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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402 vote 0 2021.02.16 (00:31:03)


    구조론 입문


    세상은 원자의 집합이 아니라 관계의 연결이다. 원자는 관측자인 인간과 대칭시킨 개념이다. 인간이 하나이면 원자도 하나라야 한다. 인간을 쪼갤 수 없으므로 원자도 쪼갤 수 없어야 한다. 그래야 일대일로 대칭이 된다. 그래야 대상을 파악할 수 있다. 구슬을 하나씩 세듯이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거다. 그런데 그럴 리가 없잖아. 


    이는 인간의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세상이 자연수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면 계산하기는 편하다. 그러나 자연이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은 먼지처럼 흩어지고 물결처럼 출렁인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 중대한 힌트가 있다. 인간과 자연이 만나서 일대일로 대칭을 이루므로 인간이 인식을 달성하고 있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이다. 어떤 두 존재가 만나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만남 바로 그것이 존재다. 만나지 않으면 존재는 불성립이다. 원자는 인간과 자연이 만나기 좋은 상태를 상상한 것이다. 여친을 만나려고 연락을 했는데 오빠와 같이 나오면 힘들어진다. 혼자 나오면 데이트도 하고 좋잖아. 나도 혼자 나왔는데. 이런것은 인간의 희망사항이다. 


    거꾸로 봐야 한다. 만남 그것이 바로 존재다. 어떻게 만나는가? 대칭으로 만난다. 대칭은 일대일이다. 세상이 만남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존재는 아마도 만나기 좋은 상태일 것이고 그 만나기 좋은 상태가 원자다. 더 이상 쪼개지지 말아야 만나서 데이트를 할 수 있다. 거꾸로 보자. 원자가 만나기 좋은 상태로 존재하는게 아니라 만남 바로 그것이 존재다.


    둘이 만나는 방식은 관계다. 그런데 관계는 애매하다. 썸을 타는 중인지 이미 커플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어색하게 만난다. 불완전하게 만난다. 제대로 된 만남은 둘의 일치를 요구한다. 둘 중에 하나가 틀어져도 관계는 변한다. 둘의 만남이 완전한 일치에 이르면 구조다. 대칭에 의하여 구조는 조달된다. 원자는 확실하지만 인간의 상상이다.


    만남은 불확실하다. 이루어지거나 깨진다. 일정한 조건에서 만남이 일대일로 대칭되는 것이 구조다. 구조는 주선하는 사람이 있는 소개팅이 아니고 둘 만의 데이트다. 관계는 변한다. 변화는 움직이고 움직임은 방향이 있다. 방향이 맞서면 대칭이다. 관계가 대칭으로 교착될 때 구조로 고도화되며 원자의 성질이 변하지 않듯이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원자론은 자연의 근본은 인간이 관측하기 쉽도록 명확하게 존재해야 한다는 억지다. 그럴 리가 없다. 자연은 변화무쌍하지만 일정한 조건에서 대칭에 의해 구조로 고도화될 때 원자와 같은 명백한 성질을 획득하는 것이다. 원자는 명백한 자연을 상상한 것이고 구조는 명백한 부분을 찾아낸 것이다. 자연은 변하고 움직이고 충돌하여 결국 구조화된다.


    충돌하면 이기거나 진다. 이기는 것은 남고 지는 것은 소멸한다. 구조가 이긴다. 구조만 남는다. 원자는 원인이고 구조는 결과다. 원자론은 원자로 만들어야 이렇게 튼튼한 우주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고 구조는 그냥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튼튼한 구조만 살아남았다는 말이다. 진화론과 비슷하다. 상대적으로 많이 진화한 종이 다수가 살아남은 것이다. 


    에너지는 출렁인다. 출렁이면 충돌한다. 충돌하면 이기거나 진다. 이기는 것은 상대적으로 효율적인 구조를 가졌다. 그럴 때 원자와 같이 명백해진다. 자연은 먼지처럼 흩어지고 물처럼 출렁이지만, 조건을 부여하여 충돌시키면 일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예측가능한 상태로 바뀌는 것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충돌하여 강한 것만 살아남은 결과다. 

