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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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5]오세
read 6417 vote 0 2013.02.09 (16: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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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소. 무려 성폭행범을 비호했소. 

범죄의 폭로 앞에서 그는 비겁하고 섣부르게 무려 '감사'라는 단어로 피해자를 두 번 죽였소. 

그는 이제 더 이상 스님이 아니오. 오늘부로 그냥 범부 법륜일 뿐이오. 


구조론 식구들도 눈을 크게 뜨고 보아야 하오. 

무려 이 시대의 영적, 종교적 스승이고 멘토라는 자가 어떤 망언을 하고 있는지 말이오. 


- 우울증으로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데, 제 우울증의 근본에는 가족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저를 성폭행했습니다.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 때문에 집안엔 부부싸움이 잦았습니다. 어릴 땐 아버지만 미웠는데 아버지를 괴롭게 만든 게 어머니란 생각이 들면서 작년부터는 어머니도 미워졌고, 7년 만에 아버지를 만났을 때 증오심과 불쌍하다는 감정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부모님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또 결혼을 하고 싶은 데 어렸을 때 받은 상처를 상대방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고 남자를 사귀기도 어렵습니다.


한 여자의 고민이오.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소. 

이런 일 생각보다 흔하오. 다들 쉬쉬해서 그렇지.


왜 성폭행을 문명화된 국가에서 중범죄로 취급하는지 알고 있소?


아프니까? 

그럴리가. 물리적 상처는 일주일이면 낫소. 


성폭행을 중대한 범죄로 취급하고 사회가 용납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관계"를 파괴하기 때문이오. 

우리가 막연히 추상적인 개념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 무엇보다도 구체적이고 중요한 "관계"를 파괴하기 때문이오. 

성폭행은 온전히 치유되지 않으면, 

우리와 세상을 불신하게 만들고, 

상대방 남성을 혹은 여성을 근본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게 만들며, 

무엇보다도 우리가 자신의 몸과 친구가 되지 못하게 만드오.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갓 나온 새 차를 뽑아서 지극히 소중한 마음으로 차를 다루던 차주에게 어떤 졸라 무책임하고 싸가지 없는 새끼가 자기 똥차로 드립다 들이박고 뺑소니를 친 격이오. 그렇게 새 차가 한 번 망가진데다가 가해자도 못잡고 보상도 제대로 못받고, 심지어 차를 몰고 갈 길(사회 환경)마저 온통 쓰레기 천지에 아스팔트도 제대로 깔려 있지 않다면, 그 때부턴 차를 막 몰게 되는것이오. 아무렇게나. 차가 아무리 망가져도 굴러만가면 되지 식이 되오. 

그렇게 몸을 막 몰게 되는 것이오. 


그렇게 수많은 성폭행 피해자들이 폭식과 절식의 늪에 빠졌으며 손목을 커터칼로 그었으며 몇 번이고 자살시도를 하는 것이오. 


왜? 스스로가 이미 더럽혀졌고, 기왕 더러워진거 갈때까지 가보자는 식이 되는 것이오. 언제까지? 더 이상 더럽힐 수 없을만큼 망가질때까지. 



특히 친족에 의한 성폭행은 죄질이 극히 중하오.  

그것이 피해자의 세계관과 정체성(특히, 자존감), 인생관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오. 


"이 세상은 믿을만한 곳이 아니야" (부모조차 믿을 수 없는 불신의 세계관)

"나는 그런 일(성폭행)을 당할만한, 무력하고 결함있는 존재임이 분명해. 그러니 그런 일이 나에게 생긴 거야" (피해의 책임을 가해자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돌리면서 생기는 낮은 자존감)

"어차피 나는 무력하고 결함있는 존재이니 인생을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아"(기왕 더러운데 아예 진흙밭에 나뒹굴자는 식의 무분별한 인생관 형성) 


결과는? 가벼우면 우울, 불안 같은 심리적 문제들, 그리고 무거우면 범죄, 성매매, 약물중독, 자살시도 등에 빠지기 되오.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다 법륜 때문이오. 

그 자가 던진 망언이 우리들의 메마른 가슴에 불씨를 던졌소. 아주 활활 타오르게 말이오. 

지금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선 난리가 났소. 


(법륜왈) 지금 중요한 것은 이 괴로움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나 책임을 따지는 게 아니라 그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해지는 길을 찾는 일입니다. 



