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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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아란도
read 7371 vote 0 2010.08.10 (01:02:38)



이 글은 구조론의 틀을 인용하여 쓴 글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결정하고,판단해야 할 때 그 근거를 무엇에 둘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

글로 표현할 말들이 있어야 하겠기에 구조론의 언어와 뼈대를 사용하여 보았습니다.

그래서 구조론의 용어 설명과 해설 부분의 있어서는 그대로 차용된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많은 내용들이 있지만 그 구조는 같은 원리를 같고 있기에

인과율의 판단, 합리적인 판단, 미학적인 판단을 기초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시작하고 결과를 맺게 될 때,

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부정적인 결과가 나오기도 하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삶을 사는 과정에 있어서 이러한 판단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건에서도, 마음에서도, 집단이라는 유기체에서도 모두 관계로 맞물려 있기에 특히 미학적인 판단은 중요하다고 생각도 해봅니다.

 

 

 

언제나 오늘, 지금 현재가 결과이자 원인이다.

지금의 결과를 판단하려면 그 이전의 원인을 살펴야 하기에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거기를 살펴야 현재가 보인다. 그리고 결과를 판단할 수 있다.

 

판단은 합리주의적인 판단을 따라야 하는데, 비합리주의적 판단은 다원론적인 판단이나 서로 얽힌 관계없이 따로따로 생각하는 것이고, 연결하여 하나의 덩어리로 생각하지 않는것이다. 비합리주의적 판단은 개인의 상황만을 생각한다. 연결시키지 않는다. 따로따로 입장 봐주기, 편리봐주기 식이다. 이것도 취하고 저것도 취하고 식이고 보면, 이것은 판단에 있어서 명확한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다.

 

합리주의적 판단은 토너먼트식 판단이다. 계속 비교우위를 갖는 것을 선택하고 비교우위를 갖지 못하는 것을 배제하여 최종적으로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가장 최종적으로 남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고, 옳은 것이고, 거기에 쓸모있는 것이다. 그래서 집단의 방향성을 만들어 내게 된다.

 

그리고 다시 현재의 결과를 보고 원인이 되는 것에 대해서 살펴야 한다.

결과를 보고 거슬러 올라가 원인을 보지 못하면, 현재의 결과과 다시 원인이 됨을 살피지 못하게 된다.

살피지 못하면, 결과가 원인이 되고, 다시 흘러 결과가 나올 때까지의  시행착오를 막을 수 없게 된다.

반복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된다. 그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집단에서는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이 되지만 개인에게는 성장이 아니다. 퇴보다.

이러한 시행착오들은 집단에서는 결과적으로 성장의 동력이 되지만 개인에게는 망하는 것이다.

 

 

 

 

 

 

 

원인(과거) > 과정 >결과 (->원인 ...현재)  / > 과정 > 결과 (->원인...미래) ........

이렇듯 현재의 결과를 보고 원인을 보면 하나의 싸이클을 볼 수 있다. 시작 >과정> 결말

 

인과율은 진행 방향은...

조건 > 인자 > 촉발 > 진행 > 종결  ....조건(원인) > 인자.촉발.진행(과정) > 종결(결과)

미학적인 판단은....

성속 > 주종 > 미추 > 선악 > 진위

 

그래서 현재의 결과에 대해서 판단을 하는 것은 하나의 싸이클에서 원인과 과정 종결 전체를 하나의 덩어리로 보고 판단해야 한다.

대부분은 전체가 아닌 부분만 보고 판단하게 된다. 그래서 선악으로 분별하게 된다.

선악은 존재하지 않고 관계에 의해 세상이 얽혀 있을 뿐이다. 선악으로 보는 것은 한 부분만 보는 것이다.

선은 그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고, 악은 그 사회를 깨는 것이다. 이것은 오랜시간을 통하여 검증된 것이 작동하는 것과 같다.

 

어떠한 일의 하나의 싸이클은 그 시간의 단위가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다.

지금의 결과에 대해서 원인을 보지 못하고, 그것에 대해서 숙고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결과가 새로운 원인이 되어 가는 것에 있어서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없게 된다. 그리되면 잘못 흐른다는 것에 대해서 방관하게 되고, 제어하지 못하고, 또한 스스로도 알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또 원인이 결과를 맺게 될 쯤에 또다시 반복된 잘못된 길을 가고 있구나를 알게 된다. 너무 늦게 된다.

 

처음부터 전체를 그리지 못하고 가는 것은 민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미리 그림이 그려져야 하고 다시 하나씩 채워가는 것인데, 처음부터 그림이 잘못되었다면 결과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처음부터 머릿속에 그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완성에 대한 것이 이미 있는 것이다. 어떤 방향을 지향할 것인가이다.

