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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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962 vote 0 2008.12.30 (12:28:48)

 

욕망을 혁명하라


모든 존재는 어떤 구조와 체계 속의 존재이다. 그러므로 욕망 역시 구조와 체계를 가지고 있다. 욕망의 구조와 욕망의 체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욕망의 원소가 있다. 원소들이 집합하여 욕망의 전개를 만든다. 전개들이 모여 욕망의 구조를 만든다. 구조들이 모여 욕망의 평형을 만든다. 평형들이 모여 욕망의 체계를 만든다.


욕망을 혁명한다 함은 전부를 욕망하게 하는 것이다. 전모를 보아야 전부를 욕망할 수 있다. 전부를 욕망한다 함은 욕망의 체계를 성립시킨다는 뜻이다.


체계는 평형의 집적이므로 이미 욕망의 평형이 이루어졌다. 욕망의 평형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도 없고 갈등도 없다. 인간이 전부를 욕망하게 될 때 욕망의 충돌, 욕망의 갈등, 욕망의 문제는 없다.


모든 문제는 전부를 욕망하지 않고 부분을 욕망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왜 부분을 욕망하는가? 전모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부를 꿈 꾼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전부에 대한 비전과 이상주의와 동그라미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 높이 나는 새가 더 멀리 본다.

더 높은 가치를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된다.

더 나은 세상을 욕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루하고 저급한 욕망을 버리고 고상한 가치를 욕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속에서 벗어나 성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더 멋진 것을, 더 나은 것을, 더 완성된 것을, 더 아름다운 것을, 더 진실한 것을, 더 자유로운 것을, 더 정확한 것을 욕망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더 멋진 세계, 더 높은 세상, 더 위대한 가치를 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이 비루해지는 것은 욕망이 비루하기 때문이다.


욕망이란 무엇인가? 우선 밥을 먹고 싶다거나 떵을 싸고 싶다거나 섹스를 하고잡다거나 이런건 욕망이 아니다. 그건 동물의 생존본능에 불과하다.


밥을 먹고 싶은 것이 아니라 배가 고픈 거다. 떵을 싸고잡은 것이 아니라 떵이 마려운 것이다. 섹스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거시기가 꼴리는 것이다.


식욕, 배설욕, 성욕은 인간의 2차적으로 해석해서 욕망화 시킨 것이다. 그 자체로는 욕망이 아니다. 실제로 지능이 아주 낮은 사람들은 성욕을 별로 나타내지 않는다.


인간이 나타내는 성욕의 90프로는 상상력의 결과이며 지능이 높은 사람이 더 성욕을 많이 나타낸다. 이러한 사실은 과학적인 추적에 의하여 증명되고 있다. 확실히 1세기 전에 비해서 21세기의 인간이 더 섹스의 횟수가 많다.


그러므로 식욕이나 성욕 따위는 일단 배제하는 것이 맞다. 인간의 진정한 욕망은 두 가지다. 학습욕구와 재현욕구가 있다. 학습욕구는 호기심, 흥미, 묘미, 모험심과 같은 어린이다운 감정의 자극에 의한 것이다. 


식욕이나 성욕과 같은 본능적 욕구도 학습욕구에 의해 증폭되는 것이다. 식욕이나 성욕은 그 자체로 본능에 불과하므로 지능이 낮은 사람은 식욕이나 성욕이 약하게 나타난다. 학습욕구의 자극에 의해서 욕망이 증폭되어 후천적으로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인격적으로 성숙할수록 학습욕구에서 벗어나 재현욕구의 지배를 받게 된다. 재현욕구는 미학적 욕망이다. 그 어떤 것을 완성시키려는 태도이다. 예컨대 밥을 먹어도 바닥에 떨어진 밥알은 주워먹지 않겠다든가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특정 기호품을 먹겠다든가 하는 식으로 스스로 규칙을 정해가는 것이다.


이 규칙들은 서로 모순되고 충돌하지만 미학적 가치판단에 의해 점점 체계화 된다. 더 아름답고 더 깔끔하고 더 완벽하게 자신의 욕망을 완성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한 벌의 옷을 입어도 격식에 맞는 옷을 갖추어 입겠다는 태도이다.


인격이 미성숙한 자는 학습욕구에 지배되기 때문에 타인의 평판에 신경을 쓴다. 자신의 욕망을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트렌드나 주위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형태로 변형되는 것이다. 순수하게 자신의 의지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수요에 맞추어 자신의 욕망을 변형한다.


인격이 성숙한 자는 재현욕구에 지배되므로 자기 일관성을 좇아 내적인 결합관계의 긴밀성과 정합성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자기의 욕망을 결정한다. 그래서 뛰어난 도공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작품을 망치로 깨부수는 것이다. 내부의 자잘한 욕망들의 모순과 충돌이 해소되는 것으로 자신이 만족할 때 까지 욕망을 상승시켜간다. 낮은 단계에서 욕망들은 서로 모순되지만 높은 단계로 나아갈수록 욕망들의 모순은 사라진다.


산의 중턱까지 가려면 어느 길로 갈것인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정상에서는 모두 만나게 된다. 정상까지 가려는 목표를 세운 사람에게는 어느 길로 갈것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욕망들의 마찰과 갈등은 일어나지 않는다. 


무엇인가?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은 신이 인간을 훈련시키는 수단이라는 말이다.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면 환경이 인간의 지능을 자극하여 훈련을 시키는 것이 곧 욕망인 것이다.


