 가로막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건 역설적인 표현이고
개인에게 좋은 것은 전체의 밸런스를 깨뜨린다는 점에서 해롭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전체를 위해 개인을 해치는 의인 5만명이 전국의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지요.
그들은 자신을 학대하고 해치는 방법으로 인류에게 리스크의 존재를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실 원시의 건강한 유전인자를 가진 선량한 사회주의자들입니다.
네것이 내것이고 내것이 네것이라는 원시 사회주의 도덕을 실천했을 뿐입니다.

학급에 보면
뒷줄에 몇몇 꼴통들이 진을 치고 있는데
그들이야말로 성인 군자라 하겠습니다.
그들은 공부를 하지 않는 방법으로 앞줄에 앉은 범생이들의 석차를 올려주지요.
그들은 경쟁과잉의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는 의로운 존재들입니다.
그들이 없다면 학급은 그야말로 삭막한 사막이 되고 말 것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우리는 나쁜 짓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 공동체를 해치는' 행동이라 보는데
이는 표면으로 보아서 그러하고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의도로 보면
대부분의 나쁜 짓은 정글에서 익혀온 유전인자가 작동하여 
공동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형태로 일어나고 있으며
당사자들은 그걸 모르고 있다는 거죠.

정글에서는 항상 보아뱀과 말레이곰과 독충들이 우글거리기 때문에
꼴통들과 사고뭉치들이 깝죽대다가 보아뱀에게 잡아먹힘으로써
살신성인하여 공동체에 위험의 존재를 경고한다는 거죠.
이들이야말로 다윈상을 받을만한 적임자이죠.

교실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꼴통들을 보면
그들 덕분에 의사소통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사라지고 화기애애한 장면이 연출되는 거죠.
눈치 하나로 상황 파악이 가능한 형태가 되는 거죠.

프로필 이미지 [레벨:2]김미라

2010.10.26 (12:40:55)


선생님의 말씀대로라면,
소위 '병리'라는 것 또한 '공동체를 위한 개인 희생의 형태'로 보아야겠군요.

새로운 통찰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떠한가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소위 '병리'로 고생하고 있는 분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도와주고 싶고,
그것이 제 삶의 의미의 일부라고 믿고 있는데...

선생님의 관점에서라면 저의 포지션은?
........

제가 더생각해볼 문제입니다.
갈길이 한참 먼것 같습니다.

한편 구태여 변명을 하자만^^,
'치료'라는 말을 사용하였지만, 
저에게 치료란  'cure의 개념이 아니라
'care'이고, 저 또한 선생님의 생각처럼 굳이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개인적으로 고통이나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는 것이죠. '지나간 과거'들이 고통이지만, 다시 돌아가 고칠수는 없는 것이죠.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눈, 새로운 통찰력은 가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통찰력을 갖는 순간, 정말 거짓말처럼 고통안에서의 여러가지
신체적, 심리적 증상들이 사라지는 경우를 많이 목격했습니다.
그러니 깨달음,통찰, 인식, 그리고 치료나 보살핌등이 모두 하나로 통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많이 도전이 되었고,
또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0.10.26 (13:28:40)


공동체를 위한 희생까지는 아니고
그건 제 표현이 그런 거고-의도와 반대로 된다는 데 방점을 찍어야지요.

당뇨병은 원래 겨울에 식량이 없을 때 적응한 체질인데
당뇨병 환자들은 겨울에 한 두달 굶어도 살아날 수 있는 특이체질의 소유자입니다.

이런 식으로 어떤 병에 약한 사람이
다른 병에는 강한 식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그 때문에 인류가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은 거죠.
아토피 같은 쓸데없는 것들도 연구해보니 어떤 질병에 강하더래 하는 보고가 나올 수 있습니다.

어떤 질병이 있는데
그 환자들은 말라리아에 강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다 필요하다는 거죠.
그럼 과연 그것이 필요한가?

우리에게 당뇨병과 아토피와 말라리아가 필요한가?
그건 아닙니다.

모기나 파리도 필요하니까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모기와 파리와 바퀴벌레가 필요한가?