 

머릿속에 미학적인 판단인 "성"에 대한 큰 그림이 있어야 한다. 성은 소통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통이다. 처음부터 소통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에는 성속 > 주종 > 미추 > 선악 > 진위가 다 들어 있다.

그렇다면 방향은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방향으로 정해진 것이다.

그러하기에 현재에서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고, 현재의 결과가 새로운 원인을 만들어 내게될 때 그 방향을 수정할 수 있다.

 

처음부터 속이고 시작된 것은 원만한 종결점을 갖지 못한다. 그것은 불통이기 때문이다. 소통을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눈앞의 것에만  집착하여 그것만 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속인 것은 아무도 그것을 의미로 안쳐주기 때문이다.

무의미한 것이다. 그래서 원인을 살피고 결과를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무엇이 잘못되고 잘된 것인지를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마음이 가는 길의 방향성을 정해준다.  

언제나 지금 살피는 것이 중요해진다.

지금 결과가 눈에 보이고 그것을 볼줄 안다면 지금 해결하고 마무리 지어야 한다. 갈무리를 해줘야 복잡해지지 않고  정리가 된다.

그것이 쿨하게 가는 것이다. 군더더기 없이 가는 길이다. 탁탁털고 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그것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모든 것은 스스로의 마음가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스스로의 마음이 가는 길에서 스스로 단도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판단의 작용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판단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지적 네트워크의 차원에서 판단해야 한다.

판단이 필요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고, 그 사안에 따라서 판단은 단계가 적용되지만, 그 단계마다 하나의 작은 완성된 판단이 또 들어있다. 큰판단의 과정의 단계에 -> 각 단계마다 그 안에 다시 또 하나의 작은 판단의 기준이 다 들어 있다.

 

큰 판단 : 성속 > 주종 > 미추 > 선악 > 진위 ...의 각 단계에서... 부분 판단인 진위판단을 살펴보면 작은판단인  성속>주종>미추>선악>진위가  진위판단안에 다 들어 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하나의 사건은 진위판단이 필요하거나 선악 판단이 필요할 때가 있기도 하지만, 진위,선악.. 안에 다시 성속>주종>미추>선악>진위가 들어있어서 그 상황의 전체적인 것을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전체적인 큰 판단으로 돌아와도 큰 판단인 성속>주종>미추>선악>진위로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판단은 성속 > 주종 > 미추 > 선악 > 진위 로 나타나게 된다.



개인에게도 판단의 기준이 명확하게 자리잡고 있다면, 시행착오를 줄 일 수 있다. 인과율에 의한 판단, 합리적인 판단, 미학적인 판단...
이것은 모두 안목을 획득하는 것이다.
개인은 언제나 자기 바깥의 것과 소통을 해야 하지만, 소통이 안되면 개인은 계속하여 맹목적인 희생만을 하게된다.
맹목적인 희생이 되지 않으려면 자기안목이 있어야 하고 자기판단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판단이 집단의 판단과 같은 방향, 즉 소통의 방향이어야 한다.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소통은 언제나  성속 > 주종 > 미추 > 선악 > 진위 방향이다.

개인의 시행착오가 장기적으로는 집단의 성장이지만, 단기적으로는 부담이 된다.
그래서 개인의 시행착오는 집단에서 계속 비교우위를 점하는 방식으로 검증된다.  검증이 작동하여 판단하게 된다.
개인들의 끝없는 시행착오는 결국 집단에게는 새로운 길을 찾아내게 한다.
개인들의 희생으로 집단이라는 유기체는 성장한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자면 개인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숭고한 것일 수 있다.

개인이 희생하여 집단에 기여하는 방식은 모두 같다. 그러나 그 희생의 목적이나 동기에서 희생의 의미는 달라지기도 한다.
희생을 한다 하여도 개인이 조금씩 망가질지라도 집단과 같이 사는 방향으로 흘러야 한다.
개인이 망가지더라도 개인에게도 긍정적 시너지 효과가 있어야 한다. 역시 집단이란 유기체에도 같은 효과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희생이란 부분을  개인의 분별없는 욕망으로 인하여 집단을 위기로 몰고 간다면 그 희생은 기억되지 않는다. 배제된다.
누가 기억해주지 않느냐가 아니고 그 집단시스템 자체에서 배제된다는 것이다. 그 방식은 더이상 슬모가 없다는 것이다.
판단은 집단에서 개인으로 향한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개인에게서 집단으로 가는 방향이다.
개인이 집단의 방향을 판단할 수 있다면 그 방향성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다면 개인의 희생의 방향도 조금은 더 자유롭지 않을까...?

