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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275 vote 0 2022.02.06 (09:41:46)

    자동차에 작은 흠집이라도 발견하면 크게 화를 내면서도 우주가 크게 비뚤어져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한게 인간의 실패다. 작은 카누의 움직임은 예리하게 포착하면서도 앞바다를 지나가는 큰 범선의 항해는 그 존재를 알아보지도 못하는 폴리네시아 부족민처럼.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오직 그리스인만이 비뚤어진 우주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그리스인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 구름은 비뚤어진 우주를 바로잡으려는 소크라테스의 노력을 비웃는다. 우주가 비뚤어졌던 말았던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소크라테스는 구름 위에 올라가 별을 낚으려고 하는 웃기는 인간이라네. 유태인은 우주의 문제에 신경쓰지 않는다. 그건 신의 소관이지 우리는 돈만 벌면 돼. 생육하고 번성해야지. 아랍인은 신의 뜻을 알아내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기독교는 오직 내세에만 신경을 쓴다. 


    천국 가야지. 일부 개신교는 현세에 속물적인 관심을 두지만 미국에서의 유행이다. 중국인은 현실에만 집중한다. 잘 먹고 잘 살고 자식 많이 낳아야지. 누가 이겼는가? 공리공론을 일삼던 그리스인이 이겼다. 사람들이 옷이 비뚤어졌거나 양말이 짝짝이인데는 신경쓴다.


    천하가 비뚤어진 데는 신경쓰지 않는다. 무엇보다 인간의 언어가 비뚤어졌다. 그 부분을 지적한 사람이 공자다. 소실점의 문제는 충격적이다. 사람들이 소실점 문제에 무관심한 사실이 충격적이라는 말이다. 소실점을 모르므로 그림을 그리다 보면 점점 지도로 변해간다.


    두 선이 맞물리는 부분이 어색하므로 그 부분을 감추려고 작게 그린다. 혹은 여백이라는 변명으로 그리지 않는다. 여백의 미가 어떻다는 둥 하며 말로 때우는게 어찌 비겁하지 않은가? 일본인들이 소실점을 잘못 배워서 그 충격을 역으로 이용하려고 한 것이 우키요에다.  


    중경을 지우고 근경과 원경을 충돌시켜 섬찟한 대비효과를 얻는다. 지구가 둥근 문제는 매일 눈으로 보며 겪는 문제다. 벽에 걸린 그림이 비뚤어져 있다면 거슬리지 않겠는가? 얼굴 가운데 미운털이 하나 박혀 있다면 어찌 족집게로 뽑아버리고 싶지 않겠는가? 잠이 오는가?


    인류는 신기한 동물이다. 미운털은 족집게로 뽑고, 원경과 근경 사이는 중경을 투입하고, 지도가 된 동양화는 고쳐그리고, 비뚤어진 언어는 바로잡고, 비뚤어진 우주를 바로잡아야 한다. 소크라테스를 비웃지 말라. 그 문제를 깊이 생각한 자들이 세계를 지도하게 된다.


    우주의 중심에 하나의 점이 있으니 의사결정구조다. 그곳에 하나의 천칭저울이 있고 F=MA라고 씌어져 있다. F라는 저울에 M과 A의 변화가 계량된다. 나머지는 이를 다양한 환경에 대입하여 해석한 변종들이다. 에너지는 일정하게 모습을 바꾼다. 그것이 진리의 전부다.


    중심에서 출발하여 계속 연결을 따라가는 것이 과학의 방법론이다. 중심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이기도 하고 유클리드의 원론이기도 하다. 우리가 중심에 대한 사유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중심이 없으면 사유를 시작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민족이라야 산다.


    생각의 출발점이 필요하다. 도무지. 인간에게 도무지가 필요하다. 우주에 중심 따위는 없고 각자 저 잘난 맛에 사는 것이라는 비겁한 학설이 21세기를 지배한다. 인종의 중심은 아리안 민족이라네. 지도의 중심은 그리니치 천문대의 영국이지. 혁명이 역사의 중심이야. 


    이런 20세기의 개소리에 지쳤기 때문이다. 산업화의 충격이 컸다. 큰 변화가 일어나자 중심을 차지하던 왕과 귀족과 양반은 거리로 추방되었다. 새로운 중심을 찾아 인류는 허둥대었다. 변방의 미국이 중심노릇을 할 때는 괜찮았는데 대륙에 틀어앉은 중국은 거슬린다.


    중국은 중심이 고정되어 망했고 유럽은 중심이 옮겨다녀 흥했다. 중심이 있으면 줄을 서게 된다. 줄을 서고 싶지 않은 인간들이 허무주의를 유포한다. 그들은 포기하라고 권한다. 중심 따위는 없다고. 히피와 노자의 무리다. 그런데 중심은 있다. 없는 집단은 망한다.


    동아리에 의장이 있고 회사에 사장이 있고 집단에 대표가 있다. 아프리카는 그 대표가 없다. 있어도 실권이 없고 형식적이다. 혹은 아는게 없고 자격이 없다. 그 중심이 고착되면 안 된다. 항해하는 배는 속도를 끌어올려 무게중심을 앞으로 옮겨야 파도를 이겨낼 수 있다. 


