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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우울한 소식 뿐이군요. 권력 잃고 물러나는 DJ의 쓸쓸한 해명, 경제도 안좋은데 길길이 날뛰는 부시의 도발책동, 느끼는건 한마디로 분노입니다. 기어이 제 발등을 찍는 김정일의 몽매함에 대한 분노, 인류문명을 조롱하는 듯한 부시의 반지성적 태도에 대한 분노, 온통 분노입니다. 인간이란 이다지도 어리석은 존재란 말인가요?

일백년 전 양차세계대전을 앞두고 서구의 지식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인간이 만물의 영장? 과학의 발전과 문명의 진보? 인간의 이성과 존엄? 멋진 신세계? 망상이었습니다. 인류는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인간이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이 생각납니다. 성장을 멈추고 싶었던 소년 오스카의 심리. 웅크리고 들어앉은 엄마의 자궁 안에서 바깥세계를 내다보기 두려운 마음. 인간에 대한 신뢰는 근원에서 무너졌습니다. 야만! 야만! 야만! 이건 야만 이외에 어떤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미국은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

세계대전을 유발한 군중심리 중 하나는 그 당시 줄줄이 등장한 신무기의 위력에 대한 맹신에 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상상도 못했던 신무기들, 탱크와 전투기, 잠수함, 속속 등장하는 꿈같은 신형무기들, 얼마나 멋있습니까?

일백년전 시골에서 젖소나 먹이던 독일 촌넘, 촌에서 밀농사나 짓던 이탈리아 젊은이, 섬에서 물고기나 잡던 일본 청년, 이런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기에는 충분합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먼저 써먹지 않으면, 적이 먼저 이 가공할 신무기로 공격해 올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기어이 신무기의 위력을 두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은 호기심, 꿈같은 흥분과 자아도취 그리고 공포, 집단 히스테리. 그들은 일제히 미쳐버렸던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걸프전과 아프간 침공을 계기로 미국은 자기네는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적만 죽이는 새로운 전쟁형태를 발명했습니다. 지금 이것을 써먹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입니다. 집단적 광기의 폭발입니다.

911테러 당시엔 저도 몰랐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비극이었는지를. 후폭풍이 더 무서운 법입니다. 이젠 저도 실감하겠습니다. 무너진 것은 쌍둥이 빌딩이 아니라 인류의 지성과 존엄 그 자체였습니다. 다들 미쳐 돌아가고 있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저는 낙관적이었습니다. 부시에겐 승산이 눈꼽만큼도 없으니까요. 그러나 양차 세계대전이 언제 승산보고 일어난 전쟁입니까? 인간은 무모한 동물입니다. 뼈저린 교훈을 주지 않으면 금새 잊어버리고 부나방처럼 다시 절망속으로 뛰어드는 망각의 동물이 인간입니다.

『자기편은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적은 모조리 죽인다.』 새로운 전쟁개념의 출현입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기어이 균형은 깨어졌습니다. 이러한 발상 자체가 거대한 하나의 공포입니다.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왔습니다. 인류는 다시 시험에 들었습니다.

콜린 파월 너 까지도

콜린 파월은 냉정하고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이 인간이 전쟁 지지로 돌아섰다는 뜻은 이미 이 전쟁의 목적이 후세인의 응징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게임의 규칙은 바뀌었습니다. 전쟁목적은 변했습니다. 그들은 지금 후세인을 응징하려는 것이 아니라 『적은 일방적으로 죽고 자기편은 한 사람도 다치지 않는 시대』를 선포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들어내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오류이든 혹은 오류가 아니든 결과가 확인될 때 까지 그들은 나아갈 것입니다. 역사의 경험칙에 의하면 이 경우 인류는 항상 그것이 어리석은 선택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 길을 갔습니다. 그 실패로 하여 뼈저린 교훈을 배울 때 까지 인간들은 들쥐처럼 몰려갔던 것입니다. 다가온 눈앞의 비극을 목도하고도 한탄이나 하고 있는 우리는 이렇게 무력한 존재입니다.

후세인도 나쁜 녀석이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인류역사상 자기 스스로 해결 못하는 문제를 남이 끼어들어 대신 해결해주었을 때 뒤끝이 좋았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후세인의 문제는 이라크인의 힘으로, 김정일 문제는 북한 주민들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되어야 합니다.


부시가 서라면 서고 김정일이 가라면 가냐? 메롱이다.
사진은 북한의 도로표지판!

꼴통 김정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미래지향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문제를 풀어가는 방향, 답이 있는 방향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김대중이 옳았다니 혹은 옳지 않았다니 이런 논의에 집착해서는 미래지향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옳건 그르건 자기네가 주장하는 논리틀 안에서만 유의미한 것입니다. 김대중이 옳지 않았다는 저의 의견은 『노무현은 이제부터 옳게 해야한다』는 미래지향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주셔야 합니다.

필요한 것은 결과에는 책임을 지는 자세입니다. 지금의 결과는 김정일의 배신입니다. 이 때문에 김대중은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미래의 결과는 남북통일입니다. 그것은 지금부터 만들어가야 합니다. 옳았느냐 옳지 않았느냐의 과거에 얽매인 소모적인 논쟁을 지양하고, 결국은 김대중이 옳았다는 결과가 되도록 지금부터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김정일 이 비열한 인간이 약속을 해놓고도 답방을 하지 않았다는 데서 시작됩니다. 마찬가지로 김정일의 답방을 성사시키고, 개성공단을 추진하고 결과적으로 통일에 기여하게 하므로서 이 문제는 온전히 해결됩니다.

