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이란
read 3430 vote 0 2002.09.06 (12:16:34)



초딩때 다 배운거지만

얼음에 소금을 뿌려두면 녹는다.
거기에 실을 올려놓으면 실이 얼음 속에 들어가 있다.
즉 실로 얼음을 묶지 않고 얼음을 들어올릴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쯤되면 DJQND님의 지식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아시겠져?
에너지의 출입은 전혀 없었는데 얼고 녹았다?

겨울에 얼음 위에 돌을 던져 두고 며칠 뒤에 와보면 돌은 얼음 속에
들어가 있다. 오잉? 얼음이 돌을 타고 공중으로 올라간다면 믿어짐?

겨울 계곡에 가보면 얼음이 제자리에 봉곳하게 젖무덤처럼 솟아있다.
오잉? 그 속에 뭐가 있는가 파보면 암것도 없다. 오잉오잉?
[사실은 뭔가 있다. 알아내면 용치~!]

에너지로 모든 변화를 설명한다?
택도엄는 소리다.
서푼짜리 엉터리 지식으로 엉아에게 엉겨봐?

양이 질이 되는 경우를 단 하나라도 들수있거든 들어보심이?
부동액이 얼었다고 하면 믿겠다.

대부분의 화학반응은 에너지와 무관하다.
에너지는 화학반응의 결과 생겨나는 것이지 에너지가 화학반응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나트륨은 습기가 있으면 폭발하고
질산염은 미세한 충격에도 폭발하는데
무식한 사람이 보기엔 거기에 극미량의 에너지라도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하지만 천만의 말씀 액체 폭약은 서로 다른 두 원소를 섞는 순간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에너지의 양이 질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질의 변화가 에너지를 생성하는 것이다.

화학반응에는 에너지가 소용없다.
에너지는 화학반응을 인위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물리적 근접에만 필요하다.
물질 자체가 전기적 성질을 가진 경우는 전혀 에너지 없이도 반응한다.
(전기적 성질 자체가 에너지 아닌가 하는 분을 위해 보충하자면
영구자석은 고유한 성질이다)

에너지는 자연의 변화를 설명하는 근거가 아니라 이미 일어난
변화의 흔적일 뿐이다.

참고로 말하면 나의 구조론으로 모든 변화를 설명할수 있다.
구조론을 간단히 설명하면 물질입자의 기하학적 배열상태에서의 질서이다.
다섯가지 질서가 존재한다. 그 질서가 모든 변화의 근거이며
에너지는 이미 일어난 변화의 자취이다.

싸앗이 나무가 되는 것은 에너지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근데여. 에너지가 거긴 왜들어가여?
심심해서여?

전혀 설명되지 않았는데 설명되었다고 착각하는 것은 논리에의 무지.

사람이 약먹고 죽었는데여.
에너지가 빠져나가서 죽었음?
죽었으므로 에너지가 빠져나갔음?

쇠가 녹쓰는 것은 에너지가 개입해서임?
그럼 녹쓰는데 왜 열이 나남?

시멘트가 양생할 때 나오는 열은 ?
1) 시멘트가 양생하므로 열에너지가 빠져나온다.
2) 열에너지가 시멘트를 양생하게 한다.

에너지가 많으면(고온) 양생이 잘되갔음 아님?

컴퓨터가 작동하는데는 전혀 에너지 소모가 없다.
미래형 컴퓨터는 전기를 잡아먹지 않는다.
거꾸로 컴이 작동하니까 열이 나는 것이다.
열이 날수록 나쁜 컴이다.

우리의 삶에는 에너지가 필요없다.
에너지가 인간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므로 에너지가 발생하고
그 에너지를 처분하기 위해 더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 에너지를 처분하기 위해 더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런 것이다.
컴의 열을 없애기 위해 냉각팬을 돌리므로 더 열이 나듯이.

에너지란 자연의 모든 변화에서 속도를 조절하는 제어용이다.
이미 진행되는 변화를 더 빠르게 혹은 느리게 하기 위하여 에너지가 필요하고
(컴의 경우 연산작용에는 에너지가 필요없으나 그 중단, 제어에 필요함)
그 필요한 에너지를 조달하기 위해 더 에너지가 필요하고
이런식으로 에너지의 필요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간다.

원래 변화는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순수상태에서 모든 변화는 빛의 속도로 일어난다.
이것을 차단하여 속도를 늦추는 것이 에너지이다.

만약 에너지가 무시된다면 태양은 1초만에 다 폭발하여 없어져 버린다.

만약 에너지가 없다면 인간의 삶과 죽음은 1초만에 완전히 끝난다.
유전정보의 세포분열명령 -> 속도조절불능 ->
속도조절불능시 가장 빠른속도로 세포분열 -> 결합된 수정란이 1초만에
인간으로 성장(덩치는 커지지 않음) -> 즉시 사망.

어린나이에 노인이 되어 죽는 질병에 대해 들어는 봤겠져.
박찬호가 후원하는 미국아이.

모든 변화의 유발근거 -> 구조론으로 설명 (공간적 방향 곧 질을 결정)
모든 변화의 속도조절 -> 에너지로 설명. (시간적 순서 곧 양을 결정)

take off는 없다.
질의 변화가 양의 변화로 나타나는 것이 take off로 보여지는 것이다.

댐의 만수위까지 물이 차오르자 물이 넘치고 둑이 터졌다.
자 여기서 물의 증가(양의 변화)가 둑을 무너뜨린 걸까?
아니져. 둑이 있었으므로 물의 양이 증가할수 있었던 거지여.

둑이 없는데 물이 저혼자 수위가 올라가남여?
둑과 물의 공존 => 질(雜) 물의 증가 => 양(複)
둑과 물의 공존상태의 변화(물은 증가하는데 둑은 증가않음) =>
질적인 변화 => 둑과 물의 공존관계가 깨어짐 =>
질의 변화에 의한 양의 변화.

물의 수위가 증가할 때 범인의 눈에는 물의 증가만 보이겠지만
과학가의 눈에는 물의 수압의 증가에 따른 둑의 버티는 힘의 증가도
함께 보인다. 물과 둑은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그것이 질이다. 물이 넘치면 물의 수압은 증가하는데 둑의 버티는 힘은
정지한다. 이것이 질의 변화이며 이 질의 변화가 둑을 무너뜨린다.

어떤 힘이 있다면 반드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대응되는 힘이 존재한다.
기하상식 => 각이 있으면 반드시 같은 크기의 대각이 있다.
각이 커지면 대각도 커진다.

보이는 힘(원심력) 보이지 않는 힘(구심력)
만유인력이 있으면 만유척력도 있다. 입자가 있으면 반입자도 있다.

참고 : 질의 변화=> 힘의 방향의 변화
양의 변화=> 힘의 크기의 변화
물의 수위가 증가하여 수압이 올라간다는 것은 물의 질량이 지구중력에
대응하다가 둑을 만나 수직으로 꺽여버렸음을 의미한다.

어느날 지구 지자기의 방향이 바뀌어버려 적도에 북극이 생겨버리면
양의 변화 질의 변화?








질문 : 알다시피 수은은 상온에서 액체이다. 근데 과연 액체일까요?
정답 : 천만에 수은은 상온에서 고체이다.

선생님 : 상온에서 수은의 색깔은 빨간색일까요? 흰색일까요?
맹구 : (맹렬히 손을 들며) 저요 저요...빨간색입니다. 맞았지요?
선생님 : 틀렸다. 수은은 흰색의 금속광택을 가진다.

짱구 : 근데여 온도계의 수은은 빨갛던데여?
빠빠락 : 그러이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이 나오는기라.

너무 무식한 질문 : 수은은 금속일까요 아닐까요?
정답 : 수은은 상온에서 백색의 금속광택을 가지는 고체이며 중금속이다.

