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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6519 vote 0 2010.09.20 (14:44:39)

-동영상 강의 참고자료입니다-



  족장의식. 진시황의 폭정에 저항하여 최초로 봉기한 인물은 진승과 그의 친구 오광이다. 진승은 농민반란군을 모으기 위해 스스로를 신격화 했다. 죽은 진나라 태자 부소를 자처하는 등 여러가지 거짓 신화를 지어낸 것이다. 진승이 국호를 장초(張楚)라 하고 왕으로 등극하여 행차할 때 고향친구가 나타났다.


  친구는 장엄한 임금님의 행차에 난입하여 어릴 때의 별명으로 불렀다. ‘섭아 나야 나라구. 나 모르겠어?’, 진승은 그를 알아보고 수레에 태웠다. 불행하게도 그 친구는 주제 파악이 서투른 인물이었다. ‘야 너 출세했네! 신수 한번 훤하다 야!’ 그는 임금의 친구라는 점을 내세워서 함부로 떠들고 다녔다. ‘옛날에 섭이하고 나하고 같이 머슴 살때 말이지.’ 머슴출신의 왕이라니. 진승의 체면은 구겨졌다. 왕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 과거를 떠벌리고 다니는 고향친구를 죽일 수 밖에.


  이후 진승에게 진심을 털어놓고 대화할 친구는 사라졌다. 진승이 신격화 될수록 신하들과의 거리는 멀어지고 정보는 밑에서 차단되고 위로 올라가지 않게 되었다. 왕은 그렇게 고립되어 갔다. 진승은 진나라 장군 장한과 싸우다 패하고 부하에게 배신당해 살해되었지만 그가 선발하여 각지에 파견한 장군들은 결국 진나라를 무너뜨렸다. 평범한 농민 출신으로 배움이 없어 성공하지 못했지만 기개가 있는 인물이었다. 사마천은 진승열전을 지어 그를 높이 평가했다.


  반면 유방은 어떠했는가? 그는 처음 패현에서 거병할 때부터 자신과 함께 했던 소하와 조삼, 번쾌, 왕릉 등을 끝까지 챙겼다. 나팔수 주발, 옷장수 관영, 마부 하후영도 끝까지 그를 따랐다. 특히 옹치는 동네형뻘로 유방을 배반하고 항우에게 붙은 인물이다. 그는 항우가 유방과 맞설때마다 앞으로 나와서 유방의 과거를 거론하며 욕설을 퍼붓곤 했다. 항우가 어려워지자 옹치는 유방에게 항복하고 전투에서 제법 공을 세웠다. 유방은 그를 미워하여 ‘저 자는 제발 내 앞에서 보이지 않게 하라.’고 특별히 지시하였으나 항우를 토벌한 후 장수들이 논공행상을 두고 술렁대자 자신이 가장 미워하는 옹치를 먼저 십방후에 봉하고 2500호를 내려 포상함으로써 장군들을 안심시켰다. 유방진영의 초기멤버들은 거의 출세했고 반면 나중에 끼어든 경포, 팽월, 한신 등은 모두 제거되었다.


  한편 조조는 친족인 조씨와 하후씨를 중용하고 외부에서 영입한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절묘하게 밸런스를 유지함으로써 입지를 다졌다. 유방과 싸운 초패왕 항우가 친족들만 감싸고 돌며 경포, 팽월, 한신 등 항복해온 제후를 중용하지 않아 그 결과로 안팎의 밸런스가 무너져서 결국 광무산에서 혼자 고군분투 하다가 패배한 데 비해, 조조는 친구와 제후의 밸런스를 절묘하게 유지한 것이 성공의 원인이다. 그러나 원소를 토벌할 때 조조를 믿고 까불던 고향친구 허유를 허저가 때려죽인 후 조조 역시 친구를 잃어 점차 고립되어 갔다. 점점 신격화 되면서 백성들과 거리가 멀어진 것이다.


  유방은 부하들 중 패현 출신의 고향친구파와 새로 항복해온 제후파 사이에 팽팽한 밸런스를 유지하였으며, 초기에는 항복해온 제후를 더 높이 대접하여 왕으로 봉하였다가 마지막에는 대부분 제거하고 고향친구만 남겨두었다. 그것이 그의 성공비결이다. 결론적으로 자신을 끝까지 보호해줄 세력은 친구, 친족, 초기멤버이며 이들의 질이 낮거나 이들과 사이가 틀어지면 고립되고 만다는 거다. 아무도 정보를 보고하지 않아 권력이 겉돌게 된다. 항우는 고향친구만 챙겼고 유방은 안팎을 고루 챙겼다. 유방도 천하를 얻은 후에는 친구만 남겼다. 조조는 점차 친구들과 멀어졌고 진승은 처음부터 제대로 된 친구가 없었다. 머슴출신의 한계, 아웃사이더 출신의 한계였다. 배경이 있어야 출세한다는 말은 이 원리 때문이다.


