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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양을 쫓는 모험
read 5407 vote 0 2011.10.16 (21:45:40)


1. 스티브 잡스의 죽음

 

 

스티브~1.JPG

 


지난 2011년 10월 5일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사망했다. 이미 많은 언론을 통하여 그의 일대기가 재조명되었을 테지만, 그의 인생은 회자될만한 이야깃거리로 가득하다. 선불교의 고수이자, 채식주의자, 언어의 마술사, 신경질 쟁이...

그는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제작했고, 젊은 나이에 엄청난 부자가 되었고, 그가 설립한 애플로부터 거의 쫓겨나듯이 회사를 나와야만 했고, 픽사를 인수하여 '토이스토리' 의 대성공으로 시작되는 3D 애니메이션의 시대를 열었고, 다시 멋지게 애플의 CEO로 재기에 성공하여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맥북, 아이패드 등의 획기적인 제품으로 애플의 제 2의 전성기를 이끌어냈다.

그는 이제 죽고 없다. 폭풍처럼 살다가 먼지처럼 사라졌다. 생의 모든 에너지를 세상에 뿌리고 죽었기에 그 스스로의 죽음에 손톱만큼의 아쉬움도 없을 것이다. 단지 산 자는 산 자를 위한 눈물을 흘릴 뿐이라 믿는다.



2. 잡스 졸라 땡큐!


21세기와 함께 인터넷의 시대가 열리고, 새로운 형태의 인터넷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기존의 활자와 공중파 미디어가 아닌 인터넷 방송이 등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자신의 방송 컨텐츠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적은 비용으로도 미디어를 운영할 수 있는 기술력이 확보되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인터넷 방송 컨텐츠는 나타나질 않았다. '아프리카TV'와 같은 개인 방송이 등장하였지만, 대부분 게임방송이나 1인 토크, 축구경기나 선거, 콘서트 등의 이벤트를 생중계 하는 형식 정도다. 그러니까 아직까지도 인터넷에서 자체제작된 '컨텐츠' 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고, 설혹 있더라도 인터넷 환경에 보편성을 갖는 스타일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방송을 제작하는 것과 그것을 컨텐츠 화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1인 미디어가 기술적으로 가능해진 세상이지만, 그 특별한 1인이 지속적으로 꾸준한 수준의 컨텐츠를 생산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카메라와 노트북만 있으면 가능할 듯 하지만, 시작과 끝이 있어야하고, 자료와 내용이 분명해야 하고, 수신자에게 가치를 주어야 한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것이며, 더구나 수익구조가 불분명하다는 것이 더욱 힘들게 한다.



 나는%2~1.JPG

 

아실랑가 모르겠지만, 애플의 아이튠즈 팟캐스트에 언어의 장벽을 넘어, 전 세계 시사/뉴스 분야 1위에 당당하게 랭크되어있는 우리나라의 오디오 컨텐츠가 있다. <나는 꼼수다> 국내 유일 가카 헌정방송이 그것이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 김용민 전 교수, 노원구 공릉동 월계동을 지역기반으로 하고있는 17대 국회의원 정봉주 그리고 정통 시사주간지 시사인의 부끄러운 주진우 기자. 이렇게 네 명이 함께 국내외 정치 현안에 관하여 사실관계 전달, 분석과 예측을 담은 내용이다. 그리고 무료 컨텐츠가 1주일 동안 170만 건이상 다운로드 된다고 한다.

그 <나는 꼼수다> 22회 김어준 총수의 클로징 멘트는 다음과 같다.

"<나는 꼼수다>를 각하께 바칠 수 있도록 토대를 제공해준 이 시대의 천재, 잡스에게 이번 방송을 헌정하는 바 입니다. 잡스, 졸라 땡큐!"



3. 나는 꼼수다


<나는 꼼수다>열풍은 인터넷 방송 컨텐츠의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했다. 물론 누구나 팟캐스트를 운영한다고해서 <나는 꼼수다> 처럼 인기와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닐테지만, 인터넷 방송의 새로운 구조가 <나는 꼼수다> 22회 김어준 총수의 클로징 멘트에서 알 수 있다.


스티브 잡스               김용민 교수                     김어준 총수                    정주봉 전 의원             주진우 기자
(팟캐스트 시장) > (방송 제작 인프라) >  (졸라 씨발 스타일) > (전개와 잇슈 증폭) > (사실관계, 메시지 전달)


스티브 잡스가 아이튠즈에 팟캐스트 시장을 열었다. 이미 이전부터 인터넷 방송이 있었지만, 모바일에서도 쉽게 접속이 가능하고, 곳곳에 분산된 채널이 아닌 아이튠즈라는 시장을 만들어 내면서, 인터넷 방송 컨텐츠를 더 많은 사람들이 소비 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다.

극동방송 PD 출신인 김용민 교수는 <나는 꼼수다>에서 그리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컨텐츠 제작을 위한 전반적인 인프라를 제공한다. 각종 로고송에서부터 녹음 중 간간히 성대모사까지 하여 보이지 않는 재미를 더한다.


