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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619 vote 0 2003.04.07 (15:41:15)

『미학의 오다케』라면 이중허리 린 하이펑, 우주류의 다케미야 등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한 일본 바둑기사다. 오다케의 기풍은 돌의 생사보다는 능률과 모양을 중시하는 것으로 승부를 중요시하는 요즘 바둑과는 다른 데가 있었다.  

바둑의 미학은 무엇일까? 상대도 최선을 다하고 나도 최선을 다하였을 때 어떤 형태가 될 것인가를 추구하는 것이다. 스포츠라도 마찬가지다. 반칙과 에러로 자멸하는 경기보다는, 양팀이 최선을 다하여 오직 실력 대 실력으로 겨루는 경기에 관중은 갈채를 보낸다.

미학의 명인 오다케
바둑의 본질은 무엇일까? 돌의 효율성이다. 가장 효율적인 위치에 돌을 놓으면 가장 모양좋은 바둑이 이루어진다.

효율이란 무엇일까? 하나가 둘을 겸할 수 있는 것이 효율이다. 안과 밖, 실리와 세력, 포위와 분할, 중앙과 변, 이렇게 서로 대립되는 두가지를 겸할 수 있는 절묘한 위치들이 있다. 맥이라고 한다. 바둑은 그 맥을 잘 짚어내는 사람이 승리한다.

상대를 속이기 위해 일부러 비효율적인 곳에 둘 수도 있다. 너죽고 나죽자는 식의 꽁수바둑이다. 그래서는 미학이 아니다. 오다케의 바둑은 너 살고 나 살기다.

미학은 절제와 양보다. 나의 행마가 우아해도 상대방이 지저분하게 끊고 나오면 미는 얻어지지 않는다. 상대방 역시 미로 따라오게 하기 위해서는 조금씩 양보해야 한다. 상대방은 내가 양보한 작은 이익을 바라고 이쪽의 페이스에 끌려오게 된다.  

실리와 세력, 변과 중앙, 잇기와 끊기 들에서 『이쪽을 내주고 대신 저쪽을 가진다』 하는 대강의 구상을 머리 속에 그려놓고, 상대방이 그 흐름을 쫓아오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오다케는 바둑의 흐름이 자신의 구상과 어긋나면 지체 없이 돌을 던지곤 했다.

미학은 힘이 있다
재미있는 건 오다케가 일단 바둑을 자신의 페이스대로 끌고가기만 하면 그대로 승부를 결정짓는 힘이 있었다는 거다. 그렇다면 그 힘을 일러 『미학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 미학은 힘이 있다. 그 힘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니 그 이전에 미(美)란 무엇일까? 그것은 둘이 합쳐져 하나를 이루는 것이다. 내가 한 수를 두면 상대방도 한 수를 둔다. 내가 둔 돌과 상대가 둔 돌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중앙과 변, 세력과 실리, 잇기와 끊기들로 이루어진 대칭이 50 대 50으로 힘의 균형을 성립시킨다. 물리적 등방성과 대칭성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 균형이 착착 맞아나가다 보면 쪼갤 수 없는 단 하나의 꼭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꼭지점은 짝수가 아닌 홀수다. 홀수이므로 나눠가질 수가 없다. 둘 중 한 사람이 그 꼭지점을 차지한다. 항상 오다케가 그 하나를 차지하곤 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 하나가 어디에 있는지 처음부터 알고 있으니까.

미학의 힘은 균형에서 나온이다
둘로 쪼개지면 미가 아니다. 뒤죽박죽으로 섞여도 미가 아니다. 미는 『균형과 조화』이다. 균형은 물리적 등방성의 원리가 작용하여, 서로 대립되는 둘이 맞물려 하나의 구조를 이룬 상태이다. 조화는 그 둘이 맞물리는 꼭지점의 하나가, 양 날개를 이루는 대칭구조의 둘을 지배하는 기세이다.

