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이란
옛날에 쓴 글입니다.
아마 98년 여름쯤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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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서 유일하게 가치있는 목표는 인격적 완성이다.

나는 성공하고 싶지도 않고, 잘 살고 싶지도 않고, 행복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별로 살기가 싫다. 산다는 것은 정말 귀찮은 일이다. 그것은 지독한 권태다. 짜증난다.

살기싫다 해서 죽고싶다는 것도 아니다. 몇번 죽어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그럴듯한 명분도 없다. 또 치명적인 것이 죽음 또한 한덩어리로 삶의 일부이며 서두르지 않아도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이다. 신이 내려다 보고 있다면 가만 놔두어도 곧 죽을 넘이 자살타령 하는 것이 우습지 않겠느냐 이런 생각이다.

그러나 나는 때때로 살고 싶어진다. 이를테면 김대중을 생각하면 그렇다. 92년 그해 겨울 나는 추운 광야에 있었다. 그해 12월 19일 새벽은 몹시도 추웠다. 어느 집 대문 앞에 떨어진 신문 한 장에 호박만한 활자로 『..三씨 당선확정』 더 보지도 않고 산으로 들어갔다. 예견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쓰라렸다. 이후 한 동안 어쩌면 그것이 잘못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세상이 궁금해져서 또 거리로 나왔다. 며칠후 길거리에 굴러 다니는 조선일보 신문 쪽지에서 김대중정계은퇴 소식을 읽었다. 확인사살을 위한 조선일보의 『김대중 영웅 만들기』를 보고 울었다. 그리고 또 웃었다. 너희들 오늘 정말 실수하는 거다. 이걸로 김대중은 다시 살아났다. 그때의 소원은 정말이지 김대중대통령을 보는 것이었다. 그 후 사람이 사는 세상으로 돌아왔다.

김대중이 대통령 되니까 행복하다. 당선되고 잘하니까 더욱 행복하다. 그러나 이제 좋은시절은 다갔다. 재미없다. 소원 풀었으니 소원이 없어져서 더욱 사는 것이 재미없다.

내가 님들에게 『잘먹고 잘살아라』하고 여기서 껍죽거리는 것은 순전히 김대중 때문이다. 목표가 없어진 거다. 산다는 것은 정말이지 짜증난다. 이벤트가 없으면 나는 이벤트를 만들때까지 사망한다.

나는 이제 이곳을 떠난다. 통신 상에서의 본적지를 잃고 게릴라처럼 이곳 저곳에 출몰하련다. 그것은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부호를 던지기다.

내게 유일한 가치있는 목표는 인격적완성이다.
처자식이 없으니까 묵고 사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나는 자유롭다.
자유로운 만큼 권태롭다.
살기 싫을 만큼 권태롭다.

인격적 완성은 대단하게 잘나서 부처가 되고자 하는 야심이 아니고, 그저 소박하게 인간이 되어보자는 것이다. 님들은 졸라 잘나서 벌써 인간이 되었겠지만 나는 아직 미처 인간이 못되고 있다.

나는 약간은 유인원이다.

예수는 결코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을 수 없다. 길 잃은 양을 찾으려면 예수 또한 길을 벗어나야 한다. 리더는 『나를 따르라』 하고 앞서가지만 양떼를 모는 개는 맨 뒤에 홀로 처져서 쫓아온다. 한 마리 양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늦게 가는 한이 있더라도 맨 뒤에 홀로 남아서 다 품어안고 다 같이 가야한다.

동반하자.
동반하지 않으면 안된다.
앞장서서 이끌어가려 하지말고 뒤에 처져서 같이 동반하자.

길 잃은 양은 원래 없다.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그리로 가면 그게 길이 된다. 한 마리 양이 딴데로 가면 혼찌검 내고 도로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그리로 가서 그쪽으로도 길을 하나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동반의 정신이다.

내 유일한 목표는 인격적 완성이다.

그것은 내가 엇길로 엇길로만 가는데 신이 나의 정글을 찾아와 동반해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곳에도 나름대로 길이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좋은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좋지 않은 인간에게는 좋지 않은 인간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을 찾아주는 것이다.

그것은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근접도를 높이는 것이다. 나는 인간으로서 아주 고결한 경지에 완성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영역의 경계에 가닿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완성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엘리트코스가 아닌 행려였고 양아치였던 코스말이다. 내가 어긋난 길을 갈 때 신은 내게 말하였다. 『너는 왜 엉뚱한 데로 새느냐?』가 아닌 『그래 그곳에도 길이 있구나~!』 나는 그러한 방식으로 신과 만난다. 그것이 나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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