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이란
read 5620 vote 0 2003.02.21 (21:35:44)

【 청담을 찾아가다 】

이런 문장을 발견한다.

『밥상을 물리고 할 일 없어 옛 문서 바구니를 쏟아놓았다. 그 중에 신구(新舊)의 여러 채권문서가 수백통 있는데 더러 죽었고 더러 살아있지만 받을 길은 까마득하다. 에라 모르겠다. 몽땅 불살라 버린 뒤, 우러러 하늘을 보니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거늘, 이 또한 즐거움이 아닌가?』

또 어데서 이런 글귀를 발견한다.

『괴벽이 없는 사람하고는 교제할 수 없다. 그런 사람에게는 깊은 정이 없기 때문이다. 흠이 없는 사람하고는 교제할 수 없다. 그런 사람에게는 참다운 기분이 없기 때문이다.』

앞에 것은 청대 문장가 김성탄(金聖嘆)의 불역쾌재(不亦快哉)라는 문장의 한 구절이고 뒤에 것은 동시대의 장대(張岱)가쓴 한 글귀이다. 제법 장쾌하고 당당해 보여서 좋다. 말을 짜맞추어 내는 능란함이 보이지 않고 억지로 감동을 짜내려는 것도 없다. 소소한것을 논하고 있으나 지극한 것과 통한다.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그럴싸하게 꾸며내는 글이 아니라 심경에 부딪혀서 툭툭 튀어나오는 글이다.

수호지가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김성탄이 비평한 70회본 수호지고 하나는 흔히 충의수호지(忠義水湖志)라고 말해지는 100회본이다. 수호지를 읽다보면 앞부분은 순 산도적들의 고약한 이야기인데 뒷부분에 이르러서는 나라를 구하는 충신, 지사의 열전으로 변해버린다.

앞부분은 저잣거리 주막집에서 혹은 여염집 사랑채에서 호롱불 켜고 둘러앉아 나누던 민중의 담론이요 뒷부분은 약은 머리 이리저리 굴려서 억지로 짜깁기한 권력의 담론이다. 그런 냄새가 문장에서 난다. 수호지 특유의 호쾌한 맛이 사라져 버리고 이야기가 구질구질해지는 것이다.

김성탄이 구질구질한 뒷부분을 잘라버린 것은 위에서 그 채권문서를 불살라버린 것과 통한다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하늘을 본다. 그가 본 하늘은 그의 심경(心鏡)에 비추어 본 하늘일 것이다. 그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푸를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심경에 비추어 보자. 장대가 말한 '깊은 정'은 무엇이고 '참다운 기분'은 무엇인가? 또 왜 그 참다운 기분은 괴벽이 있는자 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가? 장대가 쓴 오이인전(五異人傳)에는 다섯 괴짜 이야기가 나온다. 돈에 미친 사람, 술에 미친 사람, 기분에 미친 사람, 골동에 미친 사람, 서사(書史)에 미친 사람들이다.

인간들은 점점 현명해지고 약아졌다. 랩음악을 듣고 햄버거를 먹으며 인터넷으로 노는 그들은 민첩하고 발랄하다. 그런 요즘 아이들이 괴벽을 이해할까? 이인을 인정할까? 때때로 두렵다.

예전에 '한국의 기인 70인'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한국이라고 해서 괴짜가 없을 리 없다. 경허, 만공, 한암이 생각나고 천상병, 이상, 중광, 이외수가 생각난다. 그들은 괴짜다. 아마도 '깊은 정'과 '참다운 기분'을 가득하니 소유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하늘이란 언제나 푸를 수밖에 없으리라.

취미 중의 하나는 골동이나 유물, 유적에 대한 관심이다. 인간들 가운데도 골동이 있다. 이 사이버공간에도 그런 인간들이 있다. 그러나 때로 두렵다. 386세대야 말로 이인을 인정하는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피자먹는 펜티엄세대들은 골동이 되지 못한다. 겨우 히피가 될 수 있을 따름이다. 히피들에게는 그 '참다운 기분'도 '깊은 정'도 있을 리 만무다.

