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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492 vote 0 2022.02.13 (18:54:26)

    사실이지 인간이나 짐승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다만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는 점이 각별하다. 특히 언어는 동물과 차별화 하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동물도 부리나 발톱을 도구로 쓰지만 의미 없다. 인간은 도구를 발전시켜 가는게 다르다. 도구의 발전이야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미션이라 하겠다. 내가 사는 이유가 된다.


    도구는 어떤 둘을 연결한다. 도구가 없는 것이 1차원적인 존재라면, 도구가 있는 것이 2차원적 존재이고, 도구를 발전시켜 가는 사람은 거기서 더 나아간 3차원적 존재라 하겠다. 인간은 도구를 이용해서 주변을 장악하고 환경과 보다 긴밀해진다. 환경이 인간 내부로 침투해서 더 큰 존재가 되는 것이 거듭나는 것이다. 


    기병이 되려면 자기가 탈 말을 직접 가져와야 한다. 칼이 있어야 요리사가 되고 차를 구해와야 운전수가 된다. 요즘은 학벌이나 자격증이 도구가 된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도구가 신분을 결정한다. 같은 도구를 쓰는 자와 대화하는게 신분이다. 도구가 연결수단이므로 연결이 되는 자와 연결하여 커다란 세력을 이룬다. 


    언어를 쓰는 자는 언어를 쓰는 자와 대화한다. 사피엔스는 언어를 쓰지 않는 영장류와 신분이 다르다.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도구는 생각이다. 나는 놀랍게도 인간들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대신 자극하고 반응하는 기술을 쓰고 있었다. 자기 머리를 놀리면서 다른 사람이 머리를 사용하도록 돕는다.


    서로 상부상조하고 있었다. 열심히 상호작용하고 있었다. 서로 집적거리고 괴롭히며 뭔가 얻어내고 있었다. 자발적인 사유는 못하고 타인과의 투쟁을 통해서만 조금씩 사유에 성공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추궁당하여 결과적으로 생각을 하게 되는 수는 있어도 그냥 순수하게 머리를 굴려서 생각은 못하는 것이다. 


    상호작용 과정에서 수동적으로 생각하게 될 뿐 능동적으로 자기 안에서 사유를 조직하지 못하는게 인간의 한계다. 소실점이 안 맞아서 그림이 어색한 것을 보고도 소실점을 추적해 봤다는 사람이 동양사 5천 년 동안 없었다.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여러 가지 물타기 기술을 구사하면서도 정작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더라. 


    지구가 둥근 것은 그냥 봐도 보이는데 그것을 구태여 말로 설명하라고 한다. 환장할 일이다. 하긴 필자처럼 음치에 박치라서 화음을 자동으로 습득하지 못하고 남들에게 설명해 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색각인 사람에게 빨간색을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도구의 형태에 따라 사람의 신분이 정해진다. 


    언어를 배운 인간은 짐승과는 다른 존재로 거듭난다. 글자를 아는 지식인은 문맹과는 다른 존재로 거듭난 존재다. 지식인이 문맹인을 도울 수는 있어도 문맹인이 지식인을 도울 수는 없다. 언어를 배우면 다른 사람과 협력할 수 있다. 글자를 배우면 지식을 공유할 수 있다. 협력하고 공유하는 집단에 소속되는 것이다. 


    생각을 할 줄 알면 거기서 한 단계 더 도약한다. 세상에 지식인이 많지만 그들은 도구를 쓴다. 도구가 먹히는 분야에 한해서만 유능하다. 울타리 바깥으로 나가면 갑자기 바보가 되어 개소리를 시전한다. 명문대 나온 자들의 수준 이하 행동거지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처음 지와 무지를 가른 사람은 소크라테스다. 


    나는 생각하는 자와 반응하는 자를 가르려고 한다. 예술가의 번뜩이는 직감은 생각의 산물이 아니다. 불쑥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환경의 자극에 대한 기계적 반응이다. 대중음악의 작곡가는 대마초를 피우고 좋은 곡을 쓴다. 조리 있게 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신경이 곤두선 결과 감각이 예민해져서 생각이 잘 떠오른다. 


