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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9622 vote 1 2014.01.21 (15:29:28)

    강신주의 문제


    필자가 강신주를 아는 것도 아니고, 그 양반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강신주 개인에 대한 논평이 아니고, 세계의 모든 자칭 타칭 철학자들에게 공통되는 이야기다.


    물리학자라면 첨단 물리학을 해야 한다. 물리학자라는 사람이 물리학에 대한 최신이론을 한 편도 발표하지 않았다면, 강단에서 300년 전의 뉴턴이나 가르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물리학자가 아닌 거다.


    건축가라는 사람이 집을 한 채도 짓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건축가 아니다. 화가라는 사람이 그림을 한 폭도 그리지 않았다면? 화가 아니다. 소설가라면 소설을 써야 하고 시인이라면 시를 써야 한다.


    자칭 시인이라는 사람이 이태백의 시나 외우고 다닌다면 그 사람은 시인이 아니다. 가수라는 사람이 남의 노래나 부르고 다닌다면 그 사람은 가수 아니다. 나훈아는 가수지만 너훈아는 가수가 아니다.


    물론 너훈아 씨도 한때 음반을 냈으므로, 누가 물으면 직업을 가수라고 소개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너훈아라는 타이틀은 가수에 대한 것이 아니다. 자기 이름으로 음반을 내고 활동을 해야 가수다.


    이미테이션 가수는 가수가 아니다. 수의사는 의사가 아니고, 장의사도 의사가 아니다. 철학자는 자기 이름으로 철학해야 하며 그 철학은 최신철학이어야 하고 그 대상은 인류 최고지성의 것이어야 한다.


    철학자는 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려주는 사람이다. 그 시대는 새 시대여야 하며, 그 정의는 새 정의여야 한다. 그 대상은 최고레벨이어야 한다. 인류 대표자를 대표하는 것이어야 한다.


    차를 팔아도 신차를 팔아야지 중고차 팔면 안 된다. 음식을 요리해도 새 요리를 내와야지 냉장고에서 음식 꺼내오면 안 된다. 연주를 해도 직접 건반을 두들겨야지 CD 틀어놓고 앉아있으면 곤란하다.


    철학자는 어제까지 지구에 없던 새 이야기를 해야 한다. 어제도 있었고 그저께도 있던 남의 이야기를 재탕한다면 학자가 아니다. 중개상일 뿐. 대중을 상대로 강연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철학이 아니다.


    그건 철학자의 외도다. 철학자도 먹고 살아야 하므로 외도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도 먹고 살려고 과외교습을 한 적이 있으니깐.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과외교습은 물리학이 아니다. 그 양반의 부업이다.


    목사는 자기 주장을 내놓지 않는다. 예수 주장을 전할 뿐이다. 그들은 남의 말을 옮기는 중간 전달자에 불과하다. 그들은 학자가 아니다. 학자가 아니므로 대접받지 못한다. 강신주는 철학자가 아니다.


    물론 이는 필자의 입장이고 학계에서 먹어주느냐는 별도다. 우간다나 짐바브웨에서는 주술사도 의사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한의사는 의사가 아니지만 한의사를 찾은 환자들은 의사라고 여길 수 있다.


    철학자가 쪽팔리게 공자나 맹자를 팔며 남의 철학 주워섬긴다면 화가가 모나리자 베껴그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만화가 밑에서 먹칠하는 사람은 만화가 아니다. 독립해서 자기 만화 그려야 만화가다.


    그들은 문하생이다. 강신주는 많이 쳐줘봤자 철학생 쯤 된다. 하긴 한국 정도의 후진국이라면 철학생도 철학자라고 우길 수 있다. 못할게 뭐야? 심지어 댓통령도 대통령 행세하는 나라인데 말이다.


    다만 쪽팔린 줄을 아는 지성인이라면 그렇게는 못한다는 거다. 지성인이라면 창피해서라도 내 발로 청와대에서 걸어 나온다. 하긴 이것도 사람새끼에게 해당되는 말일 뿐 쥐명박에게 기대할 일은 아니다.


