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금수회의록 더 지켜볼 필요 있겠는가?
생전 처음보는 더러운 선거에 혀를 내두르며  

더럽다. 참 더럽다. 인간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 온통 개들이 난리를 친다. 혹은 멍멍거리고 혹은 낑낑거린다. 그야말로 개판이다. 보기 싫다. 기회주의자들의 헛소동을 더 지켜볼 필요나 있겠는가?

인물이 없다. 여의도 정치업자 300명 중에 단 한 명도 없다. 인물이 없을 때는 내각제가 맞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내각제를 하는 것이 이유가 있다. 인물이 없을 때의 문제는 다수당의 대표가 수상을 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그러나 분단이라는 우리나라의 특수상황, 그리고 사대강국 사이에 낀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 게다가 식민지와 전쟁과 독재의 체험이라는 한국인만의 특수성이 유권자들로 하여금 대통령제를 선호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감이 없다. 재난이다.

우리는 이번에 후보를 내지 못했다. 우리가 꿈 꾸는 ‘소수파의 수평적 연대를 통한 가치중심 사회의 건설’을 대표할 인물은 지금 출마한 후보들 중에 없다. 오만한 자도, 역겨운 자도, 추접스러운 자도, 거듭나온 자도 진정한 우리 양심의 대표자는 아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정치란 무엇인가? 다스림이란 무엇인가? 일찍이 정치는 예술이라고 말했던 뜻이 무엇이겠는가? 대통령의 참다운 역할은 오천만 한국인들에게서 최고의 음률을 끌어내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되는 것이다.

노무현은 어떻게 했는가? 그 5천만 중에서 상대적으로 깨어있는 소수의 재능을 끌어냈을 뿐 어리석고 저렴한 자들의 재능은 쓰지 않았다. 그들 쓰이지 못하고 내쳐진 자들은 탄핵범으로 몰려 괄시를 당했다.

그들에게 지난 5년간 혹은 DJ 이후 지난 10년간은 그야말로 재난이었다. 그들은 실제로 고통받았다. 그들은 기득권으로 몰리고, 부패로 몰리고, 지역주의 세력으로 몰리고, 수구꼴통으로 몰렸다. 우리가 그들 모지리들을 단지 모지리라는 이유만으로 업신여겼기 때문에 앙갚음을 당하는 것이다. 모지리의 난이 일어났다.  

노무현은 국민이 가진 재능의 백프로를 사용하지 않았다. 노무현은 완장차고 거들먹거리며 라이선스나 앞세우고 잘난척 할 뿐 조직과 권위와 시스템에 얽매여 있는 먹물들의 재능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에 불만을 품은 찌질이들은 지금 비노세력의 대표주자인 문국현 씨를 앞세우고 참여정부가 지난 5년간 찌질이들을 업신여긴데 대하여 사과하라며 압박하고 있다.

노무현은 IMF이후 양극화 현상에 소외된 하층민의 울분을 보듬어주는 데도 소홀했다. 노예근성에 찌들어 대통령을 봉건왕조의 전제군주로 착각하는 그들은 대통령의 탈권위주의 행보에 충격을 받아 깊은 상실감에 빠져버렸다. 숭배하던 임금을 잃고 부모를 잃은 고아의 심리에 빠진 것이다. 불만을 품은 그들은 지금 이명박 씨를 추종하며 복수를 노리고 있다.

그들은 이명박 씨가 지난 10년 동안 쓰이지 않은 자기네의 재능을 끌어내 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명박 씨가 당선되면 시장거리나 공사판의 낮은 자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키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최소한 기는 살아날 것이다. 성매매금지법에 친일청산에 인권정책에 개혁드라이브에 마치 죄인이라도 된양 기죽었던 그들이다. 기가 살면 목소리가 높아지고 가진 것이라곤 목청밖에 없는 그들에게는 목소리만 높아져도 뭔가 업적이 된다.  

대한민국호가 대양을 항해한다. 위기가 닥치면 갑판장과 기관장이 힘을 쓰고 위기가 사라지면 평범한 선원들이 힘을 쓰는 법이다. 온갖 위기를 돌파하고 선진국의 문턱에 다다른 2007년 지금 이 시점에 대한민국호는 누구의 재능을 위주로 끌어내야 하겠는가?

다양한 세력들이 있다. 거기서 젊은이의 재능을 끌어낼 것인가 삭은이의 재능을 끌어낼 것인가? 글 배운 교수의 재능을 끌어낼 것인가 평범한 회사원의 재능을 끌어낸 것인가? 자유분방한 예술가의 재능을 끌어낼 것인가 능률적이라는 건설업자의 재능을 끌어낼 것인가? 이는 사회의 발전단계에 따라 달라진다. 지난 10년간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자들이 이제 자기네의 재능이 쓰여질 때가 되었다며 일제히 반격을 개시한 것이다.

부패한 부동산업자가 대통령에 당선 된다면 한국의 재능있는 젊은이들은 우울증에 걸려버릴 것이다. 지난 5년간 수구꼴통이 앓았던 그 우울증이 한국의 재능있는 젊은이들에게로 옮겨질 것이다. 그들 수구꼴통들은 그들이 가진 얄궂은 재능을 활짝 꽃피울 것이다. 여성부 폐지하여 해외원정 성매매의 재능을 꽃피우고 통일정책 전환하여 반공방첩 관제데모하던 재능도 꽃피울 것이다. 부시정권 이래 지난 7년 동안 진행된 미국의 몰락을 답습하게 될 것이다.  