  어렵게 성공한 아웃사이더들에게 이 점은 치명적이다. 좋은 친구와 친족을 얻고 이들과 우정을 끝까지 이어가며, 새로 사귄 외곽세력과의 밸런스를 절묘하게 유지하는 것이 고금의 성공비결이다. 먼저 내실을 다져야 외연을 얻을 수 있다. 측근의 질이 낮으면 반드시 배신당하고 고립된다. 유비는 관우, 장비, 조운, 손건, 미축을 초기멤버로 볼 수 있고 제갈량, 방통, 황충, 마초, 위연 등은 새로 영입한 인물로 볼 수 있다. 프랜차이즈 스타와 영입파의 갈등은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제갈량이 들어오자 관우는 밀려나갔다. 나이가 한참 어린 제갈량에게 자존심 강한 이인자 관우가 고개를 숙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유비 역시 관우를 잃고 고립되어 갔다. 조조가 명문 출신으로 하후돈, 하후연, 하후패 등 친족 장수만 모아도 수 십여명이 될 정도로 빵빵한 집안이어서 고립될 위험이 없었는데 비해 유비는 자신을 보호해줄 직속부하가 너무 없었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노사모, 부산인맥 등 프랜차이즈 세력과 민주당과 재야 등 외곽 제휴세력 사이에 밸런스가 무너졌다. 민주당 안에 천정배 외에 친노정치인이 없었고, 그나마 한명 있던 천정배마저 배신했을 정도이다. 이러한 약점은 치명적으로 나타난다. 새 인물을 얻기 위하여 보폭을 넗히다가는 내부의 적에게 배신당하거나 함정에 빠질 위험이 높다. 구조적인 취약점이 있었다.


  문제는 소통이다. 내부세력과 외곽세력은 소통방법이 다르다. 소통은 구조의 심과 날로 전개하며 점점 세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내부세력은 이미 존재하는 심에 날로 종속되면 그만이지만, 외곽세력은 거기서 또하나의 심을 구축해야 한다. 그만큼 지분을 넘겨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결고리가 되는 관절부분이 구조적 취약점이다. 조직의 급소다.


  인물이 성공하려면 널리 인재를 구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인재를 구하는데 성공하기는 어렵다. 친위세력이 뒤에서 받쳐줄 때라야 과감하게 인재를 구할 수 있다. 친위세력이 먼저 강력한 구심점을 형성하지 않으면 외부세력이 연대하지도 않거니와 연대해도 결국 틀어지고 만다. 친위세력은 주인공에게 정보와 자금을 지원하고 충성하면 되지만, 외부세력이 아무 조건없이 주인공을 돕다가는 오히려 외부세력 내부에서 뒷통수를 맞고 저격당하기 때문이다.


  외부세력은 외부에서 또다른 심을 구축해야 하므로 반드시 정치적 지분을 가져야 한다. 지분없이 그냥 돕다가는 인물만 들어가고 세력은 빠지며 그 세력이 자체의 힘으로 투항한 인물을 저격해 버린다. 남한이 조건없이 북한을 돕다가 한나라당에게 뒷통수를 맞은 예와 같다. 문제는 북한 역시 그러한 취약점이 있다는 거다. 김정일 역시 선뜻 남이 내민 손을 잡을 수 없다. 북한 내부에서 저격 들어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 입장에서 보면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남한이 북한과의 약속을 어긴 셈이 되고, 남한 입장에서 보면 북한이 핵개발을 해서 약속을 어긴 셈이 된다. 신뢰의 고리는 취약하며 누군가 그 급소를 찌르고 들어온다. 그러므로 일이 틀어지고 마는 것이다.


  크게 보면 부시가 먼저 김대중 대통령의 뒷통수를 쳤고, 김정일이 장군멍군으로 핵개발 배신을 때린 셈이며, 이명박이 다시 615선언을 무효화 하여 배신했고, 이번에 천안함 사건으로 북한이 또다시 배신한 형세가 되었다. (천안함은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으나 외견상 그러하다.) 이러한 악순환은 구조적인 필연이며, 동포애에 기초한 막연한 신뢰는 결코 지켜질 수 없는 것이며, 대규모 군축과 연계하여 확실하게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아야 한다.


  유방이 광무산에서 항우와 대결하며 생사를 다투고 있을 때 경포, 팽월, 한신 등이 룰루랄라 하며 딴전을 피우고 있었다. 유방이 참모를 소집하여 해답을 구하자 장량이 조언했다. 먼저 확실하게 땅을 떼주고 제후로 삼는다고 약속을 하라고. 유방이 장량의 건의를 받아들여 한신을 제왕으로, 경포를 회남왕으로, 팽월을 양왕으로 봉하자 제후들이 일제히 군대를 보내와서 항우를 해하에서 포위하였다.


  한신 등이 어려운 처지에 몰린 유방의 약점을 이용하여 약삭빠르게 봉토를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구조원리상 간단치 않다. 조건없이 유방을 돕다가는 먼저 자기 부하들 손에 죽는 수가 있다. 친노세력이 조건없이 민주당을 돕다가는 친노세력 안에서 분열이 일어나서 민주당에 들어가도 그 안에서 크지 못한다. 안희정, 이광재가 단신으로 투항했지만 친노세력의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외부세력과 연대하려면 반드시 조건을 걸고, 일괄타결을 성공시켜 줄것을 주고 받을 것을 받아야 한다. 지분을 챙겨야 한다. 그런 절차 없이 일방적으로 민주당 지지를 선언하고 참여당을 해체한다고 해서 민주당이 참여당의 표를 가져가지는 못한다. 그것은 구조적으로 불능이다. 


  이러한 구조적 이유 때문에 어렵게 고생하며 자수성가한 아웃사이더 출신 인물은 족장의식을 가지게 된다. 족장의식은 소수의 자기 세력을 보호하기 위해 외부세력과 맞서는 형세가 되는 것이다. 성공하려면 외연을 넓혀야 하는데 외연을 넓히려면 먼저 내부를 든든히 다져야 한다. 내부를 다지려다가 그 내부에 발목이 잡혀 더욱 고립되고 만다.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 근본적인 취약점이 있다. 합리적으로 풀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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