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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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451 vote 1 2016.03.14 (11:15:54)

     

    알파고와 구조론


    "이번에 알파고가 보여준 것은 우리가 말하던 "추상적 개념" - 두텁다, 엷다, 가볍다, 모양이 좋다 등 - 이 직관의 범주에서 "계산의 범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송두헌 컴퓨터게임정보과 교수]"


    직관의 범주를 계산의 범주로 이동시키는 것이 구조론이다. 과거 정치칼럼 사이트에 글 쓰던 시절에 필자가 맞는 말을 하면 ‘저 사람은 직관력이 뛰어나서 알아맞히는 거지.’라고 둘러대고 넘어가는 편이었다.


    직관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편리한 단어다. 나는 공식에 대입하여 풀어내는데 그들은 직관이라는 커다란 주머니에다 대충 쑤셔박는다. 바둑에서 말하는 ‘두터움’이라는 용어도 그렇다. 도대체 두터운게 뭐지?


    현대바둑은 3단계로 발달해왔다. 전통의 힘바둑에서 17세기의 바둑명인 도우사쿠 이래 집짓기 중심 구조주의 바둑으로, 그리고 20세기 들어 중앙의 두터움을 강조하는 우칭위엔의 신포석으로 발전해온 거다.


    http://gujoron.com/xe/683449
    https://brunch.co.kr/@madlymissyou/9 패러다임의 전환(이정원)


    “중앙의 두터움” <- 이게 뭐야? 역시 추상개념이다. 설명하기 어려우니까 직관적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구조론을 배운 사람은 단박에 안다. 두터움은 중첩이다. 구조론의 질은 ‘결합한다.’ 했으니 결합상태다.


    자신의 바둑알은 잘 연결시켜서 약점이 추궁될 여지를 없애놓고, 반대로 상대방의 바둑알은 엷게 흩어서 패싸움이라든가 등의 다양한 변화가 일어날 여지를 늘려놓는 것이다. 이는 ‘부하지하’의 방법이다.


    아마고수인 ‘부하지하’님에 의하면 이세돌이 패를 쓰지 못하도록 알파고가 팻감을 미리 없애놓는 것이 ‘부하지하’라고 한다. 이는 알파고의 두터움이다. 이세돌이 패를 쓰려고 해도 마땅히 쓸만한 곳이 없다.


    알파고는 단 1퍼센트라도 자신이 우위에 있으면 ‘부하지하’를 써서 변화의 여지를 없애고 판을 단순화시킨다. 그것이 두터움이다. 흔들기가 장기인 이세돌이 흔들어 보려고 해도 흔들어 볼만한 곳이 없다.


    무엇인가? 현대바둑의 특징인 중앙의 두터움을 알파고가 더 잘 이해하더라는 거다. 이건 일반의 예측을 깬다. 필자 역시 이세돌과의 대결이 있기 전까지는 알파고가 모양 좋은 집짓기에 골몰할 걸로 봤다.


    왜냐하면 그쪽에 데이터가 많기 때문이다. 알파고가 수천만국의 기보를 분석했다면 그 기보는 인간의 행적이고, 알파고는 결국 인간을 흉내낸다. 신포석에 필요한 추상적 직관은 알파고에 가르쳐주기 어렵다.


    ◎ 하사비스 - ‘알파고야 중앙을 중시하고 두텁게 두어라.“
    ◎ 알파고 – “뭔 개소리여??????”


    그렇다. 하사비스는 해낸 것이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수학으로 표현해냈다. 그렇다. 구조론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한다. 대칭을 따라가면 간단히 해결된다. 입자를 대칭시키면 질이다.


    그게 두터움이다. 알파고는 그 점에서 인간을 능가했다. 인간이 직관이라는 혹은 두터움이라는 엉터리 언어 뒤에 숨은 것을 알파고는 수학적 알고리즘으로 풀어냈다. 말을 똑바로 하라는게 공자의 가르침이다.


    구조론을 알아야 말을 똑바로 할 수 있다. 구조론을 모르니까 두터움이니 뭐니 하는 애매한 말을 쓰고 있는 것이다. 스승이 말을 틀리게 해놓고 제자가 알아듣기 바라는게 ‘직관’이다. 구조론은 직관의 해체다.


    이번 대결에서 특별히 눈여겨 봐야할 것은 ‘맥락의 이해’다. 인간과 기계가 갈라지는 지점이 여기다. 알파고는 과연 맥락을 이해했는가? 그렇지 못하다. 하사비스가 구조론의 질을 알고리즘으로 소화해냈다.


    그러나 질≫입자≫힘≫운동≫량으로 이어가는 맥락은 답을 못냈다. 맥락을 알아야 전략을 쓸 수 있다. 알파고가 잘했지만 그게 전술이다. 전술은 손자병법이므로 같은 수를 계속 쓰면 인간에게 다 파악된다.


    알파고의 기량이 정지된 상태에서 계속 인간과 두면 인간이 이긴다. 알파고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두는지 인간이 알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병렬형과 직렬형이 있다. 알파고의 포석은 병렬형 사유라 하겠다.