내가 한 수를 두면 상대방도 한 수를 둔다. 둘은 대칭을 이루고 그 대칭이 마주치는 지점이 맥이 되며, 그 맥과 맥이 이어져서 흐름을 만든다. 곧 형(形)이 세(勢)를 만드는 것이다. 형(形)은 균형의 형이고 세(勢)는 곧 조화이다.

조화란 무엇인가? 『통제 가능한 변화』이다. 바둑은 변화를 제어하는 기술을 겨루는 게임이다. 그 변화를 제어하는 힘은 포석단계에서 성립시킨 균형에서 나온다. 곧 바둑의 형세(形勢)이다. 바둑의 미학은 형세의 미학이다.

초반 포석 단계에서는 50 대 50으로 팽팽하다. 정석대로 두기 때문이다. 바둑이 점차 진행됨에 따라 검고 흰 돌로 반상이 메꿔지고 나면 이윽고 그 절대로 나눌 수 없는 하나의 꼭지점에 도달한다. 오다케 히데오가 그 꼭지점을 차지하곤 한다.

미는 압도적으로 강하다
그 나눌 수 없는 하나의 꼭지점이 내뿜는 압도적인 힘이 발견된다. 형이 세를 이루고, 균형이 조화를 낳고, 꼭지점이 양날개를 지배한다. 변화 가운데 질서가 있어서 아름답다. 질서를 유지하면서도 변화를 이뤄내니 힘이 있다.

미학의 오다케! 그는 굉장한 파괴력의 소유자였다. 흔히 미(美)라고 하면 연약한 여성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다. 천만에! 오다케는 강했다. 미는 강하다는 것을 그는 입증했던 것이다.

바둑은 냉정한 승부의 세계이다.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추구해서는 승부에서 진다. 천만에! 오다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진검승부에서도 그것이 통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정치의 미학은 무엇인가?
마키아벨리즘을 신봉하는 요즘 젊은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미학이 다 뭐야? 이기는게 장땡이지. 오다케는 진정한 승부사가 아니야!』

일리있다. 그러나 그건 대통령선거 때 이야기다. 노무현은 이미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집권 5년을 결정하는 초반의 포석단계이다. 오다케는 진정한 승부사가 아니라고 비판한 서봉수도 초반에는 정석대로 둔다. 지금은 미학의 정치가 필요하다.

정치에도 미학이 있고 사랑에도 미학이 있다. 세상 모든 것에 알게 모르게 미학이 숨어있다. 그것은 서로 대립되는 마구 뒤섞이지 않고 절묘한 황금률의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다.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맞물려 돌아간다. 그러다가 쪼갤 수 없는 어떤 하나의 극점에 도달하게 된다.

그 극점을 넘어 설 때 질적인 비약이 일어난다. 정치라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발전이 되고, 수행자에게 그것은 깨달음이 되고, 예술이라면 그것은 위대한 작품으로 승화된다. 연인들이라면 멋진 사랑이 완성된다.

정치의 미학은 무엇일까? 실상 한국의 정치판은 자살골 넣기 시합이다. 서로 상대방의 실수를 바라고 꽁수를 둔다. 이전투구가 벌어지고 쌍방간에 무수한 실수가 일어난다. 더 많은 실수를 한 쪽이 패배하게 된다. 이때 패배한 쪽은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다. 왜? 자신이 실력으로가 아닌 실수로 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패배자는 말한다.

『억울하게 상대방의 꽁수에 넘어갔어! 이건 나의 실수야. 진짜 실력으로는 결코 지지 않아!』

이래서는 승자에게 힘이 모아지지 않는다. 오다케가 보여준 그 압도적인 파괴력이 한국의 정치판에는 없다. 그래서 정치가 안되는 거다.

