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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861 vote 0 2021.10.18 (11:11:18)

    말을 하기 시작하면 말이 권력을 가진다. 말을 타면 말에 끌려가고 말을 하면 말에 끌려간다. 나는 대충 숨어서 내 몫 만큼만 살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바른 것으로 대체해 보이기는 어렵다. 인류는 통째로 잘못 가고 있다. 거함의 방향을 트는 인류 단위의 거대한 작업에 착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과학은 배우는 것이고 철학은 말하는 것이다. 말하려면 아는 것으로 부족하고 하나가 더 있어야 한다. 무대가 세워져 있어야 한다. 마이크가 쥐어져 있어야 한다. 먼저 발언권을 획득해야 한다. 다음 말은 앞말과 연동시켜야 한다. 내뱉은 말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내 입을 떠난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고 언어에 구속되는 것이다. 언어는 세상 속으로 침투해 들어간다. 엔트로피가 적용된다. 한 방향으로 계속 가게 된다. 톱니가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상호작용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 세계는 다른 세계다. 여기까지 와버리면 남탓할 수 없고 자체엔진을 가져야 한다.


    철학의 출발점은 인간선언이다. 인간다움이 있어야 한다. 인간과 동물은 다르다. 문명과 야만은 다르다. 진보와 보수는 다르다. 인간다움, 문명다움, 진보다움이 언어의 주춧돌이 된다. 인간은 별수 없는 동물이다. 내 안의 절반을 버려야 한다. 거기서 또다시 절반을 버려야 한다. 야만성을 버려야 한다. 또다시 절반을 버려야 한다. 보수성을 버려야 한다. 선택지는 갈수록 줄어든다. 한 번 내뱉은 언어가 세상 속으로 침투하면 이제는 대충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말이 통해야 인간이다. 인간이 원래부터 말을 했던 것은 아니다. 10만 년 전에 어느 사피엔스가 언어를 발명한 것이다. 그리고 대략 3만 년 이상 동물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여전히 동물의 털옷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말을 가로막는 것은 인간의 동물적 본능이다. 호르몬과 무의식이다. 부지불식간에 잘못된 행동을 하게 된다. 적어도 말을 배운 사람이라면 동물에 없는 다른 것을 보여줘야 한다.


    주술의 조종하는 언어.. 약자가 암시를 걸어 타인의 마음을 조종하려고 한다.
    감성의 공유하는 언어.. 약자가 리액션을 하고 눈치를 보며 분위기에 맞게 행동한다.
    권위의 제압하는 언어.. 강자가 대중을 질타하고 도덕적 훈화를 늘어놓으며 허세부린다.
    이성의 방어하는 언어.. 지식인이 냉소하고 회의하며 방어적인 태도로 자기 할 일만 한다.
    의리의 침투하는 언어.. 언어를 얻어 공격적으로 판을 짜고 게임을 설계하고 결과에 책임진다.


    인간이 짜증을 내고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은 암시를 걸어서 타인의 마음을 조종하려는 주술행동이다. 문제는 무의식적 행동이므로 본인이 자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기의 어리광은 보호자에게 암시를 거는 것이다. 아기라서 괜찮지만 어른이 그런 짓을 한다면 위험하다. 감성적 태도는 집단을 끌어들이고 집단에 녹아드는 점에서 동물적 행동이다. 감성은 태도를 공유하여 의사결정을 집단에 떠넘기는 것이다. 책임을 떠넘긴다면 인간이 언어를 배운 의미가 없다. 대중을 질타하며 도덕적 훈화를 늘어놓고 인간 위에 군림하려는 지식인의 시건방이 알고 보면 두목 침팬지의 권력행동이다. 윤석열 침팬지가 유명하다. 냉소하고 회의하며 쿨한 척하는 이성주의도 역겨운 것이다. 그게 나약한 지식인의 현실도피다. 언어는 칼이다. 칼을 쥐었으면 요리가 나와야 하는데 고작 하는 짓이 자기방어다. 언어가 지식인의 갑옷에 그친다면 허무하다. 감성이든 이성이든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의 행동이다. 언어를 획득한 자는 그 이상을 보여줘야 한다.


    인간에게는 언어가 있다. 언어의 칼날은 타인 속으로 침투한다. 지식인은 언어로 자신을 방어하면서 그것을 이성이라고 한다. 공자가 가르친 것은 다르다. 언어가 무기다. 칼을 쥐었으면 요리가 나와야 한다. 자동차를 샀으면 운전해야 한다. 언어를 연주해야 한다. 공격적으로 타인의 가슴 속으로 쳐들어가야 한다. 맛배기만 보여주지 말고 끝까지 가야 한다. 위태롭다. 여기서 인간이 덜 된 소인배와 언어를 능숙하게 다루는 인간의 가는 길이 갈린다.


    주술은 타인을 조종하고, 감성은 타인을 끌어들이며, 권위는 타인을 지배하고, 이성은 타인으로부터 방어한다. 주술과 감성과 권위와 이성은 그라운드를 뛰는 선수의 것이고 게임의 주최측은 그 이상을 해야 한다. 이성이 소극적으로 사리를 분별하는 것이라면 의리는 적극적으로 미래를 예견하고 에너지를 끌어내고 자기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지렛대를 가지고 환경의 변화에 맞대응 하는 것이다. 의리로 인해 인간은 비로소 동물을 뛰어넘었다. 그 의미가 작지 않다.


    공자의 군자 개념과 니체의 초인 개념은 인간선언이다. 석가의 깨달음에 머무르는 소승불교가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어적 이성에 머무른다면 대승불교의 정토사상은 보다 공격적인 의리로 나아간 것이다. 주술과 감성과 권위와 이성을 넘어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의리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은 손에 칼을 쥐었기 때문이다. 다들 돌도끼로 만족하고 있는데 누가 처음으로 무쇠칼을 가져왔다면 그 사람은 뒤따르는 후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미 타인의 가슴을 무수히 찔렀다. 사람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자기방어에 그친다면 틀려먹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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