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선거제도에 문제가 있지만 한겨레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주장에는 속임수가 있다. 비열하다. 입으로는 민의를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게 자기소개다. 언제나 그렇듯이 자기네 입맛이 민의가 된다. 그들은 명성을 탐하는 자들이며 뒤로 협잡하여 판을 흔들고자 한다. 뭔가 복잡하게 만들려고 한다. 오컴의 면도날이 말하듯이 제도는 단순한 것이 좋다. 진실을 말하자. 민심은 무심이다. 민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법칙대로 갈 뿐이다. 민의를 반영한다는건 거짓말이다. 자연법칙을 따라야 한다. 세계 각국이 하필 양당제를 하는 이유는? 각국이 하필 대통령제를 채택하는 이유는? 고대 로마처럼 집정관을 여러 명 두거나 화백회의처럼 대통령을 7명 뽑아도 되는데 왜 총리나 대통령은 한 명일까? 내각제로 하되 총리를 열 명 뽑으면 좋잖아. 통 크게 총리 백 명으로 가봐? 원래는 민주적으로 하려고 했다. 막상 해보니까 잘 안돼서 결과적으로 지금처럼 정리된 것이다. 인간은 민주적으로 하고 싶지만 자연의 법칙이 틀어버린다. 민주적으로 하려다 보니 집권당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권력주체가 사라져 버리는 사태가 일어난다. 정치는 집단의 의사결정구조다. 좋은 결정이냐 나쁜 결정이냐를 논하기 전에 일단 뭐라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되는 난맥상을 극복해야 한다. 선거가 끝나면 내각을 출범시켜야 하는데 잘 안 된다. 스포츠라도 이기는 팀에 유리하게 룰이 만들어진다. 무승부를 방지하려는 것이다. 시험이라도 변별력을 높이는데 주안점을 둔다. 모두가 만점 받으면 좋잖아. 그건 시험이 아니다. 모든 시합이 무승부로 될까바 잘하는 팀에 가산점을 준다. 왜? 무승부를 지향하는 법칙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공격은 어려운데 수비는 쉽다. 양팀이 수비만 하면 골이 나지 않는다. 계속해서 0 대 0으로 비기면 관중이 들어오지 않는다. 흥행이 망한다. 중요한 것은 0 대 0을 만드는 자연법칙이 있다는 점이다. 구조론으로 보면 동일한 에너지를 투입했을 때 공격보다 방어가 유리하다. 2를 1로 막을 수가 있다. 수비수를 따돌리는 공격수의 동작이 더 커야 한다. 자연법칙으로 보면 도처에서 교착되어 언제나 집권당이 없어진다. 대선은 대통령이 이기고 총선은 집권당이 져서 이도 저도 아닌 사태가 계속된다. 지금 미국이나 한국이나 여소야대가 되어 있다. 이는 자연 법칙이다. 조중동은 대통령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민의가 작용했다고 해설하지만 새빨간 거짓말이다. 구조론으로 보면 세상은 대칭원리에 지배되고 이는 약자측에 유리하다. 공격측에 불리하고 방어측에 유리하다. 전쟁을 해도 공성전을 한다면 공격측의 병력이 10배라야 한다. 전력이 비슷하면 무조건 수비가 이긴다. 수비가 한 걸음 갈 때 공격은 두 걸음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물리학이라서 어김이 없다. 자연은 기본적으로 수비가 유리하지만 공격이 유리한 법칙도 있다. 원래 전쟁은 먼저 공격하면 이기고 싸움은 선빵 날리면 이긴다. 초반에는 창이 방패를 이기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공격측은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위치에서 싸우기 때문이다. 전장을 공격측이 정한다. 인민군이 침략해도 산악이 많은 강원도는 피하고 평야가 넓은 경기도로 온다. 그러나 전투가 계속되면 전장을 수비측이 정한다. 공격측이 적진 깊숙히 들어왔다면 전장을 임의로 정할 수 없다. 수비측이 후퇴하다가 자신에게 유리한 지형을 만나면 반격한다. 낙동강이 수비에 적합하므로 거기서 받아친다. 