    사회에서 강신주가 어떻게 대접받는가는 논외로, 사리가 그렇다. 피아노 교습소 선생과 피아니스트는 다르다. 물론 피아노 학원 선생도 개인적으로 연주회 열고 피아니스트라 우기면 된다. 안될게 뭐야?


    미술학원 선생은 좋은 선생이지만 화가는 아니다. 강신주는 좋은 철학선생일지 모르나 철학자 아니다. 시대의 첨단을 달리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 지성을 대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것 아니기 때문이다.


    철학의 국가대표로 부족하고, 인류대표 선수라야 한다. 인류를 대표하여 1만년 인류사의 성과를 한 줄에 집약할 때, 그 깃발을 들고 인류의 맨 앞줄에 서야 철학자다. 그렇다면 맨 앞줄에 서는 방법은?


    맨 앞에서 나대는 놈을 때리면 된다. 지금 맨 앞에서 나대는 놈이 누구인가? 돈으로는 이건희가 나대고, 종교로는 조용기가 나대고, 정치로는 박근혜가 나대고, 스포츠로는 김연아가 나댄다. 류현진도 있다.


    철학자라면 이건희 싸대기를 갈기고, 제 분수를 찾아주어야 한다. 철학자라면 조용기 싸대기를 갈기고 제 위치를 알려줘야 한다. 철학자라면 박근혜 양 싸대기를 날리고 제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철학자라면 김연아나 류현진이나 김기덕에 대해서도 걸맞는 평가를 해줘야 한다. 대한민국호 선장 입장에서 교통정리 해줘야 한다. 함부로 나대는 넘은 쥐어박고 평가받지 못하는 사람은 키워줘야 한다.


    강신주가 가짜인 이유는 철학하지 않기 때문이다. 철학한 흔적 없다. 아줌마들 상대로 찜질방 수다나 늘어놓으면서 그걸 철학이라고 우기면 쓰겠느냐고. 이런 식이면 장의사도 의사간판 들고 나온다.


    미아리 철학관 할배들도 참지 않는다. 양자이론을 연구하지 않고, 뉴턴역학이나 가르치면 그게 물리학 선생이지 물리학자는 아니다. 물론 후진국이니까 듣기 좋으라고 물리학자라고 불러줄 수 있다.


    어차피 이 나라는 호칭인플레가 유독 심하니까. 시간강사도 교수대접 받는 판에 말이다. 비단 철학 뿐 아니라 다른 분야라도 그렇다. 그 시대의 첨단에 서 있어야 한다. 인류의 대표선수여야 한다.


    철학자는 자기 의견을 발표하면 안 된다. 인류의 대표선수로 인류의 의견을 발표해야 한다. 우주의 대표선수로 우주의 의견을 발표해야 한다. ‘저기요. 내 생각은 이렇걸랑요.’ ← 나가 죽어라 이 화상아!


    독립군이라고 치자. 따르는 병사가 한 명 밖에 없어도 지휘권을 가지면 장군이다. 안중근 의사라면 혼자서 대장이다. 대장 맞다. 부하가 몇이든 대장이고 장군이다. 당신에게 결정권이 있기 때문이다.


    따르는 부하가 백만 명이라도 결정권 없으면 장군 아니다. 박근혜 눈치보고, 이건의 눈치보고, 교황 눈치보고, 학계 눈치보면서 철학자 아니다. 철학업자지만 그냥 듣기 좋으라고 철학자라 불러주는 거.


    자기 신분은 자기가 정하는 거다. 강신주는 자기 스스로 신분을 철학자로 정하지 않았다. 하긴 그럴 필요도 없었다. 이곳은 한국이니까. 어제까지는 그랬다 치고 이제부터는 한국도 달라져야 한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중앙일보에 기고하는 놈이 철학자라 참칭하면 안 된다. 중앙일보가 한국의 지성을 대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스스로를 중앙일보 취급을 하는 자는 중앙일보로 대접할 밖에.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4.01.21 (16:17:50)

강신주 강의를 들어보면 좀 자학적인 측면이 있다고 보입니다. 자신을 극단으로 밀어부치는 형태. 그러나 이건..자신이 그리 해봤기 때문이라고 여겨져요. 그러니 남의 얘기 하고 있다라고..여겨지지는 않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이번 강신주 논란을 제가 보는 관점에서 보자면 ...

