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실

현물 증시의 파생시장은 원리적으로 제로섬 게임이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선물거래란 건 서로 다른 두 시장참여자가 기초자산인 현물을 다가올 특정한 시점에 특정한 가격으로 거래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물의 만기일이 되면 그동안 선물시장에서 만기일의 기대치를 두고 베팅했던 서로 다른 시장참여자들은 자신들의 베팅수치와 실제 현물가격의 확정치에 대한 차이만큼 정산을 해야한다. 


증권거래소는 이 가운데 위치해서 각각 상반되는 포지션을 구축할 플레이어들을 짝지어 중개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예컨대 코스피200지수의 현물가격이 200에서 형성되어있는데 한달 후 만기일을 가진 코스피200 선물거래가 201 높이에서 한 계약 체결되었다고 치자. 


이는 만기에 예상되는 현물가가 201은 싸다고 생각해서 선물을 매수한 세력과 비싸다고 생각해서 매도한 세력이 쌍을 이루어 한 단위의 경합을 벌였다는 뜻이다. 


이후 만기일에 막상 현물가가 200으로 마감을 내렸다면 201 높이에서 매수했던 쪽의 자금 1만큼이 매도했던 쪽으로 넘어가는 식으로 각 포지션이 청산되어 한 싸이클 짜리 선물시장은 막을 내린다.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익숙한 현물 시장은 산업의 확장이라는 외력이 지속적으로 작용하므로 모두가 윈윈 할 수 있지만, 이와 달리 파생시장이란 외력이 추가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 닫힌계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만기가 도래할 현재가격에 대하여 시장 구성원들 간 서로 다른 기대치가 있을 수 있다. 


낙관론이 시장을 지배할 땐 그냥 모두가 선물을 매수하면 되지 않냐고 착각할 수 있는데 그건 구조적으로 불능이며, 이 경우엔 아예 모든 기대치를 반영시킨 높은 가격대를 기준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싸냐 비싸냐가 경합을 벌일 수 있을 뿐이다. 


본질적으로 따지자면 시장 구성원들의 시각 간에 불균일이 촉발된다면 이러한 불균일했던 시황관들은 축을 대칭으로 양쪽에서 50대 50 쌍을 이뤄가며 처리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 싸이클의 이야기이다. 


이번엔 각각 1계약의 포지션을 구축할 수 있는 1자금력을 보유했으며 제각각 서로 다른 시황관을 가진 시장 참여자들이 100명이 있다고 치자. 100명의 기대치가 제각각 다르니 50쌍의 선물거래 계약이 체결될 것이며, 이는 총 거래의 평균치에서 50대50 대칭이 조직되어 처리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상태에서 한 싸이클의 만기가 도래했을 때 사전에 선물거래가 이루어진 고도와 만기일 현물의 고도 간 차이가 발생한다면, 적어도 일부의 시장 참여자는 나머지 참여자들에게 자신의 자금을 잃고 패배한 자의 시황관은 시장에서 퇴출되는 건 빼도 박도 못하는 진실이다.


설령 선물거래의 평균지점과 만기일 현물가격의 확정치가 동일하다 할지라도, 100명 중 그 확정치를 가장 못 때려맞춘 참여자는 가장 큰 내상을 입을 것이다. 타격을 입은 일부 구성원이 더 이상 단 한 계약을 베팅할 자금조차 남지 않는다면 '그사람=시황관'은 시장이라는 전체에서 '소모=퇴출'된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다음번 싸이클을 보자. 앞선 싸이클에서 두명이 탈락했다면 남아있는 불균일한 계의 분량은 98명이다. 이 역시 전체적인 평균이라는 축을 대칭으로 50대50 계약이 이루어진다. 


계속 반복해서 100자금을 모두 차지한 최후의 1인이 남는다면? 시장 전체의 자금은 100그대로이니 당장 눈에 보이는 것으로는 질'량'의 보존이다. 허나 더 이상 상충되는 시황관이 남아있지 않으니 추가적인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후의 1인이 끝까지 이겼다는 건 다른 말로 하면 단지, 시장과 결이 잘 맞는 합리적인 시황관이 그렇지 못한 녀석들을 제껴온 거라 할 수 있겠다. 최후의 1인이 지금까지 죽어나자빠진 자들에게 도로 자금을 돌려주며 게임을 다시할까? 


그런짓을 절대로 하지 않기에 비로소 최후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다. 보드게임 부루마불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엔트로피이다. 만기일이 도래하기 전 기간동안 선물의 가격은 시시각각 유동적일 수는 있다. 다만 만기 가격이 200이 된다면 총 합성포지션의 중간값은 200근처인 것이 보통이다. 