중국에 연단술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무언고 하면 수은으로 금단을
만들어 불로장생에 도달하는 명약이다. 물론 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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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 기체 고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너무나 엉터리다.
우리는 그것이 온도와 관계있는 줄 아는데 아니다.
전기적 극성과 관계있고 온도는 그 전기적 극성에 간접적 영향을
미칠 뿐이다.

얼음의 모든 성질을 규정하는 것은 얼음의 결정이다.
얼음은 눈의 결정 모양의 결정을 가진다.
눈의 결정은 수천가지지만 이는 바람의 영향이고 순수상태에서 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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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냐 구조냐~!?
어붕님은(DJQND를 한글 윈95에서 치면 자동으로 어붕이 된다.)
에너지로 설명할수 있고 그것이 다다는 생각이며 내 견해는 구조론으로
핵심을 설명할수 있고 에너지는 보조적인 설명이 된다는 거다.

위에서 물이냐 얼음이냐 수증기냐를 결정하는 것은
어붕님에 의하면 열(온도)라는 것이고 내생각은 결정구조다.

결정이 무엇인가 하면 모든 분자가 고유한 전기적 극성을 가지기 때문에
서로 응집할 때 특정한 배열방식(전기적으로 + -)으로 배열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결정이다.

얼음(눈)의 다이아몬드형 결정은 물분자 상호간의 전기적 극성이 다른 극끼리
결합하려다 보니 자연히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물질이 열을 가지면 극성이 순간적으로 맹렬히 변화하므로
결정이 안된다. 그것이 액체이고 기체이다.

즉 기체든 액체이든 고체이든 분자 하나를 보면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다.
영하 273도에서 물질들이 전기저항이 없어져버리는 것은 분자들의 전기적
극성이 변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즉 액체냐 기체냐 고체냐를 결정하는 것은 물질의 고유한 전기적 극성이지
열(온도)하고는 직접 관계가 없다.

고정관념을 깨자.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을 하자.
우리는 세상을 거꾸로 알고 있다.

수은 얘기로 돌아가서 수은은 쇠나 구리와 같은 상온에서 고체의 금속인데
그것도 백금처럼 빛이 번쩍번쩍 나는 귀금속인데 왜 액체처럼
되어버렸을까요?

기압을 잴 때 1기압은 수은을 76센티 밀어올리는 힘이다.
왜 하필이면 수은을?

그것은 수은이 매우 강한 응집력을 가지므로 주변에 무언가 있으면
달라붙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즉 세차게 흐르는 물이 영하 십도라도
얼지 않듯이 고체 수은은 가만이 두면 금속인데 옆에서 뭔가로 건드리면
순간적으로 액체가 된다.

여기서 미묘한 것......얼음은 그렇담 왜 그렇게 안되남요?

수은은 매우 무거운 중금속이다. 바로 그점이 키 포인트.
즉 물은 얼음과 무려 10프로나 부피차이가 나지마는 수은은 중금속이라서
본래의 무게 때문에 액체나 고체나 부피차이가 적다.

수은을 전혀 외부의 간섭이 없는 곳 즉 바람이 불지않고 뭐가
건드리지도 않는 곳에 불순물 하나없이 잘 정제해서 놓아두면
단단한 고체가 된다. 이때의 강도는 엄청 세다.

수은으로 망치를 만들어서 못을 박으면 못 하나가 다들어갈 즈음
100프로 물이 되어버린다.

고대의 연단술사는 이를 이용해서 금단(金丹)을 만든다.
먼저 수은을 쇠구슬모양의 고체상태로 만들어서 탁자위에 놓아둔다.
수은구슬은 금속광택을 내어 금속임을 보여준 후 저절로 데굴데굴
굴러간다. (액체가 되어가는 과정) 잠시 후 빨갛게 색깔이 변한 수은을
만져보면 어느 새 액체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수은이 분명 금속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살아움직인다는 것을 확인한다. 고체가 액체로 변할 때 꿈틀꿈틀 하니까.
그리고 거기서 피를 연상하고 생명의 기운을 느낀다. (연단술)

또 수은은 금을 녹이니까 특별히 손기술을 부려 감춘 금을 넣으면
금이 녹아 둥둥 뜬다. 그걸 보면 누구나 수은을 이용하면
납을 금으로 바꿀수 있다고 착각한다. (연금술)

수은이 액체냐 고체냐 기체냐는 온도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
오로지 분자구조에서 파생된 전기적 극성과만 유관하며 열은 간접적으로
그 극성에 연관을 미칠 뿐이다. 그것도 극성 자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분자운동을 활성화시켜 다른 극성끼리 정렬하는데 방해할 뿐이다.

물분자의 운동에는 세가지가 있다.
1. 물분자의 대류로 인한 유동성 (운동장을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어린이)
2. 분자자체의 활동성 (제자리서 맨손체조를 열심히 하는 어린이)
3. 분자구조에서 오는 전기적 극성. (凹凸이 있는 블럭)

기체냐 액체냐 고체냐를 결정하는 것은
1차적으로 결정구조에서 오는 전기적 극성이다. 이는 에너지와 무관하므로
구조론으로만 설명가능.

2차적으로 분자자체의 활동성은 이미 액체상태일 때 고체로 변화시키는데
필요한 성질이다. 압력이 낮고 불순물이 없으며 응집되지 않은 상태에서
잘 언다.

3차적으로 대류로 인한 유동성은 열이 직접 개입하는 부분이다.
열은 간섭할 뿐 직접 액체를 고체로 만들지는 아니한다.

순수한 물은 잘 얼지 않는다. 약간 흔들어줘야 언다. 너무 흔들면 대류가
발생하여 물분자 상호간의 마찰이 생기므로 얼지 않는다.

자 이제 고정관념이 충분히 깨어졌는가?
물을 흔들어줘야 언다고? 그렇다. 언다는 것은 질서정연하게 정열한다는
것이며 살살 흔들어줘야 줄을 잘 선다.

액정이라는 것이 있다. 전자시계의 숫자판이다. 이게 액체인데도 결정임을
아실테지. 결정이면 고체이다. 액체이면서 고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고체가 뭐지? 그것 암것도 아녀~!
어떤 물질은 액체단계가 없이 바로 고체가 되기도 하지여~!

모든 변화는 결정구조를 만드는 전기적 성질에 기초한다.
크게 보면 지구중력도 가장 효율적인 배열상태를 가지려는 성질에 기초한
결정화현상이다. 눈송이가 결정을 가지듯이 지구중심을 향해 결정을
만드는 것이 중력이다.

구조론 = 모든 존재는 고유한 결정구조를 가진다.















지역감정에 부쳐.

지역 얘기를 쪼매하니까 [쓰잘데없이 지역감정을 부채질한다]하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

[지역감정이 문제가 아니고 지역문제가 문제다.] <-강준만의 주장.
임을 안다면 그리 단순해서는 안된다.

[김대중 되었으니까 이제 일사천리로 진보대 보수를 향하여 전진만이 남았다]
하면 참 세상물정 모르는 것이다.

세상이치를 알아야 한다. 인권문제 같은 근본문제가 앞서고 민주주의는
나중이다. 물론 이토이님 같은 분은 이를 모르니까 민주주의만 하면
다되는줄 아는데 잘난 영국인들이 민주주의를 몰라서 에이레공화국군과
80년전쟁을 했간여?

근본문제는 지역문제 종교문제 인종문제 성차별문제 계급문제다.
이게 먼저 해결되어야 민주주의가 된다.
우리나라는 그래도 인도처럼 계급갈등이 심한거 아니고 인종문제도 없고
종교문제도 무시해도 될 정도로 적다.

이것이 근본문제인 것은 인간의 존엄성 곧 인간의 고유권리인 인격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안되면 투쟁이지만 인권문제가 해결이 안되면 전쟁이다.