마비와 수치심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는데, 마비는 일종의 정신을 놓아버리는 현상이라고 보인다. 그 처해있는 상황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것이라서, 자기 외부의 시선에 신경이 마비된 것과 같아서, 즉 무신경 해지는 거라고 본다. 그러니 이는 마음이 의도적으로 안으로 숨어버린 것과 같다. 이 마비에서 깨어나는 것을 자극시키는 감정이 수치심이라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강신주 글 어디가 문제라는 건지 모르겠다. 단지 노숙자를 예를 들었기 때문인지....


사람은 한 순간에 노숙자가 될수도 있다. 그게 아주 먼데의 이야기로 여기면 곤란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노숙자가 되지 않는건 그 자신이 속해있는 시스템안에서 삶이 유지되기 때문이라고 본다.(물론 노숙을 택한 것이 시스템을 벗어나기 위한 거라면 자연인에 가까운 거라고 본다. 선택과 떠밀려남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속에 혼자 사는 자연인과 노숙인들의 눈빛이 다르다는 것이 문제고 차이점이라는 것) 노숙을 택한 사람들은 밀려난 것이고 그 분노가 자기안에 내재하고 그 분노가 오히려 신경을 마비시키는 거라고 본다. 그래야 그 자신이살수 있으니까. 노숙자를 예로 든건 차별논란을 불러올수도 있다고 보지만, 또 예를 든 것도 그런 부분이 가슴에 들어왔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반응이 극렬해진 것도 노숙자라는 이미지가 자신들(사람들)의 불편한 곳을 건드렸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인간의 심리가 그만큼 불안하다는 것이다. 가장 아프게 느껴지는 부분을 건드린 것. 아프면 강신주를 탓할것이 아니라 그 방향은 제도권을 향해야 하는게 맞다. 욕먹을거 생각하고 쓴 사람 욕한들 머할것인가...


그냥 단순히 면피 하는 것과 자기안의 부끄러움을 자극하는 기제는 다르다고 본다. 면피는 늘 할수 있다. 상대에게 돈달라 할수도 있고 얼굴만 가리면 세상도 가려지는게 면피이므로 이건 수치심이 아니다. 오히려 뻔뻔함에 가깝다(사람은 뻔뻔해질 필요가 있으나 이때의 뻔뻔함은 자존감에 기반한 자유에 가까운 뻔뻔함이고, 얼굴만 가리면 된다 여기는 뻔뻔함은 점점 인면수심이 되어가는 상황이라서 사람과 거리가 멀어져 가기에 점점 고립되어 자기안에 갇히게 한다는 것이 문제).

인간이 자기안에 부끄러움과 마주치면 아무도 없어도 얼굴이 부끄럽고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것이 인간이라고 본다. 이러한 기제가 작동이 안되면 점점 사람과 멀어져 가므로 정치의 실패 교육의 실패 삶의 실패 인간의 실패 인류의 실패가 되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실패는 우주의 실패와 같다. 그만큼 그것에서 인간은 고통을 느끼고 그 느낌을 공유한다. 아픈 것이다.


수치심을 느낄때 인간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여긴다. 강신주는 그 지점을 얘기한 거라고 보며 노숙자를 동정하거나 무시해서 한 얘기가 아니라고 여긴다. 강신주는 노숙자를 결코 동정하지 않는다. 동정하는 순간 그 사람은 죽어버린 사람이 되는 것이므로...


한 인간이 인간으로 성공하는 것은 인류의 성공이자 우주의 성공이다. 인류전체가 같이 끌어 올려진다. 한인간이 인간으로 사는 것을 실패할때 인류의 실패가 된다. 우주의 실험은 또 하나 실패했다. 인류의 수준도 그만큼 끌어 내려 진다. 이 비참함을 인간은 자기 안에서 자기도 모르게 느낀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아픔이 찾아오는 것이고 어떤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안보여도 공유되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간의 고뇌가 출발하거나 마침표를 찍거나 일어서거나 라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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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1 (16:41:37)

