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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2790 vote 0 2013.01.29 (01:01:46)


    ◎ 집단을 부정하면 개인이 드러난다.
    ◎ 국가를 부정하면 집단의 의사결정구조가 드러난다.
    ◎ 메시지를 부정하면 풍자가 드러난다.
    ◎ 주제를 부정하면 병맛이 드러난다.
    ◎ 이태리가구를 부정하면 핀란드가구가 드러난다.
    ◎ 아카데미즘을 부정하면 인상주의가 드러난다.
    ◎ 김봉남을 부정하면 패션이 드러난다.
    ◎ 근대주의를 부정하면 현대성이 드러난다.
    ◎ 내세를 부정하면 현실이 드러난다.
    ◎ 천국을 부정하면 개혁이 드러난다.
    ◎ 합리주의를 부정하면 미학이 드러난다.
    ◎ 의미를 부정하면 관계가 드러나고 포지션이 드러나고 맥락이 드러난다.


    부조리란 한 마디로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집단적으로 뭘 해보자고 수작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반항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항하기 위한 반항은 곤란하다. 깨달음에 기초한 레벨업이어야 한다.


    맥락을 알아야 한다. 부조리는 2차대전과 관련이 있다. 그 이전의 계몽주의와 관계가 있다. 그 이전의 기독교와 관련이 있다. 기독교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 계몽주의라면 2차대전의 악몽을 겪고 계몽주의 한계를 절감한데서부터 부조리의 인식은 시작된다.


    합리주의-계몽주의에서 어떤 전근대성, 봉건성을 포착한 것이다. 여기가 출발점이다.


    부조리는 현대성이며, 깨달음이고, 미학이고, 완전성이다. 그것은 인간이 유전자의 명령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상부구조로 치닫는 병폐를 지적하고 개인의 완성을 자각하는 것이다. 강한 개인으로 올라서기다.


    그래서 실존주의는 불교와 가깝다. 특히 까뮈에 있어서 부조리는 순수한 깨달음 그 자체다. 샤르트르는 약간 나이롱이다.


    윤리, 도덕 따위는 집단의 메시지다. 애국, 반공 이런 것도 집단의 광기다. 집단에 의해 미쳐 돌아가던 세계가 개인에 의해 바로잡히는 것이 부조리의 정답이며 까뮈가 말하고자 했던 바다.


    선문답은 정해진 정답이 없지만 사실은 정답이 있다. 그냥 정답이 없다고 우기는건 모르는 사람이 하는 소리고, 정해진 답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식한 사람이 하는 소리다.


    분명한 정답이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정답이 없다. 그대가 어떤 답을 하든 묻는 말에 답을 하면 이미 틀려버린 것이다. 질문이 call일 때 호응하여 because가 나오면 이미 틀려버린 것이다. 누가 답하랬느냐고? 누가 대답하는 자의 포지션에 가서 서랬냐고?


    call과 because가 하나의 세트를 이룬다면 상대의 call에 because 하지 말고 반대로 그대가 call을 쳐야 한다. 그대가 부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 신의 부름에도 응답하지 말라. 석가의 부름에도 응답하지 말라. 달마의 부름에도 응답하지 말라. (이렇게 말하면 부처를 죽이고 달마룰 죽이겠다며 나를 치려는 사람 꼭 있다.) 국가의 부름에도 응답하지 마라.


    응답하는 자의 포지션에 서면 이미 깨달음은 저 멀리 달아나고 만 것이다. 그대가 세상을 부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대가 사건의 원인측이 되어야 한다. 그대로부터 사건은 시작되어야 한다. 그대가 기승전결의 기가 되어야 한다.


    부조리란 응답하는 즉 이미 틀려버린 것이다. 그대가 욕망에 응답하는 한, 그대가 희망을 품는 한, 그대가 꿈을 들키는 한 이미 틀려버린 것이다. 모든 ‘위하여’를 끊어내고, 순수한 ‘의하여’에 서야 한다.


