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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918 vote 0 2022.04.15 (12:38:56)

    인류는 오래도록 본질에 대해 사유해 왔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 플라톤의 이데아, 칸트의 이성이 그러하다. 그러나 얼버무리는 말이다. 실제로 인간이 알아낸 것은 법칙, 원리, 규칙들이다. 둘 이상을 한곳에 넣으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 그것은 이차적이며 수학적인 것이다. 


    법칙은 본질이 아니다. 본질은 그 자체에 고유한 1차적인 성질이다. 어떤 조건이 주어졌다면 이차적인 것이며 본질에서 멀어진 것이다. 흑인이 검고 백인이 흰 것은 본질로 느껴진다. 원래 검고 원래 희다. 그러나 착시다. 까마귀가 검지만 까마귀 눈에는 다른 칼라들이 보인다. 


    소금이 짜고 설탕이 단 것은 소금과 설탕의 본성이 아니라 그것을 변별하는 혀의 기능이다. 그것은 관측자의 척도에 따라 상대적이다. 인간은 존재의 본질을 알아내지 못했다. 인간이 탐구하여 알아낸 것은 법칙이며 법칙은 외부의 다른 것으로 건드려서 얻은 상대적인 정보다.  


    혼자 있으면 제멋대로지만 좁은 길에서 둘이 마주치면 좌측통행을 해야 한다. 좀 더 넓은 공간에서 마주치면 어떨까? 공간이 넓으면 마주치지 않는다. 공간의 좁음과 시간의 재촉으로 압박했을 때 뭔가 성질이 얻어진다. 자연의 본래가 아니라 시공간의 수학적 성질이다. 


    그것은 효율이다. 시공간을 좁혔을 때 좁은 공간 효과가 얻어진다. 그 효율이 시장에서 이윤이 되고 사회에서 권력이 되고 사건에서 기세가 되기도 한다. 메뚜기는 자유롭게 뛰어다니지만 평방미터당 30마리 이상 숫자가 늘면 상대적으로 공간이 제한되고 법칙이 작동한다. 


    메뚜기 떼의 대이동이다. 올챙이들은 일정한 조건에서 일제히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수도꼭지를 틀어 수압을 조절하면 한 방향으로 회전한다. 중력에 따라 물줄기의 속도가 빨라지므로 물줄기는 가늘어지고 충돌하여 회전한다. 불순물이 끼어들면 더 빨리 반응이 일어난다. 


    물이라면 소용돌이가 만들어지고 바람이라면 회오리바람이 일어난다. 질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질서는 효율을 따른다. 그 효율성이 도구가 된다. 우리는 의사결정을 효율화하는 방법으로 대상을 통제할 수 있다. 정치판은 옳고 그름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효율을 따른다.


    의사결정의 효율성은 거기에 가해지는 압박의 강도에 따라 다르다. 유권자는 올바른 당에 투표하는게 아니라 효율적인 당에 투표한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당은 표를 얻을 수 없다. 효율성을 유지하기 위해 난폭운전을 하다가 멸망하는 국힘당도 있다. 


    반대로 효율성을 유지하기 위해 당의 규모를 키우지 않는 정의당도 있다. 당이 작으면 어쨌든 목소리는 빨리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의견수렴 절차를 생략하니까. 알아야 할 사실은 존재의 본성이 없다는 점이다. 제법무아라 했다. 원자도 없고, 이데아도 없고, 이성도 없다. 


    천국도 없고, 원죄도 없다. 다만 법칙이 있을 뿐이며 법칙은 어떤 둘 이상을 충돌시켜 시간으로 재촉하고 공간으로 압박했을 때 얻어진다. 일정한 환경적 조건에서만 작동한다. 그것은 이차적이고 수학적이고 상대적이고 조건적이며 본질이 아니지만 오히려 본질에 앞선다.


    고유한 것은 없으며 자연의 모든 성질은 어떤 조건이 가해진 것이다. 시공간으로 압박한 것이다. 그 조건은 무엇일까? 그것이 찾아야 할 숨은 전제다. 항상 가정이 들어가 있다. 우리가 획득해야 할 플러스알파는 그곳에 있다. 그것이 도구다. 도구의 도구다. 도구의 손잡이다.


    문제는 우리가 조건을 망각한다는 점이다. 언어는 주어와 목적어의 대칭인데 주어를 생략하고 목적어만 본다. 숨은 전제는 생략된 주어에 숨어 있다. 주어와 목적어를 버리고 동사를 봐야 한다. 여당과 야당을 보지 말고 유권자를 봐야 한다. 그 동사를 명사화 시켜서 봐야 한다.


    초딩은 목적어만 본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하고 말한다. 중딩은 주어를 본다. 내가 잘못했어 하고 사과할 줄 안다. 고딩은 동사를 본다. 서로 치고받은 것이다. 대딩은 게임을 본다. 보이지 않는 주최측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이 무대를 만들어 그들을 다투게 했을까? 


    배후에 뭔가 있다. 무대를 세팅하고 공간으로 조이고 시간으로 재촉한 것은 누구인가? 너를 보고, 나를 보고, 둘 사이의 변화를 보고, 그 변화의 조건을 보고, 그 변화의 방향을 읽으면 완전하다. 다음 단계를 예측할 수 있다. 나를 먼저 볼 수는 없다. 눈이 너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보려고 해야 보인다. 목적어는 그냥 보이지만 주어는 생각해야 보인다. 동사를 보고, 동사의 전제조건을 보고, 그 동사의 플러스알파를 봐야 한다. 움직이는 것을 보고 그 움직임에 숨은 기세를 봐야 한다. 날아오는 공을 보면 하수다. 그 공의 궤적을 읽어내야 한다. 


    상대의 펀치를 보면 하수다. 그 펀치를 휘두르는 상대의 자세를 보고 밸런스를 봐야 다음 펀치가 예상된다. 고수는 상대의 다음 동작을 알아낸다. 우리는 여당이 잘했니 야당이 잘했니 하고 따지지만 그게 도구이며 도구의 발전방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정치가 도구다. 정치의 발전과정이다. 어떤 이상적인 목표에 도달하는게 아니다. 누가 옳으냐는 중요하지 않다. 좋은 도구를 가졌느냐가 중요하다. 정권교체가 일어나는 이유다. 우리가 옳으니까 정권을 잡아야 한다는건 초딩생각이다. 도구가 발전해야 하므로 정권이 교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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