우리나라에서 드러난 근본문제는 지역문제 빈부격차 통일문제다.
이것이 해결되어야 진정한 민주주의도 [진보 대 보수]도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도 꿈꿀수 있다.

철없는 사람들은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만 되면 다될 것 처럼 말하지만
민중이 주인된다는게 도무지 뭐지? 그게 모냐구?

그럼 빠빠는 도무지 무얼 말하려는 거냐고요?
정답 : 진보의 개념을 다시 확인하자는 거다. 이토이님 생각처럼 공정한
게임의 룰을 확보하고 민주주의가 되면 다되는게 아니고 아무것도 안된다.
공정한 게임의 룰로 게임이 끝나는게 아니라 비로소 시작하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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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뿐. 그것은 평등이다.
지역간, 남북한간, 종교집단 간, 성별간의 철저한 평등, 오로지 평등 뿐.

오반의 질문 : 평등~! 그거 법을 고쳐 평등하게 만들면 되잖아요?
빠빠의 정답 : 그래서 평등 될거 같으면 공산주의가 먼저 평등되겠네?

평등의 개념을 바꾸어야 한다. 미국에서 흑백인간의 인종적 평등은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근데 왜 흑인이 못살지요?

공화당 : 그건 흑인이 게을러서다. 제도적 평등보장만.
민주당 : 백인들의 사회적 착취구조 때문이다. 흑인에게 특혜를.

빠빠의 결론 : 흑인이 머리가 나쁘기 때문이다. 종형곡선이 폭로했지만
미국에서 흑백인이 기질적 차이를 가진다는 것은 일종의 금기발언일 뿐
흑인이 돌머리임은 천하가 다아는 사실이다.
근데여 흑인은 진짜로 아이큐가 돌이라여.
여성도 남성에 비해 분명히 머리가 나쁘지여.

그렇다면 제도적 평등으로 실질적 평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결론.
그렇다고 흑인 내지 여성에게 특혜를 주면 역차별이 아닐까요?

우리는 이 문제에 결론을 내려야 한다. 미국처럼 덮어놓고 쉬쉬는 안된다.
흑인이 정말로 머리가 나쁘고 게으르다면 어쩔수 없는 일일까?

여기서 관점의 문제. 평등 할 때의 평등은 다수집단을 기본으로 한다.
즉 모든 여성과 모든 남성 사이의 평등?
모든 흑인과 모든 백인 사이의 평등?
모든 정상인과 모든 장애자 사이의 평등?

개인의 관점에서 보자. 흑인은 분명 머리가 나쁜데 흑인이 머리가 나쁘지
톰 아저씨가 머리가 나쁜건 아니다. 즉 머리가 나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드러나보인다는 것이 문제이다.

장애자의 장애는 그 장애가 문제가 아니라 장애가 드러나보인다는 것이
문제이다. 백인 아무개씨는 분명 아이큐가 돌인데도 백인이고 미남이므로
아이큐가 나쁜지 좋은지 드러나보이지 않는 특혜를 누린다.

겉으로 드러나보이는 차별의 표지가 존재할 때 특히 개인의 차원에서는
치명적인 인격권의 침해가 일어나는 것이다. 특히 장애자는 장애로 인한
노동력의 손실로 인한 피해보다 장애가 겉으로 드러나보인는데서
오는 편견의 피해가 더 크다.

특히 잘생기고 경상도출신에 부모잘둔 누구는 머리가 비었는데도 약점이
드러나보이지 않아서 이익을 보고 못생기고 장애자에 전라도사람인 누구는
약점이 눈에 띈다는 이유로 손해를 본다.

이것은 개인간의 차이가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차별이다. 바로 이점
때문에 평등개념은 집단개념에서 개인개념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평등, 백인과 흑인의 평등, 지배 피지배계급 간의 평등이
아니라 인간 김길동 대 인간 고길동의 평등으로 평등개념이 완전히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지나친 평등(사회주의)은 옳지 않고 약간 차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경쟁사회의 발전원리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절대평등사회이며 진리의 이름으로
나는 여기서 단 한걸음도 양보할수 없다. 다만 그 절대평등은 개인 상호간의
평등이지 집단 간의 평등이 아니다.

집단간의 평등만을 평등으로 착각하므로서 평등이 잘못이라는 착오를
범하는 것이다. 집단간의 평등은 이미 벌어놓은 수확을 나눠가지는 평등이고
개인간의 평등은 실제로 한 인간이 지구상에 태어나서 동일한 노력으로
동일한 행복을 보장받자는 것이다.

10의 노력엔 10의 행복이 보장되어야 한다. 장애자이건 여자이건 남자이건
마찬가지다. 그것이 이 사회의 존재목적이며 진보의 핵심이다.

그렇다. 나는 돈을 나눠가지자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나눠가지자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진보이고 공동선으로서 인류가 지향하는 선한사회이다.

평등은 개인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 자유가 처음에는 노예해방 곧
집단의 자유였지만 사회가 발달할수록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로 발전했듯이 평등도 집단간의 평등이 아닌 개인간의 평등으로
바뀌게 된다.

공산주의에는 노예가 없다. 집단은 철저히 자유다. 그러나 개인은 철저히
노예다. 자본주의에는 노예가 실질적으로 있다. 지역차별, 종교차별,
인종차별로 신음하는 타밀엘람해방호랑이들, 필리핀, 인도네시아의 정글족,
고산족들. 그러나 개인은 자유롭다.

개인간의 평등은 오히려 발달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지역문제, 종교문제, 인종문제, 성문제, 장애자문제,
노인문제, 빈민문제를 더 까발겨야 한다.

선한사회는 국가의 역할을 더 확대하며 이익을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와 참여를 배분하는 것이다. 법 제도만으로는 안된다. 각종 프로그램이
충분히 개발되어야 한다.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주는 사회가 아니라 못하면 잘할때까지
가르쳐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봄에 씨뿌리고 가을에 수확하면 나눠가지는 사회는 집단간의 평등을
추구하는 억지평등사회이며 일주일마다 분배하는 사회는 개인간의
평등을 추구하는 진정한 평등사회다.

매일 분배를 한다면 그 어느누구도 게을러지지 않는다.
그놈의 월급을 가을까지 기다렸다가 받아가라니까 게을러지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그놈들이 머리가 나빠서, 그놈들이 게을러서]하고 비난하지만
1년에 딱 한번만 시험치면 누가 부지런해지랴?
매일 시험치고 그만큼 혜택 줘봐라. 다 열심히 공부하지.

운전면허 시험장에는 왜 돌머리도 열심히 공부할까요?
오늘의 노력이 내일 성과로 나타나기 때문이지요.

진정한 평등사회는 일안해도 주는 공산주의도 아니요 일안하면 안주는
자본주의도 아니요 일안하는 넘은 따라다니며 일거리를 앵겨주는 사회다.

노가다 일하러 가면 돈내기라는 것이 있는데 일을 나눠주고 빨리 끝내는
사람은 일당받아 집에가도 된다. 한국인들은 그거 시키면 미친 듯이 일한다.
사회구조를 그런식으로 뜯어고치는 것이 진정한 진보이다.

그런의미에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추구하는 정리해고제도 진보요.
실직자를 위한 각종 프로그램의 개발도 진보다.
어느쪽이든 발달된 자본주의만이 문제를 해결한다.











나는 혼자서 [질-> 양론]으로 밀고가는데
반대자 여러명이 다 [양->질]론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홍야님은 [양질은 불가분의 관계]하며 애매모호한 발언을~!
구름은 [화학반응에 에너지가 필요하다] 역시 애매모호한 발언을~!
비베카는 [에너지는 반응의 산물이기도 하고 반응의 소모품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화학반응은 에너지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 이 말은 (질>량)도 맞고 (양>질)도 맞다는 중도론?
어봉도 요건 맞구 요건 틀리구?
이렇게 전열이 흐트러졌다는 것 자체가 말해놓고 보니까
뭔가 엄청나게 뒤가 구리는 느낌이 든다는 거지.