석가도 노숙자 출신인데 그런 말씀 하시면 곤란하죠. 노숙자들은 수치심 때문에 집에 안가고 거리에 있는 겁니다. 수치를 모르는 자들은 집에서 뻔뻔하게 버티죠. 난봉질 하면서.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4.01.21 (16:52:09)

석가는 스스로 떠났지요. 노숙인도 스스로 떠난 것은 맞지만... 떠나지 않아도 되었다면 안떠날 이들이 더 많다는거지요. 노숙한다라는 것에서 보자면 출가도 노숙이고 집을 떠난 이들은 모두 노숙인 이죠...그리 넓게 따지면 또 유목민이 되는 것이구요...
인간이 망가지는 지점이 있는데 그때 정신이 상처를 받게되면...우리는 폐인이라 부릅니다.
떠난 것과 밀려남은 자유: 상처 이므로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봅니다.
어디를 볼 것인가이지만, 상처가 곧 자유가 되기도 하고 자유가 곧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이 둘이 양립되어 분리되어 있을때 우리는 고통을 느낀다고 봅니다.

하나의 인간에서 사건은 시작되고 커져가므로...철학의 출발을 인간 한사람 혹은 한무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확장되어 가도 무리가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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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1 (16:59:15)

노숙자는 스스로를 치유하는 사람입니다. 본인이 살기 위해서 그러는 겁니다. 수치를 모르는 사이코패스는 노숙 안해요. 늘 하는 말이지만, 인간은 부족민 유전자가 있기 때문에 노숙하는 겁니다. 그 사람들은 노숙이 정상입니다. 부디 편견을 버리시길. 인간은 원래 부족민 유전자가 있는데, 문명생활을 강요하는건 동성애자를 이성애자 만들려고 하는 폭력과 같은 것입니다. 강신주 수준은 초딩입니다. 어른들 대화에 낄 사람은 아닙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4.01.21 (17:09:35)

편견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노숙을 합법화 해야지요. 마음대로 씻을 곳들도 편하게 잘 곳도 있어야 하고..., 인간이 사회화 되는 것은 교육의 힘이 크지요. 그렇다면 서로 어울려 사는 곳에서 자신들을 눈총받이로 전락하게 하지 않아야 하지요. 그러나 마땅히 현 사회에서는 갈곳이 없죠. 거리 밖에는..... 사회 시스템 밖으로 밀려나거나 혹은 떠나고자 하는 이들에겐 딱히 힘이 없지요. 힘이 없으니 거리에서 존재를 드러내는 거라고 보지만, 거기서 세상과 맞서서 서는 이들에게도 뭔가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01.21 (17:19:58)

동성애자는 동성이라서 행복하고 노숙자는 노숙해서 행복합니다. 폐인운운은 곤란하죠. 술 먹고 사람 패는게 폐인이고.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4.01.21 (17:25:36)

폐인은 정신에 상처를 받은 사람, 자신이 아프게 느끼는 뭔가가 자기를 짓누를때 그것에서 자신이 일순간 회피하는 이를 말합니다. 그러니 폐인이란 말은 잘못된 말은 아니라고 여겨요. (물론 요즘은 즐거움을 주는 자극도 폐인이라 하긴 하지만...)
스스로의 진단이 정확해야 스스로 일어날 방향도 정확해지는 것이니까요..

무엇이 아픈지...어느 정도의 시간과 또 다른 세상의 자극들이 자신의 감각을 깨울지... 이를 이겨내는 과정이겠지요.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도 세상의 협력과 그 자신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여깁니다. 이게 안되면...계속 갇혀있게 되니까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01.21 (17:33:08)

그러니까 노숙자는 폐인 아니고요. 인도에 가면 노숙이 자연스럽고요. 그 사람들 상처없구요. 님은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4.01.21 (17:43:18)