    즉 1200명의 이세돌이 훈수를 두는 것이다. 근데 훈수를 두면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판을 말아먹을 수도 있다. 직렬형 사유로 바꿔야 한다. 확산 다음에 수렴이다. 확산형 사유에서 수렴형 사유로 바꾸기다.


    ◎ 맥락을 파괴하라.
    ◎ 맥락을 따라가라.


    네오는 한 명인데 스미스 요원은 무한복제된다. 구조론은 확산의 척력을 수렴의 인력으로 바꿔 에너지를 유도한다. 스미스 요원이 네오에게 지는 이유는 수렴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막판에는 직렬이어야 한다.


    구조론의 가르침은 둘이다. 1) 맥락을 파괴하라. 2) 맥락을 따라가라. 초반에는 맥락을 부정해야 한다. 훈수를 받아들여 무심의 바둑을 두어야 한다. 영화를 보더라도 그렇다. 감독의 수작에 낚이면 안 된다.


    감독의 수작은 뻔하다. 눈물 짜내려는 것이다. 거기에 호응하면 안 된다. 지식인 특유의 냉소적인 자세로 ‘흥! 감독 니까짓게 나를 낚겠다고? 어림 반푼어치도 없지. 내가 바보냐?’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


    알파고가 강한 이유는 낚이지 않기 때문이다. 알파고는 몇 수를 두든 첫 수를 두는 마음으로 둔다. 바둑이 36수까지 진행되었어도 37번째 수를 둘 때는 마치 첫 수를 두는 텅 빈 마음, 무심의 경지다.


    그래서 알파고가 강한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판이 진행되면 병렬회로에서 직렬회로로 갈아타야 한다. 처음에는 냉소적인 태도로 삐딱하게 보다가도 노무현이 바람을 일으키면 뛰어들어 열광해야 한다.


    끝까지 냉소로 가면 알파고가 이세돌에게 지듯이 당한다. 판짜기에는 낚이지 말아야 하지만, 판이 짜여진 후에는 낚여줘야 한다. 감독의 의도를 따라야 한다. 초반에는 낚이지 말고 후반에는 낚여야 한다.


    이세돌이 이겼다. 알파고의 약점을 찾았다. 그런데 일반의 예상과는 반대였다. 알파고는 많은 기보를 익혀 즉 벼락치기로 답을 외운게 아니었다. 알파고는 기계의 마음으로 냉철하게 승부했다. 그게 약점.


    알파고는 구조론의 질에 도달해 있었다. 그러나 질에 머무를 뿐 입자, 힘, 운동, 량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맥락을 모르므로 이세돌에게 졌다. 바로 기계가 인간을 이기지 못하는 부분이다. 인간은 맥락을 안다.


    인간이라면 이세돌의 묘수에 당했어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악착같이 물고늘어져서 이세돌의 실수를 유도한다. 그러나 알파고는 51퍼센트 이기는 확률에 맞춰져서 49퍼센트가 되면 갈피를 못 잡는다.


    무리한 흔들기를 하다가 자멸했다. 무엇인가? ‘일대일’ 개념이 없다. 구조론에서 강조하는 일대일은 피아구분이다. 이게 없으면 맥락이 없어 전략적이지 못하다. 알파고는 승리확률이 49퍼센트인데 이기려 한다.


    바둑초보가 승산이 없으면 요행수를 노리고 꼼수바둑을 두는 것과 같다. 아직은 인간이 기계보다 낫다. 그러나 어렵지 않다. 구조론을 적용하면 된다. 인간도 배워야 한다. 인간은 너무 맥락을 따르려 한다.


    히딩크가 월드컵 4강의 기적을 연출하듯 드라마틱하게 가면 거기에 낚여서 역할행동을 하는게 인간의 병폐다. 새누리 지지자만 해도 박근혜에 낚여있고 트럼프 지지자는 역시 낚여 있다. 역할 주면 홀린다.


    반면 지식인이 이마에 ‘냉소’라고 써붙이고 다니는 것도 한심한 짓이다. 기계짓 하면 안 된다. 상황에 따라서는 낚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판이 끝나면 다시 원상복구되어야 한다. 계속 낚여있지 말라.


    '일대일'이 되면 밀당이 일어난다. 밀당의 접점을 이동시켜 승리를 얻는다. 알파고는 그게 없다. 마주치는 부분이 없다. 반대로 인간에게는 그게 약점이다. 미학의 오다케니 우주류의 다케미야니 하는게 있다.


    바둑으로 밀당하다가 무심의 이창호에게 당한다. 이창호는 밀당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4국은 밀당을 아는 이세돌이 이겼다. 너무 밀당을 몰라도 안 된다. 밀당을 알아야 상대의 의도를 알게 된다.



aDSC01523.JPG


    지식인은 먼저 스미스요원이 되어야 하고 다음에는 네오가 되어야 합니다. 사건 초기에는 스미스 요원처럼 병렬형 사유로 객관적인 사태파악을 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역할을 주지 말고 사건에의 직접개입을 유보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건이 파악된 다음에는 자신의 역할 속으로 빠져들어야 합니다. 네오로 변해야 합니다. 직렬형 사유로 갈아타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다 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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