역사에는 필연의 흐름이 있다. 생태계의 밸런스가 있다. 왼발이 한 걸음 가면 오른 발도 한 걸음을 가야 한다. 위기가 닥치면 뛰어난 지도자를 찾고 긴장이 풀리면 부시 같은 얼뜨기가 기어나온다. 그렇게 되게 되어 있다. 만약 머저리 부시가 아닌 지식인 촘스키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면 미국이 더 잘될까? 세계는 더 행복할까? 천만에!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인류 전체를 기준으로 보라. 엘리트의 재능만 사용하고 하층민의 재능은 사용하지 않게 될 때 세계는 더 위험해진다. 부시의 당선은 미국 내부의 감추어진 모순을 드러낸 것이다. 부시의 등장 이전에 미국은 이미 분열되어 있었다. 속으로 곪아 있었다. 두 개의 미국이 있다. 뉴욕을 중심으로 한 상층부의 잘나가는 미국이 있고 중서부를 중심으로 한 하층부의 낙오된 미국이 있다. 부시의 당선은 그러한 미국의 분열상을 반영한 것이다.

냉전이라는 위기가 사라지자 그동안 주눅들어 있던 하층민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여 반격한 것이다. 선두 반보를 외쳐 미국 전체를 하향평준화 시키는 방법으로 보이지 않게 분열된 미국을 자연치유한 것이다. 부시로 촉발된 제국의 후퇴는 미국인들에게는 불행이지만 인류 전체로 볼 때는 잠재적인 리스크를 줄인다는 점에서 다행일 수도 있다. 미국의 몰락은 인류의 축복일 수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번 선거는 한국 내부의 모순을 극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가장 큰 부분은 70년대 개발시대를 살아온 평균학력 중 1 수준의 기성세대 한국인과 80년대 민주화시대를 살아온 평균학력 대재이상의 신세대 한국인이다. 두 그룹의 한국인이 있다. 그들은 가치관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삶의 지향점이 달라서 서로 간에 의사소통이 안 된다. 그러한 모순을 드러낸 것이다.

한국인들의 선택은 잘못이지만 역사의 필연법칙을 따라가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대한민국호의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생태계의 균형원리를 따라가는 선택을 했다. 이성적인 선택이 아니라 본능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인간도 일종의 동물이기에 한계가 있다. 한국인들은 스스로 진보의 속도를 늦춤으로써 지구 생태계 전체의 안정에 기여하는 선택을 했다.

그렇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미국이 미쳤고 일본이 일탈했고 대만이 태만하고 중국이 어중간한데 한국만 특별히 아주 잘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려야 할 것이다. 성공지상주의 버려야 한다. 어느 면에서 본다면 그 또한 후진국의 열등의식을 보상받으려는 심리에 불과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드라마 뿐이다. 순리를 따라야 한다. 무리한 정권재창출의 욕심 버려야 한다. IMF 이래 6천불 소득을 10년 만에 2만불 만들었으면 지난 10년간 할 일은 한 셈이다. 물론 부작용도 있고 세세히 살피지 못한 곳도 있겠지만 그것은 뒷사람들의 수습할 몫이다.

한국인들은 결정해야 한다. 한국인 중에서 누구의 재능을 위주로 쓸 것인가를. 시청 앞에 모여서 성조기 흔드는 625 참전용사의 재능을 쓸 것인가? 어디에? 조중동 친일파 쓰레기들의 재능을 쓸 것인가? 어디에? 이명박 씨 지지한다는 강남졸부들이나 개념없는 복부인들, 철 없는 된장녀들의 재능을 위주로 쓸 것인가? 어디에? 그들의 재능을 모아서 무슨 위대한 공구리 사업을 하겠다는 말인가? 첨단 정보통신 시대에 그들의 재능을 써먹을 곳이 있다는 말인가?

노무현은 5천만 한국인 중에서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는 그들의 재능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몰린 것이다. 노무현 뿐이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이래 늘 그래왔다. 언제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곤 했다. 다만 내가 끝끝내 말하고 싶은 것은 노무현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젊은이들의 재능까지 끌어내었다는 것이다. 바로 거기에 우리가 이제부터 완성해야 할 드라마가 있다는 것이다.

세종대왕은 그 창제한 한글로 앞으로 수천 수만년간 무수히 태어날 미래의 젊은이들의 재능을 끌어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대통령이 오천만 한국인의 재능을 고루 끌어내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미래의 후손들의 재능을 끌어내는 것이다.

오늘의 나를 나로 만든 것은 8할이 전태일과 김구다. 전태일은, 그리고 김구는 태만한 나를, 포기하려 했던 나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장준하도 그러했고 김대중도 그러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전태일 이야기를 처음 듣고 나는 내가 이 세상의 어느 지점에 각을 세워야 할 지를 분명히 알았다. 전태일은 죽어가면서 미래의 나의 숨겨진 열정을 끌어낸 것이다.

무엇인가? 노무현은 100년 후에도, 천년 후에도 젊은이들의 역할모델로 존재할 것이다. 미래를 끌어내는 자가 진짜다. 나는 그 진짜를 안다. 그 씨앗을 얻는다. 그 씨앗을 품는다. 그리고 내 안에서 그것을 키워낸다. 그 씨앗을 뿌릴 새로운 대지를 찾아 걸음을 나선다. 다만 말하고 싶은 것은 그 일은 노무현 혼자로 안 되고 지난 5년으로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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