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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9668 vote 0 2013.04.22 (23:06:27)

      세상의 많은 다툼들은 같음의 추구와 다름의 추구가 대립하는 패턴으로 나타난다. 보편성과 특수성 또는 일반성과 다양성이라 하겠다. 전자는 같게 해서 효율을 뽑아내려 하고 후자는 다르게 해서 새로 씨앗을 뿌리려고 한다.

 

    ◎ 같음의 질서
    ◎ 다름의 조화


 

    전자는 같음에 의한 질서를 추구하고 후자는 다름에 의한 조화를 추구한다. 어느 쪽이 정답일까? 이 문제를 해소하는 것은 ‘사이’다. 두 당구공이 맞닿은 접점은 하나이면서 동시에 둘 다에 속한다.


    1이면서 2다. 한편으로는 0이다. 두 당구공은 있지만 그 사이는 없기 때문이다. 있으면서 없고, 같으면서 다르고, 1이면서 2고, 보편성이면서 특수성이고 일반성이면서 다양성인 그것이 구조다.


    구조는 질서있으면서 동시에 조화롭고 효율적이면서 동시에 새롭다. 그것은 큰 나무와 같다. 나무의 줄기는 하나이나 가지는 많다. 나무는 한 그루이면서 동시에 꽃과 열매와 잎새와 뿌리로 여럿이다.


    그것은 골목길과도 같다. 집은 건물이 들어차 있지만 길은 비어서 없다. 그러나 분명히 그곳에 존재하여 있다. 0이면서 1이다. 길은 모두 연결되어 크게 하나의 통짜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여럿이다. 길은 이어져 집집마다 빠짐없이 도달한다. 1이면서 2다. 노자는 그것을 도(道)라고 이름하였다.


    세상의 많은 다툼들은 의사소통의 실패 때문에 일어난다. 그곳에 길이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도(道)의 길이 끊어지고 막힌 것이다. 길이 닿지 않는 지점들이 있다. 그곳을 맹지라고 한다.


    맹지에는 집을 지을 수 없다. 다가갈 수 없기 때문이다. 왜 도로 소통되지 않는 맹지들은 나타나는가?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국어와 영어는 다르다. 중어와 불어는 다르다. 길이 끊어진 것이다.


    모두가 공유하는 단일한 언어가 있다면 인류의 지혜는 크게 상승될 것이 틀림없다. 결코 끊어지지 않는 언어도 있다. 그 언어는 숫자다. 혹은 컴퓨터어다. 자연어다. 자연은 그 자체로 하나의 언어다.


    영어를 쓰던 불어를 쓰든 중어를 쓰던 상관없이 밤 하늘의 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누구나 의미를 알아챈다. 그것은 모형어다. 모형어는 두 당구공의 접점처럼 0과 1과 2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


    구조론은 모형어다. 우리가 쓰는 일상어는 전개어다. 전개어는 펼쳐져 있다. 그 펼쳐진 것을 다시 구축하여 모형화해야 한다. 2를 1로 환원시키고 1을 0으로 되돌려서 당구공의 접점을 회복해야 한다.


    모듈화 하는 것이다. 그것이 깨달음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어는 전제와 진술의 형태로 펼쳐져 있다. 문제는 전제가 숨는다는데 있다. 숨은 전제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초딩의 일기쓰기와 같다.


    일기의 첫 줄은 무조건 ‘나는 오늘..’이라고 쓴다. 누가 나에게 ‘너 오늘 뭐했니?’하고 물었다는 가정을 하고, 그 질문에 대답하는 마음으로 일기를 쓰는 것이다. 아무도 내게 물어보지 않았는데 말이다.


    왜인가? 동기화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무의식적으로 집단과 동기화 되어 있다. 집단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 되고 집단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된다. 집단의 긴장을 느끼는 센서 때문이다.


