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read 3548 vote 0 2008.12.31 (00:33:51)

 

나쁜 남자의 엔딩

정말 통쾌한 장면이었다. 오줌을 지릴 정도의 오르가즘을 느꼈다.(실제로 오줌을 지린 것은 아니다.)

나쁜 남자의 엔딩..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타인에게 내줄 때 사랑은 완성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에 지배당해야 한다.

그대가 화가라면 자신이 그리는 그림을 지배하는 동안(그려가는 동안)은 그 작품을 타인에게 내줄 수 없으리라.

음악가라면 자신이 부르는 노래를 지배하는 동안(녹음하는 동안)은 그 음악을 타인에게 내줄 수 없으리라.

그 그림이 도리어 자신을 지배할 때, 그 노래가 도리어 그대를 지배할 때 그 순간에 그 그림은 기어이 완성되고 그 음악은 완성된다.

그 시점에서 그대의 사랑은 완성된다. 그 그림을, 그 노래를, 그 작품을, 그 사랑을 타인에게 내줄 수 있게 된다.

어찌 감격스럽지 않겠는가?

어떤 극이든 드라마의 엔딩은 ‘환원’이다. 모두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작가는 관객에게 돌려준다. 그러므로 반드시 해피엔딩이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받는 관객이 즐거워질테니까.

돌려준다는 것은, 환원한다는 것은 관객이 그 극의 주인공이라는 선언이 된다. 그러므로 슈렉의 피오나 공주는 초록괴물이 아니라 화려한 공주의 모습으로 엔딩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지만 관객은 자신이 공주님이라도 된듯이 뻐길 수 있게 된다. 만족한다.

그러나 영화 슈렉은 그 법칙을 깨버렸다. 통쾌하게도. 모르는 사람은 그 장면에서 당황해서 운다.

“당신은 공주가 아냐. 초록괴물이야.”

슈렉은 초록괴물을 관객에게 돌려준다. 그 장면에서 한 일곱 살 여자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 소녀는 초록괴물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당연히 공주님이 되어야 하는데.

나쁜남자도 마찬가지다. 엔딩은 관객에게 환원하는 것이다. 이건 바로 당신의 이야기야. 그렇다. 나쁜남자는 나다.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받아들일 수 있나?

생각해보자. 슈렉에서 피오나공주가 초록괴물이 아닌 백설공주의 모습으로 엔딩이 된다면.. 관객은 자신이 공주가 된듯한 착각에 빠져서 즐거워 하겠지만 이건 가짜가 아닌가? 왜냐하면 나는 백설공주가 아니자나.

거짓 돌려주기가 아닌가?

당신은 기어코 진실을 원하는가?

역설이지만 슈렉에서 피오나 공주가 최록괴물로 엔딩이 되는 것은 이 영화는 거짓이야기가 아닌 진짜라는 선언이 된다.

즉 작가는 관객에게 가짜 공주를 돌려준 것이 아니라 진짜 초록괴물을 돌려준 것이다. 관객은 습지의 초록괴물 하나씩을 얻은 것이다. 어느 쪽을 택할까?

1) 가짜 백설공주의 환상을 얻는다.

2) 진짜 초록괴물의 친구를 얻는다.

다시 나쁜 남자로 돌아가서 김기덕은 엔딩으로 말하기를 지금까지 이야기는 어떤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당신의 이야기요 하고 선언해 버렸다.

이러한 돌려줌에 대하여 당신의 태도는?

1) 무슨 소리? 왜 그게 나야. 나는 착한 남자라구.

2) 그렇다. 이제야 내 안의 숨은 나쁜 남자를 발견하겠다.

둘 중에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1)번을 택한 사람은 도무지 극장에는 뭐하러 왔지? 남의 이야기 들으러 극장에 는 왜 와? 얼빠진 관객이다.

2)번을 택한 사람은 자기 안의 나쁜 남자를 발견한 사람이다. 적어도 극장비 7000원에 값하는 이득을 얻은 것이다.

결론..

- 나쁜남자의 엔딩은 남자와 여자의 권력관계가 뒤집어져 있다.

- 남자가 지배 여자가 피지배의 구조에서 남자가 피지배 여자가 지배자가 된다.

- 그 상황에서 남자는 여자를 독점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내주게 된다.

- 사랑하는 대상에 지배당하고 그것을 타인에게 즐거이 내줄 때 완성된다.

- 이러한 구조를 남녀관계로만 해석하는 사람은 영화를 볼 자격이 없다.

김기덕이 설계해 놓은 이러한 구조는 남녀관계가 아니라 보편적인 사랑의 구조이다.

그대가 음악을 사랑하든 그림을 사랑하든 가족을 사랑하든 결국 누군가에게 그것을 내줘야 한다. 아들을 사랑하면 아들을 며느리에게 내줘야 하고 딸을 사랑하면 딸을 사위에게 내줘야 한다. 내줄 때 사랑은 완성된다.

타인에게 내주지 못하고 있다면 또 여전히 그 대상을 자신의 지배 아래 두고 있다면 그 사랑은 여전히 미완성이다.

사랑은 서로 다른 둘이

독립적인 인격과 존엄을 갖추고

서로의 존재를 다치지 않은 채로 만나는 방법과

그러한 만남으로 하여 서로를 완성하는 방법을 일러준다.


그러한 완성을 통하여

서로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방법을 일러준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사랑의 개념은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사랑을 위해서는 참아야 했고 또 기다려야 했다.

사랑을 위해서는 모험여행을 떠나야 했고

용맹을 과시해야 했다.

사랑은 희생의 댓가로 얻어지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여러번 인격을 시험받아야 했다.

사랑은 만남에 의해서 가능하고

만남은 떠남에 의해서 가능한 것.

둘 다 떠나면 만날 수 없어.

한 사람은 제 위치를 지켜야 했다.

금을 얻는 사람이 될 수 없다면

금을 알아보는 사람이라도 되어야겠지.


금을 완성하는 사람이 될수 있다면

좋은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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