이런 개소리를 신문칼럼에 싣다니. 한겨례는 미쳤소. 


누군가 휘두르는 칼에 베여 피를 흘리는 사람을 보면 가장 먼저는 일단 흐르는 피를 멈추고 그 칼을 휘두르는 놈부터 제압하는 것이 먼저인 법. 책임은 제대로 추궁해야 하오. 설령 그것이 부모고 형제고 친척이고 교사고 애인이고 직장상사이고 심지어 대통령이라고 해도 말이오.그리고 그 책임은 피해를 입은 당신이 아니라 바로 가해자인 그들이 져야 하는 것이오!


피해자에게 필요한 조언은 감사가 아니라 포효이오. 상처입은 야수의 맹렬한 울부짖음이어야 하오. 순간 상처를 잊을만큼 강렬하고 숨가쁜 표출이어야 하오. 


아버지라는 이름의 당신 때문에!

그리고 어머니라는 이름의 당신의 비겁한 침묵 때문에!

나는 지난 세월 이루말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는 현실에서 당신들을 용서해야 하는 댓가로

꿈속에서 당신들을 수도없이 살해해야 했다!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라!

다시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아라!


그렇게 시원하게 온몸으로 퍼붓고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 하오. 

벙찐 그들의 비겁한 면상을 향해 침을 퉤하고 뱉고 나와야 하오


그러나 법륜,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소. 왜? 

비겁하니까. 


왜 사람들이 그토록 고통스러운줄 아시오?


바로 이 세상의 수 많은 법륜들이 피해자들에게 용서와 감사라는 칼을 무참히 휘두르기 때문이오.

그들이 가해자를 제압하는데 써야 할 몽둥이를 들고 무려 피해자들에게 감사하고 용서하라는, 책임을 물어서 무엇하냐는 식으로 압박하기 때문이오. 이것이 범죄가 아니면 무엇이겠소?

이것은 명백한 공범이오. 여기가 선진국이라면 저 발언만으로도 고소감이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이 본래 믿고 사랑해야 할 존재로부터, 공동체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얻어터지고 상처입고 피흘리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소. 


그런 그들에게 종교 지도자라는 이들이, 영적 스승이라는 멘토라는 이들이 터진 주둥이로 나불거리고 있소. 

용서하라고, 무려 가해자인 그들에게 감사하라고 말이오. 


비록 이 글에서는 법륜만을 언급했지만, 그와 같은 자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소. 

그들은,


◎상처를 멈추고

책임소재를 파악하고

책임을 지게 하고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을 걷는 대신,


용서와 감사라는 말로 찌른 곳을 또 찌르고 (잔인하게도!) 

책임소재를 흐리고

책임을 회피하고

결과적으로 피해자의 진정한 치유를 가로막고 있소. 


나는 지금 화가 무척 나있소. 

나는 아프오. 실제로 아프오. 저런 말을 들으면 마치 몽둥이로 얻어맞는 것 같소. 

슬프고 억울하고 화나고 눈물이 나오. 

저 말을 듣고 나보다 더 슬퍼하고 화나고 억울해하고 눈물흘릴 이들에게도 미안하오. 


그리고,


위와 같은 법륜의 말을 듣고 그것을 힐링의 말씀이라 여길 가녀린 내 형제들을 떠올리면, 

그것은 참으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지독한 아픔인 것이오. 


위의 사연을 안타깝게도 법륜 앞에서 말한 그녀에게 법륜 따위로는 범접할 수 없는 친애하는 앨리스 밀러의 글을 빌려 답하고자 하오. 


"성인이 되는 길은 자기가 받는 잔인한 대우를 용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진실을 인식하고 매 맞던 아이에 대한 동정심을 키우는 데 있다. 그 길은 학대가 성인의 삶 전체에 어떤 장애가 되는 지, 얼마나 많은 삶의 가능성을 파괴하는지, 이러한 재앙 가운데 얼마나 많은 것이 다음 세대에 전가되는지를 깨닫는데 있다. 이러한 비극적 인식에 도달하려면 우리는 학대하는 부모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비교하여 상쇄하는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물에 대한 이해에는 서로 서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전제 아래, 다시 연민에 빠지고 잔혹한 처우를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성인이라면 이렇게 비교하여 상쇄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일이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고 생활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앨리스 밀러, 폭력의 기억,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 양철북, 170~171페이지-


그렇소. 부모를 미워해도 되오. 