만약 전체적인 총량의 대칭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변동성이 큰 바 시장유동성이 충분치 않다는 건, 자산가격에 대한 시장상황의 실시간 반영도가 비효율적이었다는 뜻이다. 시장 전체의 거시적인 뼈대는 그렇게 자주 바뀌지 않는데 비해, 시장 참여자들 간 포지션이 급격한 차이를 보였다는 건 그만큼 정보의 비대칭성이 큰 비효율적인 시장임을 시사한다.


이 경우 만기일에 대박을 치는 쪽수도 많지만 쪽박을 차는 쪽수도 많아진다. 이런식이면 최후의 1인이 훨씬 금방 결정되어버리는 즉, 불균일이 해소되는 사건인 '거래'가 더 이상 이루어지지 못한다. 실시간으로 대칭을 조직하는 것이 비효율적일수록 전체의 통제가능성은 빠르게 소모되어 간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9.17 (02:13:24)

선물시장을 닫힌계로 보기 위해서는 선물시장 참여자(또는 이해관계자)들의 시장의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능력이 비슷하거나 없는(아주 미미한) 경우에만 가능한 것 아닌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7]현강

2019.09.17 (07:46:32)

예 실제로는 현물의 급격한 시세변동이 현선물 간 차익거래를 유도하는 등 선물의 시세변동에는 여러 요인들이 작용하죠. 엄밀히 말하면 모든 자산들은 서로 엮여있기에 제가 선물을 닫힌계라 설정하고 글을 진행시키게 된 연유를 본문에서부터 장황하게 쓸까도 생각해 보긴 했었습니다.


사실 제가 논하고 싶었던 맥락은 자본시장에 추가적인 모멘텀이 주입되지 않는 한, 기존 재료(모멘텀=외력)에 대하여 호재인지 악재인지 혹은 누가봐도 악재이지만 얼마나 더 악재인지에 대해선 시장 내부의 각 시장참여들의 시각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불균일이 해소되는 과정에 대해선 현물시장보다는 대놓고 제로섬인 파생시장을 예로 들어 설명하기가 용이하다고 판단했구요. 사실 현물도 동일한 가격지점에 대해서 싸냐 비싸냐하는 불균일이 닫힌계(매수자 대칭 매도자)를 조직해 처리된다고 할 수 있겠죠. 


아시다시피 실제로 시장에선 단지 큰손들의 일시적인 호가 밀어내기(일명 돈질 하기) 혹은 sns나 언론을 통해 분위기를 조장하는 정도로도 일반적인 소액 개인투자가들의 대응전술은 실시간으로 변하긴 합니다. 이를 달리말하면, 이들의 시황관이 큰손들의 묵직한 시황관과는 깊이 면에서 분명히 차이점을 갖는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예측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니 뚝심이 발휘되기 힘든 것이죠. 슈퍼개미들 입장에선 어리숙한 세력이 투매를 유발시키려고 너무 얼도당토 않는 상황에서 물량은 집어던지면 얼씨구나하고 신용대출 풀로 땡겨서라도 싼 값에 매집대응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건은 일반적이진 않지만 결과적으로 호구 큰손 세력이 오히려 개털되어서 퇴출되며 역시나 불균일은 해소됩니다. 


각기 다르게 형성되는 시황관들 간에는 즉, 동일한 뉴스로부터 시장상황을 진단하는 정도는 시장이란 놈의 생리를 이해하는 깊이에 따라 차이를 갖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미래에 대한 예측치가 얼마나 정확한가하는 기준 하나를 두고 비교가 됩니다. 따라서 큰손들이 추가뉴스로 가격 추세를 부추기지 않더라도 어차피 가격의 방향성은 보다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그들이 더 잘 맞추며, 자금의 흐름은 우둔한 돈에서 똑똑한 돈으로 향합니다. 


결국 시장도 이끌어가는 측과 상대적으로 끌려가는 측의 역할분담 플레이에 의해 연출 된다는 것이죠. 시장주체 간 동일한 데이터에 대한 시각은 제각각이며 심지어 정보시스템의 비효율 때문에 애초 접근할 수 있는 데이터의 질 자체가 다르기도 하지만, 퉁쳐서 시장상황에 대한 관점들의 불균일은 거래를 통해 해소된다고 하겠습니다. 


최근 몇 달 간 자본시장에 대한 글을 올리려고 원문들을 잔뜩 써놓고 있긴 한데, 제가 읽어봐도 이처럼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만한 빈틈들이 넘쳐서 거듭 수정 중에 있습니다. 최초의 닫힌계를 설정하기만 하면 되는건데 용어의 선택이 쉽지만은 않다는 걸 새삼 절감하게 되는군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13]kilian

2019.09.17 (10:11:45)

상세한 답변 감사합니다. 좋은 글 계속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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