석용산 스님의 뒷얘기를 듣는다. 아아 그럴 때 귀를 막고 눈을 돌리고 싶다. 들리는 바 그는 약고 날래며 조잡스런 사람이란다. '석용산은 저승갈 때 뭘 가지고 가지?' 종내에는 전설도 신화도 이인도 사라져 버리고 히피와 쓰레기와 비참함과 구질구질함만이 남아나질 않을까?

인터넷, 세계화 시대에 인간들은 더 무기력해 지고 더 약삭 빨라지고 비참해지는 갑다. 이인은 없고 히피만 남는 시대에 우리가 정녕 무엇을 잃었는가를 돌아봐야 하리라. 그것은 청담이다.

임어당(林語堂)의 글에 청담론(淸談論)이 있다. 임어당이 말하는 청담론은 고상한 선비의 사교적인 대화를 말하는 듯 하다. 내가 말하고 싶은 청담은 더 '참다운 기분'과 '깊은 정'이 있는 민중의 담론이다. 어느거나 청담은 곧 수필이 된다는 데서는 일치다.

수필이란 모름지기 청담이 아니면 안된다. 심경에 부딪힘이 있고 깊은 정이 있고 참다운 기분이 있으면 절로 청담이 되리라. 그러나 교양있는 화술보다는 투박하더라도 툭툭 던져지는 민중의 담론이어야 진정한 에세이리라.

생각컨데 임어당이 본 하늘은 좀 흐리고 좀 노을도 있고 아기자기 하여 김성탄이 본 온통 푸른 하늘과 달랐으리라. 어줍잖게도 그의 청담론에는 템포가 있고 뉘앙스가 있고 야실야실한 기분이 있다. 좀 가꾸어진 꽃밭이 된다.

날로 타락하여 심경에 부딪히지 않은 '의도와 목적'이 가미된 잡문이 되고 말더라. 그것이 시절, 청담은 세련된 화술도 교양있는 대화도 아니다. 마음의 지극한 경지에서 그저 툭툭 튕겨져 나오는 투박한 글발이다. 그래야 한다. 수호지 한 구절을 읽는 호쾌한 맛이다. 더 참다운 기분, 헌걸찬 데가 있어야 하리라. 비로소 문장을 버려놓은 시초에 임어당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청담은 그렇다. 심경에 부딪힌, 하늘을 우러러 구름 한 점 없는, 참다운 기분이 드는, 깊은 정이 배어져 나오는 그런 대화다. 기인들에게나 있을 법한 끈끈하고 묵직한 대화. 그것을 종이에 옮겨놓으면 그대로 수필이 된다.

며칠 전 경남 최후의 오지라 할 수 있는 천황산 배냇골 너머 원동리 못미쳐 어느 전통찻집에서 그 주인이 벽에 써놓은 글귀 한토막이 이렇더라.

『씨부리지 마라. 다 알고 있다.』

아아 그것은 청담이다. 세련된 화술도 사교적인 대화도 선비의 점잔빼는 소리도 아닌 그것은 문득 화화상 노지심이나 흑선풍 이규가 등 뒤에서 툭 튀어나와 내지르는 일갈이다. 쥔양반은 서각하는 도문(刀文) 이상국님인데 역시 기인이더라. 감지 않은 머리에 수염이 장비 같고 무뚝뚝하니 툭툭 던지는 말투가 토장맛이다. 그런 사람만이 청담을 할수 있다.

혹 물금 지나 삼랑진 못 미처 원동에 들르실 분은 반드시 그 찻집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수필이 따로 없다. 그 찻집이 통째로 수필이다.

임어당의 중국식 햄버거 한조각 그 야실야실한 맛이 이렇다.

『마르크스나 엥겔스를 나와 논할 수 있는 여성은 고사하고라도, 이야기를 곧잘 들을 줄 알고 또 얌전하고 생각이 깊은 얼굴을 하고 있는 여성이 몇만 있다 하더라도 담화는 늘 유쾌한 자극을 받게 된다. 나는 바보스런 얼굴을 하고 있는 사나이들과 이야기하기보다는 그 편이 훨씬 유쾌하다고 언제나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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