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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280 vote 0 2020.06.28 (10:39:43)

     고수는 물리학으로 이긴다


    도박을 해도 그렇다. 하수는 실력으로 이긴다.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먹는다. 중수는 속임수로 이긴다. 초장을 져주며 실력이 없는 척해서 판돈을 올린 다음에 손기술을 쓰거나 패거리를 동원한다. 고수는 속임수로 속임수를 잡는다. 상대가 속임수를 쓸 때까지 기다렸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동작그만'을 외치고 오함마를 꺼내 든다.


    초고수는 체력으로 이긴다. 펜션 잡아놓고 2박 3일 동안 날밤을 새우며 화투를 치다가 상대방이 졸기를 기다린다. 졸지 않으려면 히로뽕을 먹어야 한다. 도박꾼은 결국 마약에 무너진다. 노타짜 장병윤도 히로뽕을 끊기 위해서 도박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했다. 어느 분야든 깊이 들어가면 반드시 어떤 물리적 한계를 만난다.


    낭만도 없고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건조한 세계가 있다. 그 세계를 받아들여야 질적인 성장이 일어난다. 철이 드는 것이다. 공부도 깊이 들어가면 체력싸움이 되고 연애도 깊이 들어가면 돈싸움이 된다. 거기까지 가기 전에 승부를 끝내는 것이 좋다. 낭만주의는 동료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으려는 것이다. 그때가 좋은 시절이다. 


    초전에는 프랑스 기사들이 화려한 갑옷으로 무장하고 기세를 떨친다. 싸움판이 달아오려면 점차 진흙탕 개싸움이 되어 버린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말이다. 기사도의 낭만은 간 곳이 없다. 진흙탕에 빠진 프랑스 기사들은 영국 농부의 도끼질에 하나씩 죽어 나갔다. 그 짓을 백 년 동안 반복했다. 전투는 간헐적으로 벌어졌다. 


    문맹인 프랑스 기사들이 기록을 안 해서 그사이에 까먹었기 때문이다. 지난번과 똑같은 패턴으로 진다. 백 년 동안 그 짓을 했다. 기사도를 외치며 낭만을 찾다가 현실을 깨닫고 쓰러져 죽는 것이다. 좌파들이 감상주의적인 이원론에 빠져 낭만을 찾는 삽질은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정면으로 대결하기 전에 늘상 일어나는 일이다. 


    그때까지는 명성을 떨쳐 더 많은 인원을 동원하는 쪽이 이긴다. 용맹한 버지니아의 젠들맨들이여. 피죽도 못 먹고 3등 갑판에 낑겨서 대서양을 건너 기어들어 온 더러운 양키를 쳐부수자고 외치면 민병대가 떼로 자원하여 몰려온다. 좋잖아. 멋지잖아. 아름답잖아. 감동적이잖아. 균형력의 작용은 일본과 같은 섬에서 잘 관찰된다.


    전국시대다. 어떤 무장이 이쪽에 붙으면 다른 무장은 저쪽에 붙는다. 실전에서 이길 생각은 없고 어떻게든 명성을 떨쳐 자기편 숫자를 늘리려는 것이다. 그런데 열도는 작고 금방 한계에 직면한다. 중간에서 눈치 보던 자들이 동군이든 서군이든 선택하고 나면 최후의 결전을 해야 한다. 열도 안에는 더 이상 새로 가담할 세력이 없다. 


    보통은 북쪽에서 중립을 지키며 관망하던 다케다 신겐이 의중을 정하면 판도가 결정되는데 말이다. 밸런스의 작동은 거기서 멈추고 만다. 이제 명성도 소용없고 낭만도 소용없고 기사도건 무사도건 다 소용없다. 아름다운 연애담을 퍼뜨려 명성을 얻은 기사가 시골 농부의 몽둥이에 개처럼 맞아 죽는다. 누가 최후에 이기는가? 


    신출귀몰하는 전술도 필요 없고 군대의 질을 바꿔놓은 오다 노부나가의 조총부대가 이긴다. 최종단계는 밸런스의 완전교착이 일어난다. 교착을 타개하는 것은 에너지다. 그 이전단계까지는 자기편 숫자를 늘리면 되므로 화려한 무용담과 멋진 러브라인과 개구진 캐릭터가 필요하다. 중이병 걸린 좌파가 입으로 먹는 공간이 된다. 


    생태타령 먹히고, 진정성타령 먹히고, 성찰타령 먹힌다. 신토불이니, 유기농이니, 천연이니 이런 근거 없는 단어가 먹힌다. 스스로 증명할 수 없으므로 상대가 반론할 수도 없다. 그게 맞다는 근거가 없으니 틀렸다는 근거도 없다. 단어 하나 가지고 장난치기 좋네. 그러다가 망한다. 전쟁이 장난이냐? 정치가 장난이냐? 정신차렷!


    언제까지 진중권이냐? 철이 들어야 한다. 무릇 존재하는 것은 움직이고 움직이는 것은 2원론의 교착을 당한다. 거기에 밸런스가 작동한다. 그 공간은 낭만주의 공간이다. 기사도건 무사도건 잘만 먹힌다. 말빨이 센 사람이 이긴다. 그럴듯한 개소리, 허황된 관념, 되도 않은 음모론 먹힌다. 기가 어떻고 하며 환빠들 개수작 먹힌다.