심지어 증오해도 되오. 

감사할 필요 없소. 

사랑할 필요도 없소. 


아버지는 돌을 던졌고, 

어머니는 그것을 묵인했소. 

둘은 공범이었고, 

공범에 대한 당신의 공분은 참으로 정당하오. 


이제 그만 사랑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시길 바라오. 

그들을 사랑할 필요 없소. 그럴 가치가 없소. 

그들의 좋은 면을 들어 범죄를 가리지 마시오. 

좋은 추억을 들어 성폭행의 기억을 감추지 마시오. 


죄는 죄이고 그것은 그들의 것이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의 것이오, 

당신이 아니라. 


용서하지 말고, 

사랑하지도 말고, 

감사하지도 말고,

이제 그만 벗어나시길. 


용서라는 감옥을

사랑이라는 쇠사슬을

감사라는 족쇄를 

과감히 끊으시길


이로써 진정한 치유의 길을

홀로, 

아니 당신과 똑같은 경험을 한 이들과

함께 나눔으로써 걸으시길. 


진심으로 기원하오





[레벨:6]빛의아들

2013.02.09 (23:48:14)

오세님의 마음은 이해하겠습니다.  법륜스님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비분강개까지 할필요가 있을까요?  그는 그저 자기 입장에서 말했을 뿐입니다.   저도 종교입니다. 기독교인이지요.  기독교적 해답은 무엇입니까?   무조건적인 용서가 아닙니다.

 

기독교적 해답은  자기의 심정을 아버지께 직접 고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상황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럴때 아버지의 말을 들어야합니다.  왜 그렇게 했는지보다  미안하다는 말이나 잘못했다는 딸에게 용서를 구하는 태도가 아버지에게 필요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볼때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천륜인 아버지를  법정에 고발하여 처벌받게 할수도 없는것이 피해자의 심정입니다.  가족에게는 세상의 법과 다른 법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하도록 하는것이 중요하지만  만약에 아버지가  용서를 구하지 않거나 용서를 구할수 없는 상황이라면?  딸이 아버지를 강제로 용서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법륜은 감사하라고 했지만  그것은 정말 아닙니다.  내가 태어난것이 아버지로 말미암음이라고 하지만  기독교의 정신은 내가 태어난것은 아버지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몸을 빌렸을뿐이지 그분들에게 몸을 받은것이 아닙니다. 곧 나는 나일뿐 아버지와 상관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오세님의 주장처럼 아버지를 처벌할수 있는 것은 바로 이때문입니다.

 

그것이 서양이라면  가능하겠지요.  하지만 동양에서는  새로운 답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서양인들처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볼때 피해자는  자기 자신을 존엄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자기를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존엄을 가지고있습니다.  단지  결혼할 남자에게 대한 책임감과 존엄이 충돌하고 있는 것입니다.   책임감은 스스로 책임질수 있을때의 책임이지 스스로 책임지지 못할때의 책임감은 책임감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곧 아버지에 의한 피해의식은  잊어버리는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항력적이고  스스로 책임지고 저지른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성폭행도  스스로  책임질일을 저지른것이 아니라  불가항력적으로 당한것인데  그것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지려고 하는것은  사회가 그렇게 몰아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사회가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에게  잘못했다고 하기 때문일것입니다.

 

가해자들도 무의식중에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유혹했다라거나......기타등등의  상대방에게 책임을 묻는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때문에 문제인것입니다.  지금 이 사회가  성폭행범에 대한 책임을 강화시키는 것은  곧 피해자의 책임이 아닌 가해자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처벌또한 강화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사회도 성폭행범에 대한 처벌과  책임은 강화될것이고  피해자에 대한 관용은 더욱 커져갈것입니다.  그리고 사회가 피해자를  과도하게 피해의식을 주입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야  피해자가 피해의식을가지고 살지 않게 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범륜은 님의 말대로 구시대적인 시대착오적인 판단을 한것입니다.   이 사회가 그 책임을 함께 지고 가야 한다고 해야 맞습니다.  내가 그 책임의 당사자라고  해야 맞습니다.  우리 하나 하나가 변해야지만 사회가 변할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종교지도자들..그리고 사회 지도층들  그들이 변해야합니다. 