 

    불안정한 것은 사라지고 안정된 것은 살아남는다. 외력을 극복하고 자기를 보존한다. 약한 부분은 깎여나가고 튼튼한 구조만 남아서 아름답다. 세상은 만남과 헤어짐 곧 연결과 단절이다. 구조는 그것을 결정한다. 외력의 작용을 연결하거나 단절한다. 그리하여 세상을 널리 이룩해낸다. 그러한 연결의 단위가 사건을 이루고 사슬의 연결고리를 이룬다.


    관계는 연결, 구조는 연결부위, 사건은 연결의 일 단위, 대칭은 연결방식이다. 구조가 외력을 처리하여 자기를 보존하여 원자처럼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고 버티는 것이 사건이다. 사건이 칼이면 구조는 칼날이고, 관계는 칼질이고, 대칭은 칼날과 손잡이다. 세상은 원자들의 집합이 아니라 사건의 연결이다. 원자가 쪼개지지 않듯이 사건은 보존된다.


    세상은 어떤 둘의 관계로 시작되며, 관계의 변화가 일정한 조건에서 대칭에 의해 일치하여 외력에 대해 마치 하나인 것처럼 행세하면 구조로 도약하며, 구조가 외력을 극복하고 자기 존재를 확립하면 사건으로 도약한다. 사건이 시간과 공간의 자리를 차지하고 원자처럼 버틸 때 인간은 비로소 거기에 무엇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존재의 모습이 된다.


    원자개념은 존재의 이러한 내막을 탐색하기를 포기하고 뭉뚱거려서 막연히 인간이 지목하기 좋게 생겼으면 좋겠다 하고 희망사항을 말한 것이다. 반대로 구조는 원자개념의 내막을 낱낱이 들춘 것이다. 원자는 어떤 둘의 충돌이 교착된 것이다. 소립자든 양성자든 중성자든 전자든 마찬가지다. 원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원자가 유독 살아남은 것이다.


    둘의 충돌이 교착되면 둘이 외력에 대해 하나처럼 행세하므로 여전히 하나로 존재하는 주변보다 강하다. 강한 것만 남아서 세상을 이룬다. 그것이 소립자도 되고, 양성자도 되고, 중성자도 되고, 전자도 되고, 원자도 되고, 분자도 되고, 물체도 된다. 그러한 충돌을 일으키는 모순을 힘이라고 한다. 중력도 되고, 강력도 되고, 약력도 되고, 전자기력도 된다. 

  

    구조론이라고 명명한 것은 다윈의 진화론,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같이 인류의 지성을 흔들어 깨워서 지적 도약을 일으키는 일대사건이라는 점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 이전에 대체할 그 무엇이 없었다. 기독교의 창조설은 이론 축에도 들지 못하는 설화다. 체계적인 사유가 아니다. 인류는 애초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말은 그랬으면 좋겠다는 거지 진지한 이야기가 아니다. 판단할 만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골치 아픈 것은 신에게 떠넘기면 되니 얼마나 편리한가? 그런데 거짓이다. 진지하게 꾸며낸 것도 아니다. 대충 둘러댄 것도 아니다. 그냥 몰라서 질문을 한 번 던져본 것인데 아무도 답하는 사람이 없으니 질문을 답으로 돌려친 것이다. 


    창조설은 우주가 이렇게 이루어졌다는 설명이 아니라 우주가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느냐 하는 물음이다. 물음을 던지면서 조악한 가설 하나를 세워서 질문의도를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그 가설을 반박하면서 그럴듯한 이론이 나와줘야 하는데 다들 수줍어할 뿐 감히 앞에 나와서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윈이 그럴듯한 설명을 고안했지만 반쪽 이론이다. 


    신이 생물만 창조한 것은 아니고 우주를 먼저 창조했다. 생물은 진화론으로 설명한다면 우주는? 그에 대한 답변은 없다. 원자론은 하나의 모색에 불과하다. 역시 아이디어를 한 번 던져본 것이다. 제대로 반론하는 사람이 없으니 오랫동안 그것이 정답처럼 받아들여졌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나름대로 설명의 시도가 되지만 역시 진지하지 않다. 장난하냐?


    원자는 딱딱한 것이다. 우주는 변한다. 딱딱한 것은 우주의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 생물의 진화만 해도 물이 무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생명이 단단한 돌이나 쇠로 만들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단단한 원자보다 무른 이데아가 근사하지 않아? 세상이 딱딱하면 이상해. 자연의 순환을 설명하려면 굳은 하드웨어보다 무른 소프트웨어가 제격이지. 