전쟁은 언제나 비대칭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아니면 무한전쟁이다.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양당이 대칭되어 교착되는 원리가 있는가 하면 대칭을 깨는 비대칭 원리도 있다. 대칭된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특이점은 반드시 있다. 그 특이점을 차지하는 자가 이긴다. 대칭원리와 비대칭원리가 있다. 그 원리에 맞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정치의 첫째 목적은 어떻든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결선투표를 두고 양당제로 가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장에게 힘을 실어준다. 어떻게든 결론을 내는게 중요하니까. 일단은 의회의 생산력을 높여야 하니까. 우선순위로 보면 생산력이 우선이다. 옳고 그름은 나중이다. 왜? 연동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은 생산하고, 생산해야 둘이 되고, 둘이 되어야 연동하고, 연동되어야 옳고 그름은 판명된다. 어떤 하나의 일은 독립적으로 옳고 그름이 판명되지 않는다. 닫힌계에 에너지를 투입해 시스템을 작동시켜서 그 에너지를 처리해야 한다. 그러려면 연동되어야 하고 연동되려면 일단 생산해야 한다. 북한과 친해야 하나 싸워야 하나? 답은 없다. 옳고 그름은 거기서 결정되는게 아니라 다음 단계 곧 친하려면 친중으로 가고 싸우려면 친미로 가야 하는데 그 일관성에서 결정된다. 어느 쪽이든 일관성이다. 북한과 친하면서 중국과 다투거나 북한과 싸우면서 반미하면 이상하다. 진도를 여기까지 나가서 옳고 그름이 결정되는 것이다. 살인은 옳은가 그른가? 무인도에 한 명이 산다면 거기서 옳고 그름은 없다. 원래 없는 거다. 두 명이라도 옳고 그름은 없다. 셋이어야 한다. 구분지와 구분대상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무인도에 세 명이 살고 있다면 이 사람을 죽이면 저 사람도 죽여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둘 다 죽이려고 하면 둘이 합세해서 그 사람을 죽인다. 그러므로 무인도에 세 사람이 있으면 옳고 그름의 판명이 성립하는 것이다. 한겨레는 항상 이 부분을 속인다. 노예제도는 옳은가? 옳고 그름은 없다. 원래 없다. 원리적으로 없다. 그런거 없다. 우주 안에 없다. 그런데 말이다. 노예는 왜 노예를 소유하지 못하지? 사실 우리 모두는 노예를 가질 수 있다. 개와 고양이를 애완노예로 데리고 사는 거다. 금붕어 노예와 앵무새 노예도 인기가 있다. 노예제도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노예를 가지려면 모두가 노예를 가져야 한다는게 문제인 것이다. 누구든 개와 닭와 돼지와 소를 노예로 부릴 수 있다. 그런데 흑인 노예가 백인노예를 부릴 수 없다면? 이건 모순이다. 노예제도를 인정하면 흑인노예가 백인노예를 가져야 한다. 어떤 백인 농장주가 흑인 노예 둘을 부리는데 그 흑인 노예들은 각각 백인 노예 다섯을 거느리고 있더라. 이런 이야기를 나는 들어본 적 없다. 미국이 흑인 노예를 인정하면 아프리카 왕들은 백인 노예를 둔다. 아프리카 토후왕의 백인 노예가 탈출하여 노예제도를 인정한 미국 대통령을 저격한다면? 세상의 모든 옳고 그름은 독립적으로 성립할 수 없으며 다른 것과 연동되어서만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의는 없다. 민심은 무심이다. 선거는 정해진 법칙대로 가는 거다. 선거만 끝나면 조중동은 이번 선거의 민심은 절묘한 황금분할이라는둥 개소리를 하지만 새빨간 거짓말이다. 옳고 그름은 없으며 제도의 일관성이 있을 뿐이다. 어떤 제도든 그 제도 안에서 일관성을 얻어 시스템적 완결성을 가져야 한다. 독일식 비례대표는 복잡하다. 단순하게 가야 한다. 문제의 본질은 비례대표를 누가 공천하느냐다. 진실을 말하자. 당대표의 공천권 자체를 없애야 한다. 정당의 공천은 지구당에서 당원이 하는 것이다. 