 

그래야 장자연이가 다시는 안나오고  피해자들이 경찰서에서 모욕당하고 법정에서 굴욕당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것입니다.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장자연은 계속 나올것이고  피해자들은 경찰서와 법정의 모욕을 피하기 위해서  그냥 묻어두고 살아갈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5]pinkwalking

2013.02.10 (00:26:49)

아, 오세님의 글이 먼저 있었군요.

저 또한 동렬님의 숨은 전제 질문에 있던 법륜의 말에 분노와 역겨움이 일어나 한숨을 몇번이나 쉬었습니다.

 

[레벨:15]오세

2013.02.10 (00:3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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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글을 오독하셨군요. 저는 아버지의 처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다소 무례하겠지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곧 아버지에 의한 피해의식은  잊어버리는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말에 대해 부디 빛의 아들님이 내가 과연 이 말을 피해자들 앞에서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할 수 있다면, 피해의식을 잊어버리라고 말할 수 있다면, 

유감스럽게도 그것이 법륜의 길입니다. 


그리고 피해의식을 잊는게 아니라 오히려 자각하고 그것이 진실이었음을 너무도 가슴아프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었고

입은 상처였고, 여전히 그곳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음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볼 때 진짜 치유가 시작되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어설픈 공감을 하면, 상처를 되살리는 것이 두려워 너무나도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이 두려워 상처를 봉합하고 대충 꼬매고 잊자고 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의사는 그러면 안 됩니다. 그 안에서 곪고 있다면 아파도 과감히 째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마취제 없이도 응급수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왕 일어난 일인데 마음을 편하게 먹고"


이게 누가 한 말인지 아시겠나요?


언제 한 번 기회가 되시면 성폭행 생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어보시기 기원합니다. 

그리고 그들중 과연 몇명이나 피해의식을 잊었는지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잊지않고 기억하는 길을 택했고, 그로써 진실한 구원을 얻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까지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중 하나가 어린 시절 친인척으로 부터 입은 성추행의 기억으로 이십년 가까이 고통스러워했던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담을 공부하면서 아직도 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실제로 입은 피해를 부정하느라 너무나도 막대한 심리적 에너지를 허비하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군가 비명을 지른다면, 그것에 비명을 지를만한 일이 아니니 조용히 하라고 다그칠 일이 아닙니다. 

시끄럽더라도 귀를 기울이고 주변을 살펴서 잘못된 일을 바로 잡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그러니 피해의식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비명소리에서 고개를 돌리지 마십시오. 

아버지에 대한 피해의식을 잊으라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그녀를 두 번 죽이는 일입니다. 

제발. 이제 그런 소리는 하지 마세요. 


어떻게 맞았는게 맞았다는 생각을, 맞았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겁니까?




[레벨:15]오세

2013.02.10 (00: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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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제가 좀 흥분해서 쓴 글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무튼 제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아주 단순한 겁니다. 



1. <피해를 의식하는 것, 즉 피해의식>을 터부시한다. 

2. 그런데 피해의식이 없으면 피해에 대한 자각도 그에 대한 책임소재의 파악도, 치유도 아무것도 없다. 


피해의식이 있는 사람이 소리도 지르고 눈물도 흘리고 광분도 하고 아무튼 난리를 쳐야 사람들이 쳐다보고 공동체가 반응하는 겁니다. 그런데 주변사람들은 자꾸 그럽니다.


"너 억울한 거 알겠는데, 일단 너부터 살아야 하지 않겠니? 그러니 진정하고 일단 밥부터 먹자"

100이면 99가 이럽니다. 


하지만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적어도 구조론 식구들이라면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습니까? 


피해의식은 지극히 정당하고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에 반응하여 피해자를 도와 그녀가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게, 자신이 입은 피해를 생생히 되살리고 증언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기억을 온전히 되찾을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슴의 한이 풀리고 감정이 터져나오고 치유가 되는 겁니다. 그걸 부디 두려워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것이 제가 이야기하는 핵심입니다. 


기억의 되살림. 

진실의 표현. 

이것은 치유의 전제조건입니다. 


피해는 의식되어야 합니다. 생생하게!

그리고 표현되어야 합니다. 온몸으로!






프로필 이미지 [레벨:15]pinkwalking

2013.02.10 (01:32:58)

공감합니다.

피해를 의식해야 무의식에 속거나 조종당하지 않습니다.

고통스러운 기억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다 지난 일임에도 현재에도 여전히 고통스러워 하는 자신,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죠.