    아리송한 이데아가 아리송한 자연과 매치가 되잖아. 옛날 이야기다. 역시 인간의 편의에 맞춘 것이다. 과학의 시대에 자연은 더 이상 아리송하지 않다. 아리송한 이데아가 명확한 근대과학과 매치가 되지 않는다. 이제 문명을 업데이트할 때가 되었다. 인류는 한 단계 더 올라서야 한다. 구조론이야말로 창조론의 물음에 최초로 제출된 진지한 답변이다.


    그렇다. 세상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구조된 것이다. 세상을 구조로 보고 관계로 보고 만남으로 보고 연결과 단절로 보고 에너지로 보고 대칭으로 보고 효율로 보고 게임으로 보고 사건으로 보는 관점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둘이 만나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게 아니고 만남 그것이 바로 존재다. 슬쩍 비켜 만나면 관계이고 정면으로 만나면 구조다. 


    만나면 그대로 헤어지는게 보통인데 헤어지지 않고 만남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면 구조다. 구조는 견고하므로 외력을 처리할 수 있는데 하나의 구조로는 부족하고 일련의 연속적인 구조가 외력을 완전하게 처리할 수 있다. 다섯 가지 구조가 모여서 외력을 완전히 처리하며 시공간 속에 자기를 보존하는 그것이 사건이다. 사건이 반복되는 형태가 존재다.


    그럴 때 우리는 거기에 무엇이 있다고 말한다. 원자가 있다면 이러한 절차를 거쳐서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근원의 존재가 아니라 많이 발전한 것이다. 생물에 비유하자면 척추동물쯤 되는 것이다. 만남이 DNA라면, 대칭은 세포벽이고, 구조는 단세포동물이며, 사건은 다세포 생물과 같다. 원자는 많이 봐줘도 다세포 생물이니 자연의 근본이 아닌 것이다.


    근본에서 사유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근본은 관계다. 존재의 DNA다. 곧 만남이다. 만나면 헤어진다. 관계는 변화한다. 구조는 변화를 일정하게 고정한다. 같은 조건에서 같은 반응을 보인다. 관계가 대칭될 때 구조에 잡혀 외력을 처리하고 자기를 보존하면 사건으로 도약한다. 그럴 때 비로소 존재의 모습이 드러난다. 인간이 그 존재를 인식한다.


    반대로 관계가 구조로 발전하지 못하면 외력의 작용에 져서 흩어진다. 다른 것에 흡수된다. 그럴 때 존재는 모습을 감추고 에너지의 형태에 머무르며 수학과 확률 속으로 숨어 버린다. 에너지는 그 자체로는 파악되지 않고 모아서 어떤 형태를 만들어야 파악된다. 에너지에 형태를 부여하는 방법이 대칭과 구조와 사건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파악이다.


    원자가 자연의 존재가 아닌 인간의 파악이듯이 물질도 서로를 파악한다. 보통은 파악하지 못한다. 특수한 경우에 파악되는데 그것이 대칭이다. 대칭은 모이고 비대칭은 흩어진다. 그냥 모이기만 해도 안 된다. 대칭이면서 동시에 비대칭이라야 구조가 사건으로 도약한다. 대칭이 비대칭의 축을 획득하고 대칭성과 비대칭성을 동시에 가지는게 사건이다.


    구슬은 견고하지만 결합되지 않고 점토는 결합되지만 흩어진다. 구슬과 점토의 성질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원자는 구슬의 성질만 가지고 있다. 파악하기는 좋지만 건축하기에 부적합하다. 우주는 건축된 것이다. 생물은 무른 물의 성질로 성장하고 우주는 대칭이면서 비대칭인 즉 구슬처럼 견고하면서도 찰흙처럼 잘 달라붙는 구조의 성질로 건축된다.

    

    세상은 변하고, 변하면 움직이고, 움직이면 방향이고, 방향이 충돌하면 대칭되고, 대칭이 맞물려 축을 공유하면 구조를 이루고, 전개하여 사건을 일으킨다. 사건은 외력을 극복하며 공간을 점유하니 존재를 달성한다. 그럴 때 인간은 그것을 지목하며 거기에 무엇이 있다고 말한다. 자연은 거기까지 전개해와서 인간 앞에 선다. 존재의 내막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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