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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016 vote 0 2021.11.04 (12:22:59)

    인종주의 논란을 피하려면 지능지수는 거론하지 말아야 하고, 민족성이라는 것은 그냥 갖다붙인 말이고, 국가의 흥망을 결정하는 요인은 지정학적 요인이 상당하다. 민족성이라는게 있지만 그게 다분히 결과론이다. 영국이 신사라서 뜬게 아니고, 일단 뜨기만 하면 신사인 척 폼을 잡아야 기쁨 두 배다. 독일이 근면해서 흥한게 아니고 흥하므로 근면해진 것이다. 누구든 돈이 들어오면 미친듯이 일을 하게 되어 있다.


    이집트는 비옥한 나일강 삼각주 덕분에 떴고, 그리스는 구리와 주석을 거래하기 좋은 위치라서 떴고, 로마는 배후지인 이베리아 반도와 게르만족 땅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로 잠시 기능했고, 영국은 바닷길을 틀어쥐고 프랑스와 스페인과 독일, 러시아 중에 어느 쪽도 패권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균형자 역할을 했다. 에너지의 입력부와 출력부가 분리되면 상호작용이 활발해진다. 에너지 낙차가 작동하는 것이다. 오른쪽이나 왼쪽에 우리보다 나은 나라가 있고 그 반대쪽에 우리보다 못한 나라가 있으면 대중의 판단은 명확해진다. 독일은 왼쪽에 잘 나가는 프랑스가 있고, 오른쪽에 만만한 폴란드가 있다. 입맛을 다신다. 털어먹자.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단결한다. 일본은 잘나가는 미국을 등에 업고, 만만한 조선을 바라본다. 털어먹자. 단합을 요구하지 않아도 찰떡같이 단합이 된다. 한국은 주변을 둘러봐도 만만하게 털어먹을 나라가 없어서 의기소침해졌다. 풀이 죽은 것이다. 이런 것은 무의식으로 전파되기 때문에 굳이 선동을 할 필요도 없다. 이념도 필요없고 정신력도 필요없다. 그냥 깃발 하나만 꽂아놔도 자동모드로 간다.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다들 흥분해서 달려든다. 손발이 척척 맞아준다. 해적들은 명령하지 않아도 단합이 잘 된다. 털어먹을 멋잇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환경을 읽어내고 상황에 걸맞는 행동을 한다. 독일 전차군단이니 일본 사무라이 정신이니 하는 것은 그렇게 만들어진 무의식의 힘이다. 이심전심으로 환경을 읽은 것이다. 한국의 지역주의도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다. 일본을 등에 없고 배후지로 만만한 호남을 털어먹자는 무의식의 명령이 떨어진다. 노골적으로 말은 못하고 북한을 털어먹자고 선동한다. 말을 돌려서 하는 것이다. 호남=김대중=빨갱이라고 암시를 건다. 말 안해도 알겠지?


    심리적 지정학이 있다. 물리적 지정학은 좋은 항구, 비옥한 토지, 좋은 날씨, 왕래하기 좋은 이웃나라, 적의 침략을 막아주는 산맥과 바다와 강으로 이루어진다. 아프리카 문명, 인도문명, 아랍문명, 지중해문명, 북유럽문명을 아우르며 문명의 중심권과 거리가 가까우면 유리하다. 중국은 외따로 떨어져서 불리하다. 한국은 더 불리하다. 일본은 원래 불리했는데 필리핀에서 미국으로 건너가는 항로가 뜨는 바람에 유리해졌다. 미국이 잘 사는 이유는 원래 복받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청교도 정신 때문이 아니다. 그렇게 비옥한 토지와 넘치는 자원을 얻으면 누구라도 하루 14시간 미친듯이 일을 하게 되어 있다. 심리적 지정학은 물리적 환경을 읽고, 에너지 낙차를 발견하고, 입맛을 다시며 만만한 배후지를 털어먹으려고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일치단결하여 해적떼처럼 덤벼드는 것이다. 잘나갈 때의 몽골군처럼 마구 날뛰는 것이다.


    일본군은 결사항전을 주장하다가 원자탄 두 방을 얻어맞고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었다. 탈레반은 어제의 적이었던 미군과 협력하고 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북한도 순식간에 친미가 될 수 있다. 미국이 북한의 츤데레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민족주의는 거짓말이다. 이념은 거짓말이다. 관념은 거짓말이다. 정신력은 거짓말이다. 그것은 대중을 동원하는 소인배의 정치기술에 불과하다. 먹히면 뭐든지 한다. 먹히지 않으니까 안 하는 것이다. 해보고 먹히면 그것을 레닌주의다, 마오이즘이다 하고 그럴듯한 이름을 붙인다. 개코나.


    인간은 원래 죽어보자고 말을 안 듣는 동물이다. 그런데 말을 듣는 때가 있다. 해적들처럼 용감해지는 지점이 있다. 해적은 보물을 털어먹고 애플은 소비자를 털어먹는다. 스티브 잡스가 해적이 되자고 떠드는 이유다. 양아치들에게 반공이라고 써서 완장을 하나씩 채워주면 의기양양해 하면서 골목을 돌아다닌다. 그런 거다. 본질은 물리적 원인이다. 석유가 터지면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 항구를 확보하고 도로가 뚫리면 생각이 달라진다. 어제까지 반대하든 사람이 갑자기 찬성으로 돌아선다.


