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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김동렬*
read 8416 vote 0 2012.10.21 (20:49:30)


    깨달음에 정답은 있다

 

    누구나 ‘피에타’에서 ‘뫼르쏘’를 떠올렸을 것이다. ‘뫼르쏘’는 무심한 사람이다. 이강도와 같다. 감정이 없다.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 인생의 의미 따위는 원래 없다. 그것이 실존주의가 말하는 부조리다.

 

    대신 ‘관계’가 있다. 인생에 의미 따위는 없으므로 살인에 이유 따위는 없다. 그런데 말이다. 재판과정이 우스꽝스럽다. 재판은 한 편의 연극이다. 재판장이든 증인이든 경찰이든 모두 정해진 배역따라 행동한다.

 

    재판부는 뫼르쏘 역시 ‘대본을 암기한 배우’였음을 입증하려 든다. 중요한 것은 관계다. 그 와중에 관계가 폭로된다. 준비된 각본이 폭로된다. 의미 따위는 원래 없고 다들 각본대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생.

 

    http://book.naver.com/bookdb/today_book.nhn?bid=20433

 

    그런데 말이다. 리뷰를 보면 전혀 작품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필자가 고딩시절 ‘이방인’을 읽었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필자는 잘 이해했고 해설도 상당히 그럴듯했다. 그런데 이건 정말이지 최악이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5758

 

    네티즌 리뷰라도 다르지 않다. 절망이다. 이걸 보고 있노라면 아니 도대체 50년 전에 노벨상을 받은 ‘이방인’도 전혀 이해못하는 밥통들에게 황금사자상 받은 ‘피에타’를 이해하길 기대한단 말인가 하는 회의가 든다.

 

    해설 따위는 필요하지 않은데 워낙 한심해서 덧붙이겠다. 인생에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는게 종교다. 의미는? 천국이다. 근데 황당하다. 그걸 조금 그럴듯한 말로 설명해준 사람이 칸트다. 의미는? 이성이다. 이성은?

 

    합리성이다. 합리성은? 인과법칙이다. 인간은 언제라도 앞뒤가 맞는 합리적인 행동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인간은 죽는다. ‘뫼르쏘’라는 말의 뜻은 죽음이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합리성을 잃을 수 밖에 없다.

 

    인간은 결국 죽으므로 인생은 앞뒤가 맞지 않다. 부조리다. 인생의 목적 따위는 없다. 그러므로 엄마가 죽어도 슬플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정답 나왔다. 개인의 삶 안에 합리적인 삶의 목적 따위는 원래 없는거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지만 그런건 망상일 뿐이다. 행복 따위는 없다. 그것은 하나의 ‘포즈’에 지나지 않는다. 어색하지 않은. 배역에 맞는. 진정으로 말하면 인간에게는 존엄이 있을 뿐이며 존엄은 인간 안에 없다.

 

    존엄은 나와 타자와의 관계에 있다. 뫼르쏘에 대한 재판과정은 관계의 작동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모두가 연극한다. 뫼르쏘는 깨닫는다. 자기가 맡은 배역을. 자신은 에미애비도 없는 ‘악랄한 살인자’역을 맡은 것이다.

 

    흉악한 살인자라면 당연히 흉악한 살인자답게 흉악한 살인자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뫼르쏘의 재판은 참으로 황당하다. 재판부는 뫼르쏘가 흉악범이라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문제없다. 증거는 만들면 된다.

 

    사람들은 그가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았으므로 흉악범이라고 말한다. 혹은 장례식 후에 매춘부를 찾아갔으므로 흉악범이라고 말한다. 즉 어설프게 개드립 치지 말고 정해진 대본대로 갈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뫼르쏘는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래 흉악범 답게 연기해줄께. 너희들은 나의 사형집행장소에서 너희들의 배역을 연기해. 너희들은 증오의 함성으로 나의 죽음을 맞아주었으면 좋겠어. 관계를 이어줄게.

 

    이쯤에서 이방인과 피에타의 구조가 완전히 같음을 알 수 있다. 뫼르쏘는 햇볕 때문에 살인을 한다. 이강도는 위에서 시키는대로 그냥 살인한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이며 합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당위가 있다.

 

    합리적이라는 것은 인과적이라는 것이고, 인과의 인은 동기다. 동기는 목적이다. 목적은 돈이나 행복이나 쾌락이나 출세나 명성이다. 그러나 뫼르쏘는 죽음이다. 죽음 앞에서 그딴 것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강도는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다. 의미는 원래 없고 관계가 정답이므로 관계가 복구될 때 인간은 변한다. 관계를 바꾸라. 이것이 구조론의 주문사항이다. 관계를 창의함으로써 인간은 존엄해질 수 있다. 정답이다.

