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014 vote 0 2021.10.18 (21:04:38)

    무식하면 용감한 법이다. 서울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과감하게 남대문이 5층이라고 주장하여 숱한 구경꾼들의 탄성을 끌어낸다. 서울 가 본 사람은 기억을 더듬다가 말할 찬스를 놓친다. 서울 안 가본 사람이 단호한 표정과 우렁찬 목소리로 좌중을 압도하여 게임에 이긴다. 논쟁은 원래 강경파가 이긴다. 똑부러지는 주장을 하면 이긴다. 초장부터 올인하면 이긴다. 이래서 인간의 시행착오가 반복되는 것이다. 진실이 거짓을 이기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결정론이냐 비결정론이냐. 논쟁하면 결정론이 이긴다. 카오스이론이니 상대성이론이니 하는게 나올 때마다 한차례씩 들썩거리긴 했지만 학계는 결정론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해 왔다. 결정론의 변종인 그리스 신화의 운명론이나 기독교의 예정설도 마찬가지다. 논쟁하면 운명론이 이기고 예정설이 이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결정론이 틀렸다는 사실을 안다. 게임의 참여자인 인간이 지분을 조금이라도 챙기려면 미리 결정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말싸움을 하면 결정론이 단호한 표정과 우렁찬 목소리로 초장부터 올인해서 이긴다. 원래 이런 사유는 결정론을 까기 위해서 나온건데 토론하다 보면 반대로 된다. 이는 언어의 한계다. 우리가 언어를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악법도 법이라고 주장하면 이긴다. 말로 하면 정의당이 이긴다. 삼위일체설이 이기고 영지주의가 진다. 왜? 이기려고 3위일체설을 고안했기 때문이다. 무함마드는 유태교를 뜯어고쳐 복잡한 룰을 단순하게 만들었다. 무함마드가 이겼다. 이기려고 이슬람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지면 이기는 지점까지 계속 룰을 고치면 된다. 개신교는 오직 성경만을 외치며 룰을 단순하게 만들었다. 개신교가 이겼다. 지면 교리를 더 단순하게 만들면 된다. 농민군을 조직하려면 아예 한술 더 떠서 성경도 필요 없고 하느님께 직통계시를 받는다고 주장하면 된다. 사실 많은 시도가 있었는데 루터와 칼뱅이 미친듯이 막았다. 잔다르크가 그 변종이다. 통일교의 문선명을 비롯해서 많은 사이비 종교가 지금 벌이고 있는 짓이다. 사이비가 먹히지 않으면? 먹힐 때까지 룰을 뜯어고친다.


    천공도사가 구조론을 이긴다. 지면? 이길 때까지 거짓말을 한다. 음모론이 먹히지 않으면? 먹힐 때까지 음모론을 갈아탄다. 서른 번 넘게 시도했는데 마지막에 지구평면설이 먹혀서 떴다.


    대승은 룰을 단순화 시켰다. 대승이 이겼다. 대승 중에서도 선종불교는 지극히 단순하다. 다 필요 없고 마음 하나로 결론 짓자. 라마교는 그저 경통만 돌리면 된다. 원효는 남아미타불 관세음보살만 염불하면 되게 했다. 일련정종은 나무묘호렝게교만 암송하면 된다. 단순하고 극단적이고 강경한 쪽이 이긴다. 말싸움은 원래 서울에 안 가본 사람이 이긴다. 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는 언어의 실패다. 언어를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것은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가 아니고 게임의 주최측이다. 구조론은 의사결정이론이다. 그것을 결정하는 이론이다. 어떻게 결정하는가? 세상은 상호작용의 원리, 게임의 원리, 맞대응의 원리, 전략의 원리, 동원의 원리, 주체의 원리, 권력의 원리, 기세의 원리를 따른다. 그것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의사결정구조다. 세상은 사물이 아니고 사건이다. 사물은 미리 결정하는 방법으로 이기지만 사건은 미리 결정하지 않는 방법으로 이긴다. 그것이 전술이다.


    세상은 미리 결정되어 있는게 아니고 게임에 이겨서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누가 이기는가? 게임을 많이 하는 쪽이 이긴다. 서구가 동양을 이긴 것은 서구가 더 많은 사람을 의사결정에 참여시켰기 때문이다. 더 많은 의사결정을 해왔다. 시행착오를 인정하며 번복하고 재시도하는 쪽이 이긴다. 서구는 왕이 수백 명이고 동양은 황제가 한 명이다. 더 많은 사람을 의사결정에 동원하는 제도가 민주주의다. 이기는게 정답이다. 미리 결정하면 의사결정을 적게 해서 진다. 상호작용이 감소하면 진다. 전술을 미리 결정하면 진다. 상대가 맞대응하기 때문이다. 결정론이 지고 구조론이 이긴다. 구조론은 이길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조론은 의사결정이론이다. 게임으로 결정한다. 어느 쪽이 이길지는 사전에 알 수 없어야 게임이 성립한다. 미리 결정하지 않고 아슬아슬한 랠리를 이어가는게 우주의 모습이다. 큰 방향은 결정되어 있고 세부를 하나씩 확정해 나가는 것이다.


    결정해야 결정된다. 결정하는 이론이 결정된 이론에 앞선다. 구조론은 결정하는 이론이고 결정론은 결정된 이론이다. 원인이 결과에 앞선다. 결정하는 구조론이 사건의 원인측이고 결정론은 결과측이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6607 예수의 의미 김동렬 2023-12-26 2011
6606 사랑과 운명 김동렬 2023-12-25 2065
6605 성탄절의 의미 김동렬 2023-12-24 2395
6604 구조론의 첫 단추 김동렬 2023-12-23 1513
6603 대승의 긍정 1 김동렬 2023-12-22 2253
6602 의도를 읽히면 망한다 김동렬 2023-12-21 3189
6601 긍정적 사고의 힘 1 김동렬 2023-12-21 1482
6600 긍정어법의 어려움 김동렬 2023-12-20 1840
6599 부정과 긍정 김동렬 2023-12-19 1521
6598 권력과 의미 김동렬 2023-12-18 1526
6597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김동렬 2023-12-18 1390
6596 나폴레옹은 누구인가? 김동렬 2023-12-17 1553
6595 영웅 죽이기 스티브 잡스편 김동렬 2023-12-17 1543
6594 방향과 순서 김동렬 2023-12-15 1257
6593 차령산맥은 없다 image 김동렬 2023-12-15 1499
6592 김건희 마녀사냥 문제 있다 김동렬 2023-12-14 2239
6591 존재론과 인식론 김동렬 2023-12-13 1339
6590 훈요십조의 진실 image 김동렬 2023-12-13 1491
6589 정치의 본질 김동렬 2023-12-12 1828
6588 서울의 봄 위대한 전진 2 김동렬 2023-12-12 16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