    이념이나 관념도 때로는 힘을 가진다. 그러나 이념이나 관념이라는 개소리가 힘을 가지는게 아니라 이념으로 혹은 관념으로 동원된 집단의 결속이 힘을 가지는 것이다. 본질은 이념이 아니라 동원이다. 어떤 수단을 쓰든 인간을 좁은 공간에 모아놓기만 하면 갑자기 태도를 바꾼다. 호르몬이 작동한다. 힘을 느낀 것이다. 뭔가 궁물이 있겠지. 일제히 달려든다. 나치가 그러하고 일제가 그러하다. 파시즘이다. 전체주의다. 쪽수를 믿고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이념은 하루에 열 개도 지어낼 수있다. 공장에서 찍어내면 된다. 사람들이 그게 먹힌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힘을 가지는 것이다. 그게 먹힌다고 믿는 이유는 역시 물리적 환경 때문이다. 사방이 트인 넓은 곳에서는 잘 먹히지 않고 바닥이 좁은 곳에서 그런 수작이 잘 먹힌다. 모서리를 발견하면 깔대기처럼 에너지가 결집된다.


    섬과 대륙은 인간들의 움직이는 방향이 다르다. 섬은 상대가 코너에 몰려서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다고 믿을 때 움직이고, 대륙은 도미노처럼 이어져서 이웃마을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믿을 때 움직인다. 내가 왼쪽을 칠 때 상대가 오른쪽으로 회피할 것으로 예상되면 움직이지 않는다. 반면 비좁은 곳에서 내가 어느 쪽을 공격하든 상대가 궁지에 몰려 옴쭉달싹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움직인다. 넓은 곳에서 내가 A를 치면 A는 내게 반격하는게 아니라 같은 수법으로 그 뒤의 B를 치고 B는 C를 치며 도미노처럼 에너지가 일방향으로 전달될 것으로 판단되면 경쟁이 붙어서 미친듯이 움직인다. 중국대륙이 순식간에 모택동에게 넘어간 이유다. 중간에 막아줄 산맥이 없으니 한 방향으로 일제히 달려가는 것이다.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그 예다.


    임진왜란 때 일본의 예측은 빗나갔다. 선조는 쉽게 도망쳤다. 장개석의 모택동 몰이도 실패로 돌아갔다. 섬이 아니라 대륙이기 때문이다. 해방직전 독립투사들은 장개석 진영으로 백여 명이 갔고 모택동 진영으로 8천 명이 갔다. 사회주의 이념 때문이 아니라 모택동이 총을 줬기 때문이다. 장개석은 선전 임무를 줬다. 독립투사들은 총을 쏘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백 마디 말보다 한 자루 총이 인간을 격동시킨다. 물리적 변화가 본질이고 이념은 대중을 동원하는 기술에 불과하다. 물리적 환경을 끼고 선전을 하면 먹히는데 그냥 말로 때우면 다들 시큰둥해서 먹히지 않는다. 총이라도 한 자루 쥐어주고 떠들어 보라고.


    인터넷이든, 스마트폰이든, 기관총이든, 전차든, 비행기든 뭔가 새로운 것이 나오면 사람들은 흥분한다. 설레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흥분한 군중을 광장에 끌어모을 때는 그럴듯한 구호를 제시해야 한다. 그게 이념이다. 좋은 이념은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지만 근본 총 보고 오지 구호에 속아서 오는게 아니다. 총의 성능이 애매할 때는 이념이 필요하다. 총은 있는데 화약이 없다면 낭패다. 화약이 올 때까지 소집된 군대를 광장에서 기다리게 하는 것은 이념이다. 그런 식이다.


    박정희의 ‘잘 살아보자’는 구호가 먹힌게 아니라 마을마다 나눠준 시멘트 포대가 눈길을 끌었다. 새마을은 사기고 농민들은 그냥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갔을 뿐이다. 사람은 실물을 봐야 움직인다. 현장에서의 물리적 변화에 이념적 선전을 더하면 금상첨화지만 현장을 모르는 책상물림이 세치 혓바닥을 놀려 이념으로 사람을 꼬시려고 한다면 그게 지식인의 오만과 몽상이다.


    죽어보자고 말을 안 듣는 병사를 어떻게 심리적으로 제압하여 사고를 못 치게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어놓을 것인가 하는 고민에서 나온 것이 일본의 발달한 메뉴얼이다. 그들은 혁명을 겪지 않았다. 민중의 창의성을 끌어내기보다 민중의 이탈을 방지하는데 주목한다. 반대로 어떻게 민중의 창의력을 끌어낼 것인가 하는 고민의 결과가 프랑스 혁명을 거친 나폴레옹의 기술이다. 대중을 제압하려는 일본의 귀족문화와 대중의 창의력을 전면에 끌어내려는 프랑스의 혁명문화는 에너지의 방향이 다르다. 일본은 상대를 구석으로 몰아넣어서 제압할 연구를 하고 프랑스는 넓은 곳으로 풀어놓는 방법으로 기세를 올리려고 한다.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를 거론하는 이유다. 외통으로 몰려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반도국가인 한국은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 상대를 궁지로 모는 것은 국힘당의 기술이고 대중을 넓은 광장에 풀어놓는 것은 민주당의 기술이다. 국힘당이 국민을 협박하여 궁지로 몰다가 거꾸로 자신이 궁지에 몰린다. 민주당이 국민을 넓은 곳에 풀어놓으니 국힘당 역시 일베를 넓은 곳에 풀어서 되치기를 시도한다.


    대륙기질이냐, 섬나라기질이냐, 반도기질이냐. 지정학적 구조의 차이가 집단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듯이 문화적인 의사결정구조의 차이에 따른 심리적 지정학이 있다. 혁명을 겪은 나라와 혁명을 겪지 않은 나라는 민중의 자발적인 에너지를 끌어내는 수준이 다르다. 동원기술의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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