    중심이 고정되면 안 되고 거짓이어도 안 되며 살아있어야 한다. 이 문제는 여러 가지로 곤란하니 인간은 편법을 생각해냈다. 죽은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삼으면 좋잖아. 중심이 분명히 있고 상황에 따라 움직이잖아. 그게 종교의 발명이다. 인간은 이 문제를 벗어날 수 없다. 


     사유의 중심, 언어의 중심이 중요하다. 중심에서 연결해야 한다. 단절되면 망한다. 모든 거짓의 공통점은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원론으로부터, 원자로부터 족보를 따져서 촌수가 연결되지 않으면 가짜다. 갑툭튀 곤란하다. 성찰이니 진정성이니 유기농이니 생태니 한다.


    얼씨구. 내용이 없고 어감이 있을 뿐. 성철이 가니 성찰이 뜬다. 진정성이라고 하니 진지한 느낌. 유기농이라고 하니 유혹적이다. 생생하고 탱탱하니 생태놀음 좋을씨고. 유행어에 불과하다. 글자 배운 사람이 이런데 낚인다면 슬프다. 중심을 찾되 섬기지 말아야 한다.


    배는 타고 가는 것이지 제사 지내는 것이 아니다. 소실점을 눈으로 보고도 5천 년 동안 모르쇠를 시전한 동양사가 슬프다. 구역질이 나올 지경이다. 얼굴 가운데 커다란 혹이 있는데도 5천 년 동안 몰랐다는게 말이나 돼? 윤석열 얼굴에 커다란 대변덩어리 보이지 않는다고?


    그런 사람과 대화를 할 수가 없다. 색맹과 패션을 논할 수 없고, 음치와 음악을 논할 수 없고, 길치에게 길을 물을 수 없고, 중심치와 무슨 일을 도모할 수 없다. 모든 일의 첫 단추는 어디서 찾아야 하나? 그것은 자연의 완전성이다. 저울의 수평을 맞추는 것이 첫 단추다.


    거기서부터 게임은 시작된다. 십자말풀이는 아무 단어라도 찾으면 되지만 인생길풀이는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모든 것의 중심은 인간의 생각이다. 생각은 연역이다. 하나의 저울이 또다른 저울로 복제된다. 그것은 인간 안에 원래 주어져 있다. 인간은 균형감각이 있다.


    본능적으로 눈의 소실점을 찾고, 사건의 균형점을 찾고, 일의 시작점을 찾고, 사물의 무게중심을 찾는다. 아기가 두리번거리며 엄마를 찾듯이. 신생아를 엄마 배에 올려두면 가슴을 찾아 기어간다. 원래부터 가지고 태어난 균형감각과 평형감각 언어감각이 깨달음이다. 


    손으로 컵을 쥐어도 무의식적으로 무게중심을 찾고 균형점을 제압한다. 그것도 훈련된 것이라 못하는 사람이 있다. 무심코 도로에 뛰어드는 꼬맹이처럼 위태로운 것이다. 모든 것의 중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연결의 단위다. 원자가 아닌 것이다. 원자는 막연한 상상이다.


    구조가 만유의 중심이다. 원자개념은 구조를 잘못 상상한 것이다. 알갱이가 모여서 우주가 이룩된 것이 아니라 퍼즐이 맞춰져 우주가 이룩된 것이다. 알갱이는 누가 모아줘야 하지만 퍼즐조각은 저절로 맞는다는 것이 에너지 개념이다. 의사결정구조가 만유의 중심이다. 


    지하철시를 보면 괴롭다. 고정된 패턴이 있기 때문이다. 가짜시와 시의 차이는 쉽게 가려낼 수 있다. 제목을 보지 않고 시를 읽었을 때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면 그건 가짜시다. 지하철시는 붕어빵틀로 찍어낸 가짜다. 신문사 주부 문예교실 같은 데서 꼼수를 가르친 게다.


    대한민국 그 많은 지하철 차량에 붙은 그 많은 시가 죄다 가짜인데 인간들은 모르쇠다. 어린이들이 지하철에서 거짓말을 학습한다. 그 후과가 무섭지 않다는 말인가? 어찌 이런 부분에 둔감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 그것도 시라면 시고 뽕짝도 음악이라면 음악이다.


    김봉남도 패션이라면 패션이고, 파리도 새라면 새고, 현기차도 차라면 차고, 이발소그림도 그림이라면 그림이고. 말이야 못하겠는가마는 방향이 아니지 않은가? 중심점이 없고, 소실점이 없고, 생장점이 없고, 무게중심이 없고, 연결고리가 어긋나 있다. 손잡이 없는 볼펜.


    날 없는 칼, 다리 없는 안경. 방아쇠 없는 총, 영혼 없는 인간. 하긴 자동차에 스크래치가 나도 괜찮다. 그런데 말이다. 공장에서 나온 신차에 흠집이 있다면, 단차가 있다면, 짜증날 것이 틀림없다. 인간에게 짜증이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한다.


    문명은 세 개의 점에서 시작되었다. 데모크리토스의 점, 유클리드의 점, 다빈치의 점이다. 아기는 자궁 속의 한 점에서 시작되고, 우주는 빅뱅의 한 점에서 시작된다. 조직의 생장점, 물체의 균형점, 사건의 출발점, 구조의 연결점을 찾아 끝없이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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