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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4003 vote 0 2003.04.24 (11:49:11)

‘꼴통’이라는 딱지는 시대를 달리해 대상을 찾는다. 예컨대 지금은 대통령이지만, 한 때 노무현도 ‘꼴통’이라는 딱지를 선사 받았던 적이 있다. 80년대 민주화 투쟁 때 그러했고, 안전빵 지역구 종로를 버리고 부산으로 갔던 때가 그러했으며, 지난 해 내내 그러했다. 지금은 다소 엷어졌지만 강준만과 진중권도 한때는 ‘꼴통 대접’을 받았다.

강준만은 <김대중 죽이기>라는 고약스러운 책을 냈던 97년이 그러했으며, 진중권은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는 책을 내면서 그러했다. 재미있는 것은 ‘꼴통’ 취급을 받았던 진중권이 조선일보와 극우 보수주의자들에게 ‘꼴보수’라는 딱지를 선사했는데, 이게 널리 먹혀버렸다는 것이다. 극우 보수주의자들이 일부 특정한 진보주의자들, 혹은 개혁성향의 인사들에게 선사했던 ‘꼴통’이라는 딱지가 부메랑이 되어 ‘꼴보수주의자’들에게 돌아간 정확한 시점이 바로 진중권의 ‘대중적’ 출현 시점과 일치하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식인들과 언론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70년대 리영희 교수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의 <전환시대의 논리>는 불온서적이 되어 책의 표지만 본 사람조차도 ‘빨갱이’취급을 받았던 적이 있다. 리영희 교수, ‘꼴통 빨갱이’가 되어 감옥을 오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분과 같은 맥락에 뒤를 잇는 적지 않은 ‘꼴통 언론지식인’이 있다. 정연주 한겨레 논설 주간과 손석춘 논설위원이 대표적인 경우다.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의 이 두 언론인은 정확한 시대인식과 더불어 날렵하지만 우직한 글쓰기로 당대를 예리하게 비집고 풀어헤쳐 비판이 살아 숨쉬는 공간을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 정연주 주간의 경우, 워싱턴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입장을 날카롭게 분석, 제공함으로써 조중동 등에 의해 일방적으로 왜곡, 편집되어 전달되던 국제여론의 국내 상륙의 객관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뿐만 아니라 손석춘 논설위원은 독과점적 지위를 남용해 사실을 왜곡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조중동의 기사나 기명 칼럼 등에 대해 실명 비판을 통해 직설적인 비판을 날림으로써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매체 상호간의 유착 관계를 불편하게 하는 데 앞장서 왔다.

서둘러 고백하자면, 나는 이들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복으로 여긴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을 그렇게 여기는 것처럼. 한 발 더 나아가자면 이렇다. 현대 언론사에 있어서 이 두 사람의 존재는 축복임에 틀림없다. 리영희 교수가 7,80년대의 축복이었던 것처럼. 리영희 교수를 비롯해 이 두 사람에 받치는 ‘헌사’는 결코 과한 것이 아니리라.

공영방송인 KBS의 사장으로 정연주 주간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은 매우 큰 기쁨과 조금 작은 착잡함을 불러일으킨다. 매우 큰 기쁨은 물론 정연주 주간이 그간 보여줬던 일관된 개혁성과 우직함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곧바로 그에 대한 신뢰와 믿음으로 연결되어 ‘정말 잘 된 인사’라는 평가를 가능케 한다. 그는 분명히 잘해낼 것이다.

그러나 조금의 착잡함도 피할 수는 없다. 첫째는 전임자인 박권상 사장이 보여줬던 실패의 그림자 때문이다. 물론 박권상과 정연주는 분명히 다르다는 데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방송경험이 없는 글쟁이들의 방송사 사장 진출이라는 조건이 우선 같다는 점, 그리고 황무지에서 밭을 일궈야 한다는 거친 전제 조건 또한 같다는 점은 이제 시작될 ‘정연주 체재’에 대한 마냥어린 기대감만을 표할 수 없는 걱정스러움으로 남는다.

물론 정연주 주간의 KBS 사장 결정 소식에 당연히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두 가지 근거는 이렇다. 첫째, 그는 박권상이 아니라는 것이 그것이다. 정연주 주간이 한겨레 지면을 통해 그간 펼쳤던 당대에 대한 시각과 소신은 그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는 것에 충분한 근거가 될 것이다. 두번 째 근거로는 MBC의 전임 사장이었던 김중배 전 사장의 경우를 들 수 있겠다. 개혁성과 진보성에 있어서 김중배 전임 사장과 정연주 주간은 막상막하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 하나가 그 거대한 조직을 어떻게 바꿀 수 있겠냐는 의심어린 불안이 있을 수 있겠지만, 김중배의 MBC는 충분히 변해주었다고 판단한다.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그것은 김중배의 역량의 크기가 아니라 한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는 역량에 부여된 시간의 크기일 것이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김중배의 MBC는 상식적인 선에서 변할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줬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정연주는 김중배 보다 한발 더 나아가야 하고,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그가 이룩해낼 KBS의 변신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꼴통 취급 받던 사람들이 주류가 되고, 완장 차고 꼴통 딱지 붙이고 다니던 과거 주류들이 꼴통으로 전락하는 시대. 그 상쾌한 쾌감을 정연주 주간이 선사해 주기 바란다.