    능동적인 사유와 수동적인 반응은 다르다. 수학자는 법칙을 도구로 쓰고, 과학자는 현미경을 도구로 쓴다. 역시 자극과 반응의 범주에 속한다. 생각이 어려울까? 그렇지 않다. 바퀴벌레도 생각할 줄 안다. 이 길이 막히면 저 길로 갈아타는게 생각이다. 그런데 인간은 생각을 못한다. 에너지는 확산이 아니면 수렴이다.


    사건은 일방작용 아니면 상호작용이고, 게임은 부분이 아니면 전체다. 국지전이 아니면 전면전으로 갈아탈 수 있어야 한다. 확산을 수렴으로 바꾸고, 일방작용을 상호작용으로 바꾸고, 부분을 전체로 바꿀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결과측이 아니라면 원인측, 꼬리가 아니라면 머리, 1차원이 아니라면 2차원이다. 


   그것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런 낌새조차 없다. 1차원 선 위에서 교착된 개미처럼 끙끙대며 힘을 소진하고 있는게 인간이다. 사유의 방향전환을 하려면 축을 장악해야 한다. 방향이 그냥 바뀌는게 아니라 대칭의 축을 거쳐서 바뀌는 것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아타려면 핸들을 거쳐야 한다.


    양쪽을 동시에 꿰는 균형을 장악해야 한다. 균형감각이 있어야 방향전환이 가능하다. 조절이 가능하다. 중심을 잡고 가운데서 축을 잘 조절하면 되는데 지식인이 굳이 아버지를 찌르고 변절하여 인생을 갈아타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균형추가 없고 핸들이 없기 때문에 배를 버리고 도망치는 것이다. 비겁하게도 말이다. 


    배는 이물과 고물이 대칭을 이루지만 둘을 통일하는 하나의 키에 의해서 다시 파도와 대칭되게 된다. 대칭 위에 또다른 대칭으로 올라선다. 그게 안 되는 문제다. 보통은 대칭에 잡혀 있다. 선과 악의 대칭, 진보와 보수의 대칭, 정의와 불의의 대칭에 잡혀 있다. 하나의 선로에 마주 오는 두 기차가 상대방을 피하지 못한다.


    좌파는 왼쪽만 보고 우파는 오른쪽만 본다. 핸들이 없기 때문이다. 축이 없다. 지렛대가 없다. 도구가 없다. 인간이 간혹 생각하기도 하지만 도구를 손에 쥐었을 때다. 무의식중에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사유가 아니다. 시인은 시상을 떠올리고 악사는 악상을 떠올린다. 그것은 뇌 안에서 부지불식간에 우연히 복제된다. 


    나는 진리를 말하는 사람이다. 진작에 간파했다. 사람들이 입만 열면 개소리를 한다는 사실을. 개소리를 가려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둘의 상호작용이 계를 이루면 진실이고 어떤 하나의 일방작용이면 가짜다. 시스템 내부에 핸들이 없으면 가짜다. 한 점으로 수렴되는 구조가 없으면 가짜다. 조절장치가 있어야 한다. 


    세상은 간단하다. 만남 아니면 이별이고, 균형 아니면 불균형이다. 연결 아니면 단절이고, 부분 아니면 전체다. 왼쪽 아니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릴 줄 알아야 한다. 인간 중에 99.999퍼센트는 그게 안 된다. 왼쪽과 오른쪽을 동시에 아우르는 더 높은 단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대칭의 축을 잡아야 다음 단계를 본다.


    콜더의 모빌과 같다. 부분의 대칭 위에 또다른 대칭이 있다. 천칭 위에 천칭이 겹쳐져 있다. 부분에서 방향을 틀어봤자 도로 원위치 된다. 핸들을 아무리 꺾어도 차는 제자리를 맴돈다. 부분에서 전체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부분이라면 인류의 문명이 전체다. 한국이 잘 나가다가 자빠지는 이유다.