강신주는 사회와 제도권에서 밀려난 이들을 노숙자로 한정하고 있고, 그 노숙의 세계를 저는 당연히 모릅니다. 안해봤으니까...
그러나 동렬님이 말하는 노숙자 정의도 문제가 있다고 봐요.
인도와 한국의 사회환경이 같은 것은 아니지요.
인도의 노숙작는 상처가 없을지라도 한국의 노숙자는 상처가 있다고 봅니다.
시선과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이것을 편견이라고 한다면 그리 생각해도 되겠지요.
환경이 안되는데 주구장창 노숙자가 자유인과 입퀄 형태로 말하는 것도 조금은 문제 있다고 봅니다.
노숙자 그 자신들의 정신과는 상관없이 또 사회문제인것은 확실하니까요. 어떤 관점으로 접근 할 것인가인데... 우리 사회가 인도 사회는 아니므로 우리사회에서 풀어나갈 방도를 찾아야 겠지요.
노숙을 제대로 못하는 사회 이니까요. 제대로 못하면 사람은 아프게 되니까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01.21 (21:58:04)

노숙자 때문에 불편한 당신이 풀어야 할 당신의 문제입니다. 노숙자들은 행복하다니까요? 솔직히 인정하세요. 아픈 사람은 당신입니다. 

[레벨:12]비랑가

2014.01.21 (22:27:42)

행복한 노숙자?

불행한 노숙자?


둘다 길위에서 잠을 잔다.

길위에서 자는 것이 행복하기까지야 하겠냐만, 싫지는 않은가 보다.

[레벨:3]코페르니

2014.01.21 (17:35:38)

강신주의 강의와 트윗글을 보면 크게 문제될 것 없다고 본다. 철학자 강신주라 해도 좋고, 철학자가 아니어도 좋다. 강신주는 타인의 시선은 조금도 생각 안한다. 그런 의미에서 난 그가 철학한다고 생각한다. 


철학이란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 타인의 생각이 들어갈 틈이 조금도 없다는 것. 그 틀이 자기가 창조하지 않은 것이어도 좋다. 역사적으로 자기머리로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해 낸 많은 사고의 틀거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틀거리를 가지고 생각한다면 그는 철학자 불리지 않아도 이미 철학자다.


난 강신주의 노숙자에 대한 불편한 설명으로 노숙자에 대한 사고의 폭이 넓어졌다. 그들이 왜 거기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영화, 다큐, 언론상의 오피니언, 또 관찰을 통해 많이 느끼고 생각해 보았지만, 강신주의 평가(마비와 수치)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프랑스에서는 노숙인의 냄새와 행패에 대해 온정적으로 느끼고, 손을 잡아 준다고 하지만, 난 강신주의 처방도 좋다고 본다. 수치감을 느껴야 자기 자리를 뜰 수 있다. 강신주가 노숙인에게만 그런 소리를 했다면 문제지만, 강신주만큼 물신적 자본주의에 대해 강한 비판을 하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 이 땅의 위정자들도 수치심을 느껴야 하며, 마찬가지로 이런 꺼꾸로 된 사회에서 온전하게 살아가는 우리들도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 아마 그런 것들을 "무려 철학박사" 강신주는 말한 것일 것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1]까뮈

2014.01.21 (20:41:34)

팟캐스트로 강신주를 들었지만 그리 제게 어필이 안된 것으로 보아 아직 철학자는 아닌 듯 합니다.


일파든 일가든 세력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진중권처럼 개인기가 강한 인물로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01.21 (22:04:10)

수학 가르치는 과외선생은 수학자 아닙니다. 강신주 철학강의 듣고 도움이 되었다면 강신주는 그 사람에게 좋은 철학선생입니다. 철학선생은 철학자가 아닙니다. 


석가는 노숙자였고 거지였습니다. 예수도 광야에서 노숙을 했습니다. 공자도 한때 제자들과 노숙했습니다. 디오게네스만 노숙한게 아니에요. 간디나 소로도 이쪽사람입니다. 원래 철학계에는 노숙계보가 있습니다. 키닉학파는 '개처럼 살자'가 슬로건입니다. 무위자연의 노자, 장자도 그 계통. 김기덕 감독이 파리에서 노숙자였다고 폐인이라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피폐해진 자입니다. 제가 폐인이라서 노숙한게 아닙니다. 노숙도 안 해본 자가 철학을 떠들고 다닌다면 좀 맞아야 합니다.


강신주가 누구에게 좋은 철학선생이었을 수 있지만, 그건 개인사정일 뿐, 개인 생각을 말하면 안 됩니다. 누가 물어봤냐구요. 진리의 생각을 대변해야 합니다. 왜 자기 생각을 말하죠? 미쳤나요? 


