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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9923 vote 0 2013.08.20 (22:47:07)

    -초고이므로 나중에 수정됩니다.-

 

    진화론과 창조론
    창조론은 없다. 이론은 진리에 근거하는 연역구조를 가져야 한다. 창조는 진리에 근거하지 않으므로 뒤에 ‘론’자를 붙일 수 없다. 창조라는 단어가 론論을 배척한다. 창조는 ‘창조하다’의 동사로 기능하며 이때 생략된 주어는 신神이다. 신神에 근거할 뿐, 이론에 근거하지 않으므로 창조론 개념은 성립될 수 없다.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 할지라도, 신과 세상을 연결시키는 매개로서의 도구가 제시되어야 하고, 도구로부터 이론이 전개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창조론은 이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므로 이론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용의자가 심문받고 있을 때 다른 인물이 나타나서 ‘내가 범인이다’고 자백했더라도, 자신이 범인임을 입증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알리바이를 뒤집어 자신이 현장에 있었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언어의 문제다. 창조론은 진화론을 공격하기 위해 급조된 언어이며 잘못된 언어사용이다. UFO나 귀신, 영혼 혹은 민간의약에서 쓰는 ‘몸에 좋다’는 표현과 같이 뜻이 없는 허어虛語다. UFO는 미확인+비행물체인데 미확인이면 발언권이 없다. 확인한 다음에 보고해야 한다. 과학의 견지에서 볼 때 UFO 개념은 언어가 아니므로 쓰지 말아야 한다. 예컨대 사람이 자동차를 만들었다면, 자동차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모두 자연에 있는 것의 위치만 바꾼 것이고 실제로는 자동차라는 개념을 만든 것이다. 자동차는 창조되지 않는다. 인류가 창조한 것은 개념이다. 지구의 것을 가져다가 위치만 옮겨놓은 거다. 태초 이후 창조가 없으므로 창조론은 없다. 창조론이 없으므로 생물체의 상호작용단위 도약을 해명하는 아이디어는 진화론 밖에 없다. 진화론도 잘못 알려진 개념이다. 진실한 의미로 볼 때, 진화론은 유전자에 의해 생태계 안의 모든 개체가 연결되어 있다는 이론이다. 다윈의 아이디어는 원시적인 관찰이다. 진화의 단위는 종이 아니라 유전자이며, 유전자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생명계를 이루며, 유전자 간의 상호작용 단위를 높여온 것이 진화로 나타난다. 다윈 이후 종의 진화에 관한 직접 증거는 없다. 유전자가 진화의 실체이고 종은 진화의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종은 성적 상호작용 단위에 불과하며 성은 진화의 일부를 구성한다. 유전자가 상호작용에 의해 연결된다는 증거는 많다. 호모 사피엔스로부터 현생인류까지 유전자지도를 그려서 연결고리를 증명할 수 있다. 부모와 자식간이 유전적 연결고리는 하나의 모체에서 두 자녀가 나오는데서의 일의성으로 증명된다. 유전자 개념이 결여된 다윈의 진화론은 논리세팅을 잘못한 것이다. 구조론으로 보면 종의 진화가 아니라, 유전자의 복제 및 확산이다. 30억년 전 지구에 출현한 최초의 유전자가 복제, 증식, 확산되어 전개된 것이다. 하나의 생명체 안에 기생하는 많은 바이러스가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하듯이 지구의 생명체는 거대한 하나의 유전자 생태계를 이룬다. 이 생명계는 다른 종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생장해온 것이며 그 과정에서 상호작용의 단위들을 높여왔다. 생명계는 30억년 동안 죽은 적이 없다. 인간은 10여년 사이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포가 완전히 교체된다. 파골세포가 뼈를 부숴서 똥오줌으로 내보낸다. 인간이 완전 인간 밖으로 빠져나갔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 당신의 100퍼센트가 당신 밖으로 나갔어도 당신은 죽지 않았다. 생명계의 영역에서 보면 탄생도, 죽음도, 종도, 진화도 없다. 종이라는 관념은 계급차별의 논리를 인간과 동물의 근본적 차이에서 얻어내려고 지어낸 관념이다. 인간이 개보다눈 확실히 우월한 존재이니까, 이 논리를 확장하여 백인이 흑인을, 혹은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겠다는 거다.