    답은 있다. 의하여가 답이다. 세상의 부름에 응답하지 말고 반대로 그대가 세상을 향해 call을 치는 것이 답이다.


    시에는 운율이 있고, 그림에는 구도가 있고, 음악에는 화음이 있다. 시는 운율에 의해서 풍성해지고, 그림은 구도에 의해서 풍성해지고, 음악은 화음에 의해서 풍성해지고, 만화는 병맛에 의해서 풍성해지고, 철학은 부조리에 의해서 풍성해진다. 더 넓은 세계로 올라선다.


    주제, 메시지, 교훈은 부정되지만 현장에서의 섬세한 반응은 있다. 상호작용은 있다. 그림 바깥의 메시지를 부정하고 그림 자체에 내재한 조형적 질서를 찾는다. 미리 정해놓은 답을 찾지 않고 맞닥들인 현장의 리얼리즘에서 답을 찾는다.


    보물찾기를 한다면 각본에 따라 미리 숨겨놓은 보물을 찾는게 아니라 그렇게 숲을 뒤지고 다니면서 자연과 접촉하는 그것이 찾아야 할 보물이다. 그렇다. 보물은 없지만 분명히 보물은 있다. 그대는 찾았는가?


    부조리는 합리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며, 합리주의는 reason이며, 부조리는 reason의 부정이며, reason은 why나 because와 마찬가지로 call에 대한 호응이다. 누군가의 콜에 응하는 포지션에 서면 이미 졌다.


    ◎ 신이 그대를 call했다. - ‘조까!’
    ◎ 나라가 그대를 불렀다. - ‘조까!’
    ◎ 윤리가 그대를 불렀다. - ‘조까!’
    ◎ 돈이 그대를 불렀다. - ‘조까!’
    ◎ ( )가 그대를 불렀다. - ‘조까!’

 

    전방위로 조까를 구사하는 것이다. 어떤 call이든 응답하면 진다. 큰스님이 어떤 질문을 하든 대답하면 진다. 끽다거.. 부디 그 차를 마시지 말라. 마시면 퇴장당한다. 세상이 그대에게 부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순간 꼭두각시가 된다. 역할하지 말라.


    부조리는 인생에 답이 없다며 시크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답이 없다는 사실 안에 진정한 답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유쾌해지는 것이다. 유쾌하지 않으면 부조리가 아니다.


    그림의 의미를 모르겠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그림에 의미가 있다면 그것이 어찌 그림이겠나? 의미가 들어가면 텍스트다. 이 그림은 불로장수를 기원하고, 저 그림은 장원급제를 기원하고? 그게 그림이겠는가?


    마찬가지로 인생에 의미가 있다면 그것이 어찌 인생이겠는가? 그것은 개생이거나 돼지생이다. 인생에 의미가 없으므로 깨달음이 있다. 돈을 벌겠다, 출세를 하겠다, 성공을 하겠다, 애국을 하겠다 하는 그 의미를 버려야 한다.


    깨달음도 없다고 말하면 그것은 잘난척 하는 먹물의 허무주의에 불과하다. 의미가 없기 때문에 깨달음이 있다. 위하여가 없기 때문에 의하여가 있다. 부조리가 사이비 철학자의 말장난이 되어도 곤란하고 무개념들의 현실도피수단이 되어도 곤란하다. 도망치지 않기 바란다. 부디.


    “세상이 왜 이렇게 부조리하지?” <- 이거 부조리가 아니다. 전형적인 합리주의다. 이미 세상 탓하고 있다. 세상에서 답을 구하려 하고 있다. 그러다가 전쟁이 난 것을 반성하는게 부조리인데 아직도 세상 탓을?


