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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김동렬*
read 8030 vote 0 2012.10.21 (18:33:12)


관계로 세상을 바꾼다

 

구조론은 관계로 세상을 바라보고 관계를 바꾸어 문제를 해결한다. 관계의 기본은 인과다. 인과는 관계의 마디다. 인과의 마디들이 사슬처럼 연결되어 널리 망라됨으로써 세상은 이루어졌다.

 

근대과학 역시 인과율에 기반을 둔다. 문제는 인과율이 잘못 알려졌다는데 있다. 인과법칙에 따라 원인이 결과를 통제한다. 결과가 아닌 원인측을 바로잡음으로써 모든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그런데 인과는 시간상의 법칙이다. 흘러간 시간을 돌이킬 수 없으므로 원인측을 바로잡을 수 없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인과는 공간상에도 성립한다. 공간으로 보면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공간은 제 자리에 있다. 시간의 원인은 해결할 수 없지만 공간의 상부구조는 제 자리에 머무르므로 문제가 해결된다. 인과율을 심화하고 발전시키는데서 구조론은 출발한다.

 

◎ 시간의 인과율 – 원인측 (과거) ≫ 결과측 (미래)
◎ 공간의 구조론 – 상부구조(원인)≫하부구조(결과)

 

세상은 관계다. 관계는 인과관계다. 원인이 결과를 통제한다. 문제해결은 인과의 원인측을 바로잡는데 있다. 공간으로 보면 상부구조다. 상부구조에서 관계를 재조립함으로써 문제는 해결된다.

 

상부구조는 관성이다

 

상부구조는 관성의 법칙으로 설명된다. 관성은 뉴턴의 운동법칙 중 제 1법칙을 차지한데서 보듯이 존재의 근본원리다. 인과율이 근대과학의 기반이라면 관성의 법칙 역시 근대과학의 출발점이다.

 

관성의 법칙 역시 잘못 설명된다. 사전적 풀이로 보면 '물체에 외부로부터의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그 운동상태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관성이다. 이는 어색한 설명이다. 거꾸로 보아야 한다.

 

물체에 외부로부터 힘이 작용하면 그 운동상태는 변한다. 이것이 관성이다. 외력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물체의 운동상태가 결정된다. 관성은 한 마디로 인과법칙의 원인측을 누가 결정하는가다.

 

근대과학의 첫 번째 단추는 만유의 출발점이 어디인가다. 그것은 물체의 속성을 무엇이 결정하는가다. 관성의 법칙은 외력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상대적으로 물체의 속성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상부구조다. 사건의 원인측이다. 어떤 존재가 어떤 성질을 가지는가는 타자와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외력과의 상호작용 관계를 바로잡음으로써 문제는 해결된다.

 

◎ 기존의 관성 – 외부작용이 없으면 상태는 변하지 않는다. 
◎ 올바른 관성 – 외부와의 상호작용관계가 속성을 결정한다.

 

무엇이 다른가? 관측지점이 다르다. 기존의 관성은 물체의 안쪽을 보고 구조론은 물체의 바깥쪽을 본다. 바깥쪽에 무엇이 있나? 관계가 있다. 구조론은 타자와 상호작용하는 관계로 모두 설명한다.

 

기존의 관성은 ‘아닌 것이 아니다’ 하는 이중부정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는 어색한 표현이다. 명석하지 못한 이해다. 모든 존재는 특정한 에너지장에 속해 잇다. 그 안에서 상호작용하고 있다.

 

그 관계의 장이 상부구조를 이루며 사건의 원인측이 된다. 이러한 원리는 비단 물리학이 아니라도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관성의 장이 발견된다.

 

우리는 사물을 판단할 때 물(物) 자체의 속성으로 판단한다. 속성이란 성질이 그 내부에 있다는 것이다. 고무공은 물렁하다. 고무공의 무른 성질은 고무공 내부에 있다. 과연 그럴까? 천만에!

 

오승환이 돌직구로 던진 고무공도 물렁한가? 아니다. 물체의 속성은 그 물체에 작용하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상대적으로 규정된다. 이것이 관성이다. 그런데 보통 그 관계는 고정되어 있다.

 

흙은 항상 부드럽고, 물은 항상 차갑고, 불은 항상 뜨겁고, 돌은 항상 딱딱하고, 쇠는 항상 매우 단단하다. 이는 인간이 항상 같은 방법으로 그 물체와 접촉하기 때문이다. 이는 고정된 관계다.

 

그런데 무른 것도 더 무른 것을 만나면 단단하게 변한다. 단단한 것도 더 단단한 것 앞에서는 무르게 변한다. 존재의 성질은 관계맺기에 따라 상대적으로 규정된다. 관계가 변하면 성질도 변한다.

 

단단한 금도 수은에는 녹아서 물이 된다. 무른 물도 영하의 날씨에는 단단하게 얼어붙는다. 금이 단단한 성질을 가지고 물이 무른 성질을 가진다는 판단은 인간의 관념일 뿐이다. 관계가 정한다.

 

관측자의 위치를 바꾸라

 

세상은 관계, 관계는 인과, 인과는 시간, 공간이면 상부구조다. 상부구조는 관성, 관성은 타자와의 관계맺기다. 모든 존재는 물(物)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관계맺기에 따라 상대적으로 규정된다.

 

◎ 기존의 통념 – 물(物) 자체의 내재한 속성이 그 존재를 결정한다.
◎ 구조론 –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규정된다.

 

관계를 창의하고 재조립함으로써 문제는 해결된다. 당신이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당신의 존재를 규정하는 본질이다. 당신이 왕과 악수하면 왕급이 되고 양아치와 다투면 양아치급이 된다.