    현대성과 공리주의
    인간은 자신을 포함한 집단 및 환경과의 상호작용구조 안에서의 능동적인 의사결정을 원할 뿐 공리주의가 주장하는 쾌락이나 명성, 행복 따위를 원하지 않는다. 쾌락이나 행복의 추구는 동물원에 갇혀 스트레스를 받은 동물이 단순반복행위를 하는 것과 같다. 일종의 틱장애에 해당한다. 흡연이나 음주, 도박에 중독되는 원리와 같다. 뇌는 시동이 걸려 있는 자동차처럼 운행을 하지 않아도 부단히 의사결정을 하게 되어 있다. 뇌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단순반복행위를 통해 의사결정을 조달한다. 이때 음주, 도박, 흡연, 취미, 폭력, 욕설과 같은 단순반복행위로 의사결정을 끊이지 않게 하며 그 자동차의 시동이 걸린 상태를 유지한다. 이러한 반복행동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를 유발하므로 역시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공리주의가 주장하는 쾌락, 행복, 명성은 뇌의 스트레스에 반응에 불과하다. 인간의 뇌는 부단한 의사결정을 필요로 하며 이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가능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집단의 긴장을 건드려서 그 반응을 연주하려고 한다. 환경의 반응을 끌어내는 형태로 상호작용하려는 것이다. 팽팽한 피아노줄처럼 당겨진 집단의 긴장을 건드려서 어떻게든 소리를 끌어내려고 한다. 그러므로 끝없이 유행, 혁신, 현대성을 통해 사건을 만들어내야 한다. 계속 달려야 하는 설국열차와 같다. 끝없이 긴장을 연출해 낸다. 만약 외부에서의 긴장이 완전히 소멸하면 환상, 환상통, 환청, 중얼거리기, 자해행위와 같은 형태로 자기 내부에서 반응을 끌어내게 되고 이것이 심하면 정신질환에 이르게 된다. 뇌가 뇌의 다른 부위를 공격해서 반응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스포츠, 정치, 예술, 상품, 오락 등이 모두 현대성을 생산한다. 새로움만이 진정한 것이며, 새로움을 위해서는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존재가 인간이다.

 

    확률대응과 선제대응

    인류의 역사는 집단지능을 진보시켜 온 역사이며 집단지능의 핵심은 인류가 지구 안밖에서 환경과의 상호작용 영역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위험의 감수와 위험의 관리에 있다. 문명의 진보는 더 많은 영역에서의 상호작용을 낳는다.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위험과 마주친다. 그 위험을 통제하는 수준을 높여온 역사가 문명의 진보이며 이를 가능케 하는 실체가 집단지능이다. 두 가지 대응방법이 있다. 영국, 미국, 일본과 같은 해양국가들은 경험주의 철학이 기반을 두고 성공모델의 발굴을 위주로 하는 확률대응 모델을 추구해 왔다. 반면 독일, 프랑스, 중국과 같은 대륙국가들이 발달시켜 온 합리주의는 사전조율을 중요시하는 선제대응 모델이다. 선제대응은 사전합의와 조율, 일괄타결을 통해 위험을 미연에 방지한다. 대신 의사결정의 속도가 느려진다. 한 가지 문제를 두고 몇 십년씩 줄기차게 토론해야 한다. 확률대응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시에 적용해 보고 그 중에서 성공하는 하나의 모델을 대량으로 복제한다. 이 경우 반드시 희생자가 나타난다. 최고의 대응모델은 확률대응과 선제대응을 동시에 사용하되, 벤처기업과 같은 처음 시도하는 일은 확률대응으로 가고, 핵문제와 같이 실험할 수 없는 일은 선제대응으로 가는 것이다. 이때 확률대응에 따른 희생자의 발생을 막는 안전장치로 보험제도와 복지제도가 필요하다. 선 선제대응 후 확률대응이 맞다. 양자론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모든 일에 대한 완벽한 선제대응은 물리적으로 불능이다. 선제대응은 관측자가 사건에 포함되는 거시세계에서만 가능하다. 양자가 입자에 앞선다. 양자는 확률대응하고 입자는 선제대응한다.