 

[레벨:6]빛의아들

2013.02.10 (02:06:05)

제가 처음 사귄 여자친구가   남자관계가 복잡합니다.

저는 본래 순수해서 결혼한 제 아내가 첫 여자이지요.

 

처음 사귄 여자친구는  군대가는 남자친구에게 첫 순결을 뺏겼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이남자 저남자 많이 사귀었고 관계도 많이 맺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죄악으로 느껴지지도 않았겠지요.

 

지금 결혼해서 아들 딸 하나씩 낳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큰아들은 벌써 중학교 들어갈 나이가 되어가고 있지요.

 

성폭행은  잊지 않고  끄집어 내어야한다.  왜? 끄집어 내어야하지요?

고릅를 짜내야 상처가 아물지요.   속에 있는 아픔을 끄집어 내어야  상처가 아뭅니다.

그걸 끄집어 내는 이유는 단순하지요.

 

마음에 있는 것을 담아두는 것이 아니라. 끄집어 냄으로서 버릴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곧 버리기 위해서 끄집어 내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고릅도 짜내는이유는  안에 있으면 더 썩어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법륜은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종교인으로서  그에 맞는 답을 주었을 뿐입니다.

저는 이미  아버지로부터 추행당한 분이 이미 그것을 끄집어냄으로서

이미 해답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해답을 얻은 자에게 해답을 해줄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해답을 얻었으니 그 해답대로 상처를 치유하면 되는 것이지요!

상처는 내가 치유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치유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단,  상처받은 사람의 상처를 덧나게 하는 짓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법륜은 상처를 덧나게 해버렸습니다.

 

수술하면 살수 있는 병인데  수술하지말고 덮어버리라고 합니다.

이것이 법륜의 답변입니다.  님의 분노가 이해가 가는 것입니다.

 

이 대한민국을 보십시요!  님의 분노가 이해가 가지만.....대한민국은 과도기입니다.

성은 문란한데  음지에있습니다.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열심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무엇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연일 성추행에 대한 문제가  잇슈가 되고

언론을 도배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단순하겠지요.

그동안 참아왔는데 이젠 못참겠다는 것입니다.

 

고름이 이젠 더이상 덮을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곳 저곳에서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법륜은 덮자고 합니다. 

님은  더 끄집어 내자고 합니다.

 

공동체에게 있어서 이 문제는 더 끄집어내어야하고  터뜨려야합니다.

절대로 덮어서는 안되지요.

그러나 그것을 꺼낸 당사자 곧 피해자는 치료받아야합니다.

고름을 짜냈으니 이제 상처가 아물어야 합니다.

 

그것을 저는 잊는 방법을 택한것일 뿐입니다.

버리는 것입니다.   속에 두지말고  밖에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자신을 해치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당당해지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부모로부터  맞고 자랐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맞고 자랐고  몸은 언제나 멍투성이었습니다.

심리학을 연구하신 분이신지?  정신병을 치료하시는 의사님인지 잘 모르겠지만....

매일 맞고 자란 아이가  정상적인 사회생할을 할 가능성은 몇퍼센트일까요?

 

전 지금 개인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정상인보다 조금 비정상적인 사람취급을 받습니다만......

그러나 전  대한민국의 어떤 사람들보다 상식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적인 예로...저는 노빠입니다.  그리고 문빠입니다.

 

솔직히 저는 종교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한 사례중에 하나입니다.

어머니는 갑자기 연탄가스로 돌아가셨고 

새어머니 밑에서 22년동안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도 담도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종교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할수 있었다는 것에  동의하지 못할수도 있겠지만......

돌아가신 부모를 용서하고 오히려 그 부모를 그리워하며.....

내 아들을 키웁니다. 

 

성폭행 피해자라고 해서  무조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정답은 없습니다.

단지 제가 드리는 해답은  저도 기독교인이니 종교적인 해답을 드리는 것입니다.

 

 

 

[레벨:15]오세

2013.02.10 (10: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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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아들님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더 드립니다.  


1. 우선, 정답은 있고 그 정답은 이제는 더 이상 종교적 해답이 아닙니다. 


종교인은 종교적 해답을, 심리학자는 심리적 해답을, 사회학자는 사회적 해답을..