 

    ###

 

    선문답에도 정답이 있다. 고정된 정답이 없을 뿐이다. ‘병 안의 새’를 꺼낼 수는 없지만, 병 안의 새를 꺼낼 수 없다면 그것을 꺼낼 수 없는 경계가 있다. 그 경계 안쪽에 정답이 없다면 경계 바깥쪽이 정답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영생은 없다. 그렇다면 정답은 나왔다. 낳으면 된다. 낳음의 배달은 영생한다. 개인이 정답이 아니면 팀이 정답이다. 의미가 정답이 아니면 관계가 정답이다. 단지 그 정답에 이름이 없을 뿐이다.

 

    피에타의 결말처럼, 나쁜남자의 결말처럼 거짓 정답의 배제에 오히려 진정한 정답이 있다. 거짓 구원의 거부에 진정한 구원이 있다. 누구도 굴뚝 안에서 얼굴이 깨끗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빛은 발견된다.

 

    밀로의 비너스는 완전하다. 그러나 도리어 불완전하다. 정답이 없다. 그럴 때 소실점이 발견되고 팀이 발견된다. 완전한 것 조차도 실제로는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이 발견될 때 도리어 진정한 완전성이 발견된다.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의미다. 그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 부조리다. 금의 속성은 금 내부에 있다. 독의 속성은 독 내부에 있다. 금 안에 금 있고 독 안에 독 있다. 그러나 인간 안에 인간 없다. 그것이 부조리다.

 

    그렇다면? 관계에 있다. 바깥에 있다. 바깥으로 관계를 확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관계를 확장하려면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방향성을 제시하려면 소실점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얻는 것은 관계다.

 

    ◎ 밀로의 비너스는 완전하다. 그러나 완전하지 않다. 왜? 혼자니까.
    ◎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완전하다. 왜? 팀이니까. 팀을 가두는 소실점이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불완전하다. 점점 커지는 방향성이 보이지 않으니까.
    ◎ 라파엘의 아테네 학당은 완전하다. 소실점+점점 커져나가는 방향성이 있으니까. 그러나 불완전하다. 왜? 그림이 너무 크니까. 비용이 드니까.
    ◎ 천지창조는 완전하다. 왜? 서로 다른 둘이 만나는 손가락 끝만 그려도 되니까. 관계니까. 관계는 무한히 복제되니깐. 크기제한을 안 받으니깐.

 

    이들 각각은 불완전하지만 전체를 한 줄에 꿰어놓으면 완전하다. 비너스와 최후의 만찬과 아테네학당과 천지창조를 한 줄에 이어놓으면 완전하다. 완전하면? 통한다. 복제된다. 증폭한다. 공명한다. 낳는다.

 

    까뮈의 이방인과 같다. 이방인은 인간 존재의 부조리를 역설한다. 사람들은 그 부조리의 폭로에서 진한 커피 한 잔과도 같은 쾌감을 느낀다. 뱃 속 깊은 곳에서부터 찌르르 하며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왜? 한 개인의 삶에서 완전성이 없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팀에서 완전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개인은 결국 죽기 때문에 불완전하나 그 개인들의 팀은 죽지 않으므로 완전하다. 인류의 진화는 완전하다.

 

    인간의 아이큐는 점점 향상된다. 인간은 점점 신에게로 다가서고 있다. 그러나 말이다. 저 리뷰를 보라. 저 밥통들을 보라.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방인을 읽었던 80년대 초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방인을 읽고 아무런 쾌감을 느끼지 못했다는 자들, 커피 한 잔과도 같은 쾌감을 느끼지 못한 자들, 오랫동안의 갈증이 씻겨내려져 가는 청량함을 느끼지 못한 자들, 뱃 속 깊은 곳에서부터 찌르르 하며 올라오는 것을 느끼지 못한 밥통들과 도무지 무슨 대화를 하겠는가?

 

    관계를 배제했을 때 너의 안에는 이유가 없다. 관계를 복구했을 때 비로소 이유가 생겨났다. 이것이 정답이다. 인간들은 단지 맡은 바 배역을 연기할 뿐이다. 그 대본의 내용은 멍청하지만 상관없다.

 

    왜 살인을 했지? 아 흉악한 인간이라서 살인을 했지. 아 이유가 나왔네. 원인이 그것이었어. 흉악했어. 상관없다. 너희들이 원하는게 이거라면. 이렇게 관계의 퍼즐은 이어져 나간다. 그 내용이 완전히 가짜라도 상관없다.

 

    외계인이 지구인을 납치 했다. 지구인에게 사는 이유를 물었다. 사는 이유가 뭐지? 뭐라고? 그건 남의 거 잖아. 남의 거 말고 너의 이유를 대 봐? 뭐라고? 이유가 없다고? 걍 사는거야? 대본이 주어졌길래 연기했을 뿐이라고?

 

    그러니까 넌 누구에게서 대본을 받은 거네. 그렇다. 대본을 물려받고 물려주는 거다. 그 과정에서 족보는 만들어진다. 체계는 만들어진다. 전체가 한 줄에 꿰어진다. 찾아야 할 정답은 그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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