    개미들은 페로몬에 의해 집단 전체가 하나로 동기화 된다. 인간은 깨달음에 의해 더 높은 단계의 상부구조와 동기화 된다. 자신이 어느 지점에 동기화 되어 있느냐에 따라 스트레스 받는 정도가 다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싸이의 젠틀맨을 보고 즐거움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반대로 심한 불쾌감을 느낀다. 잘못 동기화 되어 있다. 마땅히 인류와 자연과 역사와 진리와 신과 동기화 되어 있어야 한다.


    인간의 언어는 전제와 진술의 구조로 세팅되며 대개 진술을 말하고 전제를 생략한다. 숨은 전제가 된다. 숨은 전제는 무의식적으로 동기화 되어 있는 지점을 가리킨다. 무엇이 자기편으로 여기느냐다.


    꼬마였을 때의 일이다. 냇가에서 놀다가 깨진 유리병을 밟아서 발가락을 다쳤다. 붉은 피가 펑펑 쏟아졌다. 평소의 습관대로라면 민국이처럼 울어야 한다. 그런데 울 수 없다. 그 공기가 이상하다.


    하늘은 너무 푸르고 냇가의 미루나무는 머리 위에서 빙빙 돌아간다.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어지럽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울 수 없다. 아무도 없는데 혼자 우는게 어색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엄마가 있는 집까지의 거리는 불과 300미터였지만 꼬마의 체감거리는 매우 멀었다. 그 여름의 마을풍경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는 처음으로 자연을 눈 크게 뜨고 세밀하게 관찰한 것이다.


    생뚱맞게도 말이다. 무심고 지나쳤던 모든 주변의 사물을 다시 보았다. 발바닥에 밟히는 자갈들이 와글거리며 수선을 떠는 듯 했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 울지도 않고 집에 무사히 도착한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엄마의 모습을 보는 순간 울음이 터졌다. 왠지 억울했기 때문이다. 설움이 복받쳐 올랐다. 서럽게 서럽게 울었다. 엄마는 당연히 내가 다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내가 발을 다친 사실을 엄마가 알 리 없잖은가 말이다.


    이후의 기억이 없는걸 보면 그 시점부터 시간은 다시 정상으로 흐른 것이다. 쏜살같이 말이다. 무의식적으로 엄마에게 화를 내고 엄마탓을 하게 된다. 엄마가 내가 다친 사실을 모르고 있던게 야속하다.


    그것은 어리광이다. 자신이 어느 지점에 동기화 되어 있느냐에 따라 사회적 어리광이 나타난다. 대개 낮은 레벨에 동기화 되므로 방향을 잃고 헤매는 것이다. 후진국의 경우 대개 부족주의가 문제다.


    개인이든 가족이든 부족이든 국가든 세계든 의사결정 단위다. 산업화가 되면서 국가주의가 대두되어 개인의 의사결정을 돕는다. 국가가 가치판단의 기초가 된다. 후진국의 경우 국가주의가 약하다.


    우리가 류현진을 응원하는 것이나 싸이를 지지하는 것이나 올림픽 금메달에 신경쓰는 것이나 국가가 의사결정 단위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가 그러한 것은 아니다. 국가의 존재감이 약하다.


    산업화 시대에 부족에 동기화 되어 있으면 망한다. 부족의 규모는 개인의 의사결정 단위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기부여를 끌어낼 수 없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스트레스 테스트에 들어간다.


    꼬마가 보호자의 관심을 끌려고 오줌을 싸듯이 부족민은 뭔가 말썽을 일으킴으로써 부족의 반응을 끌어내고 그 반응을 자기 행동의 근거로 삼아 동기부여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반응이 약하다.


    가족이면 곧바로 반응이 온다. 가족 안에서 창피함과 어색함과 떳떳함이 나침반이 작동하여 행동의 지침이 된다. 그러나 부족은 모든 것이 모호하다. 그러므로 말썽을 부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사회적 어리광이다. 대개 사회에 적대적 태도를 가지고 사회의 일에 분노하면서 동기부여 한다. 아침에 조간을 받아들고 사건기사에 흥분하면서 그것을 커피 한 잔의 효과로 삼는다.