내가 진리를 가르켜 줄게 귀씻고 들읍셔~!

1. 모든 에너지반응은 최종단계에서 물리반응형태로 나타난다.
자 반대있간?
2. 모든 물리반응은 궁극적으로 화학반응이 유발한다.
자 반대있쑤?
3. 모든 화학반응은 궁극적으로 전기반응이 유발한다.
자 반대있음?
4. 모든 전기반응은 스위치를 ON, OFF하는 식으로 일어난다.
반대가 있을수 없지?
5. 스위치의 ON, OFF는 구조론적으로 물질의 분자구조 내지
원자구조가 가지는 고유한 凹凸형태가 유발한다.

여기서 1,2,3,4,번까지는 설마 부정하지 못하겠지여?
근데 이 1,2,3,4번까지도 지구상의 어떤 책에도 안나오는 이야기여~!
오로지 빠락만이 말하는 세상이 뒤집어질 이야기지 당연히.
어차피 내가 하는 모든 이야기는 내가 지어낸거지.

여기서 5번이 핵심. 밑줄 쫙~!
전기스위치를 넣으면 불이 팍 들어오지. 이때 스위치를 누르는 힘은
에너지겠지? 그 에너지가 불이 들어오도록 유발을 해?
설사 그랬다치자. 그건 양의 변화여? 질의 변화여?

양의 변화라면 임계가 있어야겠지. 임계수치는 얼마쥐?
문제는 그 임계가 없다는 것이여.

스위치의 간극이 얼마일 때 불이 들어오지?
스위치를 누르는 압력이 얼마일 때 불이 들어오지?
정답 : 고압이면 간극이 커도 불이 오고 저압이면 간극이 작아도 불이 안온다.
정답 : 스위치를 살짝 누르든 세게 누르든 불은 온다.

모든 화학반응은 전구에 불이오는 것과 같은 연쇄반응의 원리이고
(다르다는 것을 증명할수 있나?)
불이 오게 하는 간극은 전압의 크기에 비례하지.
절대임계수치가 있는게 아니쥐?

자 이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스위치다. 또는 건전지다.
플러스극과 마이너스 극의 거리가 1억키로라도 전압이 그보다 더 세면
불이오지? 건전지의 플러스극과 마이너스 극이 멀어서
전선을 연결 안하면 방전이 안돼지.

근데 북극탐험대(허영호대장)는 건전지를 꺼내기만 해도 방전되어
전지에 전기가 하나두 없어져불지. 그렇다면 뭔가 깨달아야 하는거지?

생각해봐여 이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건전지이고 블랙홀은 그 하나의 극이여.
전압이 세면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전기는 통혀. 중력도 일종의 거대한
전기여~! 안글남~?

그렇다면 모든 에너지는 우리 눈에 보일 땐 반드시 물리에너지고
그 이면에서 반드시 화학에너지고 그 이면에서 반드시 전기에너지고
궁극적으로 구조론에서 요철(凹凸)의 질서정연한 배열형태임을 부인할수 없지.

凹凸의 만남이 스위치가 작동하는 시점이지. 이 요철을 배열각도가
수평이 될 때 전기가 켜진다면 거기에 필요한 에너지는 얼마?

만약 양의 변화가 질의 변화를 일으키려면 특정한 힘의 크기(양)만이
에너지반응을 유발해야 하는데 전기스위치작동은 얼마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한감?

전기스위치 작동은 전압과 극간거리와의 함수식이 결정하지 에너지량이
결정하지 않아여, 다시 말해서 우리집에 텔리비젼 스위치 작동엔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이는 스위치 스프링을 움직이는 기계적 작동이고
전기적작동은 아니지.

전기적 작동엔 얼마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혀? 0이야. 에너지는 전혀
필요없어. 전기적작동은 오로지 플러스극과 마이너스극의 극성의
배열형태가 결정혀 ~! 이 배열구조는 오로지 구조론으로만 설명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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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야님의 오류.

1)태양이 수소를 다 태워버리고 나면 => 양의 변화.
2)맞서고 있던 중력 때문에 수축한다. => 질의 변화.
자 홍야님 태양이 수소를 태워서 없던 중력이 생겨났나요?

양이 질을 움직이려면 수소가 타서 수소때문이라고 해야지 왜 중력때문?
홍야님의 발언 = 태양이 수소를 다 태우는 시점에 [핵융합에너지와
중력의 맞섬]이라는 질적상태에 변화가 유발되어 질적대응이
양적수축으로 변한다. 고로 질적변화가 양적변화를 일으킨다.

[핵융합에너지와 중력]의 맞섬이 바로 전기스위치의 플러스선과
마이너스선이 이어지는 凹凸의 배열형태지여. 그리고 그게 질이구여.

홍야님 스스로 질이 양을 유발한다고 고백했군여?
백만번 읊어서 성불하는가 봅시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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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붕(DJQND)님의 오류.

푸히히히~~반응열이라고라고라~!
반응열 ? 이미 반응했잖여. 그 반응이 질의 변화잖여.
반응열이란 질의 변화가 양으로 드러난거지여.
문제는 반응열이 기어나올 뿐 들어가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여.

양이 질을 유발하려면 양이 일정한 임계수치만큼 커져야만
화학반응이 시작되어야 하지럴. 그 임계수치는 얼마? 엄써~!

이미 화학반응이 시작되고 난 후에 열이 나는 것이여.
발열은 양적변화이지럴~! 반응열은 [선반응 후발열] 선반응이 질의 변화
후발열은 양의 전개. 알아듯갔음?

[에너지가 출입한다]고 슬그머니 얼버무리는데 에너지는 나올뿐
들어가지를 않아여.
이걸 깨부셔봐여. 얼버무리지 말고 말여. 반응열은 분명히 나오는거지?

어붕=> ♠ 돌을 얹어 두면 돌이 얼음에 왜? 들어가 있게여??

내 분명히 말했지만 진안 마이산의 고드름은 거꾸로 얼고
논바닥의 서릿발도 거꾸로 올라가고 중력의 법칙을 거슬러서
올라간다고 말했져?
얼음이 많은 경우 바위위로 2미터 이상 기어올라가지럴~!
모세관현상인디 분필을 물에 담그봐여~!
물이 중력을 거슬러서 타고올라가지럴~!
그 응집력은 책받침에 머리칼이 곤두서는 것과 같은 전기반응이여.
근데 얼음은 액체가 아닌 고체인데도 절벽을 타고 오르지럴~!

부동액을 얼리지 말고 참기름을 얼려봐여~!

◈어붕=> 2Na + H₂O -----> 2NaOH + H₂ 가 된답니다..
요기서 반응전의 에너지와 반응후의 에너지가 달라요..
어느쪽이 더 많게여?? 당연히 반응전이지여..
그니깐..에너지가 바깥으로 나오는게...폭발이겠지여??

빠빠 => 에너지(양)가 질을 변화시킨다면 에너지가 들어가야 하고
그러면 에너지가 줄어들어야지 왜 늘어나남?
분명히 말했져. 반응전이 에너지가 많다구. 에너지가 빠져나가서
바깥으로 기어나온다구.

댐의 물이나 가마솥에 불을 때면 에너지가 줄어들잖어.
댐의 물은 댐 붕괴 후 아래로 내려오니까. 댐의 물이 가진 위치에너지의 소멸.
가마솥의 물이 열을 잡아잡수니까 불이 가진 열에너지의 소멸.
근데 이 경우는 거꾸로재?