이렇게 각자의 해답이 있는게 아닙니다. 지금은 정답이 있는 시대입니다. 인류의 집단지성은 이 문제에 대해 다각도로 연구해왔고 이제는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하라는 정답이 콕 찍어져 있습니다. 문제는 다들 그 정답을 회피한다는 점이지요. 왜? 두려우니까. 문제를 직면하기가 무서우니까. 폭력의 문제가 전 사회에 만연해있다는 단순한 진실을 직면하기가 무서우니까. 


하지만, 지금은 21세기 입니다. 성폭행 문제 하나만 하더라도 이것이 서구에서 공적인 연구 주제가 된 것이 거의 한 세기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아예 <대응 매뉴얼>이 나와있고 각 단계에서의 치료 조치 및 보호 방법에 대한 상세한 안내까지 나와 있습니다. 물론 거기 안에는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가능한 안전하고 치유적으로 진술할 수 있게 돕는 절차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폭행(뿐만 아니라 아동학대도 포함)이 개인에게 끼치는 심대한 악영향과 그러한 악영향을 해소하는 방법까지 다 나왔습니다. 그러한 치유법들이 종교적 원리인 알아차림이나 용서, 놓아버리기(letting-go)를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종교가 아니라 이미 과학입니다. 마치 의사들이 한약에서 특정 성분을 추출해서 사용하듯 그렇게 쓰는 겁니다.


그냥 무조건 아픈 경험을 끄집어내라가 아니라 안전하고 보호받는 환경에서 자신의 경험을 debrief(우리 말로 번역하면 털어놓기 쯤 될 것 같네요)하는 절차가 다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매뉴얼 그 어디에도 잊고 용서하고 놓아버리라는 절차는 없습니다.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고 살면 괴로우니 그냥 잊고 부모니까 감사하고 사랑하며 살아라는 구절 따위는 없습니다. 왜? 그것이 반-치료적이니까요. 


설령 누군가 나는 나를 학대한 부모도 사랑하고 용서하기로 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해도 그것이 치료 매뉴얼에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왜? 그것은 특수한 사례에 불과하며, 일반화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학은 일반화가 되어야 하지요.  


님이 스스로 내린 종교적 해답에 대해선 제가 덧붙일 말이 없습니다. 

그것은 사적 경험이고 님 나름의 진실한 치유의 체험이었을테니 말입니다. 

다만, 그 답은 종교 공동체 안에서 공유될 일입니다. 

법륜처럼 그것을 공적인 영역으로 들고오면 곤란합니다. 당장 학자들과 전문가들의 반박 들어옵니다. 


정답이 없을리가 없지 않습니까. 정답이 없는데 왜들 그렇게 분노합니까?

쿨하게 그냥, 음... 종교인이 종교적인 대답을 했군하고 넘어가면 되지요. 그런데 왜들 분노할까요?

이번 법륜사태에 분노한 사람들을 잘 보세요. 누가 분노하지요? 


신문 광고에 어느날 기적의 물로 암을 치료했다고 나면 일반인들은 음... 그럴 수도 있나? 하고 넘어가지만,

전문가들은 다릅니다. 당장 신문사에 전화하고 항의합니다. 

그리고 그 물을 마셨는데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한 사람들도 당장 신문사에 항의합니다. 왜? 그 약이 가짜였으니까. 

누군가는 그 약을 먹고 나았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 약을 먹고도 아직 낫지 않은 사람들이 99%니까. 


2. 용서는 치유의 메커니즘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용서를 치유의 메커니즘인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천만에요. 용서하면 낫는다? 상처가 사라진다? 

인간에게는 원래 화를 풀고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용서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하는 사람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입니다. 


가해자의 사과와 보상은 용서에 가장 크게 기여합니다. 가해자가 자신의 고통-처벌, 사회적 비난, 그 밖의 제재-을 감수하고 사과와 보상조치를 취할 때, 아무리 끔찍한 범죄라도 인간은 용서할 수 있습니다. 관계수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이라는 국제운동은 피해자들의 복수심을 없애고 용서를 불러일으키는데 매우 효과적이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피해자-가해자 회합에 참여한 가해자들은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 그리고 대개 진실한 사과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설명도 덧붙인다. 그리고 아마 부끄러움과 자기 비하의 비언어적 신호도 보냈을 것이다. 이 회합에서 가해자는 지위가 낮아지거나 감정적인 고통을 경험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간과할 수 없는 점은 이 회합이 배상금 지급 계획으로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용서에서는 오히려 가해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게 최근의 흐름이고 연구 결과입니다. 단순히 피해자가 그래! 용서하자!고 해서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치료에는 다음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 먼저 어린 시절에 입은 정신적 외상 앞에 마주서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고 세워놓은 수많은 보호기제를 밝혀내야 한다.. 어른에게는 둘 다 가능한 일이다. -앨리스 밀러, 사랑의 매는 없다 중에서-


불행히도 지금껏, 특히 종교는 우리가 학대라는 진실을, 폭력이라는 사실을 직면하지 못하게 수많은 방어기제들을 세워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우리가 용서라고 부르며 칭송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지요. 저는 우리가 고통을 느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냥 묻어두고 용서하고 넘어가면 마음은 편합니다. 하지만 몸은? 


