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508 vote 0 2020.04.29 (07:36:17)

      
    존 듀이가 망친 서구

    

    구조론의 제자가 될 생각이 없는 사람은 구조론연구소를 출입하지 말기 바란다. 지나가다가 '이 동네는 뭣하고 노는 동네인가?' 하고 한 바퀴 둘러볼 수 있겠지만 의견을 내고 발언할 자격은 없다. 지식에는 소유권이 있는 법이며 남의 것을 훔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구조론은 일원론이며 확실한 방향이 있다. 그것은 정도를 가는 것이다. 공자의 길을 간다고 천명해 놓았다. 노자의 길은 배척된다. 바른길을 찾았으면 묵묵히 가는 것이지 이쪽저쪽을 기웃거리고 눈치를 보려고 하면 안 된다. 수학은 하나이지 각자의 수학 따위 없다.


    존 듀이가 미국과 서구의 교육을 망쳐놓은 것이 분명하다. 그는 공자의 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서구교육이 더 나빴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먹힌 것이다.

박정희도 변명거리는 있다. 이승만 시절보다는 더 좋아졌잖아. 곤란하다. 과거와 비교하면 안 되는 거다. 


    공자의 가르침과 다른 모든 잡다한 사상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것은 교육이다. 공자는 가르치려고 했고 다른 사상들은 가르치지 않으면 가르쳐진다고 우겨대거나 실용주의를 주장하거나 경험주의를 주장하는 반교육사상이다. 교육과 반교육은 다른 것이다. 


    존 듀이의 사상은 반교육이다. 실용주의는 교육이 아니며 경험주의는 당연히 교육이 아니다. 사실 진보도 필요하고 보수도 필요하지만 보수는 논하지 않는다. 보수는 진보에 의해 반발력의 형태로 나타난다. 요령이나 꼼수도 마찬가지로 교과서에서 가르칠 수 없다.


    물론 그런 것도 필요하다. 말했지만 군에 입대할 장정은 빠지기, 개기기, 짱박히기 요령을 배워놓는 것이 좋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 것을 학교에서 가르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친구들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 보수도 필요하지만 구조론 연구소에는 오면 안 된다. 


    진보와 보수의 공존은 절대로 없다. 보수의 가치는 진보에 의해 부단히 배척되는데 있기 때문이다. 진보에 두들겨 맞는 것이 보수가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보수도 필요하지만 두들겨 맞는 역할로 쓰인다. 실용주의나 경험주의 같은 삿된 길도 필요하다.


    그러나 교육이 아니다. 사람은 가르쳐야 하고 그래서 교육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피아구분에서 시작된다. 비구가 되려면 승단에 들어야 한다. 승단 밖에서 비구가 되는 길은 없다. 마찬가지로 교육이 되려면 일단 제자의 신분에 들어야 한다. 신분이 가장 중요하다. 


    학생과 비학생은 신분이 다르다. 학교에 다니면 거리의 아이들과는 다른 존재다. 괴력난신을 거부하고 극기복례하여 인간의 길을 갈 것인가, 본능대로 생활하며 동물의 길을 갈 것인가는 본인이 정하는 것이며 인간의 길을 가면 교육시스템의 제자가 되어야만 한다.


    피아구분에서 타자가 아닌 아에 들어야 한다. 반면 타고난 본능을 따르고 환경에 적응하고 경험에서 배우고 실용주의로 처세하는 짐승의 길을 가면 신분이 달라진다. 학교에 가는 목적은 동료를 얻는데 있다. 서머힐 스쿨이라면 초등학교 6년 치를 1년 만에 다 배운다. 


    지식의 주입은 사실이지 짧은 시간에 가능한 것이다. 학원에서 배워도 된다. 교육은 다른 것이다. 학원은 실무지 교육이 아니다. 학교에서 배우면 간부가 되고 학원에서 실무를 배우면 부사관이 된다. 신분이 다르다. 적이라는 말은 들판을 돌아다니는 야인을 뜻한다. 


    성 안에 살면 국인이고 성 밖을 배회하면 야인이며 야인이 국인을 만나면 곧 약탈하므로 적이라고 한다. 그들은 의복을 훔쳐 가므로 도적이다. 그들과의 수평적인 대화가 불성립이다. 교육의 목적은 집단의 의사결정구조 안으로 들여오는 것이다. 의사결정권자 되기다.


    스무 살쯤 되는 청년이 백범 김구의 학교에 왔는데 부모에게 반말까고 주먹질을 하는 사람이었다. 오늘부터 존댓말을 하거라. 네. 끝이다. 교육은 하루 만에 완성되는 것이다. 어제까지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오늘부터는 어엿한 사람이 되었다. 교육이란 그런 것이다.


