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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520 vote 0 2023.05.28 (19:20:55)

    석가는 처음으로 구조론적 사고를 한 인물이다. 불교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은 구조론이 더 쉽게 와닿을 수 있다. 깨달음을 얻어 유혹을 벗어났다거나 고통을 극복했다거나 하는 것은 본질이 아니다. 그게 아무말 대잔치다. 그걸로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일종의 인사말이다.


    유혹이든 유혹의 극복이든, 고통이든 고통의 극복이든 그것은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불과하다. 내게 주어지는 미션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때로는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 깨달음이고, 때로는 고통을 겪어보는 것이 깨달음이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것은 방어다. 공격은 어떻게 할 것인가?


    천하를 어떻게 유혹할 것인가? 선문답에 많다. 공양주 노파가 자기 딸을 시켜 스님을 유혹하여 시험해 보라고 시켰다는 파자소암婆子燒庵의 화두가 유명하다. 진실한 것은 관계다. 관계맺지 못하고 겉도는 것은 죽음이다. 북은 소리가 나야 깨달음이고, 자동차는 달려야 깨달음이다.


    사람은 집단과 결속하여 역할을 얻는 것이 깨달음이다. 세상과 결속하고 세상의 소리를 끌어내는 것이 깨달음이다. 큰 강에 배를 띄우고 강물과 함께 떠내려가는 것이 깨달음이다. 산속에 고립된 채 혼자 무언가를 해낼 수는 없다. 유혹을 방어할 것이 아니라 먼저 세상을 유혹해야 한다.


    석가는 단서를 남겼을 뿐이다. 그것은 연기설이다. 존재가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존재다.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에 앞선다. 육체는 영혼을 운반하는 수레다. 육체가 하드웨어면 영혼이 소프트웨어다. 영혼이 존재의 실체다. 종교의 영혼을 말하는게 아니다. 관계가 영혼이다. 


    축구는 포지션이 영혼이고, 사회는 역할이 영혼이다.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를 심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중에 외부로 노출된 일부가 하드웨어다. 하드웨어는 정보 전달에 따라붙는 확장자명과 같다. 전달된 정보를 복원할 때 찾아갈 위치를 지정해주는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다. 


    육체는 영혼의 일부다. 껍질은 알맹이의 일부다. 껍질은 외부와 공유된다. 마음은 사유되고 몸은 공유된다. 영혼은 독점되고 육체는 공유된다. 집은 사유되고 대문과 길과 담장은 공유된다. 영혼 중에서 타인과 공유하는 부분이 육체다. 유혹에 넘어가고 때로는 유혹하는 것이 공유다.


    자연의 어떤 것도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공유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하드웨어는 CD든 USB든 하드디스크든 상관없다. 하나의 소프트웨어를 스마트폰에 쓰든 데스크탑에 쓰든 상관없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영혼을 담는 그릇이 바뀐다. 타인과 공유하는 부분이 바뀔 뿐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의지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공유하는 부분에 의지한다. 어려서는 부모에 의지하고, 젊어서는 집단에 의지하고, 나이가 들면 황폐해진다. 의지할 곳을 잃고 죽는다. 공유를 잃고 죽는다. 잘난 과학자는 무신론자를 자처하지만 집단과 결속해 있어 가능하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세상이라는 북의 소리를 끌어내도록 설계된 존재가 인간이다. 북을 봤거든 북을 쳐야 한다. 세상의 심장 소리를 들을 때 인간은 편안해진다. 강물에 배를 띄우고 유유히 떠내려갈 수 있다. 북은 소리를 내는 것이 깨달음이고, 생명은 호흡하는 것이 깨달음이다. 


    깨달음의 의미는 인류가 한 번 태어나고 끝나는 선천적 완성의 존재가 아니라 집단과 결속하여 완성되는 후천적 완성의 존재인데 있다. 누구나 미완성의 짐승으로 태어나서 집단 안에서 역할을 얻어서 비로소 인간으로 완성된다. 생명은 호흡으로 존재하고 문명은 진보로 호흡한다. 


    깨달음은 또 다른 탄생이다. 인간 되어야 인간 된다. 자신의 소리를 끌어내고, 사회의 소리를 끌어내고, 천하의 소리를 끌어낼 때 관계는 완성된다. 한 사회가 완성될 때 완성되고 한 우주가 완성될 때 완성된다. 한 인간이 완성될 때 우주 하나가 완성된다. 그리고 다음 게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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