양>질이려면
에너지의 투입 -> 에너지의 증가 -> 질의 변화인데
거꾸로 질의 변화-> 에너지의 유출 -> 에너지의 감소.
니가 말해놓고 보니까 니말이 거꾸로재 맞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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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베카의 오류.
비=> (나트륨이나 질산염은 화학적으로 특정 환경에서 불안정한 것이고)
빠=> 양이 증가하여 질을 변화시키려면 양의 증가분과 임계수치가 제시되어야
하재요. 근데 특정환경에서의 불안정때문이라고라?
그 특정환경이 질이간? 양이간?
양이면 임계수치가 나타나야 하지럴~!

[모든 특정환경에서의 불안은 결국 凹凸구조의 근접된 형태 곧 질이다. ]

비=> 에너지가 외부에서 가해진 것이 아니라
화학적 안정도가 달라져서 에너지 준위가 변동된 것이다.
빠=> 그러니까 외부에서의 에너지유입이 없이
변화가 일어났다는 말이잖여.
분명히 비베카는 에너지가 외부에서 가해진 것이 아니라고 말했져.
그럼 더 서명할 필요가 없져.

비=> 죽음은 에너지상으로 불안정의 극치에 달한 물질이기 때문에
죽음에 이른 것이다.
빠=> 불안정이란 말은 물질분자의 배열상태의 불안정을 말한다.
즉 凹凸이다.
바로 그것이 질이다.
양이라면 열이나 온도나 길이나 크기나 이런 것이 양이다.
수치로 나타나는 것은 양,
불안정이니 균형이니 힘의 대립이니 이런건 모다 凹凸구조의 질.
내가 설명 안해도 비베카가 다 설명해주네?

결론 : 존재는 하나의 건전지....플러스극과 마이너스극이
접점에서 요철구조로 만난다.
그 요철구조를 홍야님은 [수소핵융합에너지와 중력의 대립]이라 하고
비베카는 [분자배열상태의 불안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원인이라고 말한다.

근데 그 요철구조가 바로 질이지여. 질이 원인이지여.
논점을 분명히 하자.

적어도 이즈음에서 양의 변화(임계수치에
도달할 때까지 에너지유입량의 증가분)가 질적변화를 유발한다는
견해는 확실히 바로잡았지 않은가?

양의 변화는 반드시 임계수치로 나타난다.
누군가가 그 임계수치를 댄다면 그건 내 주장을 반박한 셈이 된다.

나는 말한다. 이 우주 어딘가에 양의 우주와 음의 우주가 만나는
접점이 있고 그 점접에 무한대 분의 1에 가까운 작은 요철이
스치듯 닿아있고 우주자체의 요동에 고유한 의해
그 요철이 결합하는 날 우주가 탄생하고 또 소멸한다고.
그날 이 우주를 완전히 붕괴시키는데 필요한 에너지는 얼마?
0이다.
그 접점이 만나는 날은 이미 예정되어 있다.
우주의 요동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니까.
그 시기는 우주자체의 구심력보다 우주팽창의 원심력이 1 더 커지는
순간이다. 우주는 점점 팽창하고 있으므로 언젠가는 그날이 온다.

우주는 라디오의 전기회로판과 같다.
전기가 가는 방향만 바뀌지 생겨나고 소멸함은 없다.



뭉치님아 ~!

뭉치님이 하는 소리는 비유하자면 늘 이런식이란다.

[에헴 에너지불변의 법칙에 의해서 에너지의 변화가 모든 변화를 설명함시롱]

에너지불변의 법칙이라 해놓고 [에너지변화]가 하면 말이 엉킨거아이가?
에너지는 불변혀~! 근데 무슨 에너지변화?

그래서 논리가 필요한 거여. 그 변화 하고 이 변화하고 틀리다고 말여.

홍야옹=> 제행무상이로다. 모든 것은 변하니라. 질은 불변하는 것인데
그러니까 양의 변화가 질을 변화시킨 것이재. 에헴.

스스로 질은 불변하는 것으로 단정하고 또 양이 질을 변화시킨다고라?
홍야님의 말을 줄이면
[질은 안변하는 것이라서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참 무신 말이 그런기요?

모든 것을 에너지로 설명한다는 말은 모든 교통사고를 [교통사고]라는
네자로 설명한다는 말과 같다.

빨꽁 - 저 차를 꼴박았는데여. 우예대서 그럴까요?
뭉치 - 으음 교통사고이니라 알겠는가?

돌꽁 - 저 차가 잘 가다가 안가는데여. 기름이 엥꼬인가요?
뭉치 - 으음 그것도 교통사고이니라.

우리가 묻는 것은 그것이 교통사고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그 교통사고가
왜 일어났는가이다. 모든 원인은 구조에 있다. 자동차의 구조 아니면
도로의 구조. 아니면 운전기술의 구조.

에너지는 힘이며 에너지의 량은 힘과 거리의 비로 나타낸다.
힘은 자동차의 연료인 개솔린에서 나온다.
모든 것의 원인은 개솔린이다.
개솔린은 에너지며 모든 교통사고의 원인은 바로 그 에너지 때문이다.
맞죠?

천만에 말씀 에너지는 무식해서 사고를 낼줄 모른다.
사고는 운전기술 때문이거나 도로사정 때문이거나 자동차의 결함 때문이다.
운전기술도 구조, 자동차의 결함도 구조, 도로사정도 구조,
구조로 보는 것이 질이 양을 지배한다는 견해이며
휘발유가 가지는 힘 때문에 교통사고가 났다는 것이 양이 질을 변화시킨다는
판단이다.

정답은 [구조(질)는 교통사고의 형태와 위치를 결정하고
휘발류(에너지)는 교통사고의 크기와 시간을 결정한다.

다리위에서 추락 -> 운전부주의
절벽에서 낙석 -> 도로파손
전봇대에 박았다 -> 브레이크 파열, 곧 자동차결함

전원사망 (시속 120키로) 으음 휘발유 엄청 태웠군....에너지의 크기.
약간 부상(시속 20키로) 으음 휘발유 쪼까 태웠군....에너지의 크기.

에너지는 이미 일어난 사고의 정도를 결정할 뿐 사고가 일어나는 원인은
구조다. 구조는 질이다.

이는 정치 경제 사회 모든 영역에서 근본적으로 사고를 내는 것은
잉간이 질이 나쁘기 때문이다.
사고를 크게 내는 것은 힘(에너지)이 세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이미 일어난 사고의 강한 정도와 시기를 결정할 뿐.
사고 자체는 오로지 질이 결정한다.

너는 왜 밥을 훔쳐먹었니? 배가 고파서요. <--질이다.
너는 왜 밥을 두그릇이나 훔쳤니? 배가 무지무지 고파서요 <- 양이다.

원인은 질이 과정의 내용은 양이 결정한다.
혹자는 질이 가는데는 반드시 양이 따라다니니깐두루 양과 질은 불가분의
관계잖아 하고 나서지만 항상 질이 먼저간다. 양이 먼저가는 일은
절대로 없다.

질적변화가 양적변화를 유발하는 것이다.

혹자는 내 절대라는 표현에 불만을 터뜨린다.
그러나 기하학은 다 절대로 시작 절대로 끝난다.

각이 있으면 반드시 대각이 있고 두 각의 합은 360도이다.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이다.

1각= 1곱하기 360
2각= 2 곱하기 180
3각은 3 곱하기 120.



구름은 뭔 영양가 있는 사업을 크게 벌렸다고
자랑이 모자라 여기 논의가 다 쓸데없다 하는고? 고오얀~!

본래 세상일이란거이 말이시.
쓰잘데기 없는 것들이 모이어 쓰잘데기 있는 것으로
변하여 가는 법이란다. <- 음 명언이다 밑줄 쫙~!

IMF에 쇼크묵고 그라머 안돼재~!
그래도 이봉주는 꿋꿋하게 달려서 달러벌어오잖아.
어려울수록 의연하게 나가야지 - 박찬호 야구도 보지마자.
축구장도 짓지말자 하고 호들갑을 떨어서야 되것느냐?

더욱 근본에 충실해야 하고 본질이 아닌것에 열올리지 말아야 하는 법.

