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read 3176 vote 0 2008.12.30 (22:59:09)

입맛이 무던한 사람은

좋은 친구는 될 수 있을지언정

최고의 요리사가 될 자격은 없다.

최고의 요리사라면 마땅히 까다로운 입맛을 가져야 한다.

최고의 요리를 먹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좋은 요리와 그렇지 않은 요리를 구분하는 기준을 얻으려면

한번 쯤은 최고의 요리를 맛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명상가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그들은 까다로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사람들이다.

그들을 생존경쟁의 시장바닥으로 끌어내려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들을 방문하는 수 밖에 없다.

무엇인가?

부분이 전체와 만나는 순간이 있다.

당신의 인생을 바꾸어놓은 결정적인 만남,

당신 운명의 일대사건 말이다.

당신이 화가라면 화가가 되도록 결심하게 한 사건,

당신이 음악가라면 당신을 음악으로 인도하게 한

운명의 사건 말이다.

어제 조용필의 평양공연을 TV로 보았을 북한의 한 소년,

그 순간 그는 신과 악수한 것이며,

명상가의 역할을 그 지점을 일러주는 것이다.

그 역할을 하려면 예민할 수 밖에 없다.

당신 운명의 어떤 지점,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 아담과 하느님의 손끝이 닿는 지점이 있다.

명상가는 그 지점을 일러주는 사람이다.

초등학교 4학년

자연과목 수업이 있었다.

선생님이 수조에 개구리알을 넣고 학생들로 하여금 관찰일기를 쓰도록 한다.

개구리알에서 올챙이가 나왔고 올챙이는 자라서 개구리가 된다.

이후로 소녀는 생선의 알을 먹지 않기로 했다.

까만 개구리알에서 올챙이가 나오는 모습이 연상되었던 것이다.

그는 일생동안 그 어떤 알도 먹을 수 없었다.

그는 성공하여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끝내 캐비어의 맛을 알 수는 없게 되었다.

우스운가?

알을 먹기로 결정하는건 쉬운 일이지만

한번 결심한 것을 바꾸기로 하면 너무나 많은 것을 동시에 바꾸어야 한다.

어떤 것은 바꾸고 어떤 것은 바꾸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모두 바꾸든가 아니면 모두 바꾸지 않든가 뿐이다.

너무나 많은 일들이

그 하나의 작은 결정에 연동되어 동시에 결정되는 것이다.

6살 혹은 7살 때 우연히

혹은 어떤 사소한 이유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해 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 소녀는 이후에 위대한 예술가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소녀는 분홍 스웨터에 빨강 나팔바지를 입고 있었다.

소녀는 도시에서 온 아이처럼 얼굴이 하얗고

소년의 얼굴은 흑인처럼 검었다.

소년은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이후

그 어떤 그림에서도 분홍색을 사용하지 않았다.

왠지 분홍색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분홍색에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소년은 분홍색이 자신을 유혹하는 것이 싫었다.

소년은 그 지점에서

그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어떤 대립각을 세운 것이다.

이후 모든 부유한 것,

사치스러운 것, 귀족적인 것, 강자의 것과 맞서기로 했다.

소년은 세상을 분홍색의 세계와 검은 얼굴의 세계로 나누었다.

소년은 자기 자신을 검은 세계에 속하는 사람이라 여겼다.

두 세계의 화해는 많은 세월을 필요로 했다.

우스운가?

예의 두 사건은 실화다.

알을 먹지 않는다든가 혹은 분홍색에 콤플렉스를 가진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럴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결정에 있어서 하나의 ‘모델’을 가진다는 점이다.

그 사건은 사소하지만 그 사건에서 임하는 자신의 방식이

다른 모든 결정들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 소녀가 위대한 예술가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영감을 끝까지 믿었기 때문이다.

영감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고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문득 어떤 영감이 주어진다면?

그러나 피식 웃어넘기고 금방 잊어버린다면?

그런 식이어서는 적어도 예술가가 될 수는 없다.

그 방법으로 인류의 0.1프로가 되어야 한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50 불평하기 없기 김동렬 2008-12-30 2877
49 세상은 일어나는 모든 것 김동렬 2008-12-30 2623
48 옛 작가의 명화를 보고 김동렬 2008-12-30 2885
» 입맛이 무던한 사람은 김동렬 2008-12-30 3176
46 세상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라 했소 김동렬 2008-12-30 2773
45 신은 완전성의 표상 김동렬 2008-12-30 2789
44 신은 세상을 창조할 수 있고 김동렬 2008-12-30 2586
43 사랑은 얻는 것이 아니라 완성시키는 것 김동렬 2008-12-30 2727
42 콩쿨대회의 예선 심사장이라면 어떨까? 김동렬 2008-12-30 2671
41 더 높은 가치를 바라보려는 희망 김동렬 2008-12-30 2907
40 나는 늘 당신을 초대하고 싶지만 김동렬 2008-12-30 2773
39 당신이 지금 결핍을 느낀다면 김동렬 2008-12-30 2708
38 인생에서 가치있는 일은 김동렬 2008-12-30 3241
37 시조창을 처음 들으러 갔을 때 김동렬 2008-12-30 2781
36 사랑은 재현하는 것 김동렬 2008-12-30 2739
35 신의 정원에 초대를 받아 김동렬 2008-12-30 2735
34 인간에게 주어진 일 김동렬 2008-12-30 3080
33 인간은 언제 죽는가? 김동렬 2008-12-30 4604
32 내 유년의 어느 날 김동렬 2008-12-30 2738
31 나는 왜 산에 오르는가? 김동렬 2008-12-30 3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