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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915 vote 0 2022.11.20 (17:36:54)

    일본인은 도무지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다. 지식은 원서의 번역에서 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일본인이 독자적인 사상을 만들어낸 일은 없다. '닥치고 번역이나 해.' 하는 식이다. 이는 어떤 일본 작가의 말이다. 영화 '으랏차차 스모부'에도 비슷하게 묘사된다. 맹목적으로 전통을 따를 뿐 아예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외국인이 '왜?' 하고 물으면 '선배님이..' 하고 얼버무린다. 그들은 다이카개신과 메이지유신으로 2천 년 동안 두 번 바뀌었을 뿐이다.


    한국인도 다르지 않다. 그냥 일본을 해먹는다. 이런 식으로는 선두를 근접하게 따라붙을 수는 있어도 추월할 수는 없다. 단독으로 공사를 수주하지 못하고 남이 다 지어놓은 건물에 준공청소나 하도급받는 하청문명 신세다.


    동양은 형이상학이 없다. 공자의 괴력난신, 술이부작은 나쁜 것을 경계할 뿐 바른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노자는 대놓고 나쁜 길로 안내한다. 노자의 사상은 빈정대기와 이죽거리기다. 석가라면 독화살의 비유가 유명하다. 바라문의 공리공론을 반대한다며 형이상학을 부정한다. 공자, 노자, 석가는 모두 현실주의자다. 현실에 발목이 잡히면 미래를 개척할 수 없다.


    동양문명의 큰 결함은 원론이 없다는 점이다. 동양의 산학은 설명이 없고 바로 문제풀이 들어간다. 기초가 없고 중간에서 뜬금없이 시작한다. 아이디어는 복제되는 것이다. 스승이 하나를 가르치면 제자가 열을 복제해야 한다. 원론이 없으면 복제가 안 된다. 하나를 가르치면 하나를 배울 뿐이다. 이런 식으로는 나무에 원줄기가 없으므로 새로 가지를 쳐나갈 수 없다. 본류가 없으므로 지류를 개설할 수 없다. 야자수처럼 키만 크고 앙상해져서 풍성함이 없다. 있는 것이나 지킬 뿐 외부로 뻗어가지 못한다. 동양문명은 지적 모험심이 없는 자폐문명이다. 이런 자세로는 인류 문명의 선봉에 설 자격이 없다.


    생각을 제법 한 나라는 그리스다. 로마는 통째로 그리스 짝퉁이다. 일찍이 지중해에 미노스와 미케네가 있었지만 이집트 아류다. 바다민족의 침략 이후 그리스는 한동안 역사에서 사라졌다가 철기문명을 가지고 슬그머니 되돌아왔다. 이때 멋진 것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쏟아졌다는 점이 각별하다. 그리스의 압도적인 창의는 어디서 나왔을까? 지정학적 이유로 문명의 자궁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조건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리스는 6천 개 섬들의 집합이다. 중앙이 없다. 이게 결정적이다. 한때 미케네가 중앙을 자처했지만 바다민족에 의해 쓸려나갔다. 400년간 지중해는 지워졌고 문명은 주변부로 흩어져서 잠복했다. 세월이 흐르고 문명은 다시 돌아왔다. 이집트의 건축술과 페니키아의 표음문자와 서유럽의 철기문명이 한꺼번에 그리스로 쏟아진 것이다.


    보통은 중앙이 지방을 압살하면서 발전을 가로막는다. 문명이 쇠퇴하는 원인은 중앙과 지방의 균형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지방은 중앙의 압박에 눌려 질식하고 중앙은 지방의 도전을 방지하기 위해 낡은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다. 게는 탈피할 때가 가장 위험하고 조직은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할 때가 가장 취약하기 때문이다.


    신도시의 건축과 유사하다. 구도시는 발전의 한계에 맞닥뜨리게 된다. 인구가 적은 초기에 광장과 골목과 성벽을 너무 작게 설계한 것이다. 다 지어진 도시를 리모델링할 수는 없다. 일본인과 이탈리아인이 작은 차를 타는 이유다. 옛날부터 골목을 작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게 두고두고 병폐가 된다. 625의 잿더미에 다시 시작하며 미국 기준을 받아들여 크게 설계한 한국과 다르다.


    그리스는 바다민족의 침략에 의해 국자로 죽을 떠내듯이 가운데가 비워졌다. 가운데를 비우면 사방에서 몰려든다. 그리고 새로운 기운이 크게 일어난다.


    사유가 망하는 것은 기득권 때문이다. 서구 문명은 여전히 기독교의 권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니체가 한마디 했지만 비명소리에 불과하다. 신토불이 하면 백 퍼센트 망한다. 옛것을 부수지 않으면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두 가지 고질병이 있다. 하나는 중앙이 전통을 존중한다며 구도시에 안주하는 것이고, 둘은 변방이 중앙을 복제하면서 원본의 권위에 굴종하는 것이다. 그리스는 두 가지 병폐를 피했다. 바다민족의 침략에 의해 모든 도시가 불타서 폐허가 되었다. 400년의 공백기 이후 압도적인 신기술이 사방에서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그들 중 누구도 주도권을 잡지 못한 사실이 중요하다.


    이런 상황이 되면 사람들은 원론을 세우고 싶어한다. 중앙의 건설이 필요하다. 그리스는 6천 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중앙의 건설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물질의 중앙을 건설할 수 없으므로 사유의 중앙을 건설하게 된다.


