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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700 vote 0 2021.09.19 (18:43:42)

    인생이 한 판의 바둑이라면 나의 바둑 상대는 누구인가? 나는 도무지 누구와 게임을 벌이고 있는가? 신이다. 바둑판은 우주다. 바둑의 진행은 자연이다. 바둑에서 나의 벌어놓은 집은 문명이다. 바둑의 행마는 진보다. 바둑의 기보는 역사다. 바둑의 정석은 진리다.


    정석을 알아야 바둑을 두지. 진리를 알아야 인생을 살지. 우리는 부단히 의사결정의 기로에 선다. 이거든 저거든 선택해야 한다. 아무데나 두면 안 된다. 손 따라 두면 좋지 않다. 악수와 덜컥수를 피하고 꼼수의 유혹을 극복하라. 마땅히 진리에 의지해야 할 것이다.


    진리는 역사와 문명과 자연과 신과 동급이다. 나와 비아를 묶어주는 그 무엇이다. 문명이라는 배가 역사라는 항해를 떠나 자연이라는 바다를 건너며 신이라는 등대를 바라볼 때 선장이 잡아야 하는 키는 진리다. 배를 타기 전에 키가 있는 배인지 눈여겨 봐야 한다.


    걱정 마라. 배는 당연히 키가 있다. 게임의 주체로서의 인간이 있고 그 인간들 중에 내가 있어서 의사결정을 한다. 나는 많은 바둑알 중에 하나이지만 승부처에서는 한 점이 전체를 대표하기도 한다. 한 점을 따먹혀서 대마가 죽고 한 점을 이어서 바둑을 역전시킨다.


    나의 반대편에 대상으로서의 우주가 있고 둘 사이에 상호작용이 있다. 이겨야 한다. 질 수도 있지만 이기려고 하는 자에게 자격이 있다. 다른 걸로 비유할 수도 있다. 바둑이 아닌 연극이라면 신이라는 작가와 진리라는 대본이 있다. 무대가 우주라면 자연은 공연이다.


    문명은 흥행이고 진보는 흥행성적이다. 톱니가 맞물려 돌아간다는 말이다. 인간은 홀로 광야를 헤매는 존재가 아니라 신과 진리와 문명과 역사와 진보와 자연과 우주와 긴밀하게 호흡하는 존재다. 길이 있으면 지름길도 있다. 언제나 최선의 판단을 추구해야만 한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알 필요가 없다. 내가 플레이어라는 사실, 바둑에 정석이 있다는 사실, 인생에 목표가 있다는 사실, 삶에 이유가 있다는 사실, 바둑알 통에 바둑알이 충분히 들어있으므로 실탄부족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 바둑은 상대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마음이 편하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된다. 응수타진 해보고 되돌아오는 반응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 맞물려 돌아가므로 긴장이 유지된다. 힘들게 모아둔 기세를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면 슬픈 거다. 


    바둑판은 계속 메워진다. 361로의 바둑판에 어쩌면 더 둘 자리가 있을 텐데 나만 모르는게 아닐까? 그런 걱정은 필요 없다. 361로에서 한 점도 늘지 않는다. 둘 자리는 갈수록 줄어든다. 길은 명백하다. 토너먼트는 올라갈수록 줄어든다. 인생의 선택지가 줄어든다. 


    젊었을 때 폭넓게 포석을 전개해두지 않으면 늙어서 몰린다. 그래서 진리다. 첫 한 점을 둘 때 신과 우주와 자연과 역사와 문명과 진보를 두루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361로의 점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어디로든 갈 수가 있다. 나만 모르는 뒷길 같은 것은 없다. 


    우리는 진리에 의지할 수 있다. 진리는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다. 플라톤은 진리가 만약 있다면 이런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한 것이다. 플라톤은 틀렸다. 진리는 대상화 되지 않는다. 주체인 나의 바깥에 타자로 있는 어떤 금덩이나 다이아몬드나 멋진 무엇이 아니다. 


    진리는 게임의 룰이고 게임은 상호작용이며 나의 바깥에 성립할 수 없다. 내가 첫 한 점을 두면서 진리는 반응해 오는 것이다. 플라톤이 몰랐던 것은 이 게임이 일방작용이 아니라 상호작용이라는 사실이다. 일방작용은 혼자 자위행위를 하듯이 맘대로 하는 것이다.


    아뿔싸! 우주는, 문명은, 역사는, 인생은, 게임은 상대가 있다. 상대가 있으면 언제라도 파트너의 허락을 구해야 한다. 상대를 납득시켜야 한다. 톱니가 맞물린 채로 진행한다는게 진리다. 더 무엇을 구하리? 인생의 허다한 실패가 자신이 선수이고 시합이 진행 중이며 


    남들이 지켜보는 무대에서 한 곡조 뽑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코미디다. 사람들은 나의 밖에서 무엇을 찾는다. 황금이든 다이아몬드든 근사한 것이 있지 않을까? 없다. 멋진 것은 내 연기와 받쳐주는 환경이 서로 호흡이 맞아야 성공하는 것이다. 


    진리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펠레가 뛰는 브라질팀에 실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진리가 상대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한국팀이 순전히 운으로 사강까지 올라갔다고 믿는 거다. 진리는 우주와 역사와 문명과 진보와 자연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세트로 간다.


    그냥 진리 한 단어만 쳐다보면 안 된다. 도로와 차와 바퀴는 뗄 수 없다. 차가 있다면 도로도 있고 바퀴도 있다. 우주가 있고 자연이 있고 문명이 있으면 당연히 진리도 있다. 사랑이니 자유니 정의니 평등이니 평화니 하는 관념은 바둑 두는 도중에 일어나는 변화다.


    그저 바둑이 있는 것이다. 상호작용이 있는 것이다. 게임이 있는 것이다. 승부가 있는 것이다. 의사결정이 있는 것이다. 자유니 평등이니 정의니 평화니 행복이니 하는 관념들은 그 바둑을, 그 게임을, 그 상호작용을, 그 기세를 미사여구로 수식하는 표현에 불과하다.


    그런 허구적인 관념들도 써먹을 찬스는 있지만 바둑 포석을 잘못해놓고 꼼수로 어떻게 이기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는 슬픈 풍경이다. 재미로 할 수는 있는 말이지만 진지하지 않다. 진지하게 배우려는 사람은 일단 정석부터 떼고 난 다음에 발언권을 신청해야 한다. 


    우주는 일방작용이 아니라 상호작용이다. 일방작용으로는 답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진리가 없다고 말하면 안 된다. 쌍방 중에서 일방만 보고 진리가 상대적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부부는 존재한다. 한쪽만 보면서 남편이 퇴근하면 부부가 있고 출근하면 없다고 한다. 


    사건이 아닌 사물을 보는 잘못된 관점 때문이다. 사건으로 보고 상호작용으로 보면 진리는 있고 절대적이다. 보는 관점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레벨:11]큰바위

2021.09.21 (10:12:57)

결국 구조론은 관계론이고 
보이지 않는 틈, 사이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도록 돕는 이론이다. 

상호작용이라는 관점을 놓치고 진리를 이야기하지 말라는 게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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