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슬픔 - 야만의 시간들을 관통하며 생긴 생채기가 말해주다>
하늘이 푸르니 좋은날들인건 분명한데, 나는 점점 무력감이란 심연으로 빠져들어갔다.
파랑새처럼 지저귀는 공기는 분명 좋은데, 나는 까닭모를 깊은 패배감에 휩싸여갔다.
모든 것이 다 제자리에 있어서 분명 좋은데, 나는 점점 기운이 쇠진해지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세상이 까닭없이 슬픔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어디선가 스물스물 미움도 기어나왔다. 나는 이건 내 본마음이 아니야. 다시 더 깊게 그 너머의 마음을 살펴봐. 라고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더 큰슬픔이 나를 온통 채워 버리자, 이내 나는 내가 슬펐다는 것을 알았다.
야만의 시절을 건너오며, 나는 끝없이 끌고 들어가는 눅진한 느낌과 살았다. 어두운 비가 축축하게 우비위에 하염없이 쏟아지기만 하는 그런 느낌. 그 언젠가 밤새도록 트럭에 시체를 나르던 바로 그 꿈속에서의 느낌이 바로 그랬었다.
현재를 보며 슬픔이 내안에 가득 담겨버린 이유가 바로 그 시간들 때문이었다. 어떤 환희와 서운함과 애잔함과 미묘한 질투의 느낌이 내안에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 야만의 시대에 저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르던 분노의 불길의 방향을 바꾸고 그 분노를 일단 내려놓았던 시간이, 지금은 큰 슬픔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땅에서 벌어졌던 모든 짐승의 시간들, 그 누구라도 위로 올라갈수록 더 짐승들이 되던 시간들이 있었다. 모두가 미치지 않으면 자신이 바라는 욕망을 채울 수 없던 시간들.
청문회에서 벌어진 광경들을 보며, 그래 너희는 모두 그 짐승의 시간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 짐승의 시간안에는 모두 일말의 짐승이 되지 않으면 건너올 수 없는 강이 같이 흐르고 있었다. 그 강물에 발을 담구자 기어이 짐승처럼 웅크리는 자들이 되어버렸다.
너희의 야만의 시간에 이제 스스로들이 종지부를 찍으라. 너희들의 짐승의 시간에 시민들은 무방비로 노출되어 고통을 감내하여야 했다. 이제 너희들 손으로 야만의 시간을 끝내야 한다. 그동안 짐승의 시간을 관통하며 행해진 온갖 추태와 악태를 씻어내야 할 시간이다. 사람의 시간을 살 기회를 놓치면 다음 기회는 없다.
역사의 현장을 체험하여 알고, 역사의 순간들을 학습하여 알고, 이 모두는 사람의 가슴에 깊은 생채기를 남긴다. 생채기는 계속 곪아들어가 생채기가 났었다는 사실을 기어코 알린다. 사람이 우울한 것과 슬픈 것은 다르다는 그 차이를 알게 되었다. 슬픔은 사람을 온전히 잠기게 만들어 씻겨 낸다. 슬픔은 위대한 정화의 힘이 있다.
슬픔은 연장선상에 있었다. 그러니 벗어난게 아니라 계속 잠겨 있었던 것이다. 이것도 내 마음이 아니야. 저것도 내 마음이 아니야. 계속 걷어내어 보았더니 큰 슬픔만 남았다. 만나야 할 것을 만나니, 환희다. 슬픔을 드러내려 온갖 감정들이 마음이란 쇼 윈도우에 차례로 진열되었다가 물러났다. 너도 아니야. 너도 아니야. 진짜를 데려와. 그렇다. 슬픔이야말로 진실하였다. 커다란 환희의 이면에는 언제나 큰 슬픔이 함께하고 있다. 큰 슬픔안에는 사랑이 빗물처럼 흐르고 자비가 눈물처럼 내린다. 그러니 어찌 이 좋은 날들을 보며 큰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좋은 것은 언제라도 큰슬픔이 산처럼 버티고 뒤를 받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