    세상이 부조리하다고 화를 내는 것은 깨뜨려야 할 합리주의다. 정신차리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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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조리란 사전에 정해진 대본대로 가기를 거부하고 자의에 의해 즉흥적인 애드립을 넣는 것입니다. 사회에서 먹어준다는 종교, 윤리, 도덕, 애국, 성공, 명성, 출세로 가는 것은 다 정해진 대본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대가 천국을 가든 어디를 가든 대본대로 가는 것이면 이미 틀려버렸습니다. 그대가 새롭게 설계한 세상을 내보여야 합니다. 그대가 세상을 부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1.29 (01:34:17)

그렇다. 신의 부름에도 응답하지 말라. 석가의 부름 에도 응답하지 말라. 달마의 부름에도 응답하지 말라. ( "이렇게 말하면 부처를 죽이고 달마룰 죽이겠다며 나 를 치려는 사람 꼭 있다." ) 국가의 부름에도 응답하지 마라.


ㅋㅋㅋ....병맛이오.
" " 이 대목에서 너무 웃었더니 ... 잠자기 전 스트레칭이오. ^^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사발

2013.01.29 (03:18:42)

먼전에서 말하기에는 너무 민망한 얘기라 여기에 씁니다. ^^;;

 

김동렬 선생님이 한국에서 태어나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말로 이런 말씀을 써주시는 것은 나에게는 크나큰 행운이지만 김 선생님에게는 별로 재미없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물을 알아보고 인물이 나오면 전 나라가 합심해서 키워주는 나라가 우리가 그렇게 싫어하는 이웃나라 왜국입니다.

반면, 인물이 나오면 어떻게든 똥물을 뒤집어 씌워서 매장시키려고 (다는 아니겠지만) 상당히 다수가 노력하는 나라가 바로 여깁니다(구체적인 나라이름 거명하지 않음)

 

김동렬 선생님보고 일본으로 거처를 옮기시라는 말씀은 전혀 아니지만(그러면 제가 재미없으므로) 영어나 러시아어로 구조론을 번역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가급적이면 어순도 같고 정서도 비슷한 면이 있는 이웃나라 말로 구조론을 번역하면 한국에서 보담은 훨씬 더 호응이 클 거라고 봅니다.

 

위에 쓴대로 왜인들은 인물을 알아보고 허리를 굽힐 줄 아는 민족성이기 땜에....

반면 평등사상 쩌는 우리 한겨레(...)는 누가 좀 옳은 소리 하면 "니가 머가 그렇게 너 혼자 중뿔나게 잘 났냐?"고 치고 들어오는 경향이.....

 

저도 나갔다 안 나갔다 하는 주제에 이런 말 하기는 역시 좀 민망하지만, 만약에 김 선생님이 일본인이고 똑같은 구조론을 일본에서 설파하셨다면  김 선생님 저서 판매량이나 목욜 모임에 나오는 사람 숫자가 한국 보다는(인구 대비) 훨 많을 거라는데 100마넌 걸 용의 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29 (10:26:16)

조만간 일본어로 번역해야 하겠구료.

일본 욕해놓은 것은 빼주는 정도의 성의는 보이고

[레벨:15]오세

2013.01.29 (10:08:58)

전송됨 : 트위터

 (이렇게 말하면 부처를 죽이고 달마룰 죽이겠다며 나를 치려는 사람 꼭 있다.) 

---


그래서 죽림칠현이구려. 

누가 한 곡조 뽑으면, 


죽림칠현 외의 사람들: 넌 노래가 이게 틀렸고 저게 틀렸고 이걸 못하고 저걸 못하고..... 감놔라 대추놔라

죽림칠현들: 그냥 자기 악기를 꺼내던지 술병을 꺼내던지 분위기에 조응하여 뭐든 한 가락 뽑아낸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1.29 (10:32:07)

부조리를 단순히

모순, 비논리, 앞뒤가 안 맞는 상황으로 좁혀 해석하면 곤란하오.

 

중요한건 까뮈의 이방인을 보고 이거다 하고 박수를 친 사람들의 민감한 반응이오.

부조리=깨달음이오. 그것은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상부구조의 명령..