    좋은 건축술이 있고 멋진 터가 있는데 텃세 부리는 사람이 없다면 원점에서 차근차근 새로 시작해보자는 웅장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런 마음의 여유를 누린 사람들은 그리스인뿐이었다. 쫓기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권력의 눈치를 보며 기가 죽어서 조급하게 성과를 보이려고 기본을 건너뛰고 겉보기 장식만 추가하는데 말이다.


    로마도 비슷하다. 주변을 정복하여 제국이 되었다. 로마가 중앙이다 하고 말로 떠들어봤자 아무도 믿지 않는다. 게르만 지역과 페르시아와 아프리카가 훨씬 더 영토가 넓기 때문에 로마는 중앙이 될 수 없다. 영토의 중앙이 못되므로 정신의 중앙을 추구한 것이 일신교 도입이다. 아케나톤의 일신교는 파라오가 지방의 귀족을 제압하고 중앙을 건설하려는 의도로 만든 것이다. 그리스의 다신교는 섬에 짱박혀 사는 변방인의 논리다. 광대한 영토를 가진 게르만족을 제압하려면 압도적인 중앙의 논리가 필요했기 때문에 말빨이 먹어준다는 기독교를 수입한다.


    딜레마가 있다. 기초가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이 가장 늦게 만들어진다. 늦게 팬 장작이 위에 올라가는 법칙이다. 건축이라면 토굴에서 움집으로, 초가집으로, 기와집으로 바뀐다. 좋은 것이 나중에 등장한다. 기초가 중요한데 원시인의 토굴이나 부족민의 움집은 기초가 없다. 삼국시대 초기의 굴립식 건축은 주춧돌이 없다. 삼국시대 중반에 가구식 건축으로 바뀌는데 다 지어진 집에 주춧돌을 밀어 넣는 방법은 없다. 집을 무너뜨리고 새로 지어야 한다. 로마는 다신교라는 낡은 집을 허물고 기독교라는 새집을 지었다. 갑자기 정신의 집을 갈아타기는 쉽지 않다. 로마나 되니까 하는 일이다.


    그리스는 바다민족에 의해 처절하게 무너졌기 때문에 새로 지어볼 만했다. 6천 개의 섬 중에 누구도 주도권을 잡지 못했기 때문에 우연히 창의하는 자궁이 만들어졌다. 텃세 부리는 기득권이 없기 때문이다.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정복하고도 접수하지 않은 사실이 그러하다. 스파르타는 인구가 적어서 전쟁에 이길 수는 있어도 영토의 합병은 불가능했다.


    좋은 생각은 여러 지정학적 상황이 맞아떨어졌을 때 그리고 때맞춰 물이 들어왔을 때 갑자기 생겨난다.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가려고 하면 기득권이 자리를 비워주지 않는다. 남의 생각을 모방하면 번역만 하다가 생각하는 방법을 잊어버린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뉴올리언스의 남군 군악대가 해산했다. 남군이 두고 간 브라스밴드의 트럼펫을 흑인이 주워가서 연주한 것이 재즈다. 그들은 전통을 계승하지도 않았고 남에게 배우지도 않았다. 갑자기 좋은 것을 손에 넣게 되면 백지상태에서 새로 시작한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난다.


    기적은 르네상스 시대에 재현되었다. 갑자기 몽골의 말발굽에 밟힌 아랍의 학자들과 유태인 상인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은 좋은 것을 전해주었지만 눌러앉아서 주도권을 잡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아랍인은 종교가 달라서 찌그러졌고 유태인은 장사꾼이라서 머무르지 않았다. 결국 피렌체인들이 주도권을 잡았다. 남들 덕에 갑자기 좋은 것을 손에 넣되 주도권은 내가 잡아야 한다. 그런 일은 역사에 드물게 일어난다.


    원효는 독자적인 생각을 일으켰다.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중국을 넘어섰다. 퇴계는 모방에만 충실했다. 율곡은 적어도 새로운 것을 시도는 했다. 청나라가 집요하게 압박하여 없애버린 조선왕조 특유의 공론정치는 율곡의 것이다.


    외부에서 누가 찾아와서 좋은 것을 잔뜩 전해주되 그 사용법을 알려주지 않고 갑자기 떠나버리면 사람들은 원론을 생각하게 된다. 쫓기는 마음이 없이 차분하게 생각하게 된다. 진짜는 그런 창의의 자궁에서 만들어진다. 인도의 타지마할 묘당이나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대성당이 그러하다. 변두리에서 갑자기 문명세계로 들어와서 좋은 것을 손에 쥔 촌놈이 반드시 벌이는 일이다. 빈 살만의 신도시 구상도 전형적인 촌놈 행동이다. 기초부터 잘 다져야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이다.


    폴리네시아의 화물신앙도 비슷하다. 이차대전이 일어났다. 갑자기 미군이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작은 섬까지 찾아와서 통조림과 의복과 신발을 넘쳐나게 주었다. 전쟁이 끝나고 미군은 갑자기 떠나버렸다. 좋은 것을 잔뜩 얻은 그들은 '이게 뭐지?' 하고 고민하다가 종교를 만들었다. 그들에게는 종교가 원론이었던 셈이다.


    마르크스가 부르짖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이항대립은 기독교에 유입된 조로아스터교 잔재다. 짜라투스트라는 3천 년 전에 떠난 사람이다. 인류는 3천 년 묵은 족쇄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인류는 여전히 원시인의 움집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큰 게가 작은 게딱지를 벗어던지지 못한다. 이제 그만 허물을 벗어야 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1]오맹달

2022.11.23 (11:08:57)

감동하며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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