전략공천은 위헌이다. 지난 총선은 김종인 공천이다. 왜 개 김종인이 민주당 의원을 공천하지? 필자의 제안은 이렇다. 1) 중앙당의 공천권은 없앤다. 2) 전략공천은 폐지한다. 3) 모든 후보는 지구당 당원이 선출한다. 4) 비례대표는 40퍼센트로 하고 정당득표 비례대로 나누되 지역구 차점자 중에서 다득표 순으로 한다. 5) 전국구는 없앤다. 룰은 쉬울수록 좋다. 의원정수 300명에 비례대표 120명이라 치자. 정의당이 비례대표 10퍼센트를 얻으면 지역구에서 전원 낙선해도 12석을 가진다. 12석은 다득표 순으로 정해지므로 인구가 많은 도시 후보가 유리하다. 인구가 적은 농촌에서 많은 의원이 나오므로 그 부분을 보상한다. 진짜 민의를 반영하려면 거주지와 상관없이 원하는 인물에게 표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후보가 사실상 전국구가 된다. 정당투표를 없애고 한 표는 자신의 지역구에 주고 한 표는 어디든 자신이 원하는 인물에게 주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이게 진짜 민주주의다. 지역에서 인기가 없어도 전국적인 명성이 있으면 당선된다. 이래야 지역 이기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바른 정치를 한다. 한겨레는 이런 진짜 민주주의는 주장한 바가 없다. 그들은 거짓말이 직업이다. 명성을 탐하는 자들이 모인 정의당을 밀어주려고 거짓말을 해댄다. 인간은 법칙 대로 간다. 법칙이 민심이다. 일의 흐름을 따라가는게 민심이다. 일이 되어가는 대로 인간이 따라가야 간다. 결대로 가야 한다. 결은 일관성이다. 세상에 옳고 그름이란 원래 없으며 어느 쪽이든 일관된 것이 옳은 것이다. 노예제도가 옳거나 그른게 아니다. 노예제도는 일관될 수 없다. 백인 노예주가 흑인 노예를 소유하면 흑인 노예주도 백인 노예를 소유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19세기까지 아랍과 아프리카 왕들은 백인 노예를 다수 거느리고 있었다. 노예는 여전히 존재한다. 다들 애완노예 개와 고양이 데리고 살잖아. 구조론으로 보면 세상은 대칭이면서 비대칭이다. 어떻게든 대칭을 만들려는 힘이 양당제를 만들고 동시에 그 대칭을 깨려는 힘이 대통령제나 결선투표나 여러 가지 형태의 쏠림을 유발한다. 노무현, 문재인이 옳은게 아니라 에너지가 노무현, 문재인으로 쏠리는 거다. 에너지 그 자체의 고유한 속성이다. 인간은 언제라도 법칙을 따라야 한다. 거짓말을 하는 자는 언제나 법칙을 위반한다. 옳고 그름의 판단을 내세워 교활한 논리를 펴지만 거기에 함정이 있고 덫이 있다. 한겨레는 명성을 탐하므로 명성을 이룰 정의당 친구를 돕는다. 그들은 협잡하여 명성을 거래하려는 것이다. 그 의도는 사악하다. 내가 옳다는 식으로 말하면 언제나 거짓말이다. 그 방향으로 일관될 수 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지속가능한 것과 지속불가능한 것이 있을 뿐이다. 국지전과 전면전, 단기전과 장기전이 있을 뿐이다. |
"세상의 모든 옳고 그름은 독립적으로 성립할 수 있으며 다른 것과 연동되어서만 성립하는 것이다."
있으며 --> 없으며
감솨~~^^
저는 1인 2표제가 선호되네요.
한 표는 지역구 의원후보에게 투표하고, 나머지 한 표는 자기가 당선시키고 싶은
후보에게 투표하고. 전국적 인지도가 높은데 지역적 특성때문에 낙선되는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라고 봅니다. 국회의원 자체가 중앙정치를 하는 사람들인데
지역구에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지요.
이와 같은 제도였다면 노무현은 한 번도 낙선할 일이 없었을텐데.
비례대표도 국민에게 선택권을 주는게 맞지요.
"민심은 무심이다. 민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법칙대로 갈 뿐이다. 지속가능한 것과 지속불가능한 것이 있을 뿐이다. 국지전과 전면전, 단기전과 장기전이 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