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승부는 한 순간에 갈라진다]
싸움이 끝나고 보면 언제나 승부는 한 순간에 결정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LG팀의 김성근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4차전이 고비였어! 그때 이상훈선수가 60구 씩이나 무리하게 던지지 않았더라면.."

후회 해봤자 게임 끝나고 난 다음이다. 5년전 이회창씨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때 YS가 이인제를 만나라고 훈수해 주었을 때 그 말만 들었더라면.."

승부처가 있다. 문제는 승부처가 '나 승부처요!'하고 간판달고 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보통 승부처는 우리의 생각보다는 더 느리게 오고, 후보의 생각보다는 더 빠르게 온다.

그 승부처가 왔을 때 단 한번의 결단으로 승패를 결정해야 한다. 어쩌면 정몽준과의 후보회담이 그 승부처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정몽준을 지지하는 지역, 혹은 계층의 사람들은 노무현이 정몽준을 어떻게 대접했는가에 따라 노후보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대접할 것인지를 판단한다.

바로 이 점이 문제다. 선거는 적대적인 자존심과의 싸움인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유권자의 자존심을 건드려서 안된다. 아니 자존심을 건드려야 한다. 적대적인 자존심을 우호적인 자존심으로 바꿔주어야 한다.

후보단일화논쟁은 명분싸움에서 시작되어 자존심싸움으로 완결된다. 결국 인간심리의 가장 깊숙한 곳을 건드리지 않으면 안된다. 패자에게 이쪽으로 돌아설 명분을 이쪽에서 제공해야 한다. 패자의 굴욕이 아니어야 한다.


[서자 정몽준의 생존술]
두가지 종류의 다루기 어려운 인간이 있다. 하나는 좀체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 능글능글형이다. 다른 하나는 개성이 톡톡 튀는 똥고집형이다. 정몽준은 후자에 속한다.

대부분의 정치가들은 얼굴이 두꺼워서 능글능글하다. 이들을 다루는 사람은 하나 밖에 없다. 이들보다 더 능글능글한 인간이다. 결국 아주 능글능글한 정치 9단들이 약간 능글능글한 정치 초단들을 잘 다루어내는 것이다.

정몽준은 얼굴이 두껍지 않다. 어떤 면에서 담백하고 한편으로 괴퍅하다. 이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면 절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 반면 자존심만 살살 어루만져 주면 말을 잘 듣는 유형의 인간이다.

사람을 잘 다루는 사람은 교사 아니면 정치가들이다. 교사가 다루기 어려운 학생은 그 교사와 사이가 좋지 않은 불량학생(?)이 잘 다룬다. 정치가들이 잘 다루기 어려운 인간은 역시 그 정치가들이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 잘 다룬다.

정략적인 태도로 접근하므로 다루지 못하는 것이다. 노무현을 다룰 수 있는 정치가는 이나라에 없다. 정몽준을 다룰 수 있는 정치가도 노무현 외에 없다. 둘은 닮은 꼴이다. 정략적인 태도로 접근하지 않으면 오히려 다루기 쉬운 인간이 정몽준이다.


[정몽준의 성장배경]
정몽준은 사람을 믿지 않는다. 아부하는 사람의 말을 더더욱 믿지 않는다. 속보이는 의례적인 행동은 매우 경계한다. 타고난 귀족인 그의 성장과정을 참고하면 이해가 된다.

그는 귀족 집안의 서자이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신분이다. 가슴 깊숙한 곳에 오만과 상처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의 이중적인 성격은 이런 바탕에서 형성된다.

그는 늘 시험에 든다. 그를 이용해먹으려 드는 이익치류 잡인들의 유혹을 뿌리쳐야만 했다. 적자인 몽구, 몽헌 등에게 비위를 맞추어야 했다. 그의 생존은 한마디로 곡예였던 것이다.

적자인 몽구, 몽헌들은 다르다. 높은 위치에 앉아 충신들의 보호를 받으며 제왕학만 열심히 닦으면 된다. 감히 그들을 이용해 먹으려 덤비는 잡인은 주위에 없다. 겁낼 것도 없고 거리낄 것도 없다.

정몽준이 왕자들의 처절한 상속쟁탈전에서 한 발을 빼고 밖으로 빙빙 도는 이유나, 금뺏지를 달고도 국회 밖을 빙빙 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자가 감히 킹의 자리 근처에 얼씬거리는 의심받을 짓을 해서는 안되었던 것이다. 그는 극도로 신중해야만 했다.

그는 2등 자리까지는 쉽게 간다. 그러나 마지막 한 걸음은 끝끝내 떼지 못한다. 2위의 위치에서 멈추는 것이야말로 정몽준의 생존술이었다. 돌이켜보면 그의 인생경력이 대개 그러하다.

정치판은 정글과 같다. 다른 정치인들은 어떻게든 용을 써서 한걸음이라도 위로 올라가려고 기를 쓴다. 정몽준은 바깥으로 슬슬 배회하면서 남들이 놓치고 있는 것을 용케 찾아먹는다.


[분수를 넘다가 망가지는 군상들]
정치판 돌아가는 꼬라지를 구경하노라면 인간이 분수에 넘는 것을 넘보았을 때 어떻게 망가지는지 그 적나라한 현장을 실감하게 된다. JP의 2인자처세술은 박정희에 개기다가 망가지면서 얻은 충분한 경험에서 취한 것이다.

지켜보기로 하자. 정몽준이 기어이 분수를 모르고 날뛰다가 망가질 것인가 아니면 막강한 형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은 처세술을 발휘하여 움츠릴 때와 뛸 때를 구분해내는데 성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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