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942 vote 0 2018.11.06 (21:48:08)

      
    서부극의 죽음


    내가 본 최악의 서부극은 존 웨인의 수색자였다. 문제는 평론가들의 입장이다. 그들은 수색자를 최고로 친다. 수정주의 서부극의 효시로 높이 평가한다. 수색자는 최악의 인종주의 영화다. 그냥 인디언을 씹는 내용이 전부다. 평론가들은 백인의 악마성을 비판했다고 말하지만 원래 관객은 주인공의 심리에 동화되는 법이다.


    주인공을 악당으로 묘사해도 관객 입장에서는 주인공이 선하게 느껴진다. 감정이입 때문이다. 주인공의 시점은 관객의 시점이며 관객은 언제나 선하므로 주인공은 무조건 선한 존재가 된다. 감독의 의도는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는 것은 인종주의밖에 없다. 백인은 악마적 측면에서도 우월하다는 식이 된다.


    관객은 에너지로만 판단한다. 에너지가 강하면 우월한 존재다. 악마가 집념이 있다면 그 악마는 강한 악마이며 강하다는 사실 자체로 매력적이다. 이마빡에 나쁜 넘이라고 써놔도 관객에게는 근사한 캐릭터로 보인다. 그래서? 빌런이 영화를 주도하게 된다. 그 결과는 베놈이다. 마침내 악당이 주인공으로 되어버린 것이다.


    악당은 언제나 창의적이며 에너지가 넘치며 주도적이다. 주인공은 소극적이며 나약하며 수동적이다. 어느 순간 주인공이 깨닫고 갑자기 괴력을 발휘하지만 감독의 일방적 주장일 뿐 관객은 납득할 수 없다. 캐릭터가 망했기 때문이다. 나는 수정주의 서부극을 비판하고자 한다. 인디언 없는 서부극은 죽은 서부극이라 하겠다.


    서부극이 인디언을 악당으로 묘사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내 입장에서는 서부극에 인디언이 등장하지 않는게 불만이다. 서부 없는 서부극은 성립할 수 없다. 모뉴멘트 벨리가 나오지 않는 서부극은 서부극이 아니다. 바로 그 바위에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광활함 속에서 온갖 상상력이 발동되는 것이다. 인디언은 자유롭다.


    에너지가 있다. 마음껏 도끼를 휘두른다. 사실이지 관객은 그러고 싶은 것이다. 빌어먹을 백인을 마음껏 쳐죽이고 마을을 불지르고 얼마나 근사한가? 어차피 상상이고 거짓이니까. 나중에야 알게된 일이지만 서부시대는 사실 존재하지 않았다. 심판이 숫자 열을 카운트하면 등을 돌리고 쏘는 총잡이들 간의 대결은 없었다.


    검시관의 보고에 의하면 서부시대의 사망자는 대부분 등에 총을 맞고 죽었다고 한다. 총잡이들 간의 결투는 싸구려 소설가들이 지어낸 것이다. 백인 카우보이도 없었다고 한다. 카우보이는 대개 흑인이거나 멕시칸이었다. 서부시대는 통째로 거짓말이다. 상관없다. 무협지도 몽땅 거짓이다. 어차피 거짓인데 무슨 상관인가?


    인디언들은 네이티브 아메리칸 대신에 인디언이라고 혹은 아메리칸 인디언이라고 불러주기 바란다고 한다. 어차피 인도는 백인에게 상상의 나라다. 인도인들은 인도를 인도라 부르지도 않았고 명명하지도 않았다. 그냥 구자라트주의 마라타 왕국과 델리의 무굴제국이 있었을 뿐이다. 그 외에는 봉건왕조들의 토후국들이다.


    인도란 말은 인더스강을 아랍인들이 신두라고 부른 데서 기원한다. 이 발음이 힌두로 변했는데 서구의 백인들이 인도라고 알아들은 것이다. 어차피 인도는 막연히 동쪽에 있는 어떤 미지의 존재에 대한 상상의 명칭이므로 아메리칸 인디언이 그 이름을 가져간들 어떠리? 이런 거다. 왜 인디언은 인디언을 좋아하는 것일까?


    인디언 유전자의 50퍼센트는 백인이다. 그들은 시베리아를 거쳐 건너간 사람과 바이킹이 등장하기 전에 대서양을 건너온 켈트족 유전자가 섞인 것이다. 과거에는 홍인이라는 명칭도 있었다. 백인 유전자가 50퍼센트라서 텍사스 레드넥들처럼 피부가 빨갛다. 그래서? 강하다. 네이티브 아메리칸이라 하면 약한 부족민이다.


    인디언의 카리스마는 사라졌다. 필자가 원하는 것은 인디언의 존재감이다. 인디언을 악당으로 묘사한 서부극을 나는 본 기억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악당으로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개념없는 백인을 쳐죽이고 머리가죽을 벗기다니 이 얼마나 근사한가? 일본군도 못해본 위업이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서부극은 많지 않다.