나야 천지에 걱정없이 사는 사람이라서
죽는 소리 해쌓는게 쪼매 실감이 안나는 중이지만
내 어릴적만 해도 지금이면 한창 쑥범벅에 송기가지에 참꽃에 삘기에 솔밥으로
연명하곤 했더랬는데 인간이 부질없는 욕심을 안가진다면

왕양명왈 [心外無理 心外無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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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언하여 던져질 때에는
상대의 반박을 유인하는 건더기가 주어지고 그 반론에 대한 반론이
이미 예비되는 법. 당자는 아구배아퍼 하고 스카이시비님이나 난데없는
상식맨이 거들어불면 써놨던 야그는 도리없이 지워야 되자나? 영양가 없도다.

한마디 던져뿔면 그거이 결론이 아니라 서론인 법.
구만리장청으로 언어를 엮어나가기 위한 빌미인 것인데
상식맨하고는 그런 상식이 안통혀. 흡열반응, 발열반응. 온도계. 좋은 상식.

자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구여.
[부탄가스 아가리를 열어놓으면 흡열반응이 일어나서 조뎅이가 꽁꽁
얼어붙어버린다? ]

그럼 에너지(열)가 들어가서 들어간 에너지가 take off 해서 질을 변화시켰다?
아니지러. 흡열반응도 마찬가지로 에너지가 빠져나간 것이지러.

더 쉽게 가자구여.
[냉장고 문을 열어놓으면 열이 달아나지. 흡열반응?
그럼 에너지는 나간거여. 들어간거여?]

빈병 속에 물이 가득차 있어여. 그 물이 넓적한 그릇에 옮겨부어지면
물은 들어간 것이여 나간 것이여?

병에서 보면 나간 것이고 그릇으로 보면 들어간 것이지러.
그렇다고 들어간 것도 맞고 나간 것도 맞다면 이는
동일률에 어긋나는 이중기준의 오류.

논리영역에서는 하나를 보고 판단혀야 쓰는 법.
전체를 보려면 [닫힌 계]라는 개념이 주어져야 하지럴.
그게 뭐냐구? 간단히 말해서 뭐든 이동하여 더 많은 면적을 차지했으면
나간거이구 더 좁은 면적을 차지했으면 들어간거구.

문이 하나 있소이. 이쪽에서 보면 들어간거구 저쪽에서 보면 나간거구.
어느 쪽이 맞간여?

분명히 말하져. [전체를 닫힌 계로 설정할 때 집적 > 해체의 일방향으로
진행하져. 그게 엔트로피.

냉장고 문을 열어두면 냉기가 나와서 시원하지여. 냉매의 흡열반응?
근데여? 냉기가 에너지여? 열기가 에너지여? 냉장고 덕에 우리 몸이
식어진 것이 에너지가 나간거여? 아니면 냉장고에서 뒤쪽 방열판으로 폐열이
나온 것이 에너지가 나온 것이여? 어느 쪽이든 결론은 같아여.

닫힌 계를 설정했을 때 전체적으로 전기소모만큼의 열이
밖으로 빠져나간 것이여. 전체온도는 더 올라가여.

여기서 이해하려면 엔트로피 개념, 닫힌 계 개념이 도입되어야 쓰는 것인디

1) 에너지의 이동은 그 어떤 종류의 에너지 이동이든
반드시 특정공간대(에너지의 이동공간)를 필요로 한다.
2) 에너지 이동 후 그 공간은 반드시 에너지 이동 전보다 더 넓어져 있다.

가마 솥에 불을 때면 장작 속의 에너지가 빠져나가서(에너지의 출입이 아닌 出)
가마솥에 전달되고 그 가마솥에서 또 빠져나가서(에너지의 出)
솥안의 물로 전달되고 물은 가만두면 식어버리고 (에너지의 出)

에너지의 출은 있는데 입은 없어여.
상식맨 같이 상식이 없는 사람은 또 이런 시비를 붙어오지럴.

손오공이 집을 나가서 학교들 가면 (나간거져?)
마당에 들어오고(入) 골목에 들어오고(入) 등교길에 들어오고(入)
학교에 들어오고(入) 복도에 들어오고(入) 교실에 들어오고(入)
과연 들어간 것일까? 이게 무식하기 짝이 없는 소리지럴.

자 장작은 부피가 작아여. 에너지가 모여있당께롱. 양이 질을 변화시키려면
이 모여있음으로 하여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야지비.
그러나 장작의 열은 솥으로 빠져나가여.

근데 솥 입장으로 보면 열은 들어온거지. 이렇게 장작입장 솥입장 둘이
되어뿔면 동일률에 어긋나는 논리적 오류. 이중기준이 되는거지.
닫힌 계는 어드메오? 장작과 솥 전체로 볼 때 들어온거간 나간거간?

자 열에너지의 이동이 있고 난 후 그 에너지가 차지한 면적이
좁아졌간 넓어졌간? 좁아졌으면 들어간거구 넓어졌으면 나간거져.

엔트로피를 아는 이는 알겠지만 에너지는 나갈 뿐 들어가지를 않아여.
얼음에 소금을 뿌려 온도가 내려간건 얼음의 열이 빠져나간거지여.
왜냐하면 닫힌 계가 넓어졌으니깐두루.

전기는 +극을 나가서 -극으로 들어오지럴. 그럼 나가기두 하고
들어오기도 한거네여? 아니져. 전체적으로 전기는 빠져나갈 뿐이여.
자동차용 납축전지라면? 그것도 역시 전체적으론 빠져나간 것이지럴.

자 전기는 진공관 안에서 극과 극을 건너는데 그거이 온거여 간거여?
본래 전하입자가 어디에 있었지여? 본래의 출발점에서 따지는 것이여.

내가 뭉치에게 모래 한 지게를 짊어지고 저건너 구름이집에 갔다두라면
모래는 나가겠어여? 들어오겠어여? 어떤 에너지작용이든 에너지는 반드시
움직이고 난 후에 줄어있어여. 그 나머지는 어디를 갔간?
길에 흘린거져? 그럼 상식맨은 음 모래가 길로 들어왔구나~!

에너지는 외출할 뿐 들어오지 않아여. 고로 양이 질을 맹글순 없어여.
그 어떤 변화든 변화가 일어나려면 반드시 그 에너지를 잡고 있는
상대 힘이 있는데 (태양이면 핵융합에 맞서는 중력, 댐이면 물에 맞서는 둑)
그 상대힘보다 커야 변화가 일어나지럴. 그 큰 만큼 나가버리지럴.
그만큼의 에너지 손실이지럴. 그래서 엔트로피.

에너지가 이용할수 없는 형태로 된다는 말은 흩어져분다는 거이고
그 흩어지는 거이 곧 나간거이지럴. 전기선 속에 집적되어 있던 에너지가
냉장고를 통해 방에 흩어져불져.

[닫힌 계] 개념이 없다면 병속의 물을 땅바닥에 부으면
땅바닥에 들어온거이겠지만 병속의 물은 이용할수 있어도 쏟은 물은
이용할수 없어여. 모든 양의 증가는 땅바닥에 쏟은 물의 증가일 뿐.

큰 병에 물이 가득차 있고 작은 병에 비어있고 땅바닥에 비어있는데
큰 병의 물을 쏟으면 작은 병의 물로 옮겨지겄져. 나간거여 들어간거여?

3층의 돌이 2층으로 떨어지면 나간거여 들어온거여?
2층에서 보면 들어온거져. 그렇게 말하면 벌써 동일률에 어긋나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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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이해를 돕기 위한 한마디.

이 세상에 뇌관없는 폭탄은 없거덩.
화약이라서 폭발하는 거이 아니고 뇌관을 때려야 뇌관의 흑색화약이
순간고열을 발생하여 장약의 콤포지션을 폭발시키거덩.

