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의 진실 “니들 그래 봤자 세상 안 바뀐데이. 세상 만만치 않데이.” 당시 귀가 아프도록 들은 말이다. “너희들이 데모한다고 세상이 바뀔 줄 아느냐?” 진실이었다. 전두환은 국민 90퍼센트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았다. 그들은 독재를 찬성한 것이다. 내게는 절망뿐이었다. '이런 나라는 살아줄 필요가 없어.' 당시 나의 결론이었다. 정말이지 살기가 싫었다. 박정희 죽은 날은 혼자 뒷산에서 만세를 불렀다. ‘이 순간을 기억해 두자. 언젠가는 내가 옳다는 사실이 증명되겠지.’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지만 사실 나는 민주화라든가 정권교체라든가 대통령직선제라든가 이런데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관심이 있는 척했다. 나의 경우로 말하자면 더 깊은 곳에서 틀어져 있었다. 근본적으로. 나는 본래 신에게 관심이 있었다. 신이 연출한 세상이 너무 엿같아서 내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고상한 내가 살아주기에는 세상이 너무 뭣같잖아.' 어쩌면 이런 생각 또한 지어낸 거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었다. 아하! 그것은 에너지였다. 불덩어리 같은 것이 있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사랑도 시시하고 인간도 시시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데, 그전에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환멸. 세상과 그 세상을 만든 인간과 나는 서먹서먹했다. 세상을 용납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인가? 가슴에 불이 있다. 그것은 화다. 화가 났다. 세상의 약점을 들추기로 했다. '이거 독재네. 딱 걸렸네.' 세상의 약점을 뒤져 찾아낸 거다. 그렇다면 쳐죽여야지. 진실을 말하자. 내 가슴에 어떤 불덩어리가 있었고 그래서 화가 났고 그래서 세상을 용납할 수 없었고 그럼에도 한 사람을 사랑하고 싶었고 그래서 세상에 시비를 걸어갈 빌미가 필요했고 그러던 차에 독재를 포착했으니 세상은 내게 딱걸린 거다. 다만 때려줄 뿐이다. 그래서? 틀어진 세상 전부와 대적해볼 마음으로 박정희사망 만세를 불렀다. 동지는 없었다. 자전거로 시내를 한 바퀴 둘러봤지만 어머니에게 수없이 들었던 해방직후의 만세바람은 일어나지 않았다. 8월 15일 해방의 그날은 너도나도 만세를 불렀다는데 박정희가 죽었는데도 왜 이렇게 조용하지? 왜 해방을 축하하지 않지? 내가 틀린 건가 세상이 틀린 건가? 세상이 죽든 내가 죽든 둘 중 하나는 대가리가 깨져 죽어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죽을 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느다란 믿음이 있었다. 그 언젠가 내가 옳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날이 온다면 그 날은 기분이 좋겠지. 그땐 이 엿같은 세상을 마음껏 비웃어줄 수 있겠지. 그래! 니들은 전부 틀렸고 나 혼자 옳다고. 니들은 다 한심한 것들이라고. 이렇게 한바탕 쏘아주고 싶었다. 그렇게 또 하루치를 살아내곤 했다. 인정해야 한다. 한국인 90퍼센트는 전두환을 지지했다는 사실을. 하긴 일제 강점기 때도 그랬으리라. 타임머신을 타고 일제강점기로 날아가서 박유하가 위안부 할머니 아니 소녀들을 인터뷰한다면 소녀는 뭐라고 말할까? 박유하는 신이 나서 ‘거 봐라 내가 뭐랬어.’ 이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온당한가? 거짓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인정할 수 없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간다. 기 단계에서 지지하든 반대하든 잠정적이다. 인간은 결과를 보고 나중에 결정한다. 