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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572 vote 0 2022.01.02 (17:51:01)

    우리는 나침반이 북쪽을 가리킨다고 믿지만 틀렸다. 자북과 정북은 다르다. 우리는 건전지를 수평으로 연결하면 교류가 된다고 초딩 때 배웠지만 틀렸다. 교류를 설명하기 어려우니까 얼버무린 것이다. 애들이라고 만만히 본 것이다. 전기는 플러스에서 마이너스로 이동한다고 믿지만 틀렸다. 과학자가 전류의 흐름을 잘못 정의해서 헷갈리게 되었다. 


    우리는 동짓날에 해가 가장 일찍 진다고 알지만 틀렸다. 12월 7일 오후 5시 13분에 해가 진다. 동짓날은 4분이나 해가 길어져서 5시 17분에 진다. 대신 1월 10일까지 오전 7시 47분으로 해가 늦게 뜬다. 낮의 길이가 짧은 것과 해가 일찍 지는 것은 다르다. 막연히 피상적으로 아는 것과 제대로 아는 것은 다르다는 말이다. 도무지 안다는게 무엇일까? 


    메커니즘을 알아야 아는 것이다. 우리는 바다가 푸르다고 알지만 하늘이 반사된 것이다. 바다는 연한 녹색이다. 하늘이 푸르다고 알지만 푸른 색소가 하늘에 뿌려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나뭇잎이 푸른 것은 엽록소라는 색소가 있다. 빛을 내는 메커니즘이 다른 거다.


    우리는 개가 산책을 좋아한다고 믿지만 틀렸다. 개가 산책을 좋아한다는 것은 인간이 전자오락을 좋아한다고 믿는 것과 같다. 개는 집단과 결속하여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방법 중의 하나로 산책을 선택했을 뿐이고 인간은 활력을 끌어내려고 오락을 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 하나로 전자오락을 선택했을 뿐이다. 


    우리는 진돗개가 낯선 개를 만나면 서열싸움을 한다고 생각한다. 틀렸다. 영역과 세력이 모호해서 스트레스를 받은 개가 자기편인지 아닌지 확인하려는 행동이 서열싸움으로 나타난다. 서열싸움을 하면 견주가 개를 잘못 키운 것이다. 피상적으로 아는 것과 제대로 아는 것은 다르다. 정확히 메커니즘을 알아야 아는 것이다.


    과학가의 자세가 중요하다. '노자의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은 진리는 없고, 있어도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진리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언어의 파괴다. 언어가 없다면 동물과 같다. 노자의 말은 진리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이다. 문제는 소인배의 권력의지다. 진리가 있으면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 마음대로 일을 저지르고 싶은 것이다. 


    이건 개학이 없고 방학이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같다. 방학이 계속되기를 원한다면 아예 입학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제 발로 입학해놓고 영원한 방학을 찾는건 자가당착이다. 지식을 부정하려면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진리를 부정할게 아니라 자기 입을 꿰매는게 빠르다.


    인간은 말이 아니라 행위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다. 개소리를 하는 자들의 공통점은 행위라는 별도의 목적을 가진다는 점이다. 행위 뒤에 숨은 것은 권력이다. 그들은 권력을 만들 의도로 아무말 대잔치를 벌인다. 행위가 권력을 만든다. 일단 저질러보고 먹히면 삽질을 계속한다. 


    개소리를 하는 이유는 먹히기 때문이고, 먹히는 이유는 말의 내용이 아니라 말하는 행위가 권력을 만들기 때문이고, 권력을 만드는 쉬운 방법은 자기보다 띨한 자를 찾아내는 것이다. 맞는 말은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을 찾아내는 방법이고 개소리는 자기보다 띨한 자를 찾아내는 방법이다.


    지식행동이 아니라 권력행동이다. 괴력난신에 음모론 따위 다양한 개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세상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결론을 끌어낸다. 개소리를 하면서 이것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확정할 수 없으므로 사실로 간주할 수 있다고 궤변을 늘어놓는다.


    문제는 개소리 수렴의 법칙이다. 바른말 아홉에 개소리가 하나쯤 묻어가도 표시가 안 나는데 말을 하다보면 개소리만 소복하게 모인다. 바른말은 떠나고 백퍼센트 개소리만 남는다. 사기꾼만 모이면 사기를 칠 수 없다. 범죄자만 모이면 범죄를 저지를 수 없다. 진실이 없으면 거짓도 없다. 부족민이 그러하다. 그곳에 진실도 없고 거짓도 없고 아무 생각이 없다. 허무한 거다. 


    지식은 관측에 의해 성립한다. 인간은 관측한다. 관측은 변화의 관측이다. 변화는 둘 이상이 만나야 성립한다. 둘이 만나려면 그 둘의 존재가 있어야 한다. 불연속이라야 한다. 연속적인 세계관이 문제다. 과학은 세는 것이다. 센다는 것은 관측자인 자신과 관측대상을 일대일로 대칭시키는 것이다. 일대일 그 자체로 불연속이다.


    연속은 ->->->로 한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고 불연속은 -><-로 마주보는 것이다. 마주보면 끊어진다. 그것이 입자다. 대칭은 그 자체로 입자다. 관측은 그 자체로 입자다. 대칭이 안 되면 대칭이 될 때가지 관측대상의 크기를 줄이거나 늘리면 된다. 가장 작은 것과 가장 큰 것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 


    세상은 비례고 비례는 방정식이다. 변화 속에서 하나의 방정식을 찾으면 무언가를 아는 것이다. 그것이 메커니즘이다. 세상은 변하며 우리는 변화를 추적할 수 있다. 그것이 과학이다. 자연이 모습을 바꿀 때 피해갈 수 없는 관문이 있다. 딱 걸리는 지점이 있다. 그것이 입자다. 우리는 입자를 하나씩 셀 수 있다. 


    존재란 외부의 작용에 대해 반응하는 것이다. 관측하면 반응한다. 여기서 세계관의 충돌이다. 불연속적 세계관은 입자를 부정한다. 세상은 셀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무한이니 영원이니 전지전능이니 성질이니 기운이니 하는 말은 하나씩 세지 말자는 거다. 과학을 부정하는 사고다. 그런 단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 


    센다는 것은 일대일로 대칭시키는 것이다. 즉 관측이다. 세지 말자는건 관측하지 말고 눈을 감자는 것이다. 영화 돈룩업과 같다. 무한과 영원과 성질과 기운은 보지말자, 눈을 감자는 말이다. 관측하는 인간이 하나이므로 관측되는 자연도 하나이며 만약 하나가 아니라면 하나가 되는 지점까지 범위를 좁혀서 혹은 범위를 늘려서 관측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자연도 관계를 맺을 때 반드시 하나를 만든다. 변화는 한 지점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정성적인 것은 모두 정량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다. 막연히 성질이라고 주장되는 것은 모두 가짜다. 반드시 둘 이상이 만나는 방식이 있다. 우주 안에 색깔은 없다. 하늘은 푸르지 않다. 하늘에는 색소가 없다. 색은 둘의 간격이다. 안테나는 파장을 읽는다. 변화의 간격을 읽어내는 것이다. 안테나가 파장을 읽는 것이나 눈이 색깔을 보는 것이나 메커니즘이 정확히 같다. 


    변화가 없으면 반응이 없고 반응이 없으면 존재가 없다. 그러므로 변화가 있으면 그것을 정량적으로 셀 수 있다. 에너지의 방향이 -><-로 수렴인 부분을 헤아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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