    부분에 고립되어 전체 인류문명과 동조화가 안 되고 있다. 더 많은 역할을 조달하지 못한다. 원래 혼자 멀리 못 간다. 받쳐주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일본이 잘해야 한국이 잘한다. 북한도 못하고, 중국도 못하고, 일본도 못하기 때문에 한국도 못한다. 지팡이가 없어 일어서지 못하고, 지렛대가 없어 힘을 쓰지 못한다.


    도구가 없어서 외부와 연결하지 못한다. 좁은 공간에서 대칭을 조달하지 못하므로 폭넓은 상호작용을 못하고 갈수록 수렁에 빠지고 코너에 몰린다. 인간이 빌빌대는 이유는 정의, 자유, 평등 같은 관념들의 문제가 아니다. 성찰, 진정성, 생태주의 같은 개소리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원시인의 부족본능 때문이다. 


    사회학이 막히면 심리학으로 풀고, 심리학이 막히면 생물학으로 풀어야 한다. 그런데 방향전환이 안 된다. 이 길이 막히면 저 길로 가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왼쪽이 아니면 오른쪽이다. 생물학에서 막히면 화학으로, 화학으로 막히면 물리학으로, 물리학으로 막히면 수학으로, 수학으로 막히면 구조론으로 풀어야 한다. 


    인간은 원래 100명 이상 모여서 살 수 없는 동물이다. 그래서 뭐가 안 되고 있는 것이다. 온갖 도덕, 윤리에 자유, 평등에, 진정성, 성찰에 입으로만 떠드는 구호를 조달해봤자 한낱 구호 따위가 인간을 살리지는 못한다. 이런 인간의 원초적 본질은 말하기 어려워서 말하지 않는다. 인간들은 말하기 좋은 대로 지껄인다. 


    막연히 어감이 좋은 단어를 뱉는다. 배웠다는 사람이 인지부조화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저런 이유를 대지만 인간이 비참한 본질은 낯가림이다. 차별본능 때문에 차별한다. 100명 이상의 대집단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차별한다. 자극하고 반응을 기다리는 고약한 게임에서 탈출하지 못하므로 차별한다. 


    이념이고 뭐고 쓸모가 없다. 유전자에 새겨진 동물적 본능을 극복해야 문명인이 된다. 비린내를 싫어하면 고기를 못 먹는다. 젓갈은 더 못 먹는다. 된장도 못 먹는다. 아니 거의 다 못 먹는다. 먹을 수 있는게 없다. 그러다가 굶어 죽는다. 용기 있게 첫 숟가락을 떼야 한다. 아기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첫걸음마를 뗀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쓴맛이 달게 느껴지는 어른의 입맛으로 갈아타야 한다. 비린내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 가다가 막히면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 1층에서 막히면 2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량에서 막히면 운동으로, 운동에서 막히면 힘으로, 힘에서 막히면 입자로, 입자에서 막히면 질로 갈아타는게 구조론의 정답이다. 


    질에서 막히면 다른 게임으로 갈아타야 한다. 부단히 더 높은 단계로 올라서기다. 말은 필요 없고 이게 감각적으로 되어야 하는데 자동으로 안 되면 공식을 암기하고 훈련할밖에. 그것이 깨달음이다.


[레벨:30]스마일

2022.02.13 (20:39:33)

마삼중은 인간인가? 악마인가?
선거기간은 다른 말로하면 공식 내전기간이다.
지금 이순간이 총칼만 들지 않고 공식적으로 싸울수 있는 내전기간이란 말이다.
전쟁기간에는 적군의 부상병이 나를 공격할지라도 부상병은 치료해주는 게 국제룰이다.
안철수 부인이 내편은 아니더라도 아프다는데 위로를 건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당대표 마삼중이준석은 지금 sns에 뭐라고 쓰고 있나? 같은 인간에 대한 예의는 어디다두고 말을 함부로 하나?
매너가 사람을 만드는 것은
윤석열 구둣발만이 아니라 이준석태도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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