 

문제는 상부구조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은 공간의 상부구조를 못 보므로 시간의 인과로만 판단한다. 이에 오류가 일어난다. 상부구조를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말하는 것이 그러하다.

 

관측의 상대성 때문이다. 관측자가 사건에 개입했을 때는 상부구조가 보이지 않는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관성이 보이지 않는다. 버스가 급정거를 해야 비로소 관성이 보인다. 이미 늦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어린이가 삼각형으로 좁아지는 모퉁이에 손을 내밀었다가 다치는 수 있다. 어린이는 에스컬레이터가 멈추어야 관성의 존재를 알아채는데 이미 사고난 다음이다.

 

우물 안에서 우물을 볼 수 없다. 사건의 전모를 볼 수 없다. 필요한 것은 관점의 이동이다. 사건 바깥으로 빠져나와야 한다. 훈련하여 사건 바깥에서 사건의 전모를 보아내는 것이 깨달음이다.

 

인간은 시간의 인과관계를 잘 이해한다. 시간은 마디가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하루든 한 달이든 한 철이든 한 해든 반복된다. 반복되는 것은 마디가 있다. 그런데 공간은 넓어서 마디가 없다.

 

인간이 사물을 이해하는 것은 비교하여 판단하기 때문이다. 비교판단의 근거는 마디다. 마디는 반복될 때 얻어진다. 시간은 반복되므로 마디가 있다. 공간은 마디가 없어서 상부구조를 못본다.

 

봄에 뿌린 씨앗은 가을에 열매맺는다. 이는 시간의 인과다. 봄여름가을겨울은 반복의 단위다. 단위가 있으므로 비교하여 판단이 가능하다. 봄의 씨앗이 원인이고 가을의 열매가 결과임을 안다.

 

과연 그러한가? 아니다. 씨앗은 원인의 전부가 아니다. 열매를 키운 것은 햇볕과 물과 거름이다. 씨앗이 좋아도 햇볕이 없으면 열매를 얻을 수 없다. 그 햇볕과 물과 거름은 공간의 상부구조다.

 

씨앗은 반복된다. 매년 봄에 씨앗이 파종된다. 그러나 햇볕과 물과 거름은 반복되지 않는다. 시간의 사계절은 반복되는데 공간의 태양은 반복되지 않는다. 이에 상부구조를 인식하지 못한다.

 

인과는 반복되나 상부구조는 1회다. 인간의 평생에 한 번 태어난다. 반복되지 않는다. 입학도 한번이고, 결혼도 한번이고, 취업도 한 번이다. 반복되지 않으므로 상부구조의 존재를 보지 못한다.

 

반복되는 것은 대개 상부구조에 잡혀 있으므로 창의되지 않는다. 구조가 재조립되지 않는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봄여름가을겨울의 순서를 바꿀 수는 없다.

 

인간이 임의로 가을을 앞당기거나 여름을 되물릴 수 없다. 반면 결혼은 평생에 한 번 하는 것이다. 결혼상대를 바꿀 수 있다. 입사도 한 두번 하는 것이다. 직장을 바꿀 수 있다. 창의할 수 있다.

 

반복되지 않는 것에 답이 있다. 그런데 이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 카운슬링에서 내담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평생에 한 번 있는 1회의 사건이나 상담자의 입장에서 보면 늘 반복되는 사건이다.

 

점보러 온 고객에게는 1회의 사건이나 점쟁이 입장에서는 늘 반복되는 사건이다. 반복되지 않는 것의 반복성을 볼 때 인간은 깨닫는다. 마디없는 것의 마디, 단위없는 것의 단위를 보아내기다.

 

사건 바깥으로 빠져나와야 반복성의 마디를 볼 수 있다. 관계는 타자와의 상호작용 관계이기 때문이다. 사건 바깥에서 보면 사건 전체를 한 줄에 꿰어내는 소실점이 보이고 에너지장이 보인다.

 

사건 전체를 한 줄에 꿰는 소실점이 관성이다. 모든 존재는 관성에 지배된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소속집단을 구성하는 관계의 장에 잡혀 있다. 관성의 소실점에 꿰어져 있다. 빠져나와야 보인다.

 

새 물이 들어와야 변한다

 

인간은 관계를 맺는 대상을 바꾸어 자기 소속집단을 바꾸는 방법으로 위대해질 수 있다. 타자와의 상호작용관계를 한줄에 꿰는 소실점을 창의함으로써 거듭날 수 있다. 존재를 바꿀 수 있다.

 

강물 안에서는 강물의 흐름을 볼 수 없다. 상부구조를 볼 수 없다. 자신도 강물따라 함께 흘러가기 때문이다. 강물의 흐름이 관성이다. 강물의 흐름을 바꾸려면 강물 바깥으로 빠져나와야 한다.

 

강물 안에서는 결코 강물의 흐름을 바꿀 수 없다. 물길을 다른 쪽으로 돌려놓을 수 없다. 민주당 안에서는 누구도 민주당을 바꾸지 못하고 새누리당 안에서는 누구도 새누리당을 바꾸지 못한다.

 

민주당의 변화는 노무현의 민주당 입당과정에서, 그리고 열린우리당 창당과정에서 얻어졌다. 이미 입당한 후, 창당한 후에는 바꿀 수 없다. 함께 떠내려갈 뿐이다.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외부의 인물과 자원을 영입함으로써 바꿀 수 있다. 조직은 결혼과 입사와 출생으로 새로운 자원이 들어올 때 변한다. 국가는 외국과 새로 교류할 때 변한다. 오직 관계의 변화로만 변한다.

 

정치인이 바꾸겠다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다. 다만 새로운 자원의 영입만이 진실이다. 신규자원과의 투쟁과정에서 저절로 변하기 때문이다. 오직 외부에서의 에너지의 투입에 의해서만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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