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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 -마르크스-

강준만은 그의 ‘감정적 코드’론에서 노무현이 너무 '사람'에 얽매여 있다고 말한다. 사람을 보지 말고 ‘의제’를 보라고 말한다. 부족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겉으로 꾸며낸 ‘의제’를 보지 말고 본질에서의 ‘존재’를 봐야 한다.

‘의제’는 구주류가 주장하고 있는 법적 정통성이다. ‘존재’는 구주류가 기도하고 있는 내각제의 숙명이다. 정당의 목표는 정권창출이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이지만 자민련된 그들의 출구는 내각제 뿐이다.

‘존재’로 보면 신주류와 구주류의 차이는 차기 대선후보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후보를 내지 못하는 구주류의 ‘사회적 존재’가 구주류의 의식을 내각제로 몰아가고 있다. 내각제를 고리로 한 한나라당과의 야합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을 내각제를 빌미로 한 한나라당과의 야합으로 몰아간다.』

잘 키운 후보 하나 열 국회의원 안부럽다.
시스템이란 무엇인가? 겉으로 보이는 ‘법과 제도’가 다가 아니다. ‘어차피 그렇게 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곧 사회적 존재다.  

80년 이후 이나라를 움직여온 시스템은 '광주'다. 그러므로 나는 87년 당시 민주화의 정통성이 DJ에게 있다고 보았다. 김영삼은? 조또 아니다. 법으로 따지고, 인맥으로 따지면 87년 당시 정통성은 YS에게 있다. 그러나 역사로 보고, 존재로 보고, 시스템으로 보면 정통성은 DJ에게 있다.

왜 광주인가? 광주가 총을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왜 ‘총을 들었다’는 사실이 그토록 유의미한가? 미국이라면 민간인이 총기를 소지하고 있다. 곧 미국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이다. 이것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존재’ 차원에서 성격규정 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봉건국가들은 용병제를 채택한다. 민간인의 손에 무기를 쥐어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시민이 무장하면? 고대 희랍처럼 자동으로 민주주의가 된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프랑스혁명 당시 파리지앵들은 5만정의 총기를 소지하고 있었다. 이것이 밑바닥에서 ‘시스템’의 변화, ‘존재’의 변화다. 혁명은 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의 상상력이 만든 것이 아니고 미라보가 꾸민 음모도 아니다.

총이 혁명이다.

문제는 총은 있는데 화약이 없었다는 점이다. 정부군과의 결전을 앞두고 화약과 대포가 있는 바스티유에 몰려가서 화약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이 300년 전 프랑스의 광주였다.

담을 넘어오는 도둑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많은 화약이 필요하지 않다. 기껏해야 10여발을 쏠 수 있는 화약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정부가 끌어들인 스위스 용병과 전쟁을 하려면 많은 화약이 있어야 한다. 바스티유 습격은 시민이 총과 화약으로 무장했다는 것이며, 이는 그리스의 시민이 자기 돈으로 무장을 갖추었다는 사실과 같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밖에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구체제로의 회귀는 물리적으로 불능이다. 이것이 역사의 시스템이다. 광주는?

한국의 젊은이들은 누구나 국방의 의무를 진다. 즉 사격을 할 줄 안다는 것이다. 예비군 무기고가 동대마다 있다. 그들은 예비군 동대장을 앞세워 무기고를 열었다. 총을 소지했다. 무엇인가?

봉건이다. 국민개병제를 채택하지 않고 용병제를 채택하는 이유는 국민이 무기를 다루어본 경험을 갖는 것이 두려워서이다. 그런데 한국인은 전 국민이 무기를 다루어본 경험을 가져버렸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시작될 토양이, 시스템이 밑바닥에서부터 구축되었다. 이는 ‘존재’ 차원의 변화이자 ‘물적토대’의 변화이다. 그것이 광주의 역사적 의미다.

그렇다면 80년 이후 한국의 정치사는? 광주가 결정한다. 보스턴에서 한 발의 총성이 200년간 미국사를 규정했듯이, 바스티유에서 한 발의 총성이 이후 300년간 프랑스를 규정했듯이, 광주에서 한 발의 총성이 이후 100년간 한국사를 규정한다.