    대개 사회에 대한 어리광의 태도를 가지고 집단이 먼저 나를 어떻게 해꼬지 했으므로 그것을 빌미삼아 타자에 대한 복수심으로 동기부여하여 나의 행동을 결정하겠다는 식이다. 비참이 아닐 수 없다.


    나의 행동을 나 자신이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가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비참을 극복하려면 동기부여 되는 상호작용의 레벨을 키워야 한다. 신과 자연과 진리와 문명에 동기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개인화 되어야 한다. 신 앞에서 단독자의 포지션으로 서야 한다. 세상과 나의 일대일 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볼 때 리더의 마음으로 주체적인 의사결정은 가능하다.


    인생은 부단한 판단과 결정의 연속이다. 적극적으로 의사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대개 ‘네가 먼저 내게 어떻게 했으므로..’ 라는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 먼저 그렇게 포지셔닝하고 행동에 돌입한다.


    1에서 2로 쪼개졌다. 실패다. 복구되어야 한다. 반도체는 1이면서 동시에 2다. 하나이면서 동시에 둘이다. 너와 나의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 관계가 있다. 그것은 도(道)다. 관계는 하나이면서 둘이다.


    춘향과 몽룡 사이에는 하나의 사랑이 있다. 동시에 춘향의 사랑과 몽룡의 사랑이 있다. 하나이면서 둘인 것에서 모든 것은 시작된다. 당신은 세상과 어떻게 하나이면서 둘인 지점을 획득했느냐다.


    그 특별한 지점을 획득했을 때 선장이 키를 잡은 것과 같고, 범선이 돛을 올린 것과 같고, 자동차가 시동을 건 것과 같고, 기수가 말에 오른 것과 같다.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후 일사천리로 전개된다.


    그 지점이 없다면 모든 것은 애매해지고 만다. 길을 잃는다. 자부심을 느낄 근거가 없고 수치심을 느낄 근거도 없다. 그렇다면 스트레스 테스트를 하게 된다. 공동체를 해쳐서 반응을 얻어내려 한다.


    망가지고 마는 것이다. (동기화라는 표현은 지난주 모임에서 있었던 담님의 강의에서 얻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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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침반은 남극과 북극을 가리킵니다. 의사결정이 가능한 지점에 동기화 되어야 하며 그 지점은 남극과 북극입니다. 남극은 개인이고 북극은 세계입니다. 그 중간의 가족, 부족, 국가는 모두 해롭습니다. 의사결정의 방해자입니다. 특히 부족주의 사고는 매우 위험합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진보, 보수진영이 일종의 부족입니다. 정글에서는 부족이 가장 큰 사회단위지만 문명사회에서는 세계 혹은 신이 가장 큰 사회단위입니다. 가족주의는 위험하고 국가주의도 부족하며 국제주의를 넘어서 인류와 문명과 역사와 진보를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그네가 북극성을 보고 길을 찾듯이 가장 높은 레벨에 동기화 될 때 바른 판단은 가능합니다. 물론 가족주의나 국가주의도 때로는 일정한 기능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역시 후진국에서의 일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1]탈춤

2013.04.23 (11:01:16)

빙고 !

자연을 느끼는 순간

 

[레벨:11]큰바위

2013.04.23 (19:49:07)

개인의 의사결정 방식이 있고,

그룹의 의사결정 방식이 있지요.

부족의 의사결정 방식이 있듯이,

국가의 의사결정 방식이 있지요.

 

의사 결정은 해야겠는데, 그 방식을 모른다는게 문제죠.

몇 사람만 모여도 냅다 배가 산으로 가니......

 

동기화는 깨달음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에너지가 확 달아오르고,

불꽃이 확 타오르고,

세상이 확 열리는 거죠.

 

아무리 자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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