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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027 vote 0 2022.12.25 (14:50:35)

    21세기에 여전히 종교가 횡행하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종교적 본능 때문이다. 그것도 2천 년 묵은 낡은 종교다. 도무지 업그레이드가 안 된다. 하긴 본능을 업그레이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은 원래 종교적 동물이므로 당연히 종교를 믿어야 한다는 생각이라면 어리석다. 인간이 성욕을 가진 동물이라고 해서 성범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간극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한 번 방향이 정해져 버리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이미 오염된 종교적 인간을 다시 이성적 인간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


    '진화 비가역의 법칙'과 같다. 특정기관이 한 번 퇴화하면 후에 자손들이 다시 그 기관을 필요로 하는 환경이 찾아오더라도 같은 기관이 다시 생기지는 않는다.


    본능우선으로 뇌가 오염된 사람은 좀비가 되었다고 보고 포기한다. 종교에 오염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수밖에 없다. 이성과 본능은 애초에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집단과의 관계설정에 따라 포지션이 다르고 역할이 다르고 호르몬이 다르다. 이미 호르몬을 그렇게 세팅했다면 그렇게 사는 수밖에.


    모든 사람이 이성적인 행동을 한다고 해도 피곤하다. 이성은 작은 것에 강하고 큰 것에 약하기 때문이다. 죽고 사는 문제는 초이성이 필요하다. 그것은 개별적 이성이 아니라 통합적 이성이다. 


    초이성은 자신의 판단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판단을 따르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이 아닌 인류 전체의 마음, 우주 전체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다. 현재의 형편에 고착된 마음이 아닌 현재에서 미래로 연결하여 가는 마음을 따르는 것이다. 때로는 본능이 초이성에 가까울 수 있다. 


    한국인들의 합리적인 행동이 한국인의 대를 끊고 있다. 선진국이 출산율을 유지하는 이유의 상당 부분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결과가 아니라 멋대로 놀다가 보니 어쩌다 애가 생겨서다. 사생아에 관대한 문화와 제도는 물론 선진적이다.


    물질을 절대시하는 관점은 그 자체로 종교다. 무신론자에게는 무신론자의 신이 있다. 우리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해야 한다. 궁극적인 단계까지 추궁하면 내세가 없듯이 물질도 없다.


    물질과 성질은 모순된다. 물질이 없으면 성질이 있다. 확실한 것은 상호작용과 에너지의 밸런스다. 그들의 연결되어 있음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성질이다.


    어떤 것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것이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바탕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물질은 위치를 지키려고 하므로 물질의 존재할 수 있음과 충돌한다. 정적우주론과 빅뱅우주론의 충돌과 같다. 둘 중에 하나는 틀렸다. 정적우주론이 틀렸다면 물질우주론도 틀렸다.


    물질이 있은 다음에 2차적으로 성질이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당구공이 있고 그 당구공을 치는 것은 인간의 행위다. 자연은 성질이 물질에 앞선다. 당구공이 원자라면 당구공을 치는 주체는? 물질에 원자가 있다면 성질의 원자는 무엇인가?


    바람이 있고 그 바람이 부는게 아니라 부는 그것이 바람이다. 1이나 2와 같은 자연수가 먼저 있고 그 숫자가 2차적으로 가감승제의 성질을 획득한게 아니다.


    우리가 물질에 영혼을 주사기로 밀어넣었다는 식의 이원론적 사고를 극복해야 한다. 누가 당구공에 쓰리쿠션을 주입하고 자연수에 가감승제를 투입한 것은 전혀 아니다.


    자연의 변화는 비례가 있고 가감승제는 인간이 비례를 파악하는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물질과 성질, 숫자와 가감승제의 2분법은 인간의 귀납적 관측방식일 뿐 자연의 본래가 아니다.


    성질이 먼저 있고 그 성질이 일정한 조건에서 물질로 나타난다. 물질은 인간에게 관측되는 성질이다. 관측자와 나란하면 관측된다. 두 변화가 나란할 때 우리는 그것을 물질로 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변화 그 자체다. 존재가 어떤 이유로 변화하는게 아니라 존재는 곧 변화다. 나란한 변화와 어긋난 변화가 있을 뿐이다. 존재는 거리를 불문하고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가 신주단지로 모시는 국소성은 변화의 나란함에 불과하다.


    물질은 개별적으로 존재하고 성질은 통합적으로 존재한다. 구조론의 결론은 개별성의 부정이다. 개별성은 일정한 조건에서 2차적으로 유도된다.


    작은 그릇을 큰 그릇에 담을 수 없다.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아는 것 속에 억지로 욱여넣으려고 하므로 잘못된다. 


    부족민에게 라디오를 보여주면 라디오 속에 숨어 있는 작은 요정을 찾으려고 할 뿐 라디오 바깥의 방송국은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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