문제는 특검을 할 경우와 하지 않을 경우, 각각의 경우 북한이 과연 어떻게 나올 것인가입니다. 5억불을 떼먹고 입을 닫을 것인가 아니면 약속대로 답방을 할 것인가입니다. 어느 쪽이든 문제 해결의 키는 지금 김정일이 쥐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남북관계로 봐서 김정일이 키를 쥐고 있는 한 아무것도 진척되지 않습니다. 이는 김정일의 대미의존적 태도 때문입니다. 김정일이 부시에게 백날 추파를 던져봐야 답이 안나옵니다. 절실한 것은 남북공조입니다. 김정일이 쥐고 있는 그 키를 우리가 빼앗아와야 합니다.

공격과 수비가 있습니다. DJ를 옹호하는 것이 수비라면, 과감한 특검수용으로 되받아치는 것은 공격입니다. 공격도 필요하고 수비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저는 DJ의 업적은 어차피 역사가 알아줄 것이므로, 지금은 특검수용으로 공격에 치중하는 것이 더 미래지향적인 태도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답은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남북공조입니다.

명분 아니면 실리입니다. 이 경우 『게임의 규칙』은 남쪽은 체면을 세우고, 북쪽은 실리를 챙기는 것입니다. 명분을 얻는다는 것은 정치적 이익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즉 남쪽은 북쪽에 돈을 제공하는 대신 선거에서 이기고 북쪽은 경제적 이익을 챙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거꾸로 되어서 북쪽이 도리어 명분에 집착하고 있고, 남쪽이 있지도 않는 실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황당한 일입니다. 우리에게 무슨 실리가 있습니까? 이건 어떤 경우에도 퍼주기입니다. 우리는 퍼주어야만 하고 퍼줄수록 정치적 이익을 얻는 게임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남쪽은 개성공단을 개발하고 금강산관광을 해서 또 동북아중심국가시대를 열어서 엄청난 경제적 실리를 챙기고, 북쪽은 별로 이익이 안되지만 남쪽 형제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동포애를 발휘하여 마지못해 간청을 들어준다는 식입니다.

이런 바보같은 소설이 왜 나옵니까? 우리가 어린애인가요? 이건 현재진행형의 게임입니다. 게임에서는 포커페이스여야 합니다. 물론 언젠가는 그것이 다 우리의 실익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먼 훗날의 이야기고 당장은 명분을 얻고 실리를 주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북한은 실리를 챙기고, 남쪽은 헛된 명분을 얻을 뿐 실속없는 장사라고 대외적으로 말하는 것이 게임의 법칙에 맞는 포커페이스의 유지입니다. 지금 개성공단의 대성공을 낙관하고 동북아중심국가시대의 찬란한 미래를 말하는 것은 김정일의 몸값을 올려주는 이적행위입니다.

게임의 고수라면 당연히 『우리의 이익은 조금도 없다. 개성공단은 밑지는 장사다. 단지 동포애를 발휘하여 퍼주기를 할 뿐이다』하고 너스레를 떨어야지요. 이 정도는 상식 아닙니까?

제발 착각하지 마세요. 아직 거래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게임은 여전히 현재진행 중입니다. 결론적으로 북한에 퍼준 정당이 선거에서 이기는 구조를 만들어내야 이 거래가 온전하게 성립되는 것입니다. 지금 꼴통 김정일이 하는 짓은 북한에 퍼주는 정당이 결과적으로 선거에서 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래서는 기본적으로 거래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답은 나와있습니다. 철저한 남북공조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북한문제의 키는 남쪽이 쥐고 있어야 합니다. 미국이 북한문제를 해결하려면 노무현에게 알아보는 방법 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해서 한국인의 자부심을 높여주고, 그것으로 북한에 퍼준 정당이 선거에서 이기게 만드는 것입니다.

문제는 주도권입니다. 고객이 왕입니다. 돈 있는 쪽은 남쪽인데 왜 우리가 굽신거립니까? 우리가 바보에요? 일본이 달려들까봐 서둘러 거래했다는 변명은 현대가 과연 장사꾼이 맞기는 맞는지 의심스러운 발언입니다. 장사의 기본은 배짱 아닙니까? 곧 죽어도 거래조건은 한국은 명분, 북한은 실리입니다. 여기서 눈꼽만큼도 양보 못합니다. 김정일이 이러한 거래조건에 동의하게 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노무현이 해야할 일입니다.


노 당선자 미국 방문 서두를 일인가?

돌맞을까봐 겁나서 못 오겠지만 부시가 먼저 서울을 찾는 방법도 있습니다. 왜 항상 우리가 먼저 미국을 가야만 합니까? 달리 사대주의가 아니고 이것이 사대주의입니다. 지금은 굳이 미국을 방문할 필요가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9월 이후가 적당하다고 봅니다.

미국은 내년에 대선이 있습니다. 한반도 문제가 어떤 쪽으로 결말이 지어지든 뭔가 문제가 발생한다는 그 자체로서 부시에게 손해입니다. 과거 카터대통령 때도 그런 이유로 전두환의 쿠데타를 용인했지만, 한국에서 조용하면 현직대통령에게 유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기를 늦출수록 미국의 양보를 끌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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