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813 vote 0 2023.01.28 (20:05:58)

    인류 문명의 토대는 과학이다. 과학의 비빌 언덕은 수학이다. 수학의 버팀목은 인과율이다. 인과율은 결정론적 사고로 발전한다. 결정론적 사고가 틀렸다는 사실은 양자역학이 확정했다. 하늘이 무너졌다. 인류는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다시 근본을 사유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뉴턴 역학이 수성의 근일점 이동을 99.99퍼센트 설명하지만 100년에 43각초가 틀린다. 미세한 오류를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바로잡았다. 인과율은 대충 맞지만 엄격히 따지면 확실하게 틀렸다.


    인과율은 변화를 설명한다. 인류는 변화의 전달과 변화의 격발을 구분하지 못한다. 인과율은 이미 일어난 변화의 전달을 설명할 수 있지만 최초 격발은 설명할 수 없다. 인과율은 결함 있는 생각이다. 구조론은 결함을 보완하여 업그레이드한 새로운 인과율이다.


    변화를 격발하는 것은 계 내부의 밸런스다. 반드시 내부가 있다. 여기서 내부냐 외부냐가 중요하다. 인류의 사고는 외부지향적 사고다. 어떤 사건의 최초의 출발점은 반드시 내부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거대한 발상의 전환이다. 세상은 원자의 집합이 아니라 그것을 낳는 탄생의 집합이다. 원자든 소립자든 탄생의 자궁이 있어야 한다.


    만약 대재앙에 의해 인류의 모든 과학 지식이 파괴되고 단 한 문장만 다음 세대로 전해질 수 있다면 후세에 전해줄 그 한 문장은 무엇인가? 리처드 파인만은 인류의 가장 중요한 지식으로 원자론을 꼽았다. 그런데 그 원자론이 틀렸다. 원자론은 아기다. 그 원자를 낳는 자궁이 먼저다.


    인과율과 원자론은 연결되어 있다. 인과율이 틀렸으므로 원자론도 틀렸다. 인과율과 원자론의 공통점은 외부지향적 사고라는 점이다. 원자는 쪼갤 수 없으므로 외부를 본다. 인과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원인과 일어난 후의 결과를 본다. 역시 외부다. 원자가 공간의 외부라면 인과는 시간의 외부다.


    인류의 외부지향적 사고는 틀렸다. 모든 것은 내부로부터 시작된다. 구조는 내부의 의사결정구조다. 보려거든 반드시 내부를 봐야 한다. 무엇이든 거기서 시작된다. 태초에 내부가 있었다. 의사결정은 내부에서 일어난다. 내부지향적 사고로 갈아타야 한다.


    원자는 쪼갤 수 없다. 물질을 쪼개는 이유는 성질을 찾기 위해서다. 쪼개지면 한번 더 쪼개야 하므로 곤란하다. 계속 쪼개고 있을 수는 없고 뭔가 결말을 지어야 한다. 쪼개지지 않는다는 생각은 편리한 도피다. 거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뒤집어서 생각하라. 존재의 기본은 반대로 둘이 합쳐짐으로써 그 내부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쪼개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쪼개면 안 되는 것이다. 쪼개면 내부가 사라지고, 내부가 없으면 성질이 없고, 성질이 없으면 존재가 부정된다. 우리가 찾는 것은 존재의 성질이므로 그것을 쪼개면 안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면 안 된다. 원자라는 아기를 낳는 자궁을 쪼개면 안 된다.


    인류 문명의 두 기둥은 인과율과 원자론이다. 그런데 틀렸다. 다 틀린 것은 아니고 조금씩 틀렸다. 얼추 맞는데 정확하지 않다. 그것을 더 정확하게 설명할 다른 방법이 있다. 인류는 사유의 빌드업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첫 단추를 다시 끼워야 한다.


    공간의 원자개념과 시간의 인과개념을 통일하는 더 높은 단위의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그것은 사건이다. 원자와 인과는 사건을 공간과 시간으로 쪼갠 것이다. 쪼개면 안 된다는 아이디어에서 원자론이 나왔는데 그래놓고 쪼갠다면 삽질이다. 그러므로 원자론은 틀렸다. 존재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그것을 결정하는 의사결정의 단위다. 결정된 것이 아니라 결정하는 것이다.


    모든 것의 시작은 무엇인가? 그것은 구조다. 구조는 쪼개고 합쳐지는 것을 결정하는 의사결정의 단위다. 구조가 성질을 만든다. 그 성질은 조절된다. 성질이 물질에 고유하다는 생각은 틀렸다. 성질이 조절되는 것은 기능이다. 우리가 최후에 도달해야 하는 것은 기능이다. 기능을 찾았다면 다 찾은 것이다.


    구조는 기능의 집이다. 기능은 구조에 있다. 기능은 조절되므로 우리는 거기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기능을 조절하여 악사는 연주할 수 있고, 건축가는 지을 수 있고, 포수는 명중할 수 있고, 선수는 이길 수 있고, 화가는 그릴 수 있고, 학자는 규명할 수 있고, 작가는 창작할 수 있고, 당신은 창의할 수 있다. 기능이 없으면 가짜다. 내부에 조절장치가 없으면 거짓이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sort
567 사건의 수학 구조론 김동렬 2022-12-28 2181
566 자궁과 도구 1 김동렬 2021-11-26 2181
565 열쇠와 자물쇠 김동렬 2022-06-16 2179
564 부름과 응답 김동렬 2023-07-13 2178
563 플라잉카의 마이너스 1 김동렬 2019-11-18 2178
562 웃기고 자빠진 롤리타 김동렬 2022-04-26 2175
561 역설의 세계 김동렬 2022-06-11 2174
560 시정잡배 윤한 1 김동렬 2024-01-23 2173
559 협살에 걸렸다 김동렬 2023-09-11 2173
558 박원순 죽인 진중권들 image 김동렬 2022-10-18 2173
557 구조론의 차원개념 김동렬 2020-12-10 2173
556 무뇌좌파 멸망공식 김동렬 2022-06-21 2169
555 책상물림 지식인의 환상 김동렬 2022-03-27 2169
554 세상은 도구다 김동렬 2022-03-31 2168
553 아리스토텔레스가 본 것 김동렬 2022-02-18 2168
552 양향자의 배신 1 김동렬 2022-04-27 2167
551 구조론과 엔트로피 image 김동렬 2020-12-27 2167
550 힘의 격발 김동렬 2022-11-06 2165
549 세상을 이해하자 김동렬 2022-05-26 2165
548 윤영조와 한사도 김동렬 2024-01-22 2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