    종교가들이 먹는 공간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바람의 방향이 바뀐다. 이원론은 움직이는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반드시 공간의 한계를 만난다. 네가 이쪽으로 가면 나는 저쪽으로 가야지. 그러다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지형을 이용하려면 자기편 땅 깊숙이 물러서야 한다. 낙동강까지 가서 더 후퇴할 수는 없다.


    수나라 군대가 평양성 코앞까지 왔다면 이제 총반격을 해야 한다. 선택의 여지는 사라진다. 그리고 질적인 도약이 일어난다. 그 어떤 모략도, 그 어떤 술수도, 속임수도, 트릭도 통하지 않는 절대한계를 만난다. 낭만은 여기까지. 기술도 여기까지. 지형지물 이용도 여기까지. 대의명분 놀음도 여기까지만. 물리적으로 승부가 난다.


    외계인을 만났거든 대의명분, 선전포고, 정치적 올바름 다 필요 없고 물리학이 살 길이다. 그런 순간이 온다. 반드시 온다. 일본이건 영국이건 섬이라서 더 일찍 물리적 한계를 만난다. 스코틀랜드 양치기들은 하이랜드로 도망가서 저항하지만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 에이레 섬 뒤쪽은 대서양이다. 그들은 진작에 현실적이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땅이 넓고 중국도 중원은 넓다. 넓은 땅에서는 다양한 개수작이 먹힌다. 체면놀음, 허세놀음, 도덕놀음에 시간끌기 성공이다. 프랑스는 가운데다. 왼쪽에서 영국이 오면 오른쪽 독일로 튀자. 독일에게 잘 보이려면? 독일놈은 촌놈이니까 멋진 갑옷을 보여주면 꺼벅 죽지. 풀 플레이트 아머가 필요해. 이거 먹히네.


    남쪽 이탈리아 놈들을 설득하려면 황금이 필요해. 세금을 올리고 농부를 털어. 이런 식이다. 프랑스 땅은 넓으니까 시간끌기가 먹힌다. 대서양으로 막고 피레네로 막고 알프스로 막고 라인강으로 막으면 된다. 일단 한숨을 돌린다. 우물쭈물 하다보면 어떻게든 수가 나지 않겠어? 프랑스인의 국민성이 그렇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북로남왜가 침략해도 일단 시간을 끈다. 우물쭈물 하다보면 왜구도 겨울이라고 물러가고 타타르도 봄이라고 양떼 먹이러 간다. 아마추어가 정신력으로 먹는 시즌이다. 문제는 좌파가 이런데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이다. 오래가지 않는데 말이다. 소로 대를 막고 발목잡기로 국가를 흔들어 작은 성과로 언론을 타니 기쁨 두 배다.


    소인배가 날뛰는 시즌이다. 우파는 돈이 있고 좌파는 머리가 있다. 머리를 쓴다. 왼쪽과 오른쪽에서, 앞과 뒤에서, 위와 아래에서 선택을 잘하여 수비전술로 판을 교착시키면 명성을 얻고 언론을 탄다. 거기까지다. 조만간 공간이 바닥나고 시간이 절체절명이라 궁지에 몰려서 질적인 도약이 아니면 안 된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


    침대축구와 수비전술로 중간까지는 가지만 정상까지는 못 간다. 언젠가는 다걸기로 건곤일척의 승부를 내야 한다. 좌파의 교양은 외연을 확대하여 자기편 숫자를 늘리는 기술이다. 인구는 5천만이다. 유권자는 4천만이다. 이제 모든 사람이 인터넷을 한다. 모든 사람에게 스마트폰이 있다. 모든 사람이 종이신문을 보게 된다. 


    한계점이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조중동의 협잡이 먹히지 않고, 김어준의 음모론이 먹히지 않고, 삼보일배의 진정성이 먹히지 않는 한계점이 반드시 있다. 정신적 요소는 초반에나 먹히는 것이다. 서전을 멋들어지게 장식하는 아마추어리즘이다. 프로는 정신력이 아니라 실력이다. 첫 총알, 첫 총성, 첫 죽음은 병사의 감동적이다.


    그다음은 지긋지긋한 현실이다. 수평적 확대에서 수직적 도약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물리적 한계를 만나게 된다. 구라빨은 거기까지. 말로 때우는 수법은 거기까지. 음모론이나 신파극이 먹히지 않는 한계점. 눈물 콧물에 동정심에의 호소전략이 먹히지 않는 장벽을 당신은 만나게 된다. 어쩔 것인가? 에너지 일원론이 답이다.


    그 어떤 희생을 하더라도 49에서 51로 도약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 분명히 있다. 천장을 뚫어야 한다. 그 세계가 두려운가? 아마추어의 진정성이 매력적이고 프로의 진검승부가 두려운가? 언제까지 어린애로 살 텐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패배주의 진보는 여기까지. 낙관주의 진보로 바꾸어야 한다. 단 엄격한 진보라야 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20.06.30 (04:13:10)

"그 어떤 희생을 하더라도 49에서 51로 도약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 분명히 있다. 천장을 뚫어야 한다."

http://gujoron.com/xe/1214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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