그 뇌관 때리는데 에너지가 필요하지비? 그래서 에너지없는 화학반응은
없다고 말하는거지비.

근데 거기에 얼마의 에너지가 필요혀? 임계를 대보라구~!
구름이 1키로쯤의 힘으로 놔관을 터뜨리면 나는 50그램의 힘으로.

구름이 100그램이면 나는 50그램의 힘으로.
아무리 작은 힘을 말해도 나는 더 작은 크기의 힘을 말할수 있지럴.
그래서 무한소로 가버리면 뭉치님이 야그했듯 그건 0이다 말여.

물질은 최고단계에서 물질 알갱이가 아닌 순수 정보/의 성질을 가진다.
구조론으로 풀이되는 凹凸이 정보다. 화약을 폭발시키는데는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정보가 필요하다.
최초에 뇌관역할을 하는 무한대 분의 1 크기의 에너지 그것은 이미 정보다.
에너지는 그 정보전달의 심부름꾼일 뿐.
정보전달을 늦추거나 빠르게할뿐 정보 자체엔 개입하지 않는다.
모든 변화의 최고부분은 에너지가 아닌 정보로 설명이 된다.
존재는 에너지가 아니라 그 자체로 정보다. 그것이 구조론.

그거이 어찌 0인지 알려면 또한 하회를 봐야지비.





닫힌 계를 위한 논리문제.

참고로 말하면 이걸 알아야 논의의 자격이 있음.(어떤 책에도 안나올 거심)
먼저 머리를 풀기 위한 연습문제.

[자동차가 굴러간다. 앞으로 가는 거여 뒤로 가는 거여? ] 정답은 [앞]
혹자는 후진하는 차는 차가 아닌가 하고 대들겠지만
그건 운전사를 기준으로 차 내부에서 본 관점이고 그런 설정이 없으므로
관점은 차의 진행을 확인할수 있는 위치, 곧 밖에 있다고 볼 밖에.
차의 앞뒤는 무시되고 가는 차는 모두 앞으로 가는 차임.
가는 쪽을 앞으로 정할테니까. [관측자를 기준으로 한다]

공간을 기준으로 가는 방향이 앞이지럴.
그럼 시간에다 대면. 시간이 가는 쪽이 앞.

오늘은 앞이여 뒤여?
낼 모래는 앞이여 뒤여?
이틀 뒤에라고 말하면 맞는 말이여? 틀리는 말이여?
미래가 앞이여 과거가 앞이여?
선배를 선배라고 부를 때 선은 앞이지럴.
선배는 과거의 사람이지럴.
과거가 앞이지럴.
빌린 돈을 한달 뒤에 줄께가 맞아여 한달 앞에 줄께가 맞아여?
이런걸 따질수 있는 사람이 질이고 양이고 따질 수 있지럴.

홍야옹처럼 [질은 불변하는 것인디 어찌 질이 양을 변하게 하간여.
양의 변화가 (질의 변화)를 이끌어내지럴] 하면 자가당착이죠.
스스로 질은 불변한다 해놓고 왠 질의 변화?

에너지 불변의 법칙에 의해 에너지는 변하지 않는 것인데
에너지의 변화로 설명?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쪼매 홍갈리고 콩갈릴 거여.


비베카는 화학반응을 본 적이 있는감?
있다고 하면 거짓말이 되지럴.

화학반응은 보이지 않아여. 봤다고? 뭘봤는데? 이온의 움직임을 봤어?
분자단위에서 움직이는 것이 화학반응이지럴. 보이지 않지럴.

우리가 보는 것은 불꽃의 색깔 (물리반응이지럴)
우리가 보는 것은 화약의 폭음 (물리반응이지럴)
우리가 보는 것은 온도계의 열 (물리반응이지럴)

화학반응은 드러난 물리현상을 보고 추리해서 인식하는 것이지
그 자체로는 인간에게 관측이 안되여.
마찬가지로 화학적 에너지는 그 자체로 힘을 나타내지 않아여.
화학반응이 열과 소리와 색깔과 기타등등으로 물리구조를 파괴하면
그것이 전달전달전달되어 몇다리 건너서 인간에게 보이는데
운동은 물리상태에서만 나타나므로 물리학에서는 물리반응만 문제삼지
화학반응은 아예 쳐주지를 않거덩.

만약 화학반응이 직접 힘을 나타낸다면 물리학에 화학이 들어가불지.

물리와 화학의 차이는 물리는 한가지 방향으로의 단순한 하나의 힘.
화학은 동시에 여러 가지의 물리적 힘을 나타내지럴.
그러나 화학이 직접 사물에 변화를 유발하지는 않아여.
물리를 통하여 나타내는 것이지럴.

화학반응은 분자단위의 연쇄반응으로 일어나지만 그 화학반응을
유발하는 것은 단 하나의 이온이거덩. 그리고 그 이온은 전기적 힘에 의해
움직이거덩, 그 전기적 힘은 물질 자체가 가지는 고유한 전기적 극성이거덩.

마찬가지도 전기도 직접 힘을 나타내지는 못하지.
모든 전기는 전하입자를 움직이고 전하입자의 연쇄반응은 곧 화학반응이지.
우리 눈에 보이는 전열기의 열, 빛이 다 화학이거덩.
물론 그것이 인간에게 관측되면 열도 빛도 다 물리학이 되불지만.

전기구동모터에서도 전기는 코일주위를 지나갈 뿐이며 모터를 돌리는 것은
화학이고 모터가 돌아가는 것은 물리지럴.

그럼 이제 정리가 되간?

운동장에 모인 백명의 사람이 내는 힘 -> 물리
한명한명이 가진 힘 -> 화학
한명의 팔다리힘 -> 전기

한명의 사람은 밀수도 당길수도 굴릴수도 있지만 백명의 사람은
한방향으로 만이 힘을 쓸수 있지럴.

여기서 사람 한명은 분자나 원자 소립자 하나지럴.
모든 변화는 백명 천명 단위로 뭉쳐다니거덩.
그러니 눈에 보이는 힘은 다 물리지럴.

물리에는 가역성이 성립하는데 가역성이 성립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라고라?

모든 에너지반응에는 가역성이 있지럴.
비가역성을 찾으려면 반드시 (닫힌 계)를 설정해야 하지럴.

물리에도 닫힌계를 설정해버리면 비가역성이 성립하지롱.

비가역성이란 물리반응이 1 대 1로 나타나는데 비해
화학반응은 1 대 多로 나타나는걸 두고 생각하는가 본데
그것을 분자단위로 보지않고 우리 눈에 보이는 불이나 폭발음, 냄새 따위로
보니까 비가역이 되는 거지롱.

그러나 그것은 (화학 -> 물리) 사이에 여러 가지 단계를 거치다보니
그리된 것이고(닫힌 계를 설정할수 없음) 분자 하나와 분자 하나 사이에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화학반응에는 충분히 가역성이 성립하지롱.

가역성 = 1반과 2반의 패싸움.
비가역성 = 홍길동 혼자와 여러명의 싸움. (홍길동이 9의 힘을, 반대편 세명이
각각 3의 힘을 가질 때 양편의 힘은 같은데도 홍길동은 세명을 이길수 있지만
세명은 홍길동을 이길수 없다. 왜? 홍길동이 길목을 막아지키므로
세명이 한꺼번에 공격할수 없는 까닭이다. = 비가역성)

이래서 닫힌 계가 필요한 것이거덩.

3키로그램 짜리 하나와 (1키로그램 ×3) 중 어느것이 더 무거울까?
닫힌 계를 설정해불면 3키로 짜리 하나가 더 무겁다.






[ 양자역학에 좀 놀래지 말거라. 암것도 아이다. ]

퍼즐놀이를 하는데 칸이 열여섯.
숫자가 1번부터 15번까지 있어.