점괘가 틀리면 점쟁이가 아닙니다. 병을 못 고치면 의사가 아닙니다. 병은 못 고치지만 병에 대해서 잘 말해줬으면 좋은 의학선생이지 의사는 아닙니다. 강신주가 말을 잘했으면 철학자가 아닌 거죠. 자기 생각을 말한다면 역시 철학자는 아닌 거죠. 강신주가 자본주의를 비판했다면 수요에 공급한 장사꾼이죠. 자본주의 비판은 누구나 원하지 않나요?


누구나 원하는걸 해주는 사람은 철학자가 아닙니다. 강신주는 정신과 의사도 아니면서 심리학자처럼, 상담학 박사처럼 너절한 인생상담이나 하고 다니는 삼류입니다. 왜 철학자가 인생상담 합니까? 그게 철학이에요? 장난하나? 


법륜이 인생상담하는건 삼류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석가에게 인생상담을 청했다면 석가는 당신에게 어떤 말을 해줬을까요? 법륜은 석가를 심하게 모욕하고 있는 겁니다. 그게 불교의 법이에요? 장난하나? 아줌마하고 농담 따먹기하라고 석가는 6년이나 나무 밑에서 노숙을 했나요? 그런게 불교는 아닙니다. 법륜은 진짜배기 승려가 아닙니다. 중질할 자격 없습니다. 


아 물론 사회에서 대접해주는 승려는 됩니다. 조계종에서 도장을 받아오면 승려는 승려죠. 그러나 석가가 봤다면 당장 쫓아버렸을 겁니다. 성철이 봤다면 발길질이 날아왔을 거고. 중이라면 진리를 말해야지 아줌마 수다에 장단을 맞춰? 지랄염병 하고 있네.


강신주는 법륜과 둘이서 상담실 하나 차리고 가짜 정신과의사 노릇이나 할 수준입니다. 하긴 그것도 대단하다고 보는 사람에겐 철학자겠지요. 


자본주의 비판? 사람들 욕구불만 대리배설에 불과합니다. 미래를 예견해야 철학자이고, 시대가 나아가는 방향을 제시해야 철학자이고, 그 방향이 실제로 맞아야 철학자입니다. 환자가 실제로 병이 나아야 의사입니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장님이 더 많은 장님을 이끌고 어문데서 헤매면 곤란하죠. 


종북좌빨 때문에 우려됩니까? 치료를 받으세요. 동성애 변태들 때문에 괴롭습니까? 치료를 받으세요. 노숙자들 때문에 불편합니까? 전문가를 찾아가서 치료를 받으세요. 당신에게는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체르노빌 때 지식인의 잘못된 대응 때문에 10만 명이 낙태를 했습니다. 무려 10만 명이 살해된 거죠. 아는 사람이 우려를 부추겨서 그렇습니다. 그렇게 우려를 부추기는 자들을 대중은 좋아합니다. 대중의 기호에 영합하여 10만을 살해하는데 앞장선 마녀사냥꾼이 철학자로 추앙된다면 곤란하죠. 


물론 방사능은 위험하고 위험은 알려져야 하며, 대비는 아무리 많아도 불충분 하지만, 그런 위태로운 순간에 진짜와 가짜가 가려집니다. 강신주는 10만을 살해하는데 앞장서는 대중영합적 탤런트에 불과합니다. 아마 그 현장에 있었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했을 겁니다. 


방사능은 분명 위험하지만 방사능 자체의 위험성보다 방사능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무개념들을 통제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위험한 겁니다. 오늘 뉴스에도 아토피 치료약으로 쓰이는 스테로이드 부작용인 쿠싱증후군에 대한 오해로 인한 우려 때문에 자식을 죽이고 엄마가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진짜 철학은 스스로 존엄해져야 하며 대중을 통제할 수 있는 권위를 가져야 합니다. 대중이 원하는 말을 해주면 안 됩니다. 대중영합적인 행동을 소통이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레벨:2]손작

2014.01.22 (01:44:51)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남들은 히키코모리라 걱정하고 불쾌한 시선을 줄 지 모르지만,

사실 집에서 2-3주씩 콕 박혀있으면 정말 행복해요.

