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렬
미니멀라이프
한국이라는 시소는 역시 기울어진 축구장이 되어 있죠.
이 판에 새 작품을 들고 입장하는 자는
반드시 그 시소의 기울기를 바로잡는 위치에 포지셔닝해야 한다는 거죠.
이걸 어기는 자는 황천길로 보내는게 정답이죠.
왜냐하면 신참자가 다중을 황천길로 보내는
나쁜 결정을 했기 때문에 그에 대응하는 것입니다.
........그렇네요.......
으르릉
오늘 기사보니 국제시장이 크게 흥행하고 있군요.
역시 변호인의 성공이 국제시장의 반동을 불러온건가요.
영악한 감독이네요.
자신을 위해 영화판을 죽이는 행동을 한 것처럼 보입니다.
슈에
의도 없는 영화는 없다. 제가 실수했던 게 맞군요. 반성하고 갑니다.
하여간 예술 하는 사람은
자기 작품이 정치세력에 의해
어떻게 이용될지 심사숙고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난 그냥 중립으로 만들었는데 정치인이 이용했다는건 거짓말입니다.
거짓말로 가득찬 박정희 찬양영화입니다.
신문기자들이 쓰는 말로 '빨아주는' 거죠.
왜냐하면 예술은 본래부터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도없는 예술은 없다는 거죠.
난 예술 아니고 장사인데? <- 그것도 의도입니다.
예술 파괴 의도지요.
예술은 본질이 진보이므로 중립적인 예술을 표방한다면 적의 편입니다.
난 박정희 시대에 멀쩡하게 학교다닌 자들을
일단 대화상대가 되는 인간으로 안 봅니다.
죽은 자와 죽지 못한 자가 있을 뿐이죠.
하나의 공간에 두 명이 입장해 있으면 토대의 공유 문제가 생깁니다.
즉 어떤 행동을 할때 상대방의 동의를 거쳐야 하는 문제가 생기는 거죠.
시소 위에 두 명이 타고있는데 한 명이 말없이 내려버리면 다른 한명은 황천행.
즉 아무런 의도가 없다고 해도 이미 상대방을 해치는 결정을 한 거죠.
그러므로 밀폐된 방 안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비행기가 편대를 이루는 것은 동료의 관측범위 안에 들어올 의도인 거죠.
현상태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 때 그 변화가 보이는 구조가 편대입니다.
모두가 볼 수 있는 위치를 선택하면 바로 그것이 진보입니다.
진보는 신참이 대열의 앞에 서는 것이고 뒤에 서면 안 보이므로 앞에 서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술은 숙명적으로 진보일 수 밖에 없는 거죠.
회의를 할때 원탁을 쓰는 이유는 모두가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갑자기 시소가 기울어져 일제히 황천길로 가는 비극을 막기 위한 장치입니다.
한국이라는 시소는 역시 기울어진 축구장이 되어 있죠.
이 판에 새 작품을 들고 입장하는 자는
반드시 그 시소의 기울기를 바로잡는 위치에 포지셔닝해야 한다는 거죠.
이걸 어기는 자는 황천길로 보내는게 정답이죠.
왜냐하면 신참자가 다중을 황천길로 보내는
나쁜 결정을 했기 때문에 그에 대응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