우리의 몸은 잊지 않습니다. 우리가 당한 그 모든 것을 말입니다. 


이 글이 빛의아들님께 드리는 마지막 글입니다. 


폭력과 학대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종교는 무력하고 비겁하고 진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물론 부처님과 예수님의 본뜻은 달랐겠지요. 하지만 그 이후의 종교의 공식적인 태도는 항상 그래왔습니다. 

네 부모를 존경하고 사랑하라. 명령조로 말했습니다. 

다 사랑해서 그런거다. 신의 뜻이다. 그러니 용서해라


천만에요. 그것은 사랑도 아니고 용서해서 될 일도 아닙니다. 폭력은 잘못입니다. 아동학대는 멈춰져야 합니다. 상처를 멈추고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먼저이고 용서는 나중입니다. 용서가 먼저가 아닙니다. 


부모를 존경하지 않아도 되고 사랑하지 않아도 됩니다. 역설적이지만 사랑하지 않아도 여전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맨얼굴을 보고도, 그들의 무지와 추악함, 폭력과 학대를 있는 그대로 보고도 여전히 사랑하고 용서한다면 좋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진실이 우선입니다. 용서와 사랑은 나중입니다. 


하지만 종교인들이 용서와 사랑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비겁해서 입니다. 두려워서 입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비명소리를 지르면 달려올, 반응할, 도와줄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겁니다. 빛의 아들님과 제가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용서는 정말로 최후에, 마지막에, 모든 것이 끝난 후에 할 말입니다. 









[레벨:15]오세

2013.02.10 (01:04:27)

전송됨 : 트위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2.10 (09:49:09)

법륜을 욕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식한 사람이고. 트라우마 뿐만이 아니라 

사랑도 그렇습니다. 많은 커플들이 깨지는 이유는사랑한다는 사실을 부정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화가 나고 약이 오르고 짜증이 납니다. 화를 
내고 짜증을 부려서 커플이 깨지는 겁니다. 무식이 문제를 악화시킵니다.

많은 부분이 무의식에 지배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문제가 

있는데 그걸 덮어놓으면 다른 문제로 전이가 됩니다. 암처럼 문제가 이리

저리 옮겨다닙니다. 당사자는 자신의 문제를 모릅니다. 프로이드가 최면

술을 걸어서 그 사람의 문제를 찾아줘야 합니다. 문제를 은폐하면 악화된

다는 거지요. 미군만 해도 전사자보다 자살자가 더 많습니다. 제대군인

들도 굉장히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문제를 일으키므로 고용을 기피합

니다. 그래서 취업도 안 된다고 합니다. 왜 문제를 일으킬까요? 전이가 

되어서 그러합니다. 김지하 보십시오. 자기 병을 모릅니다. 김지하가 저리

된건 법륜 같은 착한 조언자들 때문입니다. 아마추어가 나선거죠. 

[레벨:0]슈퍼바둑이

2013.02.10 (10:48:38)

오세님, 법륜스님은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고, 성범죄자를 비호하지도 않았습니다.

법륜스님은 성범죄자에 대해 법적, 사회적 책임은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 전재 아래, 피해자가 좀 더 자유로워지기를,  좀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말씀으로 보여집니다.

어떤 상황에도 참회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그것이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라는 것이

스님의 지론입니다.

스님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을 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법륜스님은 우리 시대의 종교인으로서 참된 길을 가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분이십니다.

그 분의 답변을 동의는 못하더라도 존중은 해 줘야 하지 않을까요. 오세님의 진정성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법륜스님의 진정성도 믿어 의심지 않습니다.

법륜스님의 답변을 비판하는 것보다는, 오세님에게 피해자가 그런 질문을 바로 앞에서 했을 때

어떻게 말로서 답변해야 할 지 고민하는 게 낳지 않을까요.