    대량으로 쏟아져나온 옛날 서부극은 대부분 흑백필름이라서 볼 맛이 나지 않는다. 아마 싸구려로 제작되어 뒷골목에서 상영된 엉터리 서부극이 인디언을 야만인으로 묘사했던 모양이겠고 우리가 아는 유명한 서부극들 중에는 거의 없다. 수정주의 이념이 등장해서 인디언을 동정하는 시선으로 묘사하게 되었다. 망했다.


    나름대로 의미는 있겠지만 그것은 백인의 위선에 불과하다. 인디언은 빌런이다. 관객은 빌런에 매료된다. 빌런없는 히어로 영화는 죽은 영화다. 관객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존재감을 필요로 한다. 인디언을 야만인으로 묘사하는 천편일률적인 서부영화는 보고싶지 않지만 볼 수도 없다. 한국에서 상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가 인디언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인디언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와 존재감을 말하려는 것이다. 근래의 한국영화라도 마찬가지다. 억지평등 논리를 갖다대어 범죄영화에 여주인공이 악당으로 등장한다. 남자옷을 입었을 뿐 캐릭터는 전형적인 남자 캐릭터다. 과거에 남자가 맡던 배역을 여배우에게 맡긴 것이다.


    에너지도 없고 매력도 없고 마력도 없고 존재감도 없다. 뭔가 관객에게 가르치려 들고 계몽하려고 들므로 캐릭터가 죽어서 시시해지고 마는 것이다. 인디언에게는 위엄이 있어야 한다. 인디언의 위엄은 도끼로 백인을 때려죽이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선악을 떠나서 있다. 세상은 원래 그랬다. 자연은 인간을 죽인다.


    겨울에는 추위가 죽이고 여름에는 더위가 죽이고 봄가을은 독충과 벌레와 지진과 산사태와 홍수가 사람을 죽인다. 자연의 일부인 인디언도 사람을 죽인다. 풍성함은 그 안에 있다. 더위도 없고 추위도 없고 벌레도 없고 산사태도 없고 눈사태도 없고 인디언도 없고 미인도 없고 시시한 잔소리만 남은 영화는 죽은 영화다.


    이념이 들어가고 정치적 프레임이 들어가면 망하는 거다. 필자가 최근에 가야불교의 전래와 신라왕실의 흉노계 전래설을 논했는데 역시 사학계의 실증주의 이념과 프레임이 들어가서 망한 경우다. 환빠들의 난동을 잠재우기 위해 반대쪽으로 폭주한 것이다. 명확한 고고학적 실증유물이 나왔는데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프레임을 만들어놓고 반대의견은 모두 환빠로 몰아붙이므로 대화는 불가다. 그들은 우리 역사를 왜소하게 만든다. 한국인이라서 무역도 하지 않고 왕래도 하지 않고 이주도 하지 않았겠는가? 모든 진보는 인간의 이동으로만 이루어진다는게 구조론의 입장이다. 도공이 일본으로 안 넘어가고 도자기 기술이 전해질 수는 없다.


   도래인이 한반도로 오지 않고 철기제조술이나 불상조각술이나 기와를 굽는 기술이 전해질 수는 없다. 등자를 이용한 기마술이나 국가시스템의 등장도 마찬가지다. 부족민들이 모여서 왕을 선출하고 그런건 절대로 없다. 고구려와 백제는 지배집단이 부여에서 온 것이며 신라도 지배집단이 어디에서 한반도로 넘어온 것이다. 


    이념과 프레임이 들어가서 정치공방으로 가면 왜소해진다. 빈곤해진다. 우리가 원하는 진짜는 위엄과 카리스마와 에너지와 매력과 존재감이다. 그것으로 진정한 평등에 도달하는 것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마찬가지다. 인디언에 대한 동정을 주장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지나치면 인디언에 대한 모독이다.


    수색자에 대해 첨언하자면 인디언은 영웅심이 있을 뿐 복수심이 없다. 집요한 복수는 문명인의 것이다. 인디언은 평등하므로 개인의 우열이 없다. 노예제도가 있고 계급제도가 있는 봉건국가에서 자신이 노예가 아님을 증명하려고 복수하는 것이다. 노예제도가 없는 인디언은 단지 전사의 평판을 높이는데 관심있을 뿐이다.


    인디언이 백인을 죽이는 이유는 위엄을 떨치려는 것이지 복수하려는 것이 아니다. 백인을 죽이고 명성을 떨쳐서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고자 할 뿐 백인에게 복수할 생각이 없다. 백인의 복수심은 계급사회의 열등의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노예가 아니라는 항변과 같다. 영화에서 스카의 행동은 전형적인 백인의 행동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9]cintamani

2018.11.07 (09:24:11)

'이기는 법'에 동렬님의 영화평론(?)이 있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보는 구조론식 영화평론이면서, 또한 담론입니다.