한국의 정치는 자살골 넣기 시합이다
한국에서는 어떤 논쟁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 패배한 쪽은 항상 상대방의 반칙과 자신의 실수 때문에 졌다고 믿는다. 한국의 정치판은 농구시합과 비슷해서 매번 골을 넣어 득점을 올려야 된다. 한번 수를 쓸 때마다 유불리가 판단되고 거기에 일희일비 한다. 그러면서도 실제로는 늘 자살골을 넣는다.

상대방의 돌 하나를 잡으려 해서 안된다. 이길 수 있는 상황에서도 절제하고 양보해야 한다. 상대방은 이쪽이 양보한 작은 이익을 쫓아서 이쪽의 페이스에 끌려오게 된다. 겉으로는 50대 50의 팽팽한 균형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게 형을 이루고 세를 얻는다.

마지막 순간에는 결코 나눌 수 없는 그 하나의 꼭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누가 그 꼭지점을 차지하는가? 그러한 흐름을 사전에 설계한 사람이 그 꼭지점을 차지한다. 그 차이는 아주 작은 차이다. 51 대 49의 미세한 승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때 양쪽은 물리적 등방성의 원리에 따라 절묘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에 그 승리의 울림과 떨림은 돌아가는 판 전체에 전해진다. 그 반향은 참으로 크다. 이것이 노무현의 정치여야 한다. 꽁수의 정치시대를 끝막고 힘이 있는 미학의 정치를 해야한다.

물론 지지자들은 섭섭할 것이다. 미학의 정치는 항상 50 대 50의 긴장된 균형을 쫓아가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우열은 드러나지 않는다. 겉으로는 누구도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승리자이고 우리가 주인인데도 승자의 기득권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진정한 승자는 사전에 정해져 있다. 그 하나의 꼭지점을 차지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그 맥을 짚고 흐름의 구도를 설계한 사람이 주도권을 잡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정치는 힘이 있다.

미는 균형과 조화이다. 그것은 하나의 대칭축이, 대칭을 이룬 양 날개의 변화를 적절하게 제어함으로써 얻어진다.


노무현은 스타가 되어야 한다
지금 상황이 어렵다. 지지자들을 돌아서게 하는 사건이 잇다르고 있다. 정치인은 대중의 칭찬을 듣고 사는 동물이다. 지지자들이 이반하면 정치인은 기가 죽는다. 대통령의 기가 꺾이고 내각이 대통령의 심기를 헤아리기 시작하면 그 정부는 희망이 없다.

공희준님은 『노무현은 스타의 꿈을 버려라』고 말하지만 정치인은 스타가 안되면, 성인군자가 되든가 로봇이 되어야 하는데 어렵다. 대통령도 한 사람의 약해빠진 인간이다. 지지자가 으샤으샤 하고 추임새를 넣어주지 않으면 기가 죽어서 정치를 못한다.

노무현정부는 작금의 민심이반을 가볍게 생각해서 안된다. 대통령도 신바람 나고 지지자들도 신명이 나는 정치를 해야한다. 대통령이 대중의 인기를 잃으면, 측근이 인의 장막을 치고 기쁨조노릇을 하게 되는데 이거 최악이다.

대통령은 탤런트이고 스타이다. 인기정치를 해야한다. 인의 장막을 친 측근에게 둘러싸여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는 식의 밀실정치를 하느니, 포퓰리즘이라고 욕을 먹더라도 대중적 인기를 택하는 것이 낫다.

지는 게임을 잘해야 진짜 승부사이다
어쩔 수 없이 지는 게임을 해야할 때도 있다. 져야할 게임을 잘 지는 사람이 고수이다. 한나라당이 과반수를 먹고있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격다짐으로 이기면 반드시 뒷탈이 난다. 지금 노무현은 지는 게임을 하고 있다. 이런 때는 사석작전으로 자투리 한 둘은 내주더라도 지지층의 핵은 다치지 않는 위기관리가 필요하다. 대중적인기도 중요한 자산이다. 이걸 집권 초반에 쉽게 포기해서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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