잠도 맘대로, 사색도 맘대로, 먹는 것, 읽는 것, 듣는 것... 할 게 너무 많아요. 무척 재미져요.

노숙도 그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어요...

대신 평균의 짐들을 좀 벗어던지고 최대한 가볍게 사는 사람들.

시설 보호소에서 제공하는 따뜻한 밥에, 잠자리도 결국 거부하고 다들 나오더군요.

단체 룰을 지켜야만 하는 조건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들에겐 그곳이 감옥이나 별반 다를 게 없을지도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11]오맹달

2014.01.22 (04:52:03)

글과 댓글을 통해 정리가 되었습니다. 

강신주를 통해 유익한 자극을 받았습니다. 법륜을 통해 위안과 평안도 얻었던 듯 합니다. 

동렬님의 말씀대로 제겐 좋은 철학선생님들이었던 듯 합니다. 


자기 소리를 하지 말라는 걸 이제야 이해한 듯 합니다. 

자기 소리란 이런 겁니다. 난 동성연애를 이렇게 생각해. 아님 말구 + 싫음 말구


자기 소리가 아닌 신의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의 시대는 이러하다. 그러니까 철학의 이름으로, 예술의 이름으로 우리는 저 방향으로 가야한다. 

그것이 빛이요 진리요 소금이다!


예수는 이랬다더라, 석가는 저랬다더라, 짜라투스트라는 또 다르게 말을 했더라,

스피노자, 니체를 이야기 해준다 해도 그건 그냥 따라 읽는 것 뿐입니다. 

읽어보니 나는 이렇더라 하는건 자기 소리입니다. 


과거를 모두 읽고 현재를 이해하여 미래를 신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1]탈춤

2014.01.22 (08:45:55)

고은은 시인인가요? 

아니라면 강신주도 철학자가 아닙니다. 

그가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라  보는시선의 수준에 관한 얘기

그가 인류를 대표할 만한 시선을 얻었을 리 없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01.22 (10:50:17)

그렇소.


예수가 '누구 죄 없는 자 있어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랴' 해도 

돌 던질 놈은 던집니다.


그 사람들이 돌던지기를 멈추었다면 그것은 

예수를 따르는 무리를 보고 쫄은 거죠.


예수처럼 턱도 없이 나서다가는 도매금으로 같이 돌 맞아 죽습니다.

그게 세상의 법칙이죠.


군중 속에 서 있으면 진짜가 아닙니다.

고은 시는 시가 아니고, 이발소 그림은 그림이 아니고, 강신주 철학은 철학이 아닙니다.


그들은 군중 속에 서 있기 때문에 진짜가 아닙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예수 뒤에 일천명의 무리가 있었고 

예수가 그 맨 앞에 서 있었기 때문에 예수의 말이 먹힌 거죠. 비유하여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


예수 말에 공감하여 넘어가는 바보는 세상에 없소.

예수가 가는 길이 다르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그 길에 흥미를 느낀 거.


내가 아무리 옳은 이야기를 해도 글 읽은 놈들은 콧방귀도 안 뀌는게 세상의 법칙입니다.

만약 그 사람들이 변한다면 내 말이 옳기 때문이 아니고 


내 뒤로 일천 명의 무리가 있고 내가 그 맨 앞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구조론으로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그 무리의 상부구조를 만들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제 말의 내용을 보고 판단하는게 아니라

가는 방향을 보고 판단하며, 그 방향이 기존의 방향과 다르고, 


이 사람들은 끝까지 간다는 확신을 얻었을 때 비로소 액션 들어갑니다.

고은이나 강신주들은 그런 새로운 루트의 개척이 없다는 거죠.  


군중 속에 있으며 묻어가는 자들과는 계급이 다릅니다. 