     북유럽모델과 후진국현상
    위험에 대한 대응능력의 향상이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의 열쇠다. 게의 생장은 게딱지를 뜯어내고 밖으로 알몸을 노출시키는 형태로 일어난다. 이때 바깥 환경과의 접촉은 매우 위험한 일이 된다. 허물을 벗은 게는 외부충격에 취약한 물렁게가 되는데 살짝 건드려도 게다리가 떨어져 나간다. 게는 상당기간 활동을 멈추고 게딱지가 굳기를 기다린다. 만약 이 기간에 게를 잡으면 게딱지 속에 게살이 꽉 차 있지 않고 텅 비어있음을 알게 된다. 모든 생장은 환경과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위험을 통제하는 수준을 높이는 형태로 일어난다. 북유럽모델은 개방경제로 위험을 감수하며 발달된 금융제도와 안정된 신용사회로 위험을 능동적으로 처리하며 고도화 된 복지제도로 위험을 분산하는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후진국현상은 위험을 회피하며, 동시에 폭탄돌리기로 위험을 하부구조로 떠넘긴다. 위험은 깔때기처럼 한 곳에 모여드는데 그곳에는 빈민과 자영업자가 있다. 재벌이 부동산으로 돈 버는게 위험회피의 예다. 한국은 특히 위험을 하청기업이나 서민, 자영업자에게 떠넘기는 구조다. 벤처를 창업하고 그에 따른 리스크를 각종 금융제도와 보험제도, 복지제도로 커버하는 것이 북유럽 모델이다. 이를 실제로 가능케 하는 것은 교육과 IT, 개방노선, 신용사회, 경쟁국가다. 한국처럼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주변에 본받을 경쟁국가가 없이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경제노선을 추구하면서 복지국가를 하겠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동시에 위험을 분산하는게 정답이다. 한국의 경우 기성세대가 교육받지 못했고, 금융제도가 부실하며, 신용사회가 정착되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다. 불신사회를 신용사회로 바꾸지 않으면 복지제도는 정착되지 않는다. 위험이 분산되지 않으면 모두 한탕주의로 가서 부동산투기와 같은 극단적인 모험을 일삼게 된다. 그 결과는 경제의 난맥상으로 나타난다.

 

    ###


    신비(妙)님의 신간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 시중서점에 있습니다.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97706693

 


    20130821_171901.jpg


[레벨:10]다원이

2013.08.20 (23:00:54)

구조론에서 "신"이란 낱말이 나올 때마다 신중하게 새겨서 읽어야 하겠네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8.21 (01:30:22)

한국은 국가가 모험을 하지 않고 개인에게 모험을 떠넘기는 구조임.
그러다보니 각종 정책이 남발되고 지원이 남발되지만, 실효는 정작 없음. 그 실패를 개인이 떠 맡아야 하기 때문.
그러다보니 개인들은 안정지향적이 될 수 밖에 없거나 한탕주의로 흐름. 그러니 먹튀만이 성행.
국가가 모험을 하고 리스크를 분산시키고, 개인은 국가라는 뒷배를 가지고 밀어부칠 수 있는 모험을 감행할 수 있어야 천정을 뚫는데, 국가는 모험도 하지 않으면서 리스크만을 개인들에게 계속하여 전가시킴.
이러다보니 개인이든 국가든 그 무엇을 시도하여도 정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만 반복되어 무기력과 좌절이 질병처럼 퍼지는 것이라고 보이네요.
[레벨:11]큰바위

2013.08.21 (02:39:25)

기독교 내에서도 창조론이란 말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꽤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창조설 혹은 창조설화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죠.


이걸 두고 고지식한 기독교인들은 믿음이 없네, 

성경을 안믿네 등으로 표현하기도 하죠. 


로마 신화를 믿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단군 신화를 믿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창세기 1~11장까지는 선사시대 이야기로 고대 근동에 전해 내려온 신화인데, 그것을 창조론이라 이름을 떡 붙여 놓고 과학이니 뭐니 접근하는데, 그 자체로 어불성설이지요. 