스피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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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칼럼] 젊은이들이여, 세상을 바꿔라 /편집시각 2000년02월10일21시28분 KST

뉴 햄프셔 예비선거 취재를 위해 8년만에 그곳을 다시찾았다. 8년전처럼 올해에도 이곳은 하얀 눈이 소담스럽게 대지를 포근히 감싸고 있었다. 인구가 117만명 밖에 안되는 한적한 곳이지만, 4년마다 첫 예비선거가 치뤄질 때 쯤이면 이곳을 찾는 후보들과 자원봉사자들, 기자들로 북적댄다.

미국의 예비선거는 당의 보스들이 밀실에서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던 반민주적인 절차를 깨고, 국민의 직접 참여가 필요하다는 개혁의 결과로 이뤄졌다. 뉴 햄프셔도 개혁에 동참했으며, 1920년부터는 전국 최초의 예비선거를 치르게 됐다. 바로 이 `최초의 예비선거'라는 특수성이 이 조그만 주를 정치적 거인으로 만들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바로 그 점에 승부를 걸었다. 뉴 햄프셔의 구석구석을 뒤지면서 114회의 마을집회를 갖는 등 전력투구를 했다. 그 도박은 대성공을 거뒀다. 조지 부시 후보의 대세론을 뿌리채 흔들어 놓았으며, 그여세를 몰아 공화당 후보전에 폭풍을 휘몰아 왔다.

뉴 햄프셔 예비선거가 있기 전, 매케인 진영에서는 아주 재미있는 가설을 하나 퍼트렸다. 이른바 `스웨터론'이다. 스웨터에 큰 구멍이 나면 실이 터지게 되고, 그실의 타래가 풀리기 시작하면 스웨터는 순식간에 풀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난공불락의 성곽같은 조지 부시 후보도 뉴 햄프셔에서 큰 구멍이 나면 스웨터의 실타래가 풀리듯 그렇게 쉽게 허물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 `스웨터론'을 받쳐주는 상황인식은, 정치는 생물이며, 특히 선거는 어느 쪽으로 튈지 모르는, 매우 역동적인 특성을 가진 생물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줄지어 계속되는 예비선거전은 시즌 전체의 성적으로 우열을 가리는 리그전이 아니라, 한 수, 한 수가 그 다음 게임을 결정짓는 체스 게임과 같다. 바로 이런 다이나믹한 특성 때문에 한번의 움직임, 한번의 패배가 연쇄반응을 불러 일으키고, 끝내 스웨터가 죄다 풀어져 벌거숭이가 되는 상황까지 발전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 포인트 열세에서 불과 며칠만에 극적 반전을 보여 백중세로 돌아선,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의 여론흐름을 비롯하여 지금 전개되고 있는 혼전양상을 보면 이러한 가설과 설명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미국의 예비선거전에서 보이는 이러한 역동적 변화도 한국 시민단체들의 낙선운동이 가져올 폭발력과 그 파장에 비하면 별게 아니다. `중진들'의 자퇴 움직임은 이미 폭발력의 한 자락을 보여준다. 수구언론과 수구세력이 `음모론' 등 온갖 괴이한 논리로 낙선운동을 주저 앉히려 안간힘을 쓰는 이유도 바로 이 엄청난 파괴력과 그것이 몰고 올 무서운 변화 때문이다. 낙선운동은 해방뒤 한번도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채 거의 무한의 세습과정을 거치며 반복돼온 이 사회 수구세력들의 기득권 유지구조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이 질풍노도와 같은 시대적 흐름에 맞서는 수구언론과 수구세력의 저항은 거의 동물적 보호본능처럼 보인다. 그러다 보니 일관된 논리도, 합리적인 근거도 없다. 수구언론의 음모론 보도를 한번 보라. 황색주간지처럼 증거도, 실체도 제시하지 못한채 그저 정략적으로 몰아가기에 여념이 없다. 게다가 그들 자신들의 `대통령 만들기'는 아무렇지도 않으면서 시민단체의 권리행사는 `과잉정치 행위'라고 비난한다. 유신독재 시절에도 유신에 저항했던 교수와 목사를 `정치교수' `정치목사'라 했다. 새 천년, 새 시대라고 야단법석을 해놓고, 정작 하는 소리는 아직도 케케묵은 옛것들이다.