[레벨:15]오세

2013.02.10 (11:22:17)

전송됨 : 트위터
법륜의 진정성을 믿으면서 제 진정성을 믿는다구요?
할 말이 없네요

동의는 못해도 존중은 해줘야 한다구요?

그 존중이 저런 엉터리 답변을 낳는겁니다.
뉴욕타임즈에 저런 칼럼이 실렸다면 무슨일이 벌어질까요?

편집장부터 시작해서 다 잘립니다.
[레벨:0]슈퍼바둑이

2013.02.10 (13:09:16)

제가 두 분의 진정성을 믿는다는 것은..
최소한 나쁜 마음으로 그러한 말들을 하는 것은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님께서는 엉터리 답변으로 규정하셨지만,
저에게는 훌륭한 답변입니다.
피해자가 스님께 물었고, 스님은 답변을 했을 뿐입니다. 실제 즉문즉설현장에 가 보면 님께서 규정하시는 그 엉터리 답변을 통해 많은 분들이 치유와 회복을 얻고, 깨달음을 얻습니다. 물론 오세님처럼 아닌 분 들도 있겠지요.
피해자가 법륜스님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오세님을 찾아가게 만들 수 없을 지 고민해 보는게 더 올바른 길 같습니다. 정말 법륜스님의 의견이 아니라면요, 본인의 주장에 확신하고 계신다면요, 피해자를 위해서 더 좋은 길이라면요..정말로 그러하다면, 법륜스님과는 비교도 안되게 오세님에게 많은 피해자들이 오세님의 조언을 들으러 몰려오지 않을까요..
법륜스님이 종교인으로서 부정부패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단지 하나의 답변으로 그 분을 중대 범죄자로 몰아가고, 그 누구보다도 성범죄자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주장하시는 분인데, 성범죄자를 비호했다고 호도하시는 건 정말 아닌 것 같습니다. 최소한 오세님만큼은 정직하게 살아갈려고 노력하시는 분입니다.
저의 부족한 글로 오세님의 심정이 상하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정겨운 설명절 되시기를 바랍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6]id: 15門15門

2013.02.10 (13:40:56)

불쑥 끼어들어 죄송합니다만 저도 즉문즉설현장에 가본 사람으로써 한말씀 하고 싶네요.

대개 저도 그렇고 즉문즉설에 가시는 분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필요한 지

모르기 때문에 가는 분들이 태반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것은 그 곳에 온 그분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원합니다. 물론 

법륜스님이 듣기 좋은 소리를 하시는 건 아니죠. 하지만 종교적 맥락에서 하시는 용서와

자기 자신으로의 귀환이란 말씀은 대개 허무로 귀착됩니다. 결국 영화 '밀양'에서 

자신의 아들을 잃은 전도연이 '밀양이 어떤 곳이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인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죠'라는 말과 같습니다.

저는 그 즉문즉설을 다녀온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며 느꼈습니다. 자신의 고민을 상담하시고

온 어머니가 말씀하시더군요.

"나만 그런 거 아니더라. 다른 사람들은 훨씬 더하더라."

결국 그런 맥락으로 사람들은 허무와 위로를 동시에 받는 것이죠.

때문에 사람들이 법륜스님에게 많이 찾아가고 오세님에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논리로

오세님의 말씀의 가치를 판단하실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오세님의 분노는 과거 상처입었던 자가 현재 상처입은 자의 아픔을 

공감하는 절규라고 생각합니다. 그 아픔을 공감하실 수 없기에 그 아픈 사람이

너가 아닌 나라고 공감하실 수 없기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부족한 글이 님의 심정을 상하게 하진 않았을지 몰라 먼저 사과드립니다.

즐거운 명절 되시길 바랍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6]id: 15門15門

2013.02.10 (12:15:23)

오세님이 말씀하신 종교와 용서에 관한 문제에 있어 의문을 표하는 분이 계시다면 

영화 '밀양'을 보시는 것도 그 화두를 좀더 뚜렷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레벨:4]sunbee

2013.02.14 (02:53:08)

피해자 개인의 평화를 위해서는 법륜스님의 논리가 타당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전체를 위해서는 맞지 않다고 봅니다.

프로이드 이후 수많은 학자들이 그 문제를 연구하고 해법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각자의 견해는 달리 할 수 있지만 제 경우는 오세님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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