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974 vote 0 2022.03.09 (15:02:08)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지만 충분히 사회화 되어 있지 않으므로 교육이 필요하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점에서는 맹자의 성선설이 옳고, 충분히 사회화 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순자의 성악설이 옳다. 근본적으로는 맹자가 옳다. 순자의 사회화는 맹자의 사회성이라는 대전제 안에서 성립하기 때문이다. 


    맹자 - 인간은 사회성이 있다.

    순자 - 인간은 사회화 되어야 한다. 


    열역학 1법칙과 2법칙처럼 둘은 상호보완적인 관계다. 인간의 사회성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사회화를 추구해야 한다. 천재 아스퍼거가 뇌피셜로 독특한 이상향을 그려놓고 일반인을 억지로 거기에 때려맞추려고 하면 피곤하다. 유나바머 시어도어 카진스키가 그러하다. 월든의 소로우도 괴팍한 사람이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만 그 선은 원시인의 동굴 하나가 수용할 수 있는 20여 안팎의 소집단에 맞추어져 있다. 문명의 진보는 동굴의 크기를 키우는 것이다. 21세기에 동굴이 커졌다. 70억을 수용해야 한다. 21세기는 순자의 테크닉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인간을 믿어야 하지만 밭을 갈아놓고 믿어야 한다. 


    동굴은 커졌는데 각자 역할이 분담되지 않아 다들 어리둥절해하며 서성대고 있는게 21세기 인류의 모습이다. 인간은 가만 놔두면 자동으로 보수화 된다. 인간의 유전자가 원래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짝을 찾으려는 젊은이에게는 동굴이 클수록 좋고 식솔을 책임지려는 늙은이에게는 동굴이 작을수록 좋다.


    변방일수록 보수화가 심하다. 변방은 지렛대가 없어서 의사결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수렁과 같다. 어떻게 움직이든 더 깊이 수렁으로 빨려들어간다. 중앙은 진보할 수 있다. 왼팔로 버티고 오른팔로 수렁에서 기어나오면 된다. 변방은? 팔이 하나뿐이다. 나무의 가지 끝을 생각해보자. 더 오른쪽이 없다. 


    거기가 끝이다. 오른쪽에 버틸게 없어 왼쪽으로 갈 수 없다. 팔이 하나뿐이면 붙잡은 것을 놓을 수 없으므로 움직일 수 없다. 유럽이 진보할 때 스페인 혼자 프랑코의 독재를 한 이유는? 변방이니까. 히틀러 시절 독일이 우경화한 이유는? 유럽의 변방이니까. 그리스가 여전히 낙후된 이유는? 유럽의 변방이니까.


    러시아가 저러는 이유는? 변방이니까. 변방은 선택지가 없다. 좋은 일을 못하므로 나쁜 일을 한다. 일본은 변방이지만 필리핀에서 미국으로 가는 항로에 위치해서 잠시 중심노릇을 했다. 독일은 변방이지만 동유럽이 개발되어서 지금은 EU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한때는 세계의 중심이었던 영국이 브렉시트다.


     문명의 이동에 따라 중심과 변방은 바뀌는 것이다. 신도시가 들어서면 구도심은 낙후된다. 보수화 된다. 한국은? 한국은 중러일미 사이에서 중심축이 될 것인가, 조용히 잊혀져 가는 변방이 될 것인가? 산업에 달려 있다. 산업이 흥하면 한국인은 중심으로 달려가고 산업이 망하면 한국인은 변방에 안주한다. 


    한국의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흥하는데?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다. 동생이 없다. 본능이 작동한다. 20대는 무의식적으로 지금이 위기라고 느끼는 것이다. 선거는 다양한 변수가 개입하지만 큰 틀에서는 그렇다. 한국이 계속 잘나가면 잠시 우경화 했다가도 다시 진보로 방향을 튼다. 무너지면 계속 무너진다.


    ###


    주자는 중화와 만이를 구분했다. 여기에 현대의 민족개념을 대입하여 중화민족과 동이족의 대결구도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문명과 야만은 다르다. 방향이 다르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계속 잘못된 길로 가게 된다. 진보와 보수는 다르다. 젊은이와 노인은 다르다. 젊은이는 얻으려고 하고 노인은 지키려고 한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
6647 조절장치 김동렬 2024-01-29 1265
6646 간섭 김동렬 2024-01-28 1521
6645 천공의 전쟁지령 김동렬 2024-01-27 2186
6644 이것과 저것 1 김동렬 2024-01-26 1535
6643 권력자의 심리 김동렬 2024-01-25 2037
6642 석가의 깨달음 김동렬 2024-01-25 1824
6641 이언주의 귀환 김동렬 2024-01-23 2413
6640 시정잡배 윤한 1 김동렬 2024-01-23 2173
6639 윤영조와 한사도 김동렬 2024-01-22 2164
6638 클린스만은 손절하자 김동렬 2024-01-21 2653
6637 입력과 출력 김동렬 2024-01-20 1525
6636 마리 앙투아네트 김건희 김동렬 2024-01-20 1889
6635 한동훈의 까불이 정치 1 김동렬 2024-01-19 2345
6634 긍정적 사고 김동렬 2024-01-17 1948
6633 한동훈의 본질 김동렬 2024-01-15 3263
6632 존재의 핸들 김동렬 2024-01-14 2105
6631 이론적 확신의 힘 김동렬 2024-01-13 2091
6630 오마이 한겨레 경향의 배신 이유 1 김동렬 2024-01-12 3178
6629 최동훈 영화는 영화가 아니다. 김동렬 2024-01-11 2350
6628 읍참건희, 석열 동훈 비밀의 비밀 김동렬 2024-01-10 3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