그건 아니죠.
사기꾼과 깡패와 강도와 멍청이들도 필요합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전혀 필요가 없지요.
우리는 진보라는 컨셉을 가지고 있고 이 컨셉에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제가 강조하는 것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포지션 원리에 휩쓸린다는 것입니다.
정선 카지노에 가서 돈을 던지고 오는 바보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 것처럼 여기지만
실제로는 자기도 모르게 공동체의 어떤 작동원리에 의해서 그런 멍청이짓을 했다는 거죠.

자본주의 시스템이 이런 멍청이들에게서 돈을 회수하는 겁니다.
예컨대 이런게 있어요.

노가다판에 전표라는 것이 있는데
하루 일을 마치면 십장이 전표를 줍니다.

이걸 한달 모아서 월말에 돈으로 바꾸는데
보통은 매일 도박판이 벌어져서 그 돈을 잃습니다.
월급날이 되어도 돈으로 바꿀 전표는 한 장도 남아나지 않지요.

그 이유는
공사판 사장이 깡패 타짜를 고용해서
노동자들 전표를 모두 뺏어가게 만듭니다.

백범일지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소작농들은 가을이 되어도 수입을 전부 약탈당합니다.

농장주가 타짜를 고용해놓고서 도박판에 오지 않는 농민에게는 땅을 부쳐주지 않습니다.
소작농은 일년 뼈빠지게 일해봤자 수입은 제로입니다.

그럼 왜 공사판 사장과 농장주는
노동자의 수입을 제로로 만드는가?

남미에 가보면 압니다.
주급을 주는데 월요일은 아무도 일하러 안 와요.

돈을 다 써야 일하러 옵니다.
노동자 호주머니에 화폐가 들어가면 자본주의가 말라죽어요.

노동자를 거덜나게 만들어야 시스템이 돌아가는 거죠.
한국도 80년대 초반까지는 이랬습니다.

지금은 반대지요.
노동자 호주머니에 돈이 들어가야 시스템이 돌아갑니다.
노동자가 소비를 하지 않으면 자본주의가 작동할 수 없으니까.

여기서 노동자는 자기들이 노름을 해서 거덜나는 이유를 모릅니다.
즉 자기 욕심으로 노름을 했고 자기 이익을 위해 도박을 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시스템 원리에 의해 자기는 도박을 하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원래 시스템은 노동자 호주머니에 돈이 들어가지 않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애초에 시스템 자체에 노동자의 수입은 없는 형태로 되어 있었던 거죠.

아직도 후진국에 가면 이런 구조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는 수입이 제로여야 하는 그런게 있습니다.

노동자를 공장에 잡아놓고 일 시키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거지되게 만들거나, 아니면 더 많은 수입을 욕심내게 하거나.
전자는 후진국모델이고 후자는 선진국모델입니다.

이러한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는 거죠.
나는 도박을 하고 싶다 그래서 도박을 한다.. 이건 개인의 착각이고
원래 호주머니에 돈을 넣어주었다가 다시 회수하는 구조로 시스템이 설계되어 있었다 이것이 정답입니다.
집창촌에 가 보면 이런 구조를 알 수 있습니다.
돈이 성매매 여성들 호주머니로 왕창 들어왔다가 초스피드로 빠져나가도록 시스템이 설계되어 있습니다.

미국도 좀 그런게 있는데
그들은 많은 수입을 올리지만 보험료다 담보대출이다 뭐다 해서 다 빠져나가고
석달만 실직해도 길거리에 나 앉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병리현상이 그런 시스템의 작동에 따른 것이며
인간은 속고 있다는 거죠.

시스템 자체를 교체하지 않는 한 병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시스템에 기만당하고 있다는 진실을 폭로해야 합니다.

병리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인류의 진화라는 타짜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지구 생태계라는 사장이 뒤로 그 타짜를 고용했다는 사실을 간파해야 합니다.