창조론 개념은 성립될 수 없다는 말이 맞고, 진화론으로 창조설을 공격한다는 것도 어폐입니다. 


장이 다르고 영역이 다른데, 그걸 같은 링위에 올려놓는 일은 초딩들 혹은 무개념들이 하는 일로 보는 것이 좋을 수도.....

[레벨:11]큰바위

2013.08.21 (04:53:01)

그동안 세상은 either ~ or의 논리, 사고구조, 세계관에 갇혀서 이거 아니면 저거를 선택해왔다. 

그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틀린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구조론은 either ~ or가 아니라, 

both ~ and를 논한다. 


양쪽을 다 취한다. 


그리고 가끔씩 거꾸로 neither ~ nor를 취하기도 한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고 한다. 


여기서 사람들은 헛갈리기 시작한다. 

이거 아니면 저거인줄 알았는데 둘 다래~

그래서 열심히 둘 다를 배우려 드는데, 갑자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고 하니 어리둥절할 수 밖에. 


이거냐 저거냐도 아니고,

이거저거 둘다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면 뭐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다. 


그때마다 구조론은 제 3의 길이 있지롱~ 하고 약올린다. 


제 3의 길....... 그걸 볼 줄 알면 신 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8.21 (07:41:48)

제가 보기에는 

성경책 어디에도 창조론은 없습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말은

구조론에서 말하는 일의성과 완전성을 표현하려는 의도입니다.

그 당시 인류가 쓴 단어가 몇 개나 되었나요?

보통 인간은 하루에 6백 단어 정도를 씁니다.

인디언 부족은 나뭇잎 종류만 40여가지로 분류해놓고

수만개의 동식물 이름을 사용하지만 이는 대개 심심풀이로 만든 명사이고

실제로 쓰는 언어는 동사이며 몇 단어가 안 됩니다.

부족민이 버섯 종류를 1만개로 분류해놓았어도 안 쳐줍니다.

일의성이니 완전성이니 하는 단어가 그 때는 없었던 거죠.

일의성은 족보를 조사해보면 70억 인류가 하나의 유전자로 귀일된다는 거죠.

완전성은 반복할 필요없이 한 방에 끝냈다는 건데

지구에 3000만종이 있다면 하느님이 종을 창조하려고 3천만번 노가다를 했다는 말이니

이는 하느님을 망신주려는 자가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아이디어입니다.

성경은 해석되는 것인데 어떻게 해석하는가입니다.

일의성과 완전성에 맞추지 않은 해석은 모두 왜곡입니다.



[레벨:11]큰바위

2013.08.21 (08:10:44)

론은 모두 사람이 논하는 거고, 그 론을 따라 저마다 해석을 하는 거지요. 

문제는 해석이 자기 본위가 아니라 text와 context를 모두 따라야 한다는 거.


그리고 뭐가 되든지 신의 뜻을 읽어야 한다는 거죠. 


인간 족보를 거꾸로 올라가면 신으로 귀결되는데, 그게 진짜 인간의 모습이지요. 

신은 노가다를 하지 않고, 가다가 있게 일하므로

그리고 주로 말로 하는 것이므로 해석을 잘해야 하는거죠. 


언어를 따지는 거, 

그게 바로 신이 하는 일이지요. 


태초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라거나,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라거나, 

하느님이 말씀하시길 빛이 있으라는 식의 표현은 

모두 언어의 문제이지 "논"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것을 창조론으로 보지말고 하나의 이야기로 풀면 엄청 재밌어집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그게 무슨 뜻이지? 하면서.........

신처럼.....

신으로.....

[레벨:11]큰바위

2013.08.21 (08:16:56)

성경에 이런 글귀도 있더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신이라고 하셨다."  요한의 복음 10:35


이는 신의 언어를 사용할 줄 알면, 신 된다라는 말. 



프로필 이미지 [레벨:10]id: 배태현배태현

2013.08.21 (11:01:23)

본문으로 좀더 적어주십사했는데 잘읽겠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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