    그는 야인의 의사소통그룹에 들었다가 국인의 의사소통그룹으로 갈아탄 것이다. 교육은 인생을 갈아타는 것이다. 이 말을 타다가 저 말로 바꿔 타기다. 경험과 실용과 눈치와 요령과 꼼수와 생존과 적응과 환경의 짐승에서 어엿한 인간의 길로 바꾸는 것이 교육이다. 


    오늘날 서구가 밀리고 유교권이 앞서는 이유는 그들의 교육사상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며 그 기저에 존 듀이라는 바보가 있다. 진보와 보수는 공존할 수 없고, 사람과 짐승은 공존할 수 없고, 국인과 야인은 공존할 수 없고, 군자의 교육과 소인배의 적응은 공존할 수 없다. 


    진리와 실용은 공존할 수 없고, 절대주의를 반대하는 경험주의는 교육이 아닌 바깥 세계의 방식이다. 교육은 1초 만에 가능한 것이며 3초가 걸리면 교육이 아니다. 100미터 경주를 하는데 출발 총성이 울리면 1초 안에 가야지 3초나 눈치 보고 있으면 교육이 아니다. 


    판단하면 안 된다. 룰은 정해져 있고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팀에 들어오는 순간 그것은 확정된 것이다. 문명사회의 룰을 지키지 않고 시합 중에 박치기를 하면 지단처럼 퇴장된다. 어느 편에 설 것이냐다. 교육은 깨달음처럼 전광석화처럼 와서 호르몬으로 굳어진다.


    성벽 안에 갇혀 사는 국인의 단조로움과 들판에서 이슬을 맞는 야인의 유쾌함 중에서 자유롭게 야인의 길을 선택하면 짐승이 되고 힘들어도 국민의 길을 선택하면 인간이 된다. 인류의 문명은 1만5천 년 전에 누가 다른 길을 선택함으로써 마침내 격발되어진 것이다. 


    존 듀이의 교육사상이 먹히는 이유는 그 이전에는 교육환경이 더 나빴기 때문이다. 서구는 원래 나빴다. 그들은 가르친 것이 아니라 투쟁한 것이다. 투쟁하다 보면 적에게 기술을 배우게 된다. 권투시합을 하다 보면 실력이 는다. 중국식으로 사부에게 배우면 안 된다. 


    그런데 그것은 교육이 아니다. 교육은 팀에 들어서 아마가 아닌 프로가 되는 것이고 시합은 별개의 것이다. 나쁜 것도 잠정적으로 쓸모가 있지만 좋은 것이 나오면 나쁜 것은 버려야 한다. 인류는 이제 존 듀이와 결별해야 한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다. 


    나쁜 교육으로 서구가 계속 낙후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교육으로 갈아타야 한다. 유교권이 다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건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는 교육의 본질이다. 선택해야 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수원나그네

2020.04.29 (08:15:20)

이건 가설입니다만~
성경 특히 구약에 깃들어 있는, 절대자와 인간의 종적 관계가 서구정신의 기저에 있어왔고,
존 듀이는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게 아닐까 싶군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20.04.30 (02:48:56)

"판단하면 안 된다. 룰은 정해져 있고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팀에 들어오는 순간 그것은 확정된 것이다."

http://gujoron.com/xe/1196354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4788 관계 중심의 세계관 1 김동렬 2020-05-05 3538
4787 데카르트의 우상 1 김동렬 2020-05-04 3425
4786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1 김동렬 2020-05-03 3617
4785 철학은 잔인하다 김동렬 2020-05-02 3845
4784 참 나쁜 존 듀이 1 김동렬 2020-05-01 3999
4783 석가탄신일에 2 김동렬 2020-04-30 3773
4782 당신은 교육되었는가? 1 김동렬 2020-04-30 3604
4781 참교육으로 갈아타자 1 김동렬 2020-04-29 3558
4780 토끼그림의 의미 image 2 김동렬 2020-04-29 3622
4779 유대인이 흥하는 이유 1 김동렬 2020-04-29 3278
» 존 듀이가 망친 서구 2 김동렬 2020-04-29 3508
4777 지식의 근본 1 김동렬 2020-04-27 3408
4776 존재의 근원 image 6 김동렬 2020-04-26 3641
4775 우주가 5인 이유 1 김동렬 2020-04-25 3095
4774 차원 5의 의미 김동렬 2020-04-25 2959
4773 방향전환의 문제 김동렬 2020-04-24 3079
4772 구조론의 출발점 김동렬 2020-04-23 3060
4771 계 체 각 선 점 2 김동렬 2020-04-23 2942
4770 점 선 각 체 계 김동렬 2020-04-21 3704
4769 몬티홀 딜레마 1 김동렬 2020-04-20 40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