입에서 나온 언어는 진실이 아니다. 이 순간 사랑한다는 말도 미워한다는 말도 진실이 아니다. 진실은 계속 가는 그것이다. 민주화는 계속 간다. 사랑하지 않지만 그 사랑의 불을 켠다. 그 불이 꺼지지 않을 뿐이다. 정말이지 우연히 동아일보 한 귀퉁이에서 묘한 기사 토막을 찾아냈다. 작은 토막기사였다. 세로쓰기로 칸이 가운데 손가락 길이 정도. 하긴 당시만 해도 신문이 두껍지 않아서 작은 기사라도 큰 기사였다. 신문이 다 합쳐서 8면이었던가 그랬다. 모 재야인사가 단식투쟁을 한다는 내용.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 재야인사가 김영삼이었던 거다. 85년이었던가. 212총선이 있었다. 날씨는 쌀쌀했다. 신한민주당이 등장하고 신민주전선이라는 기관지를 발행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신민당이 돌풍을 일으켰고 어용 민한당은 단번에 날아갔다. 그때만 해도 신기환, 신도환 깡패형제가 금뺏지를 달던 어이없던 시절이었는데. 처음으로 어떤 가능성을 봤다. 전후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다. 인상적인 사건은 이산가족 찾기다. 갑자기 전국이 눈물바다가 되었는데 그때 한국인들은 묘한 일체감을 맛보았다. 그걸 한 달 내내 퍼부었으니 월드컵보다 센 이벤트였다. 83년이었을 거다. 그리고 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정주영이 갑자기 월급을 두 배로 인상했다. 원래 보너스는 관리직만 받는데 정주영이 노동자들에게도 보너스를 줬다. 정주영이 대통령 해먹으려고 포석을 둔 것이다. 노동자가 돈맛을 알면 생각이 바뀐다. 갑자기 노동자가 거액을 손에 넣었다. 그러자 눈빛이 바뀌었다. 현대가 임금을 올리자 모든 사업장이 임금을 올려야 했다. 그래서? 원래 대학은 집안의 장남만 보내는 것이다. 70년대 초만 해도 대학진학률은 10퍼센트 선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것이 변했다. 전 국민이 자녀를 대학 보낼 마음을 먹은 거다. 장남은 대학을 가고 장녀는 오빠 학비를 벌기 위해 공장을 가는게 70년대 규칙이었는데 말이다. 80년대 들어 아들딸 구분 없이 대학을 보내는 사태가 일어났다. 그리고 또 이산가족 찾기 열풍에 밝혀진 사실이 전 가정에 전화기가 보급된 사실이었다. 모든 가정에 전화기가 있다고? 그렇다면 광주는? 전화기가 없어야 광주의 진실이 감추어진다. 다른 게임이 열렸다. 대학가는 매일 데모가 있었는데 전두환, 노태우 아들도 대학생이라는 풍문이 돌았다. 그 와중에 서울대생 박종철과 연대생 이한열이 죽었다. 원래 한국인들은 대학생을 좋아하지 않았다. 먹고살기 힘든데 데모만 한다는 팔자 좋은 대학생들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런데 바뀌었다. 전 국민이 자녀를 대학에 보내는 흐름에 모두가 선망하는 서울대생과 연대생이 죽은 것이다. 학생이 죽은건 큰 사건이 아니다. 학생은 무수히 죽어갔다.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은건 대단하지 않다. 그전에 국민은 이미 억! 하고 쇼크 먹었다. 413 호헌조치다. 박종철은 죽었지만 국민은 모르고 있었는데 전두환이 직선제 개헌은 없다고 선언을 했다. 국민은 억! 하고 쓰러졌다. 엎친데 덮친다고 박종철이 억! 하고 죽었단다. 억!억!이다. 뭔가 하나 터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뭔가 하나 터졌다. 그렇다면 이건 하늘의 계시다. 국민은 한 마음이 되었다. 박근혜 탄핵 때처럼. 여러 가지로 톱니바퀴가 맞아돌아갔다. 너무나 기가 막힌 타이밍에 하늘이 맥을 딱딱 짚어주니 엉덩이가 들썩인다. '뭣해? 당장 일어나지 않고!' 하늘의 음성을 들은 셈이다. 하늘이 국민의 엉덩이를 걷어차서 일으켜 세웠다. 광장으로 등 떠밀어 보냈다. 냉소적이었던 국민들은 어쩔 수 없이 광장에 불려나왔다. 그래서? 내가 졌다. 신과 나의 비밀스런 게임. 많은 사람이 87년의 양김분열을 아쉬워하지만, 만약 양김이 아니고 외김이었다면 어떻게 흘러갔을까? 한국인은 전두환을 지지했다. 전두환이 영구집권을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한국인은 민주화를 바란게 아니다. 