인간은 욕망의 자극에 의해 지능이 훈련되었고 그 결과 IQ가 상승했다. 특히 성적인 욕망 덕분에 인간의 지능은 극적으로 높아졌다. 동물이 지능이 낮은 이유는 욕망이 저급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발정기가 짧기 때문이다.


인간은 발정기가 따로 없기 때문에 24시간 욕망의 자극을 받은 결과로 24시간 지능이 훈련되어서 IQ가 상승한 것이다. 한국인이 지능이 높은 이유는 아프리카의 낙원을 떠나 추위에 떨고 배고픔을 견디며 여기까지 오는 동안 무수한 자극을 받아서 지능이 높아진 것이다.


욕망은 인간이라는 동물의 지적 능력을 훈련시키는 당근과 채찍이다. 그 훈련에 따라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인간은 학습욕구에 지배되는 인간이다. 그들은 흥미와 호기심, 게임의 재미와 타인의 평가, 사회의 유행, 지배자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욕망을 결정한다. 그들은 불행해질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욕망을 자신이 결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욕망은 타인이 결정하는 것이고 그 타인의 결정은 매우 변덕스럽기 때문에 인간은 결코 그 욕망을 높은 수준에서 충족시킬 수 없다.


이때 인간은 훈련되는 개와 비슷하다. 열심히 뼈다귀를 물어오지만 그 뼈다귀는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 주인은 뼈다귀를 뺏어 멀리 던지기를 반복하고 인간은 헐레벌떡 뛰어가서 그 뼈다귀를 물어오기를 반복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욕망을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그것은? 미학적 기준을 따르는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자신에게 부여한 과제를 완성시키는 것이다.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미학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정확도와 활성도와 균형도와 완성도와 근접도를 따르는 것이오. 또 이들 사이에 성립하는 결합관계의 긴밀성과 정합성을 담보하는 것이다. 그것은 외부에서 조달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부에서 찾아내는 것이오. 그것이 깨달음이다.


깨달았는가는 자기 내부에서 욕망을 찾아내었는가다. 근원의 욕망을 찾아내면 저급한 욕망은 버릴 필요도 없이 저절로 소멸된다. 그것은 산의 정상을 오르는 이가 어느 등산로를 택할 것인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배가 고프다는 그냥 배가 고프다로 남아있지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로 반전되지 않는다. 자신의 욕망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학습욕구의 부단한 간섭과 참견을 극복하게 된다. 타인에게 인정받을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된다. 


철이 들어야 한다. 철이 든다는 것은 학습욕구에서 재현욕구로 바꾼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습욕구는 환경에 지배된다. 자신의 주위에서 일어난 사건이 자신의 욕망을 규정하는 것이다.


재현욕구를 발견하게 되면 무엇을 재현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때 구조와 체계의 원리에 따라 전부를 욕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전부는 과제의 완성을 의미한다. 완성은 깨달음에 의해 가능하다.


전부를 욕망하게 될 때 욕망 사이의 충돌은 없다. 구조와 체계의 문제이다. 모든 갈등은 구조에 따라 일어나고 체계에 의해 해소된다. 구조는 얽힘이다. 갈등은 얽힘이다. 갈등은 구조가 만드는 것이다.


구조는 환경과 나의 교섭에 의해 성립한다. 환경이 변하기 때문에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갈등을 낳는다. 전부를 욕망한다 함은 구조에 따른 갈등을 체계로 풀어낸다는 것이다. 산의 중턱이 아니라 정상을 욕망하는 것이다.


환경과의 교섭에서 욕망을 조달함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 찾아낸 목표로 환경을 지배함을 의미한다. .


인간의 불행은 욕망이 저급하기 때문이다. 이는 환경이 인간의 지능을 계발하는 방향으로 인간을 훈련시키기 때문이다. 그 똥개훈련을 자청해서 반복하기 때문에 인간은 불행하다. 그러나 어쨌든 인간은 그 버릇 덕분에 여기까지 진화했다.


훈련단계를 졸업하고 재현단계에 들어서야 한다. 철 드는 것이다. 철이 들면 욕망이 바뀐다.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의 완성을 욕망하게 된다. 환경과 교섭하며 불안정한 환경을 완성시켜서 안정시키려 한다. 이 단계에 도달하면 모든 갈등과 모순과 부조리가 자동으로 해소된다.


인간은 부조리한 존재이다. 그 이유는 인간이 진화하기 위하여 생태계의 법칙에 따라 인간을 훈련하기 때문이다. 환경이 인간을 컨트롤 하는 것이다. 게이머가 하나의 스테이지를 돌파하면 또다른 스테이지가 주어지듯이 인간은 진화하기 위하여 반복적인 훈련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있게 되면 부조리가 해소된다. 환경이 인간에게 스테이지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스테이지를 창출하게 된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생태계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훈련 때문이다. 그 훈련의 결과로 인간의 아이큐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그러므로 선택해야 한다. 불행해 하면서 훈련을 계속하여 인간 종의 진화에 기여하든지 아니면 그 미련하기 짝이 없는 똥개훈련을 그만두고 행복하게 살든지다.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막힘과 통함으로 전부 설명할 수 있다.

같음과 다름으로 전부 설명할 수 있다.


같으면 통하고 다르면 막힌다.

다섯가지 같음이 있다.


원소의 같음.. 빨간색과 빨간색이 같다.

전개의 같음.. 리듬이 같다. 반복되는 패턴이 같다.

구조의 같음..

평형의 같음..

체계의 같음.. 외계에 대하여 열려있다.


위대한 철학자들은 언어를 창안하고 언어체계를 발견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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