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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997 vote 0 2023.04.09 (18:31:24)

   "544년 권력이 이사부 1인에게 지나치게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병부령을 2인으로 늘렸는데 이후 신라는 모든 관부의 장관을 2인으로 하는 관습이 정착되었으며," [나무위키]


    신라는 왕이 두 명이었다. 매금왕과 갈문왕이 그것이다. 왕이 두 명이라면 이상하지만 왕이 한 명이면 화백회의는 존재가치가 없다. 두 명의 왕들 사이에 의견이 통일되지 않아야 화백회의에 참가한 귀족들도 한마디씩 거들 수 있는 법이다. 


    모든 관부에 장관이 2인이라면 왕도 2인이라야 한다. 신라 6부라고 하지만 중심은 탁부와 사탁부다. 혹은 량부, 사량부라고도 한다. 경주 시내가 탁부, 남쪽이 사탁부다. 나머지는 외곽지역이다. 경주는 남쪽에서 출발하여 시내로 확장되었다.


    경주 시가지는 홍수에 범람할 수 있는 저습지라서 도시가 발생하기 어렵다. 서울의 강남과 같이 치수사업을 해서 점차 도시화 된 것이다. 사탁부가 있는 남산 기슭은 언덕이라서 하천이 범람할 위험이 없다. 도시가 발생하기에 좋은 지형이다.


    로마의 유서 깊은 일곱 언덕이나 아테네 프닉스 언덕도 마찬가지다. 도시는 원래 언덕에서 발생한다. 아가멤논 대왕의 미케네 왕국도 언덕에 있다. 포로로마노는 저습지였는데 로마 인구가 늘어나자 습지가 메워져서 중심가로 발달한 것이다.


   탁부와 사탁부, 량부와 사량부 어느 쪽이든 당시의 발음은 닭이다. 중국의 기록에서 6부를 여섯 탁평이라고 했는데 6부가 모두 닭인 것이다. 국호가 계림이 되는 이유다. 처음에는 탁부와 사탁부만 닭이었는데 나중에 팽창했다고 볼 수 있다.


    신라의 원래 이름은 사라다. '라'는 탐라, 임나 하듯이 나라다. '나'는 국가보다는 지역을 가리킨다. 비사벌, 음즙벌과 같은 벌은 성을 가리킨다. 벌판이 아니라 도시를 의미한다. 지금은 벌판에 곡식이 자라지만 고대의 벌판은 다 황무지였다. 


    하천 주변은 범람원이라서 사람이 살 수가 없다. 일단 모기가 바글바글해서 살 수 없다. 사람은 언덕 혹은 들판에 사는데 들은 벌판이 아니라 산봉우리들 사이에서 하천이 시작되는 곳에 형성된 넓은 선상지를 의미한다. 충적평야라고도 한다. 


    이스탄불의 불이나 함부르크의 부르크처럼 도시명에 부르, 불, 부리는 무수히 많다. 모두 벽 곧 성벽을 의미한다. 신라 곧 사로국의 정확한 나라 이름은 한 글자로 '사'다. 신라는 신+나라가 되는 것이다. 사탁부의 사는 사로국의 사인 것이다. 


    사로국은 돌산 고허촌 곧 경주 남산자락에 있었다. 남산이 다 돌산이다. 신라 초기 박씨 왕들의 사로국이 있던 곳이 6부체제로 확대되며 사탁부가 된 것이며 이후 석씨 왕계와 김씨 왕계가 차례로 등장하며 경주 시내 일원의 탁부가 흥했다. 


    사탁부, 곧 사량부에는 사량궁이 있었다. 경주 남천을 탁부와 사탁부의 경계로 본다면 나정으로 알려진 신궁이 있는 신라의 발흥지를 중시했던 것이다. 모즉지매금왕 법흥왕과 입종 사부지갈문왕은 형제인데 탁부와 사탁부로 나뉘어 있다. 


    왕권은 입종갈문왕의 아들인 진흥왕에게로 넘어갔다. 이러한 전개는 상당히 이상하게 보인다. 형제인데 부가 다른 것도 이상하다. 동생의 자식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도 이상하다. 지증왕이 금석문에는 갈문왕으로 나오는 것도 이상하다.


    신라가 화백회의 중심 이원집정부제임을 받아들이면 쉽다. 로마도 집정관 2인이 공동으로 통치했다. 고대사회에 이런 예는 흔하다. 흉노도 좌현왕, 우현왕을 두어 왕이 여럿이었다. 차칠왕등에서 보듯이 화백회의 수장들도 모두 왕이었다. 


    신라의 왕은 임금왕, 매금왕, 갈문왕이 있다. 임금의 '금'은 '신'을 의미한다. 일본의 '가미'와도 같다. 단군왕검에 그 흔적이 있다. 임은 '잇'인데 이빨의 의미도 있지만 갈래를 의미한다. 갈라져서 자라는 사슴뿔의 이를 생각하면 알 수 있다. 


    잇금 중에서 높은 잇금이 '매금'이다. 금관총 이사지왕도 명문에서 임금왕지도라고 하지 않고 이사지왕도라고 한 것은 그러한 고민의 흔적이다. 신라인 스스로는 매금왕이라고 불렀지만 외국은 매금으로 불렀다. 역전앞과 같은 이중호칭이다.


    갈문왕과 구분하려면 매금왕이 되어야 하는 이치다. 결론적으로 신라는 경주 남천 남쪽의 돌산 고허촌 사로국을 중심으로 한 사탁부로 출발하여 경주 시내의 탁부로 확장된 것이며 매금왕과 갈문왕 두 명의 왕은 그러한 통합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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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수리비의 차칠왕등을 왕을 비롯한 7인으로 해석하는 블로그가 구글에서 검색하면 첫 번째로 나온다.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일단 교는 제후 왕이 내리게 되어 있다. 이건 중국에서의 규칙이다. 왕이 아닌 자가 감히 교에 끼어들 수 없다. 


    다음 공론이 걸린다. 왕과 왕이 아닌 자가 함께 공론을 정할 수 없다. 계급이 다르다. 셋째, 갈문왕은 왕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 왕이 없다. 왕이 포항까지 가냐? 넷째, 지증왕이 왕호를 정하기 전이다. 이때는 왕이 아닌 마립간 시대다. 


    다섯째, 왕은 대왕 혹은 태왕이라고 하지 그냥 왕이라고 안 한다. 법흥왕은 모즉지 매금왕이라고 했는데 이는 일반 왕들과 구분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왕호가 공식적으로 채택되기 전에는 호칭 인플레로 개나 소나 왕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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