.
개인도 전체를 보고 판단하여 스스로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안목을 갖는다면, 그것이 단기간이든 장기간이든 유익하게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안다면...개인의 이익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유기체가 성장해 가는 것에 대해, 완성하여 가는 것에 대해, 유기체가 스스로 아름다움을 드러내게 하는 것에 기여를 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다면, 개인의 이익과 개인의 만족을 위해서만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댓가나 뭔가를 바라는 마음만 갖는게 아니라 , 그것에 대해서 모두가 골고루 혜택을 받고 나누어 가질 수 있는 큰 것, 곧 성과를 공유하는 것을 드러내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 좋지 아니할까...?

판단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역설의 부분까지 보고 판단을 해야 한다. 그것이 전체를 보고 판단 하는 것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0.08.10 (01:03:42)


본문의 내용에 동렬님께서 사용하신 말과 뜻이 그대로 사용된 곳들도 있습니다. 더 나은 설명을 찾기가 어려워서....^^?()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0.08.10 (11:50:18)


항상 전체에서 부분으로 간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철저하게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오.

만약 부분에서 전체로 가고 있으면
뭔가 잘못 되고 있거나

아니면 숨겨진 전체를 포착하지 못하고 있거나
범주구분이 잘못된 것이오.

부분에서 전체로 가면
이현세 만화그림처럼 어색해 지는데

대부분 신체의 연결부위가 어색해지고
그 어색한 부분을 물타기 하기 위해 만화 특유의 기호들을 사용하면 더욱 어색해지고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오.
일본 그림을 보면 그런걸 알 수 있소.

입을 작게 그려서 전체의 균형이 무너졌는데
그 불균형을 커버하기 위한 기법들이 속속 고안되고

결국 기형적으로 발전하고 형식이 굳어져서
보편의 장으로 되돌아 올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게 되오.

그 경우 더 이상의 발전은 불가능해지오.
그렇게 되면 보편을 장악한 서구가 일본의 특색을 마구 약탈하게 되는데

잼있는건 보편을 장악한 서구는 일본의 아이디어를 무차별로 도둑질해 가지만
정작 일본은 서구의 아이디어를 훔칠 수 없다는 것이오.

20세기 회화사는 아프리카나 일본의 아이디어를
서구가 일방적으로 약탈한 시대이오.

저쪽은 이쪽을 뻔뻔하게 훔칠 수 있는데
이쪽은 저쪽을 훔칠 수 있는 상황이 계속되오.

최근 서구인이 한국의 민화를 높이 평가하는데
이는 한국의 민화에 훔쳐갈 아이디어가 풍부하기 때문이오.

문제는 극단적으로 형식화 되고 기호화 된 한국의 민화는
서구의 아이디어를 조금도 도둑질할 수 없다는 것.

결론적으로 한국의 민화는 서구의 미술시장을 살찌워주고
서구 화가들 주머니에 돈을 채워주고 일방적으로 아이디어를 사냥당하고

한국화는 정체되어 전혀 발전할 수 없다는 것.
이건 비극이오.

구조를 모르면 당하는 거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0.08.10 (15:08:52)


글의 하단을 조금 고쳐서 다시 올렸습니다. 문맥이 어색하여...^^;

흠..쓰고나서 보면 늘 걱정되는 것이 있는데...제가 구조론에 글을 올리다 보면, 혹은 구조론을 활용하여 글을 쓸때는....지금 내가 말을 맞게하고 있는거야?  틀리게 하고 있는거야?  그점이 조금 애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생각만큼 생각이 잘 표현되는 것은 아닌것 같구요.^^

그래서 그런 글들은 반응을 살피게 됩니다. 내가 누군가들에게 알아먹게 쓴 것일까? 이게 좋다는 거야, 아니다는 거야...걍 냅두는 거야...? 갈피를 잡아야 하는데...아무래도 자기가 쓴글은 혼자서 갈피를 잡기는 조금 어려운 것 같습니다. 누구나 자기가 쓴 글은 자기 생각으로 쓴 것이기에 옳다거나 좋다거나 생각을 하게되고, 혹은 검증을 받고 싶어하는 글도 있는 것 같습니다. 구조론을 활용한 글들은 더욱더 그러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즉 저 글이 저 생각이 소통이 일어나고 있는걸까? 소통을 할 수 있는 글일까?.생각일까? 를 타진해보고 있다는 생각도 들구요.

^^암튼 요즘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항상 전체에서 부분으로 간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철저하게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오.

만약 부분에서 전체로 가고 있으면
뭔가 잘못 되고 있거나

아니면 숨겨진 전체를 포착하지 못하고 있거나
범주구분이 잘못된 것이오."

이 부분의 의미를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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