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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양을 쫓는 모험
read 6420 vote 0 2010.08.02 (07:12:17)

1. 기준점



중학교 시절 도덕시간 때의 일이다. 선생님께서 칠판에 삼각형을 하나 그리시고 말씀하셨다.


"자! 여기 삼각형이 있는데, 삼각형은 실제로 존재할까? 삼각형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을 들어보자!"


그렇게 해서 상당수 학생들은 '삼각형이 존재한다'에 손을 들었고, 열댓명 정도의 학생들은 '삼각형이 존재하지 않는다' 에 손을 들었다. 나도 '삼각형이 존재하지 않는다' 에 손을 들었는데, 상황이 좀 묘했다. 아이들이 그럴 수 밖에 없던 이유는 직감적으로 선생님이 원하는 답은 "삼각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것은 알겠는데, 딱히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만한 말이 없기 때문에 절충해서 손을 든다는 것이 그러한 결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전교에서 싸움을 가장 잘하는 녀석이 대표로 삼각형이 현실에 존재하는 이유를 말했다.


"삼각형이 눈에 보이잖아요! 눈에 보이니까 존재하는 거죠."


공교롭게도 '삼각형이 존재하지 않는다'에 대해서는 내가 말을 하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완전하지 않을 수 있잖아요. 지구는 둥그니까... 우리눈에는 평평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은 약간씩 틀어져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지금도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말로 인해서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꽤 큰 칭찬과 급우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현실에 존재하기 위한 그 기준점은 정확한가? 만약 우주에 어느 운석 위에 삼각형을 그리면 그것은 완전할까? 질문 자체가 우문이었지만, 그럴듯한 답을 해버리고 말았다.



 

2. 生 의 모델



어느날 나는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고, 시간이 갈수록 나이를 먹고, 늙어서 언젠가는 죽게된다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삶은 영원히 지속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죽음은 형상이 없는 공포 그 자체였고, 죽음이 싫기때문에 삶은 좋은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흔히 키우던 개나 병아리가 죽었을 때 경험하는 그런 것처럼 말이다.


죽는건 싫었지만, 그것이 어쩔 수 없다면, 그 살아있는 한정된 시간동안 무엇을 할까? 삶은 어떻게 생겼을까? 삶의 모델은 무엇일까? 엉뚱하게도 난 삶을 그림으로 형상화하려고 무척 애를 썼다.

달리기.jpg 


초등학교 시절엔 '인생이란 반 아이들과 함께 레이싱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험을 볼 때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 각자 노력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동안 각자의 레일에서 최대한 힘을 내어 앞을 향해 뛰어가는 것이다. 같은시간 더 빨리 더 멀리까지 도달한 사람이 천국에 가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삶은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데에는 오래걸리지 않았다. 그때까지만해도 난 삶은 공평하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반아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다고비 그들이 언제까지나 이렇게 한정된 공간에서 복작거리며 경쟁할거라 생각을 했나보다.


각자의 생은 그 시간도 다르고, 공간도 다르다. 그리고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가끔은 정말 사악한 녀석도 있었는데, 그런녀석들은 늘 반칙과 위선으로 이익을 얻고, 거들먹거리고도 아무런 문제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들의 세계 뿐만이 아니었다. 어른들의 세계 역시 그랬고, 우리나라의 역사 또한 그러했다. 세상은 납들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더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인생은 자기 맘처럼 제어가 되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내가 생각한 인생의 모델을 파기하였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한 두번째 삶의 모델은 각자 자기 삶의 레일을 없애고, 대신에 아주아주 커다란 선풍기를 집어넣었다. 이 선풍기는 '신' 이다. 만약에 신이 있다면 이런 선풍기와 같지 않을까? 보통 열씸히 살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예정에 없이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면 방향이 어긋나거나 뒤로 밀릴 수도 있다. 그런 바람을 만나지 않는 것은 순전히 운이라고 생각했다.

 



3. 삶은 항해한다.



고등학교 시절에서야 각각의 인생이 그 시작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일용직 노동자의 아이와 거대기업 총수의 아이의 삶이 같을 수는 없다. 우리는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지만 교실을 나서면 완전히 다른 각자의 세계가 존재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 인생에 개입하는 것이 꼭 '신'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각자의 삶이 나아가려 할 때, 삶은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그래서 내 상상속의 인생의 모델, 즉 '평지에서의 레이싱'은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바다 위의 항해'가 되어버렸다. 인간을 삶을 시작할 때부터 각자의 배를 타고 바다로 나선다. 어떤사람은 뗀목을 타고, 또 어떤사람은 타이타닉처럼 큰 배를 타고 시작하기도 한다. 뗀목이 가는 옆에 큰 배가 지나가면, 큰 배가 일으킨 파도에 작은배는 흔들리고, 뒤집힐 수도 있다.


때때로 태풍을 만난다. 태풍을 만나서 알 수 없는 곳을 밀려가고, 난파되고, 또 때로는 그 태풍에 의하여 목적지에 더 빠르게 도착할 수도 있다. "그래! 삶은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의 공간위에 각자의 배를 타고, 항해를 하는 것이다. 태풍은 신이고, 신 뿐만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때때로 나의 궤도에 영향을 준다." 이렇게 정리하니까 얼추 그럴듯해보인다.


뗀목.jpg 



 그것은 '나비효과'와 같은 것이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파도에 휩쓸려, 궤도가 틀어지고, 그것은 또 다른 배에 영향을 주고, 또 다른 배에 영향을 주고를 반복하다가 결국 예상치 못한 엉뚱하고도 거대한 결론에 닿게 되기도 한다. 때문에 나의 인생은 예측할 수 없다.