이것이 87년 당시 필자의 역사인식이었다. 통합보다 분열을 택한 김대중을 지지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후 김대중은 여러번 당을 깨고 신당을 만들었다. 필자는 일관되게 김대중을 지지했다. 왜? 나의 ‘의식’이 아닌 나의 ‘존재’가 DJ를 선택했기 때문에.

말로 따지고, 의제로 따지면 YS에게 정통성이 있다. 속지 말라. 당시 정통성은 DJ에게 있었다. 정치인들 간에 성립하는 인맥의 정통성이 아니라, 법과 제도의 정통성이 아니라 역사의 정통성, 바스티유의 정통성 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는 보통 이렇게 간다. 시민이 한번 총을 들었다면 오직 민주주의 밖에 없다. 일본만 해도 젊은이 중에 사격을 해본 사람은 거의 없다. 자위대 출신 몇사람만이 총을 다룰줄 안다. 일본에서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능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총 다음엔 광장이다.
나는 또 휴대폰과 전화기가 쿠데타를 막았다고 생각한다. 83년 있었던 이산가족찾기로 집집마다 전화기가 보급되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87년 전두환은 친위쿠데타를 획책했지만 전화기가 이를 막았다. 더 이상 광주의 비밀을 감출 수 없듯이 이제는 인터넷 때문에 쿠데타는 물리적으로 불능이다.

본질을 봐야 한다. 민주주의는 2000년전 희랍시민의 자체무장이 만들었다. 그들을 뭉치게 한 것은 '아고라'다. 서구에서 가능한 민주주의가 동양에서 불가능했던 것은 동양에는 아고라와 원형광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아고라를 대신하는 것이 휴대폰이요 인터넷이다. 이것이 본질이다. 이것이 역사다. 이것이 존재다. 변덕도 많은 사람을 보지 말고, 꾸며낸 의제에 집착하지 말고 이 본질을 보라는 말이다.

유목민들은 대개 민주적이다. 유목민들이 전투능력이 뛰어난 것은 정보의 전달속도와 이동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쿠릴타이’라는 부족회의를 열어 민주적으로 의사를 결정한다. 그 유목민의 말이 곧 우리들의 인터넷이요, 전화기요, 휴대폰이다.

유목민들은 끝없이 분열한다. 그들이 분열하는 이유는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농경민이라면 의견을 통일하는데 3년쯤 걸린다. 유목민은 사흘이면 충분하다. 그들은 빛의 속도로 분열하고 빛의 속도로 재집결한다. 징기스칸의 명성이 몽골 초원의 곳곳에 알려지면 그들은 언제 우리가 분열했냐는 듯이 징기츠칸의 깃발 아래 재집결한다.

지금 우리는 분열한다. 시스템이다. 우리는 말을 얻은 것이다. 이동기술을 획득한 것이다. 우리는 언제든지 필요할 경우 재빨리 의견통일을 해낼 수단을 획득한 것이다. 농경민은 의견이 달라도 떠날 수 없다. 논밭을 떠메고 갈 수는 없으니까. 유목민들은 의견이 다르면 파오와 유르트를 걷고 떠나면 그만이다. 농경민은 분열하면 안되지만 유목민은 분열해도 다시 재집결하면 된다.

무엇인가? 국민경선제다. 국민경선제가 유목민의 파오와 유르트 역할을 한다. 옛날에는 구조적으로 불능이었다. 누가 나은지 어떻게 알아? 인터넷이 있기 때문에, 휴대폰이 있기 때문에 빠른 정보교환과, 정보의 질의 차별화가 이제는 가능하기 때문에. 이제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다. 이것이 시스템의 변화다. 이러한 본질을 보라.

이제는 그만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여라
세상이 변했다. 존재가 변했다. 물적토대가 달라졌다. 시스템이 바뀌었다. 그렇다면 거기에 맞추어 사고와 의식의 패러다임도 변해야 한다.

그 사이에 우리는 농경민이 아니라 유목민이 된 것이다. 빛의 속도로 분열하고 빛의 속도로 재집결하는 유목민 말이다. 한번 뭉치면 태산처럼 강한 유목민 말이다. 이 본질에서의 변화를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 왜? 구조적으로 어차피 그렇게 되게 되어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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