그러나 낙선운동은 수구언론과 수구세력들이 야합하여 함께 입고 있는 스웨터에 이미 커다란 구멍을 냈다. 이제 남은 일은 지역주의와 수구언론의 요설에 함몰되지 않은 젊은이들이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를 신나게 부르면서 투표장으로 달려가는 일이다. 그래서 저 수구언론과 수구세력의 몸둥이를 감싸고 있는 허위와 오만과 강자의 논리를 죄다 풀어 헤쳐 그들을 발가숭이로 만들면 된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젊은이들이여, 세상을 바꾸라. 워싱턴 특파원jung4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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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칼럼] 한국 신문의 조폭적 행태 /편집시간 2000년10월10일18시20분

70년대 후반,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감옥에 간 적이 있다. 자유언론을 외치다 75년 동아일보에서 추방된 선배들과 함께 구속됐다. 그때 같은 감옥에 들어 와 있던 우리나라 조직폭력계의 거물급 몇명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막강한 힘과 조직과 돈을 가진 대단한 특권층이었다. 청와대 경호실과 검찰 고위급들이 구치소장 방까지 찾아와 특별면회를 했고, 교도소 내에서도 자유롭게 활보하고 다녔다. 왕초를 보살피는 부하들의 극진한 태도를 보면, 그들은 분명 황제였다. 그 황제의 말 한마디에 부하들은 죽음도 마다하지 않을, 절대적인 충성심까지 보였다. 이들이 풀려 나갔을 때 교도소 앞에 늘어선 수십대의 고급 승용차와 부하들의 행렬은 영화에서나 봄직했던 대단한 장관이었다고 한 교도관이 전해줬다.

`야성' 이름아래 무차별 공격

한국 조폭의 역사를 보면 신상사파가 명동을 지배하던 7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주먹'이 지배하던 `낭만적인' 시대였다. 그러나 일본 회칼과 몽둥이가 등장하여 신상사파를 무너뜨린 이후 이땅의 조폭들은 잔인하고 냉혹해졌다. 자기들의 이익과 관할영역 확대를 위해 무자비하게 칼과몽둥이를 휘둘렀던 것이다.

최근 일부 신문의 행태를 보면 이들이 칼과 몽둥이를 마구 휘두르는 조폭의 행태와 무엇이 다른가 하는 참담한 생각이 든다. 실제로 해당 언론사 내부에서조차 “우리가 조폭과 무엇이 다르냐”는 자조섞인 개탄의소리도 들린다.

정상회담 이후 <조선일보>가 보여온 사설 논평은 거의 무차별적 공격이 주종을 이룬다. 6월 13일자 사설에서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던 조선일보는 그뒤 남북간 각종 회담이 열릴 때마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다. 첫 국방장관 회담 때는 `긴장완화'가 빠졌다고 다그쳤고, 이산가족 회담 때는 `면회소 설치' 문제에 진전이 없었다고 호되게 비판했다. 그러다가 일부 회담에서진전이라도 있을라치면 이번에는 `과속'이라고 나무랐다. 남북 화해시대에 대한 극도의 혐오와 저항이 사설과 칼럼 곳곳에 피처럼 배어있다. 그 모습이 조폭의 격한 칼질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무차별적 비판이 `야성'이라는 이름아래 정당한 언론행위처럼 일부에서 평가되기도 한다.

극우와 수구라는 이데올로기에서 이처럼 격렬한 붓의 칼을 휘두르는 조선일보와 달리 <동아일보>는 일관성도 없이 자기들의 조직이익을 위해 마구 칼을 휘두르는, 전형적인 조폭 체질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동아일보 보도가 심상치 않다. 정부비판의 강도를 높이면서 영남지역 문제를집중적으로 부각시켜 동아일보 내·외부로부터 의혹의 눈길을 받고 있다”. <미디어 오늘>이 최근 전한 내용이다. 동아일보 9월 9일자 '대구 부산에는 추석이 없다'는 기사에 대한 회사 안팎의 비판을 전한 이신문은 동아일보가 정부 `때리기', 영남 `달래기'를 하는 원인으로 열세에 몰린 영남권 사세 확장을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는 분석도 실었다. 그리고 “정부에 요구했던 부지매입과 동아방송 반환요구가 거절된 때문이라는 지적도 언론계 내부에서 강하게 제기되고 있어 주목된다”고 지적했다.

젊은 언론인들 일어나라

언론망국론이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군부 독재정권에 빌붙어 온갖 굴종과 왜곡으로 군부 독재정권의 수명을 떠받쳐온 수구언론, 조폭의왕초처럼 제왕적 권력을 누리면서 조폭적 행태를 일삼는 세습 수구언론의사주들, 이들 사주들에게 충성을 바치는 중간 보스들의 노예근성과 이들이 휘두르는 붓의 폭력성, 조폭의 관할영역 확대를 위한 피투성이 싸움처럼 판매부수 1위를 위해 벌이는 살인적인 판매 경쟁 양태, 이런 조폭 수준의 신문들이 신문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하면서 이 땅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이 처절한 상황이 계속되는 한, 이 땅에 사랑과 평화가가득한 공동체 건설을 바라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젊은 언론인들이여.일어나 조폭적 사주들에게 저항하라.

논설주간jung4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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