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초의 잎처럼 시원시원
내면의 소리가 들려야 한다.
사박사박 눈 내리는 소리
빗방울 듣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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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예술은
자기 생각을 이미지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이면에 감추어진 은밀한 목소리들을
밖으로 끌어내는 과학이어야 한다.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어야 한다.
지어내고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는 것이어야 한다.
과학이 아니면 예술이 아니다.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코로 냄새맡아보고 귀로 소리들어보고
전방위적으로 보아야 한다.
좀 아닌 상투적이고 진부한 따위들은 기본적으로 관찰이 안되어 있다는 점에서 낙담한다.
한국의 조각가들 중에 인체를 진지하게 들여다 본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고 생각한다.
피부를 그리면서 그 속에 근육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근육을 조각하면서 그 속에 뼈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그 피부와 근육과 뼈를 통일하는 내부의 기운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그 피부와 근육과 뼈와 기운이 외부 환경과 호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피부의 색을 그리며 살의 탄력있고 무게감있는 양감을 잊고
살을 그리면서 뼈의 전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에서 얻어지는 밸런스를 잊고
뼈의 연결을 그리면서 그 연결의 방향성에서 얻어지는 기운을 잊고
기운을 나타내면서 환경과의 호흡을 잊는다면
도무지 무얼 그리겠다는지 모르겠다.
묻고 싶다.
뭘 그리겠다는 건가?
자기 생각?
천만에!
자연은 이미 그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데 왜 먼데서 찾지?
자기 생각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남의 생각 아닌가?
사회가 요구하는 긴장들.
주로 정치적인 의도의 반영이거나 환경문제 제기 등
뻔할 뻔자 식상한 그거.
왜 신의 미소를 찾아내지 못하나!
자연의 완전성에 도전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