 

윤리, 도덕, 천국, 애국, 규범 따위에 복종하려는

역할하려는, 연극하려는, 그러한 상태를 해체하려는 것이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나는 돈이 좋아' 해봤자

사실은 그 돈을 남 주려는 것이오.

 

돈이 좋으면 돈을 자기가 챙겨야지 왜 남주겠소?

'돈이 좋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내가 돈을 가졌을 때 남들이 자기 앞에서 지어보이는 비굴한 미소가 좋은 거요.

즉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인생을 산다는 것이지요.

 

결국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 갇혀 노예로 사는 것이오.

윤리라는 감옥, 도덕이라는 감옥, 애국이라는 감옥들.

 

부조리란 그것이 가짜임을 꿰뚫어보라는 말이오.

돈이 좋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은

 

무의식적으로 타인의 의지에 의해 나의 뇌가 조종당한 것이오.

나를 위한 것이라고 믿지만 사실은 남을 위한 것이오.

 

왜 서양에서 이런게 생겼느냐 하면

근대과학이 대두되자 기독교가 위기에 처했는데

 

그걸 구해준 사람이 칸트이고 마르크스도 칸트에서 벗어나지 못했소.

그 최후의 최종보스는 토마스 아퀴나스인데

 

실존주의는 마르크스를 공격하는 것이고

마르크스는 본질에서 철저한 칸트주의자이고  

 

칸트주의는 철저한 기독교주의고

기독교주의는 토마스 아퀴나스주의고

 

토마스 아퀴나스주의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고

그 위에는 플라톤 형님이 계시며

 

결국 서구 합리주의 뿌리는 플라톤인데

플라톤의 진리를 토마스 아퀴나스가 기독교와 등치시킨 것이오.

 

인간 위에 진리가 있다=인간 위에 천국이 있다

결론은 플라톤>토마스 아퀴나스>칸트>마르크스>샤르트르가 다 한 집안 식구이며

 

그들은 본질에서 같은 무리들이고

그들의 주장은 인간은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오.

 

물론 겉으로는 샤르트르가 마르크스를 비판하고 있지만 본질은 계승

겉으로는 칸트가 기독교를 비판하고 있지만 본질은 답습

 

서구 합리주의 계몽주의 사상은

기독교용어를 철학용어로 바꿔놓은 것에 불과

 

기독교어를 철학어로 번역하기만 하면 사상이 하나씩 탄생

여기에 반기를 든 사람이 니체.

 

동양에는 원래 반항의 족보가 있소.

최초의 반항자는 노자와 장자.. 모든 가치에 반대한다는 주의

 

석가도 신을 부정하고 인간을 신급으로 올렸으므로 반항자

위앙과 한비, 이사도 어느 면에서 반항자(메커니즘의 폭로자)

 

묵자도 반항자, 원래 동양사상은 반항의 사상이오.

근데 서양의 경우는 디오게네스>마키아벨리>니체>까뮈 정도인데 불쌍한 이단종자들

 

서양은 게르만의 종사제도 때문에 원래 전체주의요.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라는 것도 전체주의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소.

 

결론적으로 그대 앞에는 두 개의 길이 있소.

길은 갈림길이며 그대는 선택해야 하오.

 

한쪽 길은 윤리, 도덕, 애국, 천국, 은총의 길이요.

다른 길은 미학, 자연, 개인, 반응, 상호작용의 길이요.

 

두 번째 길을 가면 우리편이고 돈오파이며

첫번째 길을 가면 적군이고 빨갱이고 수꼴이오.

 

그대 인생의 미션을 태어날때부터 정해놓고 있으면 적군이고

병맛스러운 상호작용을 통해 지금 정하면 우리편이오.

 

 

프로필 이미지 [레벨:14]곱슬이

2013.01.29 (10:59:35)

이거 예전부터 안것인데.  

나는 왜 이렇게 잘 말하지 못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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