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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제 폐지를 위한 민법개정안이 이 달 중 정부와 협의를 거쳐 의원입법으로 국회에 제출될 것이라고 한다. 호주제는 민법 제정 이래 줄곧 가족법 개정 논의의 핵심적 쟁점이 되어왔으나 이번 폐지 논의는 종전의 그것과 다른 현실적 무게를 갖고 있다. 진보적 성격의 정부가 들어선 가운데 호주제 폐지를 강력히 주장해 온 개혁적 인사가 법무부 장관에 임명돼 자신의 재임 중 호주제 폐지를 우선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천명했기 때문이다.

반면 호주제를 존치시켜야 한다는 국민들도 적지 않아 앞으로 논의과정에서 상당한 파란이 예상되며, 그것의 결말 또한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호주제는 호주승계에 아들 우선 등 비민주 권위주의적 가족관계의 조장, 다양해지고 있는 새로운 가족 형태에의 대응 미흡, 실효성 희박 등 여러 비판을 받고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위헌적 요소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민법은 형식적이고 관념적인 호적상의 가(家)를 두고, 국민이 여기에 호주 또는 가족의 신분으로 소속되도록 하고 있다. 이는 당사자의 의사에 관계없이 가족을 불평등한 존재로 구분함으로써 헌법 제 10조가 규정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고 있다.

또한 호주 승계에 있어서의 아들 손자 등 남자 우선은 헌법 제11조 1항이 규정하는 남녀평등의 원칙에 반한다. 호주제도는 혼인과 가족생활에 있어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을 규정한 헌법 제36조 1항에도 위배되고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 유엔인권협약 등 국제법에도 저촉된다.

일각에서는 신라시대를 뿌리로 조선시대에 시행된 제도를 근거로 호주제를 우리의 고유한 전통적 가족제도로 이해하고 있으나 가(家)와 호주승계 제도를 핵심 요소로 하는 현행 민법상의 호주제와는 그 본질이 전혀 다른 것이다. 지금의 호주제는 일제시대에 침투된 일본식 가족제도의 하나로서 우리의 전통적 가족제도와는 무관한 것이다.

호주제 존치론자들은 호주제가 가족의 안정에 기여한다면서 호주제를 폐지하면 가족이 해체ㆍ붕괴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본에서조차 호주제를 폐지한 후 가족이 해체되거나 붕괴되었다는 보고는 듣지 못하고 있다. 호주제가 있는 우리나라가 호주제가 없는 외국에 비해 오히려 이혼율이 높은 것은 호주제와 가족의 안정 사이에 직접적 연관이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여성 및 자녀의 의식은 높아지고 있는데 법과 가족 문화는 수직적 권위주의적 태도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데서 오히려 가족의 불안정이 증대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호주제의 개선 방안으로 이를 폐지하는 방안, 호주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그리고 현행 틀을 유지하면서 호주승계와 자녀의 입적문제 등을 헌법과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입법의 현실적 제약과 장애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차제에 이를 전면적으로 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동안 논의할 만큼 논의해 더 이상 논의 자체가 무익하다고 여겨질 정도에 이른 호주제 존폐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그 힘을 호주제 폐지에 따르는 제반 법적문제의 연구에 쏟아야 한다. 예컨대 호적제 개편, 호주제를 전제로 하고 있는 현행 관련법령의 정비, 자녀의 성본(姓本) 결정 및 변경, 친양자제의 도입, 그리고 재산 승계 기준의 명확화 등이 그것이다.

특히 자녀의 아버지성 추종 및 성불변의 원칙 등 부계혈통주의의 유지 여부는 매우 민감한 문제로서 종합적ㆍ 다각적인 연구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른 법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민족헌법으로 일컬어지는 가족법의 개정에 있어서는 ‘명분과 이념을 앞세운 일방적 밀어붙이기’도, ‘원칙없는 타협’도 경계되어야 한다. 그런 식의 입법 후유증과 부작용은 우리의 과거사가 잘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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