인상적인 글귀: 

우리가 원하는 진짜는 위엄과 카리스마와 에너지와 매력과 존재감이다. 그것으로 진정한 평등에 도달하는 것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2]이상우

2018.11.07 (09:48:39)

인디언에 대한 동정을 주장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지나치면 인디언에 대한 모독이다.
-> 도와주는 사람의 마음보다 도움받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 무엇인가 위임하는 것이 팀플레이를 통한 적절한 위임인지, 위임한 사람의 자생력을 잃게 하거나 위임받은 사람의 권력남용이 되는 것은 이닌지 구별해야 한다.   


기부도 하려면 하는 사람이 제대로 해야. 물론 그 이전에 기부할 일인지 생각해 봐야 하고. 

부모나 교사는 아이가 할 일을 대신해주지 말아야. 

프로필 이미지 [레벨:6]블루

2018.11.07 (10:56:36)

미드 파고에 등장하는 인디언 한지의 모습이 생각나네요.백인의 일을 돕지만,수틀리면 백인도 모조리 쓸어버리는,,그때 나온 나래이션이 인디언은 속을 알수 없다는 식 (인디언에 대한 미국인의 보편적 인식이다는식)이었는데 동렬님의 마지막 설명에서 이해가 되네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8.11.07 (11:06:27)

원래 인디언은 사람을 죽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살상무기가 없었기 때문에.


토마호크는 원래 돌도끼였는데

돌도끼는 추장이나 되어야 갖고 있고


일반 전사들은 대부분 끝을 동그랗게 만든 

나무 방망이를 들고 있었습니다.


이걸 던져서 새를 잡거나 아니면

적대부족 인디언의 머리를 타격하여 쓰러트리는데


머리를 때리면 깃털 하나를 장식할 자격을 얻습니다.

머리를 때리는 이유는 상대방의 용맹을 가져가기 위함입니다.


즉 상대방의 대가빡을 때리면

상대방의 기운이 내게로 옮겨 와서 강력해진다는 거지요.


근데 백인 모피상인들이 철제 토마호크를 인디언에게 팔아먹었기 때문에

철제 토마호크로 머리를 때리자 사람이 죽어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인디언이 서로 죽여서

인디언이 없어지자 백인은 인디언 땅을 차지한 거지요.


11973631_1.jpg 9687929_1.jpg images.jpg


인디언 토마호크로는 사람을 죽일 수가 없음이오.


첨부
프로필 이미지 [레벨:9]cintamani

2018.11.07 (11:13:57)

[근데 백인 모피상인들이 철제 토마호크를 인디언에게 팔아먹었기 때문에

철제 토마호크로 머리를 때리자 사람이 죽어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인디언이 서로 죽여서 인디언이 없어지자 백인은 인디언 땅을 차지한 거지요.]

 => 이건 정말 블랙코미디 이상이군요. 제가 책에서 읽은 바로는 백인들이 인디언씨를 말려죽이면서 협조하는 인디언만      살려주었다고 했습니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052 성소수자 문제의 진실 4 김동렬 2019-01-09 20623
1051 완전성에 대한 사유. 3 김동렬 2019-01-04 6609
1050 인간은 의리가 있다 4 김동렬 2018-12-18 8251
1049 인간은 의리가 없다 2 김동렬 2018-12-17 7358
1048 공자와 노자 10 김동렬 2018-12-04 9496
1047 노력은 천재를 이기지 못한다 8 김동렬 2018-12-03 9885
1046 계몽주의가 인종주의다 image 2 김동렬 2018-12-03 8000
1045 교활한 한겨레 사악한 거짓말 4 김동렬 2018-11-27 9007
1044 왜 노무현인가? 1 김동렬 2018-11-23 7417
1043 모세, 바울, 마호멧 2 김동렬 2018-11-19 22808
1042 트럼프 폭망인가? 1 김동렬 2018-11-08 7234
» 서부극의 죽음 5 김동렬 2018-11-06 6942
1040 신경제 백일작전이라도 내놔라 2 김동렬 2018-11-01 6054
1039 김성룡 9단의 범죄 1 김동렬 2018-10-23 5906
1038 성공한 둔재 송유근 1 김동렬 2018-10-22 7813
1037 황교익과 백종원 image 5 김동렬 2018-10-16 8326
1036 이재명의 자업자득 1 김동렬 2018-10-15 7994
1035 섹스 중독자의 경우 2 김동렬 2018-10-10 22109
1034 안시성이 너무해 4 김동렬 2018-10-07 8313
1033 민란이냐 의병이냐? 3 김동렬 2018-10-02 7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