 

김어준.jpg 

김어준 총수가 가장 중추적인 역할인데, 그의 언어구사 스타일과 진행능력이 바로 인터넷 환경에 적합한 것이다. 때때로 "졸라', "씨발" 과 같은 비속어를 섞어가며 추임새를 넣는다. 물론 인터넷 방송에서 욕을 잘 한다고 좋은 컨텐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요는 공중파에는 공중파 스타일의 컨텐츠가 있고, 케이블 방송에는 그에 어울리는 형태의 컨텐츠가 있고, 인터넷 방송에는 또 인터넷 방송만의 스타일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케이블 채널 TVN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남녀탐구생활> 과 같은 컨텐츠를 공중파에서 방송되었다면 절대적으로 망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공중파에서 할 수 없는 독창성이 있어야 하는데,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같은 방송에서는 사실관계에 어긋나는 발언이나 예측을 할 수 없다.

<나는 꼼수다> 특유의 '똘끼'를 발휘하여, '각하 헌정 방송' 이라는 독특한 형태, 그리고 어려운 정치를 농담처럼 쉽고, 정확하게, 그리고 "각하께서 그러실리는 없겠지만..." 으로 시작되는 예측. 이러한 형식은 공중파에서는 할 수 없기에 인터넷 방송만의 가치를 갖게한다. 그리고 스타일을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김어준 총수가 있기에 가능했다.

정봉주 17대 의원은 전직 국회의원으로서 정치권에서 입수한 정보와 함께 컨텐츠의 형식을 완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매번 "노원구 공릉동 월계동을 지역기반으로 하고 있는, 위대한 정치인,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 17대 국회의원 정봉주 입니다." 라는 멘트는 그저 농담이 아니라, 반복하여 들려주면서 컨텐츠의 지속성을 살리고,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시사인의 주진우 기자는 <나는 꼼수다>에 가장 늦게 합류한 구성원인데, 사실 주진우 기자가 합류하기 전과 후의 컨텐츠의 깊이가 다르다. 이전까지는 김어준 총수와 정봉주 전 국회의원의 말장난 같은 느낌이었다면, 주진우 기자가 합류하면서 내용이 풍부해지고,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사건이 의미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게 되었다.

<나는 꼼수다>가 인기를 얻자 팟캐스트가 알려지고, 팟캐스트의 다른 컨텐츠도 점차 인기를 얻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최진기의 인문학 특강> 이 있다. 이또한 전개 스타일이 기존의 공중파와는 다르게 진행된다.



4. 저그형 인간

빌게이~1.JPG

 

필자는 예전부터 스티브 잡스를 '저그형 인간' 이라고 평가했다. 블리자드의 게임 <스타 크래프트>의 저그 종족 처럼 곳곳에 분산하여 멀티 기지를 세우는 것처럼, 스티브 잡스는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고,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를 제작하고, 일체형 P 아이맥을 출시하고, 컴퓨터와는 거리가 먼 MP3 플레이어 '아이팟'과 '아이튠즈' 음원시장을 만들고, 아이패드 라는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를 제시했다. (아이패드를 태블릿PC 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이것은 하나의 포스트를 기준으로 점점 그 영역을 확장하는 테란의 스타일과는 분명히 구분이 된다. 스티브 잡스와 비교되는 IT분야의 큰 손인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이것에 속하는데, 개인용 컴퓨터용 OS, Windows를 기준으로 OA 프로그램(Office), 메신져, 게임기 사업 등으로 점차 범위를 넓혀갔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테란형이냐고? 뭐... 그리 볼 수도 있고... 닥치는 대로 문어발식 확장에 독점시장을 만드는 것, 그로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기회를 상실하게 되는 것.)

스티브 잡스는 하나의 제품을 만든 것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시장을 발견하였다. 경쟁을 통하여 가치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면서 더 많은 가치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음을 증명하였고, 방향성을 제시하고 끊임없이 혁신하였다.

"무한의 공간 저 넘어로!"

스티브 잡스가 제작한 토이스토리의 명대사, 그것이 잡스가 우리에게 진정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
.
.

그리고 우리는 '팟캐스트' 라는 시장에서 <나는 꼼수다>를 듣고, 웃고, 거룩한 분노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잡스, 졸라 땡큐!




p.s. 스티브 잡스 헌정 칼럼 이었음.

 

여러가지 얘길 했지만 본질은 나꼼수의 컨텐츠 구조가 시장 > 인프라 > 스타일 > 진행 > 메시지 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

 


프로필 이미지 [레벨:21]이상우

2011.10.16 (22:38:18)

멋진 분석입니다. 구조론적 전개와 환상적인 출연진 조합이 신기술을 통해 인류와 연결되니

이슈파이팅에서 조중동은 손가락만 빨고 있고 나꼼수가 대세가 된 형국입니다.

[레벨:3]불멸

2011.10.17 (10:24:39)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

시작부터가 완전성의 스크래치가 큰 사람..

그 큰 스크래치를 회복하는 무언가 찾아야 했고..

애플을 통해 대중들의 인정을 받음으로써..

완전성의 스크래치를 매운 사람..


나는 무엇으로부터 스크래치를 받았는가..

무엇으로 스크래치를 매울수 있을가..


이것이 잡스를 떠나보내며 얻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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