이걸 1번부터 맞춰넣어야 해요. 초딩때 많이 해본거요.
근데 이게 하나하나 맞추어갈수록 어려워지거덩요.
숫자 한자 한자의 비중은 같은데 왜 갈수록 어려워질까요?

칸은 열여섯 숫자는 열다섯....한칸이 비어있지요.
그런데 우리는 종종 까먹죠. 하나가 비어있다는 사실을.

논산훈련소 변소 칸막이는 낮아.
언넘이 똥누는넘 모자를 슬쩍. 잃은 놈은 거기서 기다리다
다른 넘 들어오면 또 슬쩍. 중대에 모자 하나 모자라는데 모자없는 넘은 없어,
모두다 모자는 있는데 전체로는 모자하나가 모자라.

양자역학이란 이런 식이다.
만약 퍼즐판 16칸에 퍼즐조각 열여섯이 꼭 맞다면
우리는 그 퍼즐조각을 제자리에 맞춰넣을수 없다. 유드리가 없으니까.

그래서 퍼즐판은 좀 무른 종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다.
존재도 하나의 퍼즐판이다.
꽉맞는 퍼즐판이라서 유드리가 없다.

물질입자의 퍼즐조각은 제자리를 찾아갈 수가 없다.
그래서 신은 물질을 만들 때
하나를 슬쩍 빼버렸는데 --- 하나가 모자라니 아귀가 안맞는다.

그 빈자리를 무얼로 채워넣는 것이 아니라
옆에걸 빼서 메우고, 그 옆자리는 또 더 옆에걸 빼서 메우고,
그 빈자리 하나가 돌고 도는데
전체로는 분명 하나가 모자라지만 모자람이 없다.

퍼즐 맞추는 아이는
1번부터 맞춰나가는데 10번을 넘어갈때까지는 잘도 맞춘다.
11번부터 맞출수 없다. 1번부터 다시 시작이다.

양자역학이란 그런 것. 그것은 정밀도의 증가이다.
뉴튼이 1번을 맞춘 이후 아인시타인의 10번까지는 잘 맞아왔다.
유드리의 문제가 대두된 것은 정밀도가 11번까지 높아졌을 때이다.

퍼즐맞추는 아이는 1번과 2번의 자리바꿈이 문제를 해결할 줄로만 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근본적으로 퍼즐은 꼭맞을수 없게 되어있다.
퍼즐을 맞추기 위해 퍼즐조각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번부터 15번까지 다맞추었는데 14번과 15번이 자리가 뒤바뀌었다.
이 바뀐 자리를 바로잡을수 없다.

소립자들의 구조도 퍼즐맞추기와 같다.
잘 맞아오다가 더 안맞아버리는 것은 퍼즐조각의 이동공간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꽉 맞는 것은 맞지 않는 것.
하나가 모자라는 것이 잘 맞는 것.

본론으로 들어가서
퍼즐을 맞추는 것은 1번과 2번의 순서를 맞추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그 순서만 생각한다.

그러나 맨 마지막 하나는 14번과 맞추는 것이 아니라
퍼즐판과 맞추는 것이다. 이건 전혀 다른 게임이 되분다.

퍼즐맞추기는 순서찾기인데 맨 마지막 하나는 방향찾기다.
이제 퍼즐의 게임이 아닌 것이다.

한 반에 60명이 있는데 서로 경쟁한다.
맨 꼴등은 선생님과 경쟁해야 한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성적이 올라간다.
그러나 누군가는 꼴찌를 해야 한다.
-------------------------------------------------------------
임계값 야그를 꺼낸 것은 임계란 것은 본래
온도와 압력 두가지로서만이 성립함을 드러내기 위해서인데
즉 온도면 온도, 압력이면 압력이어야 양이지

온도와 압력이면 온도와 압력을 통일할 공간의 제 3이 나와야 하고
제 3(공간변수)이 나오면 무려 셋이나 되는걸 한자리에 우겨넣을
제 4(시간변수) 곧 시간이 나와야 하고
이것을 하나의 비(온도대 압력비)로 환원시키려면 제 5가 나와야 하는데
그것이 구조론이며 곧 잡(雜)이며 질임을 설파하려는 것인데
장단이 좀 안맞았음.

강호동은 힘이 세다.(에너지) 그러나 나를 이길수 없다. 왜?
나는 저 멀리 도망가 있으니까.

강호동의 센 힘(온도)으로 나를 이기려면
곧 에너지가 작동하려면 먼저 강호동이 내게로 가까이 와야 한다. (압력)

그러므로 임계는 온도와 압력의 비로 성립하는데
나는 도무지 강호동을 싫어하므로 강호동은 내 샅바를 잡지 못해서
들배지기를 할 수가 없다.

강호동이 나를 잡으려면 먼저 나를 달아날 수 없는 작은 방으로 몰아
넣어야 한다. 여기서 강호동이 먼저 방으로 들어가면 나는 도망간다.
내가 먼저 방으로 들어가면 문을 걸어잠가 강호동이 못들어오게 한다.

즉 시간(순서)변수가 개입하는 것이다.
시간적 조건과 공간적 조건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것이 비다.
압력은 공간조건 - 온도는 시간조건 -

공간이 넓으면 압력이 낮아지고 시간이 짧으면 온도는 전달 안된다.
1) 1평의 공간에
2) 1명의 대상을
3) 1기압의 압력과
4) 1도의 온도로 에워샀을 때
5) 이들 상호간의 관계인 비로서
비로소 임계값에 도달하는 것이다.

즉 공간이 먼저와야지 온도가 먼저오면 대상은 도망가불고
대상이 먼저와불면 대상은 공간 안으로 진입 안하고 도망가불고
그것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정보 곧 질(凹凸)인 것이다.

모든 화학반응은 그렇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질이다.
양은 공간의 넓이, 대상의 개체수, 압력의 수치, 온도의 크기들이다.

질이 양을 결정한다. 여기서 온도가 얼마 필요하냐
압력이 얼마 필요하냐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평수가 몇평이냐
대상이 몇넘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물질에 따라 물질 자체가 가진 고유한 압력이 존재하므로
온도만 따지거나 할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특정한 경우이고
분자 한 개의 단위로 보면 반드시 압력 또는 압력의 구실을 할
어떤 종류의 전기적 화학적 힘이 필요하다.

하나의 변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다섯가지 양이 필요하고
이 다섯가지의 서열(순서와 방향)을 정해줄 놈이 필요하므로
질(정보)이 양에 앞선다 하는 것이다.

첫째넘의 기능은 유도(이끌어옴) 위에서는 방이다.
둘째넘의 기능은 대응(맞세움) 위에서는 대상이다.
셋째넘의 기능은 의속(부여잡음) 위에서는 압력이다.
넷째넘의 기능은 인과(두들겨팸) 위에서는 온도이다.
다섯째넘의 기능은 표상(드러냄) 위에서는 비다.

이 다섯넘들이 각각의 凹凸을 가지고 있다. 이 凹凸들이 특정한
기하학적 배열형태를 가질 때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근데 이넘들이 말을 안들어니까 우리는 물리적으로 충격을 가하여 흔들어버린다.

흔들어버리면 그 내부에 무수한 凹凸들이 우연히 예의 배열형태에 이르고
반응이 시작되며 그 반응으로 인해 발생한 에너지는 더욱 흔들어불고
연쇄반응이다.

그러나 논리영역에 그런 대충대충 없다.
밖에서의 인위적인 흔들어버리기는 규칙위반이다.
에너지의 유입에 의존한다는 것은 밖에서 누군가 흔들어조야 된다는 것인데
그것은 필연이 아닌 우연을 기대하는 것.

필연의 영역에서는 에너지가 필요없다.
오로지 기하학적 배열형태가 필요할 뿐.

원래 니트로글리세린은 가만이 놔두어도 저절로 폭발하곤 했다.
그래서 노벨이 규조토를 발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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