민주화가 되는데 대통령이 김대중이다. 이걸 영남사람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다. 내가 먹기는 싫은 민주화지만 호남이 가져가는건 못 봐주겠다. 김영삼 어디 갔냐? 이렇게 된 것이다. 충청도는 가만있나? 아쉬운 대로 김종필이라도. 이런 식이다. 주도권 경쟁 들어간 거다. 그때 그 시절 한국인들은 민주화를 지지한게 아니라 민주화의 주도권을 상대지역이 잡는 꼴을 못 봐준 것이다. 운명적으로 하늘에서 떨어진 민주화를. 하늘에게 등 떠밀려 억지로 광장에 끌려 나와서 어색한 표정으로 서 있었는데, 민주화는 불안한데 그걸 상대가 가져간다니 내 안의 불이 터져 나온 거다. 다들 가슴 속에 불이 있었던 거다. 하나 있는 불덩어리 잘 덮어서 갈무리해놨는데 그게 터져버렸다. 질투는 한국인의 힘! 상대지역이 주도권 잡는 꼴을 못 봐주겠다고 용기백배 한 거다. 아웅산 수치는 한 명이라서 안 된다. 두 명이 경쟁해야 대세를 잡는다. 이한열 장례식 때 백만 인파가 시청 앞에 모였지만 그날 분위기는 뭔가 심상치가 않았다. 모두 상대진영이 이길까봐 걱정하고 있었다. 불길함을 느꼈다. 그날 시청앞에 모인 한국인들은 진정으로 민주화를 지지한게 아니다. 상대진영을 감시하러 온 것이다. 남이 한다면 나도 질 수 없다는 마음. 오기. 변덕. 이것이 필자가 고발하고자 하는 87년의 불편한 진실이다. 629는 속이구가 되었다. 사실 한국인은 노태우에게 속은 것이 아니다. 속을 마음이 있었다. 그들은 노태우를 필요로 했다. 나는 우울해졌다. 87년에는 DJ 연설회마다 따라다녔지만 92년에는 관심을 끊었다. 이런 국민이라면 민주화되어봤자다. 나는 그런 한국을 용납할 수 없었다. 필자가 돌아온 계기는 대선 다음날 김대중의 정계은퇴선언을 조선일보가 대서특필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김대중을 격찬하다니. 그때 필이 왔다. 악귀 같은 조선일보가 약한 고리를 들킨 것이다. 진짜 악질은 정계은퇴선언하고 물러나는 사람을 그대로 밟아버린다. 조금이라도 칭찬하면 안 된다. 절대 흔들리면 안 된다. 집요하고 악랄하게 짓밟아야 한다. 그때 나는 악의 균열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안티조선을 하기 위해서 사회로 돌아온 것이다. 김대중의 당선을 돕기 위해. PC통신 천리안에 필자가 개설한 조선일보반대 토론방은 천리안 최장수 토론방이 되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필자의 경우는 신과의 게임이었다. 신과 대결했고 나는 삐딱선을 탔고 신은 타이밍을 딱딱 맞춰 보였고 그래서 내가 졌고 나는 신과의 약속을 이행해야만 했다. 나는 신의 연출한 세상을 추하다고 했고 신은 그것이 드라마라고 했다. 그 드라마의 결말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손바닥에 써놓은 것이 과연 맞는지 맞춰보기 위해 하루씩 더 살곤 했다. 이것은 진짜 이야기다. 까놓고 말하는 거다. 인간의 모든 선택은 잠정적이다. 민주화를 지지하든 반대하든 잠정적이다. 그대가 이성을 사랑하든 미워하든 잠정적이다. 다음 카드를 읽고 대응할 뿐이다. 그런데 사랑은 계속 간다. 민주화는 계속 간다.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내 안에 불이 있었다. 불덩어리가 있었다. 그래서 화가 났다. 세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 세상을 나는 한껏 비웃어 주었다. 신이 게임을 걸어왔다. 나의 대답은 냉소였다. 그러나 아뿔싸! 꽁꽁 싸매놓았던 내 안의 불덩어리를 들키고 말았다. 불은 번지고 마는데 나는 이 사태를 수습할 수가 없다. |
629때는 어린 시절이었는데 대학생 형누나들이 경찰서를 허다하게 들를 때였죠.
그 과실을 사학과 언론이 먹었다는 사실은 정확한 지적.
사학 언론 사교육 서로들 사돈을 맺고, 재벌과 쌍을 이뤘죠.
"나는 신이 연출한 세상을 추하다고 했고 신은 그것이 드라마라고 했다" 진짜배기 신과함께였네요
존경합니다. 뭐 달리 드릴 말씀이 없군요...
그것도 아주 완벽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