세상의 언어가 아닌 진리의 언어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01.22 (21:02:52)

옛날에는 택시기사들이 아침에 첫 손님으로 장애인을 태우게 되면 당연한듯이 승차거부를 합니다. 병신이 재수없게 아침부터 싸돌아 다니느냐고 꾸지람을 합니다. 그리고는 바닥에 침을 탁 뱉죠. 누가 병신입니까? 병신을 병신이라고 하는 사람이 병신입니다. 설날 아침에 엄마는 딸들을 단속합니다. 새해 첫날 첫 방문자는 반드시 남자아이여야 합니다. 계집애가 재수없게 설날 아침부터 싸돌아 다니느냐고 합니다. 특히 장사하는 가게는 그런 미신이 심하죠. 소금 뿌립니다. 어부들은 여자를 배에 태우지 않습니다. 재수없다는 거죠. 육지는 양이고 바다는 음인데 음인 여자가 타면 파도가 치고 어쩌고 제법 정연한 논리를 들이대기까지 합니다. 들으면 논리가 그럴듯해서 속아넘어갈뻔 합니다. 한국 노숙자는 서울역 지하보도에 많지만 다 그런건 아니고 다양한 곳에 숨어 있습니다. 나처럼 알아보는 사람에게는 요소요소에서 포착됩니다. 일본 노숙자는 공원에 박스로 집을 만들고 아주 살림을 모아놓습니다. 박스에 축적해둔 재물이 가득합니다. 미국 노숙자는 카트를 끌고 다니는데 개도 안고다니죠. 그들은 인간의 원초적 모습 그대로 속 편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노숙자를 불편해 하는 그 마음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 수준으로는 절대 아프리카의 빈곤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마음의 깊은 곳을 들여다 보는 눈을 얻어야 합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들과 풀과 흙과 나무와 숲과 이슬과 모기와 벌레와 친하지 않고는 진정한 세계를 알아챌 수 없습니다. 철학할 자격 없습니다. 

[레벨:5]정기훈

2014.01.23 (00:06:39)

님의 마음 씀에 그냥 눈물이 흐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2]락에이지

2014.01.23 (09:37:56)

천상병, 이외수의 예술세계도 그들이 경험했던 노숙자생활이 결국 그들의 예술세계를 형성하는데 큰 몫을 차지했을듯.


[레벨:6]빛의아들

2014.01.26 (22:03:08)

강신주 철학상담을 들으면서  참 뭔가 부족한것이 많다라고 느꼈는데 그 느낌이 뭔지 조금 알것 같군요.

사랑하지 않으면 이혼하라.  이혼했는데 사랑했다는것을 깨달으면  다시 결합해라..

사랑하고 살아라  강신주가 이렇게 말하는 것같은데

 

제가 그 말을 듣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참 바보구나.  사랑은 마음이 아닌것을 왜 모를까? 라고 말입니다.

사랑은  정신적인것도 아니고 마음도 아닙니다.  물론 마음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랑은 삶이고 행위이고 현실입니다.   사랑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머리에서 머무는것이 아니라

몸으로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지요.

 

이혼? 머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혼을 생각할것입니다.  그러나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이혼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을 관념으로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레벨:3]코페르니

2014.01.27 (09:37:04)

강신주의 강의를 들어보면 안개와 같은 개념과 문제들이 뻥 뚫리는 것을 느낍니다. 


1.사랑하면 결혼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이혼하라.

2.종교는 아편이며, 사기다.

3.사랑은 몸이지, 관념이 아니다. 몸으로 사랑하라.


강신주의 상담은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에게 삶,사랑,죽음에 대한 일관된 관점을 심어줍니다.

"기존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라. 살다가 깨지면 아물게 될 것이고, 다시 신나게 살아라."


88만원세대, 4포세대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들에 대해 메스를 대고, 상처를 드러내고, 같이 고민해 보는 것 자체가 이 시대의 철학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봅니다. 


강신주의 강의는 삶에 중요한 참고는 될 것이지만, 최종 결정은 자신들이 한다는 것. 강신주가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어필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자신의 삶을 한번 돌아보게 만들었다는 것이죠.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01.27 (11:53:14)

그게 초딩이죠. 

대중 앞에서 그런 수준이하 얘기 하면 솔직히 창피하지 않습니까?

제가 5살 때는 그런 내용과 비슷한 생각 해봤습니다만 

여섯 살때는 유치하게 느껴져서 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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