자기가 원하고 목표한 삶 그대로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고, 목표한 삶에 닿아도 그것이 목표했던 그 때의 마음과 또 달라져있다. 때문에 삶을 항해하는 가운데에 최선은 내 배가 어디있는지를 분명히 알고, 타인으로부터, 세력으로부터, 신으로부터 흐트러진 내 삶의 궤도를 끊임없이 수정하는 수 밖에...



 

4. 삶은 둥굴다.



그래서 내가 완성한 삶은 모델이란 공처럼 둥글다. 지구가 구의 형상을 하고 있으니까, 삶 또한 그러하다. 그러니 지구에 N극과 S극 이 있는 것 처럼, 삶에도 그 시작점과 끝 점이 있는 것이다. 동그란 삶에 어느 한 점에서 시작되어, 우리는 그 표면의 바다를 각자의 궤도로 항해하고 있다. 어느 시점에서는 뗀목이 여객선이 되기도 하고, 여객선이 침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삶의 공통의 시작점이 존재한다면, 공통의 끝 점 또한 존재할 것이다. 인생의 끝은 무엇일까? 그저 어딘가에서 늙어 죽는 것? 아니면 아주 부자가 되는 것? 인류 공통의 절대성이 있는 그 곳. 어디인가? 각자의 상황과 그 삶의 궤적은 다르겠지만, '낳음' 으로서 삶은 그 끝에 닿는다. 인간의 생은 누군가의 창조로 시작되어, 자신의 창조로 끝을 맺는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내놓고도 굴복하지 않은 생각 그리고 생각의 결실로 인류는 진보한다. 갈릴레오가 말했던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그 말은 누가 들은건지 모르지만, 그것이 사실이건 사실이 아니건, 제 삶과 같은 크기의 가치를 낳아낸다는 것이 중요하다. 베토벤은 낭만주의를 낳았고, 마네는 인상파를 낳았고, 링컨은 미국의 국가구조와 민주주의를 낳았고,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낳았다. 그리고 인류는 다시한번 진보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낳음'의 단계, 인생의 종착점까지 가지 못하고 먼 바다를 헤메다 생을 마감한다. 누구도 저 넘어에 신세계가 있다고, 저기에 우리의 종착점이 있다고 말하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기껏 천국이냐 지옥이냐의 갈림길에서 서 있을 뿐, 그러는 동안 끊임없이 방황할 뿐이다. 누구도 인생의 모델을 제시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5. 두 개의 동그라미



이로서 하나의 세계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그 삶 이전의 세계가 또한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삶의 동그라미 이전에 또하나의 동그라미가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내 부모는?, 인류는? 그렇게 물음의 끝에는 신이 있었다. 신은 만물의 씨앗이며 에너지인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신' 의 존재는 종교에서 말하는 신과는 다른의미인 것이다. 단지 생명의 씨앗으로서의 존재. 태초의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어 수만년의 시간이 흐르고 인간의 개체수는 계속하여 증가했을 테고, 그 가운데 인류는 곳곳으로 흩어져 환경에 적응하고, 무리를 지어 이동하고, 전쟁하고, 뒤섞이고, 다시 흩어졌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운명의 사슬로 먼 조상의 짝이 만나 자손을 낳고, 또 짝을 만나고, 낳고, 또 짝을 만나고 낳고 하여 어미와 아비가 존재하는 것이고, 그들이 짝이 되어 나의 삶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하나의 사이클이다.

생의모델.jpg 

 

신(질) > 인류(입자) > 나(힘) > 항해(운동) > 낳음(량)

 


신에서 시작하여 인류의 입자로 흩어지고, 다시 세월과 운명에 의하여 나라는 존재가 탄생하고, 나는 먼 바다를 항해하고, '낳음'으로 인류를 한단계 진보시킨다. '깨달음'이란 '깨다' + '알다' 가 합쳐진 말인데, 한마디로 깨우친 것을 아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는 꽤나 근사한 문구가 하나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하여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그렇다. 깨달음은 하나의 세계를 깨는 동시에 또 하나의 생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삶은 또 다시 '낳음'으로서 신과 소통한다. 이러한 싸이클의 반복이 인류의 역사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과거의 세계를 깨고, 새로운 세계의 접점에서 탄생하였다. 그리고 이로서 명료해졌다. 인간은 자손을 낳음으로서 개체의 량을 증가시키고, 문명을 낳음으로서 삶의 질을 진보시킨다.


중학교시절 도덕선생님이 '삼각형의 존재'에 관하여 물어왔던 것처럼,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는, 현상 이전의 기준점을 찾아야 한다. 삶은 길고, 또 그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먼 항해를 시작할 때에는 그 기준점이 될만한 것이 있어야 한다. 삶의 지도가 있어야 한다. 지도가 있고, 어느 곳으로 방향타를 잡을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세상의 창, 생각의 틀
www.changtle.com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0.08.02 (13:33:29)


10대 20대에 데미안을 두 번 읽었소.
중학교 때는 솔직히 뭔소린지 모르겠고....
20대 때는 갑자기 데미안이 읽고 싶어져서..뭔가 깨고 나와야 할 것들이 있었나 보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20대 때도 데미안의 얘기를 완벽하게 이해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소.
그저 무엇을 얘기하고 있구나에 대한 감을 잡았다..정도...

데미안, 혹은 그 외에  이와 같은 애기를 하는 많은 철학 서적들.
그 서적들을 총 망라하고 좀 더 확실하게 경계를 지어주는 것이 구조론이고 보면... 철학위에 철학이라고 자평하고 지칭하는  것이 괜한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되어지오.

저 또한 양모님처럼 생의 모델을 달리하면서 살아왔구나를 이 글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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