왜정때 조선인과 중국인 사이가 틀어져서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증오하고 죽인 일이 있습니다.
서울사람들이 화교들 다 죽이자고 데모하고 실제로 화교 수십명이 살해되었고
중국에서도 조선인이 맞아죽는 일이 벌어졌지요.
근데 알고보니 그게 다 일본총독부의 농간이었던 것입니다.
독립군들이 러시아와 관계가 틀어져서 무장해제된 사건도 배후에는 일본의 농간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아프리카의 부족들이 AK47을 들고
서로 상대부족을 저주하며 이를 갈고 총질을 해대고 있는데
알고보니 미국 자본가들이 다이아몬드를 가져가기 위해서 꾸민 일이라면
이 얼마나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겠습니까?

중국인과 한국인이 서로 저주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운다고 믿는데 알고보니 일본총독부가 뒤로 작업들어간 것.
인간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공동체 내에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고
그 결과로 병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신이 포지션 원리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르모트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김미라

2010.10.26 (13:52:22)


'시스템'이라는 이름의 모든 곳에서 같은 현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장 가까이 '가족'이라는 시스템안에서도..
예를 들어 부모님들꼐서 아들이나 딸이 문제가 있다고 찾아오지만,
정작 가족안을 드려다 보면,
문제가 있다고 상담실로 끌려온 아들과 딸이 가해자나 혹은 진짜 문제의 근원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시스템'이 '항상성(homeostasis)를 유지하여 나름대로 생존하기 위해
'한 사람'을 시스템의 희생자로 만들었다는 것을 근방 알 수 있습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시스템의 생존전략(?)의 희생자라는 것을...
시스템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그러한 병리가 세대를 거쳐 전수됩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습니다.


* 오늘 유튜부를 통해 선생님의 '의도'에 대한 강의를 잘 들었습니다. 나누어주신 글과 강의로 
  선생님께서 생각하신 '의도'의 개념이 조금은 명확해진 것같습니다. 또 감사드리구요.

  그리고 사소한 것 한가지 더~.. 이곳 밴쿠버에서 스타박스 커피는 고급 커피가 아니랍니다^^...
  제가 사는 평범한 시골 동네에 까지 들어와 있는 한잔에 천원정도하는 조금 진한 커피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0.10.26 (14:18:06)


맞습니다.
조선시대의 열녀들도
중국의 전족관습이나 아프리카의 할례도
직접 인터뷰를 해보면 한결같이 '내가 원해서'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의 희생자이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0.10.26 (12:43:04)


부분에 활용하는 것도 좋겠지만, 부분에 활용한다 하여도 전체적인 것을 먼저 머리에 그려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의식을 컨트롤하지 못하면 늘 인간에게는 역설의 상황으로 비춰지니까요.
집단에 혹은 사회에서 돌출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처음에는 뭔가 싶지만 그로 인하여 차차로 어떤 결속이 나타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그런 돌출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사람들은 머리가 똑똑해집니다.
자신의 리스크를 줄여버리는 거겠지요. 그래서 방향성은 더욱 더 분명해지기도 하구요. 그런 공감대가 형성이 되어버린다는 것이겠지요.
사실  결점이나 판단을 보완해주고 리스크를 줄여주는 사람들이 있음으로 인해서 오히려 사회는 가야할 방향성이 더 확고해지기도 하지만, 개인에게 있어 바깥뇌의 대한 인식은 한참 더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친구가 되어주기보다는 일단은 피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생각이므로 .... 이러한 부분들이 바뀐다면 돌출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혹은 그런 유사성을 가진 사람들과도 함께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지만....

감옥에 5만명으로 인하여 사회는 어떤 안전망을 자꾸 더 추가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다가서지 않으면 그런 자기 희생자들은 계속 생겨나게 되겠지만.....

"깨달음이 중요하지요.
나쁜 것을 구태여 고칠 필요는 없다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면 다 해결된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무리가 전진하면 저절로 내부에 질서가 생겨납니다."

멈추었을 때 갑자기 어색해 지는 것이고, 앞으로 전진하면 그런 문제들이 저절로 사라지게 된다.
자신도 무리도  눈치보지 말고 멈춤없이 가면 되는 것. 이 때 개인은 무리가 전진하는 방향성의 에너지 위에 태워져서 가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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